• 조선일보 14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김창균 논설위원이 쓴 칼럼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마쓰모토 다케아키 중의원은 일본 제1 야당인 민주당의 정조회장(정책위의장)이다. 그는 한국 언론인들과의 30분 면담 내내 아베 총리의 국내 정책을 비판했다. 그러나 화제가 외교정책으로 넘어가자 태도가 금세 누그러졌다. “고이즈미 전 총리는 너무 미국 쪽으로 치우쳤어요. 반면 아베 총리는 취임 직후인 작년 10월 중국과 한국부터 방문했습니다. 미국엔 아직 안 갔어요. 무게중심을 아시아로 옮긴 것이지요.”

    마쓰모토 의원은 면담을 마치면서 망설이듯 말했다. “처음부터 말씀드려야 했는데…. 제 할머니의 할아버지가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안중근 의사에게 피살당한 조선통감)입니다. 그래서 남들보다 더 한·일관계에 기여하겠다고 다짐하고 있습니다.”

    지난주 일본의 정치, 경제, 언론계 인사들을 두루 만났다. “한·일관계가 빨리 정상화됐으면 좋겠다”는 말을 여러 차례 들었다. ‘고이즈미 전 총리의 대미 편중 외교’에 대한 비판이 부록처럼 따라 붙었다. 경단련(게이단렌) 임원인 오하시 요지 ANA 회장은 “고이즈미 전 총리는 아시아 외교를 경시하는 것이 결코 아니라고 했지만 한국 분들은 다르게 느꼈던 것 같습니다”라고 했다. 진짜 하고 싶은 말은 ‘아베 현 총리는 한·중을 먼저 방문했고 야스쿠니신사 참배도 하지 않고 있다. 이만하면 성의를 보인 것 아니냐’는 쪽이었을 것이다.

    일본의 전·현 총리만 비교 대상이 아니다. 일본에 대한 한국과 중국의 대응도 저울대에 올랐다. 일본 신문의 논설위원은 노무현 대통령의 ‘속 좁은 처사’를 꼬집었다. “아베 총리가 중국과 한국에 똑같이 손을 내밀었는데 두 나라 반응은 너무 달랐습니다. 중국은 원자바오 총리에 이어 다른 고위급 인사들도 줄줄이 일본을 찾고 있어요. 마치 일본이 내민 손을 다시 뒤로 빼지 못하게 꽁꽁 묶어두겠다는 것처럼…. 반면 노 대통령은 아베 총리가 내민 손을 머쓱하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일본 관계자들은 어차피 노 정부와 문제를 풀기는 힘들다고 판단한 듯했다. 그래선지 많은 사람들이 “다음 대통령은 어떤 분이 될까요”라고 물었다. 집권 자민당의 고바야시 유타카 참의원은 스스로 답을 찾아 나선 경우다. “서울에 자주 갑니다. 차기 대선 주자들이 어떤 정책 구상을 내놓는지 챙기고 있습니다. 유력한 주자들께서 미·일과의 관계를 튼튼히 하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정말 다행입니다.”

    한·일관계는 시간을 두고 풀어갈 과제다. 반면 일본에 북한문제는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인 듯했다. 8시 조찬 모임에서 만난 야마모토 이치타 자민당 참의원은 자신이 진행하는 새벽 6시반 시사프로에서 6자회담 문제를 막 다루고 왔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에선 6자회담 결과를 어떻게 전망하는지 캐물었다.

    오코노기 마사오 게이오대 교수는 “납북 일본인 문제가 불거진 이후 일본의 대북 정서는 과거 한국의 권위주의 정부 시절 이상으로 강경합니다. 일본인들은 미·북이 6자회담에서 비밀 거래를 하면서 납북 일본인 해결은 뒤로 밀리는 게 아닌가 불안해합니다”라고 했다.

    지난 50년 동안 한반도 안전을 보장해온 한·미·일 삼각 안보체제를 복원시키는 일, 또 미국이 ‘세계 차원의 핵 비확산’이라는 자신의 우선순위에 따라 ‘한반도 비핵화’라는 대한민국의 우선순위를 팽개치지 않도록 견제하는 일등은 모두 한반도의 장래와 운명이 걸린 문제다. 그러나 국내에서 이런 문제들은 까맣게 잊혀졌다. 현해탄 건너 일본 사람들이 대신 궁금해 하고 있다.

    귀국하는 비행기에서 국내 신문을 펼쳤다. 대통령이 “대통령은 정치 중립의 의무가 없다”며 야당 대표와 입씨름을 벌이는 장면, 집권당을 막 탈당한 의원들이 대통령에게 돌팔매질을 하는 장면들이 어지럽게 전개되고 있었다. 일주일 만에 ‘제 자리’를 찾아 돌아오는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