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군의 역사와 전통을 바로 세우자

    이종찬 (한국선진화포럼 이사, 전 국정원장) 

       고등학교에서 '한국사'가 선택과목으로 되었다고 개탄하는 사람들이 많다. 자기나라 역사도 모르면서 어떻게 훌륭한 국민이 될 수 있느냐고 핏대를 올리는 소리를 여러 번 들었다. 이해할 만하다. 필자가 1963년 육군사관학교 교육장교로 근무하고 있을 당시, 교수부장이 커리큘럼에서 국사학을 빼라고 지시하여 초급장교인 필자가 겁도 없이 덤빈 일이 있다. 그 때 그 장군은 “우리의 역사는 모두 부끄러운 역사뿐인데 배울게 무엇이 있어?” 그 말을 듣고 참으로 어이가 없었다.

       그 후 나는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서 비슷한 말을 들었다. 우리의 역사는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한 역사”라고 한마디로 폄하하였다. 이렇게 우리의 역사에 대하여 올바른 평가를 하지 않음으로써 오늘날에도 역사교육을 필수로 보지 않고 배워도 그만, 안 배워도 그만인 선택 과목으로 전락한 것 같다. 이렇게 우리 역사를 난도질함으로써 우리는 모르는 사이 많은 손해를 보고 있다. 몇 가지 사례를 들어서 우리의 올바른 역사인식을 강조해 본다.

       북한의 소위 조선인민군은 1948년 2월 8일 창군 되었다. 그래서 상당 기간 창군기념일을 2.8절이라 했었다. 그런데 1978년부터 김일성이 항일 유격대활동을 시작했다는 1932년 4월 25일 조선인민군이 창군되었다고 역사를 30년대로 끌어 올렸다. 창군일도 자연 4월 25일로 바뀌었다. 상대적으로 우리는 국군의 역사를 마치 1946년 미 군정청이 임시로 설립한 군사영어학교로부터 시작된 것 같이 기술하고 있다.

       그러면 북한은 왜 이런 무리한 역사 갱신작업을 하였을까? 장차 통일시대, 남북한의 군의 통합문제가 대두되었을 경우 사전에 민족사적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한 포석이 아닐까?

       우리는 그동안 역사연구, 특히 근현대사 연구에 소홀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 가운데서도 무장독립투쟁사 부분은 거의 빈칸으로 남아있다. 그러다보니 북측은 재빨리 그 빈칸에 김일성만이 무장투쟁을 한 것으로 선점하였다. 자라나는 세대들이 왜곡된 역사교과서로 인하여 잘못된 역사를 배웠다고 비판할 것이 아니라, 그 공간을 비워놓아서 북측에게 빼앗긴 사실을 근본적으로 반성해야 옳다.

       그래서 이 공간을 다시 찾아오는 운동을 벌리기로 했다. 마침 금년은 독립군 간부를 양성했던 신흥무관학교 창건 100주년 되는 해다. 1911년 6월에 중국의 유하현(柳河縣)에서 창건되었으므로 김일성이 낳기 1년 전 일이다. 그때 이미 우리는 무장독립투쟁을 하고 있었다. 무관학교에서 양성된 약 3000여명의 간부들이 1920년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전투에 투신하여 혁혁한 공을 세웠다.

       그 독립군이 후에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광복군이 되고, 우리 대한민국의 국군과 맥을 잇게 된다. 광복군은 중국 중경에서 1940년 9월 성립식이 거행되었지만 그 자리에서 조소앙 임정 외교부장은 이렇게 경과보고 했다. “정미년(1907년) 8월1일 국방군 해산하던 날이 곧 광복군 창립된 날”이라는 점을 강조하였다. 그러므로 우리 국군은 1907년 이래 비록 일본제국주의의 압력으로 해산되었다 하더라도 그 후에 의병투쟁이 있었고 한 번도 단절됨이 없이 계속하여 왔다는 역사해석이 된다. 이 점이 대단히 중요하다.

       안중근 의사가 일본의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하고 체포되었을 때 “나는 한국 의군 참모중장의 자격으로 조국의 독립과 동양 평화를 위해 행한 것이니 만국공법에 의하여 처리하도록 하라." 고 외쳤다. 다시 말해서 나는 적장을 사살하고 포로로 잡혔을 뿐이므로 전쟁행위로 보고 제네바협약에 의거하여 처리하라는 뜻이다. 안 의사의 말에도 우리 독립군은 존재한다는 사실을 밑에 깔고 주장한 것이다.

       이처럼 문명국에서는 군의 역사를 절대로 단절시키지 않는다. 다른 예를 들어본다. 얼마 전 인천에서 제국 러시아 함대의 기(旗)를 확보했다. 현 러시아 정부의 요청으로 그 기는 러시아의 해군의 역사의 한 페이지로 반환(형식은 장기임대)을 요청하였다. 그들이 기를 다시 수집해 간 이유는 제국러시아의 해군은 지금까지 그 역사가 계속되어 왔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소련이란 공산주의 혁명을 거치고도 군의 역사는 계속된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