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세기 들어 본격적으로 밀려들어오기 시작한 서양문물은 한국, 중국, 일본 등 이른바 ‘동양 3국'에 큰 변화의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달이 차고 이지러짐을 근본으로 따지던 태음력에서, 지구가 해를 한 바퀴 도는 날짜로 셈한 태양력으로 생활의 기준이 바뀐 것도 그랬다.
    알다시피 똑같은 한자(漢子) 문화권에 속한 한중일 세 나라는 오랜 세월 음력으로 명절을 지냈다. 색동옷을 비롯한 설빔을 곱게 차려입고 “♬ 까치 까치 설날은~”하고 노래하던 날은 음력 정월 초하루였고, 중추가절(仲秋佳節) 한가위는 당연히 음력 팔월 보름날이었다.
    가장 먼저 서양화의 길로 치달은 나라는 일본이었다. 일본은 1868년의 메이지유신으로 새로운 근대국가를 출범시키면서 과감히 음력을 버리고 양력을 택했다. 중국이 그 뒤를 따랐다. 1911년의 신해혁명(辛亥革命)으로 정권을 장악한 쑨원(孫文)의 중화민국 정부가 청나라 구습 타파의 하나로 서력기원(=西紀)을 도입했고, 1949년 9월에는 중국 공산당이 공식적으로 양력을 채택했던 것이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는 일제 강점기에 들어가면서 울며 겨자 먹기로 일본의 정책을 따라야하는 처지였으나 그래도 민중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음력이 삶의 중심이었다.
    양력이 시대의 흐름을 주도하면서 전통 명절에도 저절로 영향이 미쳤다. 중국의 경우 4대 명절의 개념이 다시 정해졌다. 음력으로 설날을 춘절(春節), 단오를 하절(夏節), 한가위를 추절(秋節), 동지를 동절(冬節)로 불렀고, 양력 1월1일은 원단(元旦)이라고 했다. 일본은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모조리 음력 날짜를 그대로 양력 날짜로 바꿔버렸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난 세월을 돌이켜보건대 아무래도 이 대목에서는 우리가 가장 갈팡질팡한 게 아닐까싶다. 일본 식민지배로부터 광복을 되찾은 이후에도 음력과 양력으로 명절날이 오락가락하면서 신정(新正)에다 구정(舊正)이 따로 놀았고, 그로 인해 설을 두 번 쇤다는 뜻의 ‘이중과세(二重過歲)’가 사회적 폐단으로 지적되기도 했다. 지금처럼 설날과 한가위가 음력으로 완전히 되돌아가 제자리를 찾은 것은 1980년대 말의 일이다.
    앞서 말한 대로 메이지유신으로 음력이 사라진 일본에서는 몇몇 외딴 마을에서의 예외를 빼고는 양력이 단단히 뿌리내렸다. 설날, 일본어로 오쇼가쓰(お正月)는 양력 1월1일이다. 달이 차는 것과는 상관이 없으니 우리처럼 정월 대보름은 있을 리 없다. 다소 뉘앙스가 어긋나긴 하지만 오봉(お盆)이라 일컫는 한가위는 양력 8월15일 전후이다. 단 도쿄와 같은 대도시에서는 7월15일 전후이다. 우리로 치자면 백중(伯仲)이라고 해야 더 마땅할 이 일본판 추석의 정식 명칭은 ‘우라봉에(盂蘭盆會)’이다. 어쨌거나 양력 날짜로 15일인지라 이 역시 “♬ 달 달 보름달 쟁반같이 둥근 달~”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일본인들은 명절 풍습만큼은 전통을 고스란히 잇고 있어 외국인들로 하여금 감탄사를 터트리게 만든다. 특히 가장 큰 명절인 설날이 그렇다. 우선 오쇼가쓰가 코앞에 닥친 섣달 그믐께가 되면 가정집은 가정집대로, 가게는 가게대로 일제히 집 안팎을 반질반질하게 물청소한다. 현관이나 출입문 곁에는 ‘가도마쓰(門松)’라고 불리는 소나무 장식을 세운다.
    가도마쓰에도 다양한 형태가 있으나 짧고 긴 세 토막의 대나무를 가운데 세우고 그 둘레를 소나무로 엮는 듯한 모양이 일반적이다. 예로부터 일본에서는 소나무에 조상신이 찾아든다는 속설이 있어 소나무 장식을 즐기는 것이다. 가도마쓰를 세워두는 기간은 1월7일까지이다. 이를 두고 ‘소나무가 세워져 있는 동안’이라는 의미로 ‘마쓰노우치(松の內)’라고 부른다.
    섣달 그믐날 밤에는 ‘가케소바’(=국물이 있는 메밀국수)를 먹으면서 장수를 기원하고, 설날 아침이면 설음식인 ‘오세치(お節)’ 요리를 즐긴다. 오세치는 주로 달게 조리고 볶거나 삶은 음식이 많다. 말린 멸치 새끼 볶음, 거두절미하여 말린 청어를 다시마에 싼 다시마말이, 강낭콩과 고구마를 삶아 으깬 뒤 밤을 넣은 것, 그리고 우엉과 연뿌리, 토란, 인삼, 쇠귀나물 등이 대표적인 설음식으로 꼽힌다.
    설날 아침에 어린이들은 새해인사를 한 뒤 어른들로부터 ‘오토시타마(お年玉)’라는 이름의 세뱃돈을 받는다. 세뱃돈을 반드시 매화 그림 등이 그려진 예쁜 봉투에 담아서 주는 것도 색다르다. 게다가 해마다 일본 언론에서는 여론조사를 통해 세뱃돈의 평균액수가 얼마인지를 밝히곤 한다.  그것이 지난 한 해의 국민경제, 즉 서민들의 살림살이를 엿볼 수 있는 흥미로운 하나의 바로미터이기 때문이다.
    중국의 춘절 연휴가 길게는 한 달, 짧게는 일주일가량인데 비해 일본의 설날 휴일은 사흘 동안이다. 그래서 다른 말로 ‘산가니치(三が日)’라 표현하기도 한다. 설날 연휴의 첫 나들이는 온 가족이 신사나 절을 찾아가 한 해의 행운을 비는 것으로 시작한다. 예법으로는 1월7일까지의 ‘마쓰노우치’ 이내에 하면 된다지만, 대개는 산가니치 중에 전통의상으로 설빔을 차려입고 첫 신사참배 ‘하쓰모우데(初詣)’를 하는 이들이 훨씬 많다.
    과연 얼마나 될까? 일본 경찰청이 집계하여 발표한 2009년 새해의 수치로는 산가니치 기간 중 도쿄의 메이지신궁(明治神宮)에 319만 명이 몰린 것을 비롯하여, 전국에서 9천9백여 만 명이 하쓰모우데를 했다고 한다. "불경기로 인하여 참배객이 늘어난 것 같다"는 해설이 따랐다. 어쨌거나 일본 국민 10명 중 8명 이상이 참배한 셈이니 해외여행자나 거동이 불편한 노인, 병자를 빼고는 모조리 나섰다고 해도 결코 지나친 말이 아니리라.
    결국 일본인들은 벌써 150년 전에 음력을 팽개치고 서양식 캘린더를 받아들였으나,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풍속만큼은 철저히 지킨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또 한 가지, 비록 상징적이더라도 천황이 있기에 그네들은 서기와 더불어 자신들 고유의 연호(年號)를 일상생활에서 변함없이 애용하고 있음도 놓쳐서는 안 된다. 1989년에 현재의 아키히토 천황이 왕위에 오른 이후의 연호는 ‘헤이세이(平成)’이다.

     

    도서출판 기파랑 펴냄 '일본 상식문답'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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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양욱 일본문화연구소장 : y2cho88@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