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씨, ‘이재용 공판’ 증인으로 깜짝 출석...특검 해명, 곳곳 허점

[정유라 증언의 재구성] 돌연 자진출두, 그날 새벽 무슨 일이 있었나?

이경재 변호사 “특검의 회유와 압박 의심, 증언 효력 재검증해야”

양원석, 임혜진 기자 | 최종편집 2017.07.13 15:4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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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라는 새벽 2시쯤 집을 나왔고, 성명불상자들과 함께 승합차를 타고 종적을 감췄습니다.

(중략)
특검은 심야에 21세의 여자 증인을 이런 방식으로 인치하고 5시간 이상 사실상 구인·신변확보 후 변호인과의 접견을 봉쇄하고 증언대에 내세웠습니다.
특검의 이런 행위는 위법이자 범죄적 수법이란 비난을 받을 소지가 있습니다.

(중략)
정유라의 법정증언은 그 자체로 존중돼야 하지만, 신체적·정신적 피폐 상태에 있고, 3차 구속영장청구의 위협과 검찰 회유(변호인 교체 권유)가 중첩된 상황에서 행해졌으므로, 특정인들의 압박과 회유 등으로 오염됐다는 합리적 의심이 있습니다.

(따라서 이날 정유라 증언의 효력은) 진정한 자유진술에 의해 검증돼야 할 것입니다.“

- 정유라씨 변호인, 이경재 변호사


어린 아기를 둔 21세의 여성이 제3자의 형사재판에 증인으로 채택됐다. 검찰은 두 차례에 걸쳐 그녀에 대한 구속영장 발부를 청구했으나 법원은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이 소명되지 않는다”며, 이를 기각했다.

증인출석 예정일 하루 전, 변호인은 그녀의 의사를 확인하고, ‘불출석 사유서’를 해당 재판부에 냈다. 그러나 그녀는 다음날 새벽 변호인에게 아무런 연락도 하지 않고, 집을 나갔다.

그녀는 집 밖에 대기 중이던 승합차에 올라탔고, 약 8시간이 지난 뒤 검찰 측 증인으로 법정에 출석했다.

검찰은 해당 증인을 상대로 ‘합리적 설득’을 진행했으며, 그 결과 당사자가 자발적으로 법정에 출석한 것이라고 했다.

의뢰인이 갑자기 마음을 바꿔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한 사실을 나중에야 한 변호인은, 그녀가 출석한 과정에 의문을 제기했다.

하루 전까지 분명히 출석 거부의사를 밝혔던 그녀가, 왜 당일 새벽 집 밖에 대기 중이던 승합차에 올라탔는지, 그녀를 데려간 이들은 누구인지, 검찰이 ‘보호’를 한 8시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 모든 상황을 납득하기 어렵다는 것이 변호인의 주장이다.

과연 이런 상황에서 이뤄진 증인의 진술은 증거능력을 인정받을 수 있을까? 검찰이 ‘회유’나 ‘압박’을 하지 않았다고 확신할 수 없다는 변호인의 의혹 제기를, 억측이라고 외면만 할 수 있을까?


영화에나 나올법한 ‘증인 빼돌리기’가 현실에서 벌어졌다.

대상은 지난해 말 국가를 누란의 위기에 빠트린 최서원(최순실)의 딸 정유라씨.

박영수 특검은 007작전을 연상시키는 방법으로 정씨의 신변을 확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뇌물공여 등 혐의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시켰다.

12일 오전 열린 이 사건 공판에서, 정씨의 출석을 예견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만큼 정씨의 등장은 파격적이었고, 그 자체로 뉴스거리가 됐다.

이날 현장을 취재한 기자들의 눈에 비친 특검의 얼굴은 어느 때보다 밝았다.

이 사건 공소유지를 담당하고 있는 특검은, 공소사실 입증을 위해 증인들을 강한 어조로 몰아붙이곤 했으나 이날만은 달랐다. 특검은 ‘다정하게’ 정씨에게 질문을 했고, 그녀는 발랄한 표정으로 순순히 답변에 응했다.

반면 정씨는, 이어진 피고인 측 변호인단의 반대신문에서는 작은 목소리로 “잘 알지 못한다”, “제가 알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 등의 답변을 내놔 대조를 이뤘다.

정씨의 변호인인 이경재 변호사는, 특검의 행태를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정씨의 증언은 자유로운 심리상태에서 이뤄졌다고 확언할 수 없으므로, 이날 증언의 효력을 객관적으로 검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변호사는 “정유라가 어떤 경위로 법정에 출석했는지 정밀하게 그 과정을 파악 중에 있다”며, 특검의 무리수를 맹비난했다.

“현재까지 확인된 내용을 보면, 정유라는 오늘 새벽 05:00 이전 혼자 주거지 빌딩을 나와 빌딩 앞에 대기 중인 승합차에, 성명불상자들에 의해 승차한 뒤 종적을 감췄습니다.

정유라는 오늘 법정 출석에 대해 어느 변호인과도 사전 상의하거나 연락한 사실이 없습니다. 이는 정유라가 ‘3차 구속영장’ 청구 여부를 결정하지 못한 상태에 있는 피의자인데도,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차단됐음을 시사하는 부분입니다.

(중략)
특검은 재판부에 정유라를 설득해서 출석케 하겠다고 공언했다고 하나, 그 설득 공언은 출석강요 내지 출석회유임이 드러났습니다.“

- 이경재 변호사.

특검도 이런 논란을 의식했는지 이날 오전, 법조기자단에 정씨의 증인 출석은 ‘자유의사에 따른 결과’라는 내용의 메시지를 전했다.

특검은 “정유라에 대한 불법적인 출석 강요는 없었다”며, “정유라 본인에게 출석의무가 있다는 것을 고지하는 등 출석을 하도록 합리적인 노력을 해, 본인의 자의적 판단으로 출석케 된 것”이라고 해명했다.

새벽에 정씨를 호송차로 이동시킨 이유에 대해서도 “정씨가 이른 아침에 연락해, 고민 끝에 법원에 증인으로 출석하는 게 옳다고 생각했다는 뜻을 밝혔고, 이동하는데 지원을 요청해 도움을 준 것”이라고 덧붙였다.

특히 특검은 “정씨는 오전 8시께 변호인에게 자의로 출석한다는 내용의 휴대폰 문자메지시를 보냈다”고 설명했다.

특검의 해명을 통해 알 수 있는 건 두 가지다.

하나는 특검이 정유라씨 본인에게 직접 연락을 취해, 출석을 설득했다는 사실이다. 이는 특검이 스스로 밝힌 이상 달리 이견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정씨는 덴마크에서 강제송환 돼 한국 땅을 밟은 때부터 이경재 변호사 등의 조력을 받았다. 이 변호사 등은 두 차례에 걸친 영장실질심사에서도 정씨를 변론했다. 이런 사실을 특검이 모를 리 없다. 특히 재판부에 이미 불출석 사유서가 제출된 상태에서, 특검이 변호인을 제외하고 본인에게 출석을 설득했다는 점은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정씨에 대한 ‘3차 구속영장 청구 가능성’이 여전히 열려 있고, 평소 언론 인터뷰를 통해 정씨가 자녀에 대한 강한 애정을 드러낸 점 등을 고려한다면, 검찰이 말한 ‘합리적인 노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다.

앞서 정씨는 덴마크에 있을 때도 “한국 정부 당국이 아이를 볼 수 있게 보장해주면 귀국할 의사가 있다”고 말할 만큼 절절한 모정을 나타냈다.


특검은 정씨가 이른 아침 직접 전화를 해 출석의사를 밝혔다고 하지만, 이 부분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 이경재 변호사 등에 따르면 정씨가 집을 나선 시각은 새벽 2시쯤이다. 그렇다면 정씨가 특검에 출석의사를 밝힌 시점은 한밤 중이란 결론이 나온다.

정씨가 ‘법원으로의 이동 지원’을 요청했다는 특검의 설명도 어색하다.

변호인단을 비롯해 주변에 조력자들이 있는데도 정씨가 한밤 중에 단독으로 출석의사를 밝히면서, 동시에 특검 측에 ‘차량 지원’을 요청했다는 주장은, 아무리 봐도 설득력이 약하다. 참고로 특검은 정씨가 집을 나선 시각과 관련해, 이경재 변호사 측의 반론에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이경재 변호사는, 정씨가 오전 8께 출석 사실을 알리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는 특검 측 주장에 대해서도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다.

이 변호사는 이날 오후 다시 한 번 입장자료를 내고, “정씨의 변호인 가운데 누구도 오전 8시께 특검 주장과 같은 문자를 받지 못했다”며, “만약 그런 문자를 받았다면 변호인으로서 정씨에게 적정한 조력과 조언을 했을 것”이라고 받아쳤다.

이 변호사는 “정씨가 법정에 출석한다는 문자는 이미 재판이 시작된 오전 10시23분께, 발신자를 알 수 없는 사람이 권영광 변호사에게 보낸 것이 유일하다”고 했다.

이 변호사는 “뒤늦은 문자메시지는 특검이 출석 강요 논란을 피하기 위해 급히 위장한 것으로 보인다”며 거듭 의심을 눈길을 보냈다.

다음은 이에 대한 이경재 변호사의 반박.

“이 같은 사정을 모아보면 특검 측 또는 그와 연계된 자가, 정씨가 법정에서 증언 중일 때, 강요나 유인으로 인한 증인 출석(논란)을 우려해 그 호도책으로 급하게 사실과 다른 내용의 문자를 보내고, 마치 정씨가 직접 또는 정씨의 부탁으로 변호사에게 뒤늦게 문자를 보낸 것으로 위장한 것."

논란이 커지면서, 13일 오전에는, 정유라씨 증인 출석과 관련해 특검의 행태를 비판하는 글이, 카카오톡 메시지 등을 통해 퍼지기도 했다.

‘검찰 생활 30년 하신 어느 선배님께서 참담해하시며 애통한 맘에 올린 글’이란 제목이 붙은 글의 원문은 아래와 같다.

특검 발등에 불.
오죽했으면 증인 불출석 사유서까지 낸 21살짜리 여자증인을 새벽5시에 데리고 와서, 검찰에서 데리고 있다가 재판에 출석시켜 증인서도록 하고.
어떤 판사가 그 증인 말 믿겠나?
새벽에 증인을 데리고 와서 5시간동안 무슨 교육을 시켜서 재판정에 데리고 왔다는 걸 판사가 모르겠나?

정말 특검 쪽팔리고. 발등 불떨어졌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증인은 불출석 사유내고 있는 몸이라 판사 구치영장도 못받는다.  
정말 특검은 겁도 없는지, 증인을 새벽에 호송차 태워서 검찰로 데리고 와서 몇시간 잡아났다가 법정에 증인세운다는 얘기는 30년 만에 처음 듣는 소설 같은 일이 벌어짐.

특검이 사실상 무리수를 써가며 증인으로 출석시킨 정씨의 증언이, 기대만큼 효과를 발휘했다고 말하기에는 다소 부족한 측면이 있다.

특검은 정씨의 증언으로, 살시도와 블라디미르 등 마필의 소유권이 최순실 모녀에게 있음이 입증됐고, 이는 삼성이 처음부터 조직적으로 최씨 모녀를 지원했음을 입증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주장과 달리, 정씨의 신문 내용을 꼼꼼하게 들여다보면, 이날 그녀의 증언이 반드시 특검에게 유리하다고 단정 짓기는 곤란하다.

예를 들어, 다음의 증언들은 ‘특검의 공소사실을 입증하는 증언’이라고 보기엔, 논리적으로 하자가 있다.

“삼성에서 6명의 (승마)선수를 선정해 2명은 탈락시키고 4명을 지원한다는 말을 (어머니에게) 들었다. 저도 그 중에 한 명이 될 수 있다는 말을 (어머니에게) 들었다.”

“독일로 넘어와 엄마에게 왜 다른 선수는 없냐고 수차례 물어봤더니 엄마는 ‘가만있어라. 좀 있으면 온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엄마와 박원오 전무부터 삼성이 여러 선수를 지원한다는 사실을 들어서 그런가보다 했다.”

이들 증언은 삼성이 ‘올림픽 승마지원’을 위해 기획한 ‘함부르크 프로젝트(승마유망주 해외전지 훈련)‘가 실제로 존재했으며, 최씨의 전횡으로 이 계획이 중도에 틀어졌다는 피고인 측 주장에 힘을 실어준다.

어머니 최씨와 박원오 승마협회 전무가 갈라선 이유를 묻는 질문에, 정씨가 갑자기 화를 내면서 증언을 거부한 사실도, 그녀 진술의 신뢰를 떨어트리는 대목이다.

정씨는 자신이 타던 말, 비타나V가 부상을 입었는데도, 삼성이 이 말을 원 소유주인 안드레아스에게 되판 과정을 설명하면서,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고 했다. 삼성은 150만 유로에 구입한 비타나V를 안드레아스에게 넘기면서 160만 유로를 받았다.

특검은 “정씨의 진술은, 삼성이 허위계약을 통해 마필의 소유권을 최씨 측에 넘기려고 했음을 방증한다”고 주장했다.

‘비타나V 재판매 과정’에 대한 정씨의 증언은, 판매금액만 놓고 본다면 고개를 갸웃거릴만하다.

특검의 공세에 변호인단은 의외로 자신감을 내비쳤다.

변호인단은 “살시도 재판매 계약에는 판매금액 이외에 다양한 부대조항이 달려 있다”며, “그 과정을 자세하게 밝혀줄 의견서를 내겠다”고 밝혔다.

증언내용의 유·불리를 떠나, 그녀 진술의 상당수가 ‘어머니에게 들은 전문(傳聞)진술’이란 한계도, 특검에겐 걸림돌이다.

자신이 직접 목격한 것이 아니라, 제3자에게서 전해들은 내용을 다시 진술하는 경우, 그 증명력은 크게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재용 부회장 측 변호인단은 “(독일에 있을 때) 정씨는 18살의 어린 나이로 엄마의 보호를 받는 운동선수에 불과했다"며 "그녀는 계약서나 서류를 본 적도 없으며, 엄마로부터 전해 들은 내용이 증언의 대부분”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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