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도 당인가" 싶었던 한국당, 정신은 차렸지만…
  •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22일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후보자대회에서 연설을 위해 연단으로 나서고 있다. ⓒ부산=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22일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후보자대회에서 연설을 위해 연단으로 나서고 있다. ⓒ부산=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영화 〈인디아나 존스 : 최후의 성전〉을 보면, 독일 베를린에 잠입한 헨리 존스 교수(숀 코너리 분)가 하켄크로이츠를 휘날리며 광분하는 나치 무리들을 보며 인디아나 존스(해리슨 포드 분)를 향해 "마치 지옥으로 순례를 온 것 같은 느낌"이라고 말하는 대목이 있다.

    지난 17일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열렸던 자유한국당 서울 권역 후보자대회가 꼭 그 꼴이었다. 어디서 떼로 나타났는지 알 수 없는, 근본도 없는 무리들이 한국당 후보자 선출과는 전혀 관련도 없는 온갖 기물을 들고 휘두르며 괴성을 질렀다.

    출입기자단은 그야말로 지옥으로 순례 여행을 간 듯한 느낌이었다. 당직자와 취재기자들이 서로 얼굴을 마주보고 한숨을 쉬며 "이것도 당이냐"고 개탄했던 것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보수정당의 바닥까지 간 모습을 확인했던 날이었다.

    다행히도 한국당은 불과 닷새 만에 훨씬 나아진 면모를 보였다. 22일 벡스코 오디토리움에서 열린 부산·울산·경남 후보자대회에서는 대한민국의 건국과 산업화·민주화를 주도했던 정당다운 질서정연함과 품격이 되살아났다.

    인명진 비상대책위원장과 정우택 원내대표 등 당 지도부가 호명될 때, 장내를 채운 책임당원 선거인단들은 잔잔한 박수로 환영과 신임의 뜻을 표했다. 요즘은 시정잡배들을 모아놔도 보기 힘든 광경인, 지난 17일과 같은 난리통은 다시 연출되지 않았다.

    인명진 위원장이 연설하기에 앞서 누군가가 "들어가!"라고 무례한 고성을 질렀지만, 주위의 당원들이 모두 쏘아보며 "내보내라"고 하자 저절로 위축되는 모습이었다. 이후로는 감히 이렇다할 망동(妄動)은 없었다.

    소란 없이 진행된 지도부 개회사는 정우택 원내대표의 연설에서 절정에 달했다.

    정우택 원내대표가 '절대 대통령이 돼서는 안 될 사람'으로 "사드 배치를 반대하는 사람" "유엔인권결의안을 의결하는데 북한에 물어보고 기권하는 사람"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을 재개해 북한에 돈을 퍼주겠다는 사람" "미국보다 북한에 먼저 가서 패륜아 김정은을 포용하겠다는 사람"을 열거하며 목소리를 높여가자, 좌중은 "옳소"라는 추임새와 함께 끓어오르는 환호로 하나가 됐다.

    바로 이런 모습이 우리나라 제1의 보수정당의 후보자 선출대회에서 국민들이 기대하는 모습이다. 친박과 친문패권을 모두 배격하고, 보수를 폭넓게 포섭해 좌파 정권의 집권을 저지할 수 있겠다는 믿음을 주는 그런 정당의 모습이다.

    이날 한국당 후보자대회가 정상적으로 진행된 것에는 당 지도부와 당직자들의 공이 컸다. 비표 검사를 철저히 하고 책임당원 아닌 자들의 입장을 통제한 것이 승인(勝因)이었다. 아주 잘했다는 칭찬을 거듭 들어 마땅하다.

    이는 보수의 품격과 후보자대회의 권위를 지키는 길이기도 하거니와, 기본적으로 보수정당으로서 법령을 준수하는 길이기도 했다. 공직선거법 제140조 1항은 정당의 후보자선출대회에는 투표권 있는 당원 아닌 자가 참석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애시당초 지난 17일과 같은 해괴한 작태는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됐던 것이다.

  •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22일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후보자대회에서 연설을 마치고 자리로 돌아오는 가운데, 부산 서구·동구가 지역구인 유기준 의원이 박수로 맞이하고 있다. ⓒ부산=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22일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후보자대회에서 연설을 마치고 자리로 돌아오는 가운데, 부산 서구·동구가 지역구인 유기준 의원이 박수로 맞이하고 있다. ⓒ부산=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질서와 품격을 되찾은 후보자대회장에는 그러나 반드시 있어야 할 사람이 없었다. 뻥 뚫린 것처럼 그의 빈 자리는 커보였다. 중도 통합을 역설했던 안상수 의원의 빈 자리였다.

    이날 후보자대회에서는 본경선에서 최종 후보로 선출되면 도대체 어떻게 해서 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를 이길 것인지, 그 방법론이 빠져 있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 찬성하는 응답층이 80%에 육박하는 '기울어진 운동장'을 어떻게 바로잡을 것인지, 어떻게 '박근혜 전 대통령을 잊고' 국민들의 관심의 초점을 정권심판에서 문재인 전 대표의 후보 적합성 여부로 돌려놓을 것인지, 어떻게 보수에서 중도에 이르는 넓은 유권자층의 마음을 사로잡아 다수가 돼서 5월 9일에 웃을 것인지 방법론에 대한 논의는 실종됐다.

    그 해답은 일찍이 안상수 의원이 내놓았었다. 지난 17일 그 아수라장 속이었던 서울 권역 후보자대회에서 안상수 의원은 담대한 해법을 제시했다.

    당시 안상수 의원은 대선 정국을 "우리가 유리하지 않다"며 "우리끼리만 뭉쳐서는 대통령을 당선시킬 수 없다"고 냉정하게 진단했다. 그러면서 "중도 세력을 우리의 품으로 안아야 한다"며 "본선에서는 국민 다수의 지지를 얻어야 한국당에 승리를 안겨줄 수 있다"는 지극히 당연한 정론을 설파했다.

    20일 국회 기자회견에서도 "품격이 없으면 보수가 아니다"라며 "중도 통합으로 본선 경쟁력을 제고해야 한다"고 고언했다.

    진작 후보자대회가 좀 더 차분한 분위기에서 진행돼 안상수 의원의 주장이 국민 대중 사이로 널리 공명(共鳴)할 수 있었더라면 오죽이나 좋았을까.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난장판으로 변해버린 '막장극'이 공교롭게도 SNS를 통해 생중계된 통에, 주장의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은 뒷전이 돼버렸다.

    이날의 부산·울산·경남 후보자대회처럼 절제된 분위기 속에서 책임당원 선거인단들이 연설을 경청하는 분위기였다면, 안상수 의원의 냉정한 현실 진단과 대선 승리의 방법론 제시는 틀림없이 평가를 받았을 것이다. 물론 이제 와서 이런 이야기를 한다고 해도 망양보뢰(亡羊補牢)다.

    다만 이제라도 외양간을 손보는 이유는 컷오프를 통과한 네 명의 후보자들이 마치 초록이 동색 같은 모습을 연출하지 않고, 어떻게 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를 본선에서 꺾을 것인지 그 방법론에 집중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본선에서 질 후보는 애초부터 뽑혀야 할 명분도, 뽑아야 할 이유도 없다.

    향후 이어질 TV토론에서는 안상수 의원의 빈 자리를 한탄하지 않아도 되는 모습을 보여주길 기대해본다. 그래서 "저런 사람들은 한 명만 컷오프를 통과하면 되지, 뭣하러 똑같은 자들이 셋씩이나 우르르 컷오프를 통과했느냐"는 개탄이 국민과 당원 사이에서 나오지 않게끔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