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초순 英정보기관, 美정보기관 공동작전으로 귀순…한국 내 ‘두더지’ 주시해야
  • 英'선데이 익스프레스'는 태영호 공사 가족의 한국 귀순작전에 대해 비교적 상세한 기사를 내놨다. ⓒ英선데이 익스프레스 관련기사 화면캡쳐
    ▲ 英'선데이 익스프레스'는 태영호 공사 가족의 한국 귀순작전에 대해 비교적 상세한 기사를 내놨다. ⓒ英선데이 익스프레스 관련기사 화면캡쳐


    英런던 북서부의 왓포드 골프장, 런던의 北대사관, 런던 시내의 안가(安家), 옥스퍼드셔의 브라이트 노턴 공군기지, 독일 람슈타인 美공군기지, 그리고 한국 서울.

    가족과 함께 한국으로 귀순한 태영호 前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의 귀순 경로다. 태영호 공사의 한국 귀순 뒤에는 英정보기관과 美정보기관, 한국 정보기관의 긴밀한 협조가 있었다고 英‘익스프레스’ 일요판 ‘선데이 익스프레스’가 2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선데이 익스프레스’는 이날 “폭로: 왓포드 골프장에서 영국 정보원과 북한 탈출자가 만났다”는 기사를 통해 태영호 공사의 귀순 과정 일부를 공개했다.

    ‘선데이 익스프레스’에 따르면 태영호 공사는 골프를 좋아하는 편으로 2개월 전 런던 인근의 왓포드 골프장에서 英정보기관 요원을 만났다고 한다.

    ‘선데이 익스프레스’는 소식통을 인용, “당시 태영호 공사는 조만간 평양으로 돌아간 뒤에 벌어질, 가까운 미래에 대해 불안감을 털어놨다”고 전했다. 그의 부인 오선해 씨 또한 태영호 공사처럼 평양으로 소환된 이후의 ‘미래’에 대해 심각하게 우려했다고 한다.

    ‘선데이 익스프레스’는 태영호 공사 부부의 속내를 파악한 英정보기관은 곧 ‘동맹’인 美정보기관과 관련 내용을 공유했고, 6주 전 美워싱턴에서는 여러 정보기관에서 보인 소규모의 엘리트 요원들이 영국 런던으로 건너가 英정보기관과 함께 태영호 공사 가족의 안전한 망명을 위한 계획을 준비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미국과 영국 정보기관이 극도의 보안을 유지하며 태영호 공사 가족의 망명 계획을 준비했음에도 얼마 뒤부터 서울에서는 “유럽에서 북한 외교관이 망명을 준비 중”이라는 소식이 나오기 시작했다고 한다. 한국 정보기관 내에 ‘두더지(Mole)’이 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미국, 영국, 한국 정보기관은 이때부터 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서울에서 태영호 공사의 망명을 알아채기 전에 그를 안전하게 데려오기 위해서였다.

    ‘선데이 익스프레스’는 “미국과 영국 정보기관이 전 세계 어디로든 안전하게 망명할 수 있는 ‘백지 위임장(Carte Blanche)’을 제안했음에도 태영호 공사는 한국을 선택했다”고 전했다.

    이후 태영호 공사 가족의 망명 작전은 지난 7월 초순부터 시작됐다. 이때부터 서울로 오기 전까지는 英정보기관이 마련한 ‘안가(安家)’에서 지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어 7월 하순의 어느 평일, 태영호 공사 가족은 英옥스퍼드셔에 있는 브라이트 노턴 공군기지에서 英공군 소속 단거리 소형 여객기(BAE-146)에 올랐다. 태영호 공사 부부와 두 아들, 망명 작전을 실행한 美·英정보기관 관계자들이 여객기에 올랐다.

  • 태영호 공사 가족을 싣고 독일 람슈타트 NATO 공군기지까지 갔던 英공군의 BAe-146과 같은 기종. 영국 또한 미국처럼 정보요원들을 위해 소형 여객기를 운용한다. ⓒ위키피디아 공개사진.
    ▲ 태영호 공사 가족을 싣고 독일 람슈타트 NATO 공군기지까지 갔던 英공군의 BAe-146과 같은 기종. 영국 또한 미국처럼 정보요원들을 위해 소형 여객기를 운용한다. ⓒ위키피디아 공개사진.

    이들이 탄 BAE-146 여객기는 몇 시간 뒤 독일에 있는 람슈타인 美공군기지(실제로는 NATO공군기지)에 내렸다. 태영호 공사 가족은 이곳에서 ‘다른 비행기’로 갈아탄 뒤 다시 유라시아 대륙을 가로질러 한국으로 왔다. 이때는 소수의 美·英정보기관 요원과 한국 정보기관 요원이 탔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선데이 익스프레스’는 태영호 공사 가족의 한국 망명 과정에서 있었던 소소한 에피소드도 전했다. 태영호 공사가 아끼는 골프 클럽, 그의 부인 오선해 씨가 아끼던 테니스 라켓, 영국을 떠나기 전 ‘마크 앤 스펜서’에 들러 평소 갖고 싶었던 물품을 잔뜩 사고 싶어했던 모습 등을 묘사했다.

    ‘선데이 익스프레스’는 그러나 태영호 공사 가족의 망명 작전은 전반적으로 유명 작가 ‘그레이엄 그린’의 소설을 보는 듯 긴박하게 돌아갔다고 설명했다.

    실제 北조선중앙통신이 내놓은 태영호 공사 비방논평 등을 보면, 英정보기관이 재빠르게 움직이지 않았다면, 태영호 공사와 가족들은 지난 7월 중순 강제로 송환 당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 경우 이미 숙청당한 일가친척들처럼 상당한 고통을 겪었을 것이다.

    ‘선데이 익스프레스’와 접촉한 고위 정보관계자는 태영호 공사 가족의 한국 망명을 가리켜 “그의 탈출은 정보계에서는 중요한 혁명”이라고 평가했다고 한다.

    ‘선데이 익스프레스’의 보도 내용이 모두 사실인지 아니면 호사가들을 통해 흘러나온, 부풀려진 이야기인지는 확인하기 어렵다. 하지만 태용호 공사 가족의 망명 과정에 한국과 미국, 영국 정보기관들 간의 긴밀한 협조가 있었다는 점 또한 부인하기 어렵다. 

    참고로 영국 정부는 북한 주민들의 인권에 대해 미국만큼이나 큰 관심을 갖고 있다. 英정보기관 또한 대량살상무기 확산과 테러조직 지원, 인권 문제 등으로 인해 북한 김정은 집단을 주요 적대세력으로 간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점을 들어 일각에서는 “태영호 공사 가족의 귀순은 MI6와 CIA, 국정원의 합작품”이라는 평가를 내놓기도 한다. 이번 일에 관여한 사람들이 누구인지, 인원이 몇 명인지도 드러나지 않았다는 점에서 ‘태영호 공사 가족 귀순 공작’는 매우 성공한 작전으로 평가받게 될 것이다.

    다만 이번의 ‘성공’과 함께 태영호 공사 가족 귀순 작전에 대한 내용이 서울에서 새나갔다는 ‘선데이 익스프레스’의 보도는 보다 면밀히 점검해야 할 사안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