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역사 지나친 민족주의 관점에서 해석…열린사고 필요"
  • ▲ 자유경제원은 21일 "조선왕조 제대로 보기: 조선을 알아야 대한민국의 위대함을 알 수 있다"를 주제로 생각의 틀 깨기 9차 세미나를 개최했다. ⓒ 뉴데일리 이종현 사진기자
    ▲ 자유경제원은 21일 "조선왕조 제대로 보기: 조선을 알아야 대한민국의 위대함을 알 수 있다"를 주제로 생각의 틀 깨기 9차 세미나를 개최했다. ⓒ 뉴데일리 이종현 사진기자


    1948년 8월 15일,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를 기반으로 한 대한민국의 역사가 시작됐다.

    대한민국의 눈부신 성장은 전 세계가 인정하는 놀라운 결과였다. 하지만 21세기 한국 사회의 사고 방식 가운데 상당 부분은 아직도 조선시대 '성리학' 수준에 머물고 있다.

    조선은 미디어에서 포장하는 것처럼 훌륭한 나라만은 아니었다. 사농공상(士農工商)이라는 '계급구조'를 세우고, 뜬 구름 잡는 소리만 했던 선비, 사대주의를 앞세우며 자신들의 안위만 걱정했던 왕조 때문에 나라가 망했음에도 이에 대한 반성은 거의 없었다는 비판도 받는다.

    자유경제원은 21일 "조선왕조 제대로 보기: 조선을 알아야 대한민국의 위대함을 알 수 있다"를 주제로 '생각의 틀 깨기 9차 세미나'를 열었다.

    이날 토론회는 조선말기 왕조의 몰락의 원인을 분석하고 그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가를 다뤘다.

  • ▲ 현진권 자유경제원 원장 ⓒ 뉴데일리 이종현 사진기자
    ▲ 현진권 자유경제원 원장 ⓒ 뉴데일리 이종현 사진기자


    사회를 맡은 현진권 자유경제원 원장은 "조선 말기, 당시 근대화를 준비하지 않고 지켜야할 사상과 제도를 정비하지 못했던 조선 왕조에 대해 반성해야 한다"면서 "지난 역사를 되짚어 보고 더 나은 대한민국을 위한 대안을 모색하기 위해 이번 토론회를 개최했다"며 토론회를 시작했다.

    발제를 맡은 이영훈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현재 우리 역사 교과서조차 조선 왕조가 망한 원인에 대해 제대로 된 설명을 하지 않고 있다. 교과서 문맥 그대로 라면 일제가 쳐들어와서 그렇다고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명백한 사실이기는 하지만 일제가 쳐들어왔는데 왜 막지 못했는가에 대해 우리 스스로 진지하게 되물을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영훈 교수는 "현재 대한민국이 역사 정체성에 대한 국민적 의식이 없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그런 관점에서 역사책과 아이들의 역사 교과서를 보면 문제를 알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영훈 교수는 "민족주의 관점에서 조선시대를 바라보면 아름다운 선비의 문화와 성리학이라는 정치 철학으로 압축할 수 있다"면서 "교과서는 이를 착하고 선량한 문화라고만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그 '선량한 선비 정신' 때문에 적에게 대항하지 않아 패망했다고 설명하기도 한다"고 주장했다.

  • ▲ 이영훈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 뉴데일리 이종현 사진기자
    ▲ 이영훈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 뉴데일리 이종현 사진기자


    조선 왕조는 일본 제국주의의 침입을 받아 부당하게 소멸된 왕조였다. 일본의 침입으로 우리 민족의 수탈, 약탈과 같은 역사가 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역사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이후 '한반도 근대화'가 어떻게 이뤄졌는지는 다루지 않고 있다는 설명이었다. 현재 역사 교과서는 '민족의식을 바탕으로 한 저항운동'만 주로 다룬다는 것이 이영훈 교수의 지적이었다.

    이영훈 교수는 "한마디로 정리하면 조선은 '백성의 나라'가 아니었다. 조선 왕조가 망한 이유는 왕과 양반의 지성에서 창조적 변화가 생겨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견갑(堅甲)으로 둘러싸인 전통 문명은 무척이나 아름답지만, 그것에 현혹돼 제대로 된 역사를 바라보지 못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지적했다.

    이영훈 교수는 "조선 왕조가 망한 것은 크게 보면 인류사의 한 단면일 뿐이다. 서글프지만 대범하게 그 점을 전제해 둘 필요가 있다"면서 "지금부터는 20세기의 한국사를 좁은 시각에서 벗어나 문명사의 대전환이라는 넓은 시각에서 다시 바라볼 필요가 있다. 과거를 훌훌 털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조선을 바라보는 기본 전제여야 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이영훈 교수는 "조선 말기 역사는 민족주의를 반성하는 의미에서 되돌아봐야 할 필요가 있다. 무조건적인 비판을 하겠다는 것이 아닌, 그동안 미화돼온 조선 왕조에 대한 사실을 밝혀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토론을 맡은 계승범 서강대 사학과 교수는 "현재 조선 왕조의 편향적인 해석은 당시 시대적인 분위기 때문이었을 것"이라며 "해방 후 식민 사관을 극복하는 것이 가장 큰 시대적 사명이었기 때문에 그랬을 것"이라고 풀이했다.

  • ▲ 계승범 서강대 사학과 교수 ⓒ 뉴데일리 이종현 사진기자
    ▲ 계승범 서강대 사학과 교수 ⓒ 뉴데일리 이종현 사진기자


    계승범 교수는 "현재 조선왕조를 바라보는 다른 시각이 왜 교과서에 반영되지 않고 있느냐에 대해서는 유신 때 있었던 교과서 국정화를 들 수 있다. 당시 교과서는 중앙 정부에서 강력하게 제어했기 때문"이라며 "실제로 70년대 교과서를 보면 너무나도 민족주의적이다. 예를 들면 위정척사 운동을 강력한 민족주의 운동으로 설명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당시 시대가 이런 부분을 요구하고 있었던 것 같다"고 해설했다.

    조선 역사를 정치, 사회, 경제적으로 풀이할 때 '당시 조선은 발전하고 있었다'라는 결론을 내기 위해 관련 부분을 강조한 것이 문제가 됐다는 계승범 교수의 설명이다.

    계승범 교수는 "'선비는 없다'라는 책을 쓰면서 유교적 가치로 그들을 평가해 보니 굉장히 미화됐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며 "당시 그들에게는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계승범 교수는 조선 말기 선비 계층이 독점했던 정치, 경제, 문화 모두가 일본에 침략됐다고 한다. 하지만 외세의 침략에 대해 모든 권력을 독점했던 선비들은 책임을 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계승범 교수는 "당시 선비는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개혁을 미루고, 변화를 두려워 했을 뿐"이라며 "자기 자신을 강조하고 국가 공동체는 지키지 않았던 선비들의 생각 때문에 이런 문제가 발생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조선 왕조 멸망의 문제는 현재 한국 사회의 문제로도 이어진다고 한다. 당시 조선의 최상층 엘리트와 100년 뒤 현재 한국 최상층은 사회 전체에 대한 책임감이 없다는 것이 계승범 교수의 지적이었다.

    계승범 교수는 "그렇다고 조선 왕조가 모두 나쁜 것도 아니다. 멸망과 침체의 원인은 종합적으로 봐야한다"면서 "조선 왕조의 몰락은 내부, 외부 요인이 맞아 떨어져 발생한 일이다. 당시 조선 왕조가 어리석었다고 비판만 하기보다는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시기가 너무나도 늦었던 점, 왕조 역량에 비해 높은 수준의 일을 해내야 했던 것이 문제였다"며 발언을 마무리했다.

    자유경제원 토론회에서 나온 이야기가 공감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 또한 많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인류 역사를 훑어보면, 한 나라가 망할 때 외세의 침략 전에 먼저 내부적으로 문제가 깊어졌다는 부분을 볼 수 있다. 즉 현재 미디어나 역사책 등을 통해 보는 '조선'의 모습은 당시 현실과는 거리가 멀었다는 지적은 충분히 되짚어 볼 만한 부분으로 보인다.

    한편 자유경제원의 '생각의 틀 깨기 세미나'는 오는 7월 5일에도 '누가 전태일을 이용하는가'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