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선진화포럼 창립 10주년 세미나- 발제문>

    새마을운동의 성공원리와 그 의의 

    좌승희 /영남대 박정희 새마을대학원 석좌교수

  •  1. 서론

     그 동안 경제학계에서는 여러 가지로 경제학교과서에 반하는 방식으로 성공한 박정희의 성공을 이단적 시각으로 보는 경향이 많았고 새마을 운동도 사회운동차원으로 이해하여 크게 주목하지 않았다. 이 글은 박정희 대통령이 이끈 한강의 기적과 새마을운동의 성공요인을 경제학적 관점, 특히 경제발전론적 시각에서 재해석하고 교훈을 찾고자 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요즘 한강의 기적은 물론 새마을 운동의 성공스토리는 한국경제발전 경험의 백미처럼 되었다.
    개발경제학자들은 너도 나도 입만 열면 새마을 운동의 성공경험을 말하고 대외협력기관들도 새마을 운동의 성공경험을 마케팅하고, 해외에 전수하느라 많은 돈과 인력, 노력을 들이고 있다. 그리고 일부대학들은 앞 다퉈 새마을운동 관련 학과나 대학(원)등을 설립하고 해외로부터 학생들을 유치하고 있다. 또한 국제적으로는 전 세계 후발 개도국들이 너도 나도 새마을 운동을 전수받기위해 한국을 배운다고 학생들과 공무원들을 연수 파견하느라 바쁘다. 

     그러나 필자는 그동안 국내외 학계가 한강의 기적과 새마을운동 등의 성공요인을 제대로 이해하고자하는 노력이 충분치 못했으며, 이로 인해 한국경제성공경험의 해외전수사업을 효과적으로 수행하는데도 어려움이 없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예컨대 한국의 새마을운동의 성공요인이 무엇인가 물으면 아마도, “자조정신이나, 하면 된다는 정신”이라고 즉답이 나올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 정신이 한국의 경제발전의 동인이 되었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 할 것이다. 크게 틀린 답은 아닌 것처럼 들리지만 사실 이 답은 50점짜리 답도 안 된다. 진짜 올바른 답은 “왜 1960-70년대 지구상에서 다른 어느 곳도 아닌 한반도, 그것도 북한은 뺀 한반도의 남쪽에서만 모든 국민들이 자조·자립정신을 체화하고, 하면 된다고 미친 듯이 새마을 건설에 나서고 수출전선에 나섰는가?”하는 질문에 답을 해야 하는 것이다. 자조·자립정신이 중요한 인생성공과 국가발전의 정신임을 모르는 나라가 있을까? 보다 중요한 문제는 어떻게 하는 것이 국민들을 자조하는 국민들로 탈바꿈 시킬 수 있느냐하는 하는 것이다. 애들의 사회, 도덕교과서에 이런 정신을 강조하지 않는 나라나 사회가 있을까? 오죽하면 서양 속담에도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만 돕는다(God help those who help themselves.)” 했겠는가?
     교육을 열심히 해서 자조자립정신을 가르치면 국민들이 다 따라 올까?

    그렇다면 어는 나라가 새마을 운동을 못 일으킬 것이고 심지어 경제발전은 못 일으킬 것인가?
    60년대 까지만 해도 한국의 농촌을 여행해본 외국의 경제개발전문가들은 하나같이 “한국에 미래가 없어 보인다”고 했다 한다. 왜냐하면 그들 눈에 비친 한국 농촌은 게을러 보이고 하늘만 처다 보고, 등등, 소위 자조·자립정신과는 멀어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20 여 년 만에 천지가 개벽하듯이 자조·자립정신으로 가득 찬 나라로 바뀌었으니, 그 까닭을 설명해 내기란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닌 듯하다.  

     그래서 필자는 그 동안 진정으로 무엇이 한강의 기적과 새마을운동의 성공을 가져온 경제적 동인인가에 대한 연구를 나름대로 해왔으며 오늘 이들 연구결과의 일부를 공유하고자 한다.  
     2절에서는 새마을운동논의의 이론적 틀로서 새마을운동의 진원지인 박정희 대통령의 전반적인 경제발전정책패러다임의 성공원리를 설명한다. 3절에서는 간략하게 새마을운동의 추진배경과 결과를, 그리고 4절에서는 새마을운동의 성공요인을 설명하고자 한다. 5절에서는 박정희 대통령사후 최근까지 농업구조조정의 지연이 새마을운동 정신의 소멸과 무관하지 않음을 지적한다. 6절에서는 새마을운동의 경제발전이론상의 함의를, 7절에서는 공공정책상의 함의에 대해 살펴보고자한다. 8절에서는 새마을운동이 경제의 경쟁시장화라는 경제발전의 지상과제를 단기간 안에 실천한 “시장화(市場化)운동”사례라는 점을 상기시킴으로써 결론에 대신하고자 한다. 

    2. 박정희시대의 정책패러다임: “정치의 경제화를 통한 경제적 차별화” 

    1) 경제발전의 원리: 시장, 정부, 기업의 3위 일체 경제발전론
     새마을운동에 대한 얘기에 앞서 우선 개발연대 한국의 경제발전, 즉 한강의 기적의 성공요인부터 먼저 생각해보는 것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새마을운동은 바로 박정희 시대의 전체 경제발전정책 패러다임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경제발전의 기본원리로부터 시작하기로 하겠다.
     필자는 오랫동안 기존의 경제학이론이나 정치철학담론으로는 한강의 기적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경제발전현상을 논리적으로 설명하기가 어렵다고 주장해 왔다. 시장 중심적 주류사고는 자유시장의 역할을 신격화하고 있지만 시장은 항상 불완전하며 시장만의 힘으로 경제도약에 성공한 경제는 없다. 신고전파 성장이론과 워싱턴 콘센서스 등이 그 대표적 예이다. 

     정부주도를 강조하는 정부중심사고 또한 왜 그 많은 경제들이 정부의 개발노력에도 불구하고 성공하지 못하는지, 그리고 소수의 성공사례들이 정부주도로 성공했다하지만 정부의 어떠한 역할이 경제발전 친화적인지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아니면 왜 그 많은 정부 개입이 실패하는지도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의 산업정책 주창자들이 그 예이다. 한편 사회주의의 몰락에도 불구하고 사회민주주의가 보편화되면서 경제평등주의 정책이 새로운 정책패러다임으로 등장하고 있으나 이를 채택한 많은 나라들이 경제정체를 경험하고 있으며, 체제의 지속가능성이 심각히 도전받고 있다. 수정자본주의 혹은 사민주의 정치경제체제가 그 예이다.  

     여기서 보다 심각한 문제는 이 모든 기존 이론이나 정책론들은 자본주의경제의 발명품인 주식회사제도의 경제발전 역할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자본주의 경제의 산업혁명과 그 동안의 지속성장이 주식회사제도의 등장과 활성화와 괘를 같이 하고 있으나 경제학은 아직도 기업이 없는 농경사회경제학을 못 벗어나고 있다.
     이러한 이유들로 주류 경제학 이론들은 아직도 한국의 개발연대 경제적 도약이나 일본의 명치유신이후의 산업화, 최근 중국의 지난 30년 동안의 성장을 일관성 있게 설명하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아직도 이들 경험을 일종의 예외적인 현상으로 취급하고 있다. 

     이에 필자는 최근세의 경제기적의 경험인 일본의 명치유신, 한국의 한강의 기적, 중국 등소평의 개혁개방 경험과 서구 산업혁명의 성공경험을 통합하여, 시장, 기업, 정부, 3자의 필수적 보완역할을 강조한“시장, 정부, 기업의  삼위일체 경제발전론”을 전개하였다. 이 이론은 기존 이론들이 특수이론에 그친 단점을 보완하여 경제발전의 일반이론을 지향하고 있다. 이하에서는 아주 간략하게 새로운 경제발전이론을 설명하고자 한다. 

    ① 시장의 경제적 차별화 기능
     필자는 시장을 “성과에 따른 보상의 차별화를 통해 발전의 동기와 유인을 이끌어내는 경제적 차별화장치”라고 해석한다. 이에 대한 보다 이론적인 설명은 제6절에서 더 부연하고자 한다.  바로 이런 시장의 차별화기능이 고차원으로의 경제의 창발을 이끄는 힘을 이끌어 내는 원동력이라고 본다. 어떠한 사회든 사회의 부의 창출노력을 집약하고 극대화하려면 그 전제조건은 바로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적절한 보상체계를 제도화함으로써 일하고자 하는, 즉 성장·발전하고자하는 동기와 유인을 극대화할 수 있어야 한다. 자기가 일한만큼 공정하게 대접을 받아야 일할 동기와 유인이 생긴다는 말이다. 그런데 사실은 시장이라는 장치가 바로 이런 기능을 한다는 사실은 그렇게 많이 강조되지 않고 있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시장이야 말로 모든 구성원들을 더 높은 차원으로 창발하도록 유도하는 장치인 셈이다. 필자는 이러한 시장의 기능을 경제적 차별화기능이라 부르고 있으며 바로 이러한 시장의 기능이 경제발전의 원동력인 것이다.

     시장의 차별화기능을 현실과 연결해서 보면 한층 흥미롭다. 시장에서 우리는 소비자로서 우리 구미에 맞는 재화와 서비스를 공급하는 기업과 개인들에게만 더 많은 구매력(돈)으로 투표한다. 은행도 잘하는 기업과 개인들에게만 더 많은 돈을 그것도 더 싸게 빌려주며, 증시의 투자자들도 잘하는 기업의 주식만을 골라서 사며, 훌륭한 인재들은 좋은 기업에만 몰리고, 기업들도 좋은 인재만 골라 쓰고 좋은 기업들끼리만 거래하려한다. 그래서 시장에 참여하 는 우리 모두는 소위 스스로 돕는 자만을 도우는 하느님처럼 열심히 좋은 성과를 내는 경제주체들만 선택함으로써 우수한 경제주체들에게 경제력을 집중시킴과 동시에, 이들 모두를 우리의 선택을 받기위해 더 열심히 노력하게 유도하는 일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니 또한 시장에 참여하는 우리 모두는 바로 경제적 불평등의 원천인 셈이다. 바로 이러한 “시장의 차별화기능”이 경제발전의 원동력이다. 

     따라서 경제발전과정에서는 흥하는 이웃에게는 인기가 모이고 경제적 부가 모이기 마련이며, 결과적으로 경제발전은 불균형적 현상일 수밖에 없고, 강한 기업에의 경제력 집중과 개인과 지역발전의 차등은 발전의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따라서 열심히 노력하여 성과를 내는 기업과 개인에게 경제력과 자원의 집중과 집적이 없이 발전은 있을 수 없다. 결론적으로 현실의 시장은 경제적 노력과 성과에 따라 보상을 차등함으로써, 즉 흥하고자 노력하여 성과를 내는 이웃에게 더 많은 보상을 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생기는 경제적 불평등을 〮무기로 모두를 흥하는이웃이 되고자 열심히 노력하게 만드는 동기부여장치인 것이다.

    ② 자본주의적 기업의 경제발전역할: 기업부국 패러다임 
     그러나 역사적으로 보면 시장은 항상 불완전하고 경제발전을 일으키는 힘은 그리 만족스럽지 않았다. 농경사회에서 자본주의 사회에 이르기 까지 인류는 시장교환경제 체제하에서 살았으나 지속적 소득의 성장을 가져온 경제발전 현상은 오직 지난 200여년의 역사에 불과하였다. 또한 자본주의 경제하에서도 20세기이후 200여개가 넘는 시장경제제도하의 국가들이 있으나 오늘날 오직 그 1/4 정도의 경제만이 일인당 소득 만불이상의 부를 누리고 있을 뿐이다. 더구나 2차 세계대전이후 선후진국 모두 시장경제체제를 강화한다고 해왔지만 결과는 저성장과 양극화라는 경제정체현상에 직면하고 있다. 경제발전을 일으킨다는 시장의 힘은 다 어디에 가 있는 것인가? 

     필자의 관찰에 의하면 이런 시장의 실패현상은 아주 일반적 현상이며, 시장의 차별화기능의 실패를 보완하는 현대식 주식회사 기업조직이 19세기부터 본격적으로 등장하면서 자본주의 산업혁명이 가능했고 고도 산업사회, 지식기반사회의 등장도 가능하였다. 또한 19세기이후 지본주의 경제의 발전경험을 살펴보면, 바로 새로운 주식회사 제도를 잘 발전시킨 나라는 국부창출에 성공하고 더 나아가 세계경제 헤게모니 싸움에서도 성공하였다. 영국의 산업혁명, 미국의 영국 추월, 일본의 탈아입구 선진화, 한국의 한강의 기적, 동아시아의 기적, 중국의 도약이 모두 현대식 기업의 성장을 앞장세워 발전한 역사이다. 이런 역사적 경험에 비춰서 보면 자본주의 경제발전은 시장보다는 기업부국패러다임이라 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

     더구나 이론적으로도 , 시장은 불완전 정보로 인한 양의 거래비용 때문에 차별화기능 실패에 직면하게 되지만 기업이라는 조직은“수직적 명령체계”를 본질로 하기 때문에 시장교환방식이 아니라 명령에 의한 자원배분방식에 의존함으로써 거래비용을 회피할 수 있다. 따라서 기업은 시장거래가 가능하지 않은 영역에까지 새롭게 시장의 영역을 확대 발전시킴으로써 경제발전을 가속화할 수 있다. 현대식 주식회사 기업제도는 바로 농경사회의 영세한 대장간 기업에서 창발하여 잠재적 자본규모와 위험부담능력이 무한대로 확대된 자본주의 경제발전의 견인차이다. 자본주의 경제발전은 이런 주식회사제도의 발전 없이 전혀 가능하지 않았다. 자본주의적 기업을 모두 국유화하여 사회주의체제로 전환했던 공산권 경제가 40-50년 만에 몰락한 후 “현대식 기업은 없고 대장간 기업밖에 없는 농경사회”로 역주행 했던 역사적 경험이 이를 입증하고 있다.  

     기업은 불완전 정보와 거래비용의 문제를 극복함으로써 시장보다도 더 효율적으로 경제적 차별화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장치이며, 여기에 현대식 주식회사 기업은 차별화 기능이 상상이상의 규모로 고도화된 경제발전장치이다. 오늘날 성공기업경영의 요체가 바로 기업 내부자원에 대해 얼마나 철저하게 경제적 차별화를 잘하느냐(즉 얼마나 내부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느냐)에 달려있다는 경영학 원리는 이미 상식이 되었다.  

    ③ 정부의 경제적 차별화를 통한 경제발전역할: 정부에 의한 관치 차별화
      역사적으로 경제발전에 성공한 나라들은 한결같이 정부가 경제제도와 정책으로 시장과 기업의 경제적 차별화기능을 활성화시킨 나라들이다. 사유재산권제도를 정착하고 경제적 자유를 확대하여 시장기능을 활성화할 뿐만 아니라, (시장만으로 발전이 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기업제도를 정비하고 기업활동을 장려한 나라들이 대체로 기업성장을 통해 성공한 경제를 만들어내었다. 오늘날의 세계일류 경제 선진경제들은 모두 세계일류 기업들을 키워낸 경제들이다. 정부가 제도적 장치와 정책을 통해 매사에 경제적으로 나뿐 성과 보다 좋은 성과를 보상, 우대하는 소위 관치차별화전략으로 국민경제전체, 즉 개인과 기업들의 성장과 발전의 유인을 극대화하는 것이 경제발전의 전제가 된다. 우수한 성과를 대접하는 사회는 우수한 경제인들을 양산해 내지만 열등한 성과를 우대하는 사회는 열등한 경제인들을 양산해 낸다.

     이상의 논의를 종합하면, 경제발전은 그 동안 경제학계가 논쟁해온 것처럼 시장만의 힘이나 정부만의 힘이 아니고, 시장과 정부는 물론 기업 등 3자 모두가 경제적 차별화에 나서야 가능하다. 이를 필자는 3위일체 차별화 경제발전론이라 명명하였다. 이에 의하면 경제발전은 시장, 정부, 기업의 경제적 차별화라는 독특한 기능의 교집합(交集合) 하에서만 일어날 수 있는 희귀한 현상이다. <그림 1>의 시장, 정부, 기업의 교집합인 오랜지색표시(ED) 지역에서만 경제발전이 가능하다.
     
  •  그래서 경제발전의 원리를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원리는, “‘경제적 차별화’는 경제발전의 필요조건인 반면 ‘경제평등주의’는 경제정체의 충분조건이다.” 여기서 ‘경제적 차별화’는 경제적으로 다른 것을 다르게 취급하는 것을, ‘경제평등주의’는 경제적으로 다른 것을 같게 취급하는 것을 의미한다.

     둘째로 정치의 역할에 대해서는, “‘정치의 경제화’는 경제발전의 필요조건인 반면 ‘경제의 정치화’는 경제정체의 충분조건이다.”여기서‘정치의 경제화’는 정치적 고려를 배제한 경제적 차별화원리의 실천을, ‘경제의 정치화’는 정치적 고려 하에 경제적 차별화원리를 포기하는 것을 의미한다.  
     셋째로 시장과 기업, 그리고 정부, 3자가 각각의 영역에서 “경제적 차별화”를 실천하여 경제적 수월성을 추구할 경우에만 그 총합으로서 경제발전이 가능하다. 
    2) 박정희시대의 성공원리: 정치의 경제화와 신상필벌로 차별화원리 실천
     박정희 대통령은 그의 집권기간 내내, “신상필벌”의 원칙을 경제는 물론 사회정책에까지 적용하였다. 신상필벌이란 무엇인가. 성과 있는 자에게 상을 내리고 성과 없는 자에게 벌을 내린다는 것이 아닌가. 아하! 이게 우리 모두가 매일 시장에서 하는 일이 아니던가? 박정희 대통령은 바로 이런 시장의 기능을 앞서 실천함으로써 후진국의 경우 여러 가지 이유로 취약할 수밖에 없는 시장의 차별적 보상기능을 보완, 강화하고 경쟁(rivalry)을 촉진함으로써 시장의 영역을 넓혀 나간 것이다. 그는 공적이나 사적이나 항상 “낮은 성과보다도 좋은 성과에 보상해야 한다”고 경제인들은 물론 국민들에게 강조하고 실천하였다. 물론 이런 주장이나 원칙고수가 정치적으로 인기가 없을 것임을 알면서도 때때로 정치적 위험을 무릅쓰면서 까지 이 원칙을 고수하였다. 후술하는 바와 같이 본고의 관심주제인 새마을 운동이 바로 그 사례 중의 하나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일인일표의 민주주의 정치제도는 불행하게도 표에 의해 경제정책을 결정하게 되기 때문에 시장의 경제적 차별화기능에 역행하는 정책과 제도를 양산할 위험이 있다. 그것이 바로 복지국가, 사회민주주의, 수정자본주의 국가들의 탄생배경이며, 또한 소위 한국 등 여러 나라에서 관찰되는 표퓰리즘정치의 배경인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의 반민주적 정치가 비판받고 있으나 바로 이것이 경제적 차별화정책의 정치적 왜곡을 막는데 기여했음도 부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다른 말로 그의 권위주의정치는 경제적 차별화원리를 “낮은 성과에 더 많은 보상”을 요구하는 평등주의적 표퓰리즘 정치로부터 방어하는데 도움이 되었을 것이라는 의미이다. 그래서 필자는 박정희 경제정책패러다임을 “정치의 경제화를 통한 경제적 차별화정책패러다임”이라고 해석한다. 정치의 경제화란 정치적 고려를 배제한 경제적 차별화원리의 실천을 의미한다.

     이런 관점에서 특기할 만한 박정희 대통령시절의 차별화정책들은 다음과 같다. 1) 수출우수기업에만 지원을 집중한 수출육성정책, 2) 수출우수기업들에만 참여를 허용한 중화학육성정책, 3) 바로 후술하는, 성과 있는 마을만 집중 지원한 새마을 운동, 4) 수출성과가 있는 공장만 지원한 새마을공장육성정책, 등등이 특기할만하지만 그 외에도 인재를 등용함에 있어서나 다른 모든 정책들에 있어서도 기본적으로 차별화원리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정부에 의한 소위 관치 차별화정책이 한국경제의 도약을 가져왔다고 할 수 있다.
    3. 새마을운동의 추진배경과 성과 
    1) 추진배경
     1969년 8월 4일 박정희 대통령이 경남북일원의 수해지구를 시찰하던 중 경북 청도군 청도읍 신도 1리를 방문하였는데 여기서, 이 마을의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협동심을 발휘하여 수해 복구를 겸한 마을안길 확장, 지붕개량 등 마을인프라 개선사업을 성공리에 수행한 현장을 보고 크게 감동하여 근면, 자조, 협동정신에 기초한 농촌개발운동을 구상하였다. 그 후 1970년 4월 22일 한해대책을 위한 전국 지방장관회의 석상에서 박대통령은 농민들의 자조노력을 강하게 호소하고 청도읍 신도 1리 마을의 사례를 들어 새마을 운동구상을 피력하였다. 이런 사유로 이날을 새마을 운동 개시일로 보고 오늘날 4월 22일을 새마을의 날로 지정하여 기념하고 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새마을 운동의 추진배경은 다음과 같다. 1) 한국의 침체되고 자조정신이 결여되어 가난을 숙명으로 받아드리는 성장·발전유인이 없는 농촌의 의식을 진취적이고 발전 친화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대통령의 적극적인 의지 하에, 2) 전 정부에서부터 이어져온 4-H 운동이나 5.16후 추진한 국민재건운동 등의 농촌의식개혁운동의 미미한 성과를 개선해야하는 문제, 2) 7년여 가까이 추진된 산업화의 결과 커지는 도·농간의 소득격차를 완화 및 해결해야하는 문제, 3) 1960년대 말 불거진 제일차 오일쇼크로 동남아 시멘트수출시장이 정체되어 발생한 국내시멘트업계의 과잉생산문제의 해결 등, 다 목적적 배경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해석된다.  

    2) 추진과정과 성과 약사 
    ① 제1차년도(1970.11~1971. 5월): 농한기 기간을 이용하여 실시하였으며 인프라개선사업에 중심을 두었다. 35,000 마을을 대상으로 평균적으로 시멘트 335부대를 마을 규모에 따라 균등배분하고, 농촌 인프라개선사업 범위 내의 10-20개정도의 새마을사업 프로젝트 (마을 진입로 가꾸기, 지붕 담장 개량, 공동우물, 공동빨래터 설치, 교량가설, 소하천 정비, 퇴비장설치, 농로개설, 간이급수시설, 주택개량, 증산운동 등)를 제시하고 사업선정 및 시행은 마을총회의 결정에 따라 자율적으로 추진하게 하였다. 
    ②  1971년 제2차년도: 성과 좋은 마을(16,000)에만 평균 500포대의 시멘트와 철근 1톤씩 공급하고 나머지 마을(1,8000)은 지원대상에서  배제하였다. 특별히 성과가 우수한 마을에는 백만 원 정도씩의 현금지원도 따랐다. 
    ③  그 이후 전 마을을 자립마을, 자조마을, 기초마을로 그 성과에 다라 분류하고 정부의 지원은 항상 자립과 자조마을 중심으로 하고 기초마을은 지원에서 배제시켰다.
    ④ 1973년부터 새마을공장육성정책 추진 
     당시 정부는 새마을운동의 일환으로 새마을공장육성정책을 추진하였는데, 농촌의 읍, 면지역에 농산물가공공장을 건설하여 수출산업화하기 위한 전략이었다. 세금 감면조치, 수출 지원조치, 운영비보조등을 통해 육성 지원하였다. 추진 과정을 보면 최초 73-74년간 운영실적을 기초로 성과가 있으면 지원하고 없으면 지원을 감축한다는 지침 하에 추진하였는데 당시 상공부의 결과평가에 따르면 270여개의 농촌공장 중 30%정도가 좋은 성과를 내고 나머지 70%는 성과가 미흡하였다. 이에 따라 정부는 성과를 낸 30%의 새마을공장에게만 지원을 확대하고 다른 공장에 대해서는 지원을 삭감하였다.
    ⑤ 성과
     1977년 자립마을은 98%에 이르고, 기초마을은 사라졌다. 모든 마을이 참여하여 자조마을 이상으로 향상되었고, 도농 간 소득격차도 1974년부터 농촌우위로 역전되었다.(<그림 2>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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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5년 11월 9일 Newsweek 보도에 따르면,“새마을운동으로 약 1만 6,000여 마을에서 급수시설이 개선되고 100만 호 이상의 초가지붕이 현대식 슬레이트로 개조되었다. 또한 새마을운동에 의한 농가부업으로 농촌의 가구당 수입이 1970년의 744달러에서 1974년에 1970달러로 증가했다. 새마을운동이 시작된지 불과 4~5년 만에 한국국민의 의식구조, 사고방식, 생활환경과 생활태도 등이 획기적으로 달라졌다.”

    4. 새마을운동의 성공요인: 자조하는 마을만 지원한 관치 차별화정책

    새마을 운동의 성공을 한 가지 요인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경제발전의 기본원리의 관점에서 볼 때 그 많은 요인 중에서도 성공의 필요조건이라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자조하는 마을만 지원한 정부주도의 관치 차별화정책” 이었다 할 수 있다. 당시 관치 차별화가 진행된 과정을 좀 더 극적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우선 운동을 주도한 박정희 대통령의 기본 철학을 들어보자. “빈곤을 자기의 운명이라 한탄하면서 정부가 뒤를 밀어주지 않아 빈곤 속에 있다고 자기의 빈곤이 타인의 책임인 것처럼 불평을 늘어놓는 농민은 몇 백 년이 걸려도 일어 설 수 없다. 의욕 없는 사람을 지원하는 것은 돈 낭비이다. 게으른 사람은 나라도 도울 수 없다.” 이것이 새마을 운동을 시작하면서 그리고 새마을 운동 기간 중 계속해서 대통령을 통해 전달된 대 농민 메시지였다.

     새마을 운동의 첫해인 1970년에 정부는 전국의 34,000여개의 마을에 200내지 300포대씩의 시멘트와 약간씩의 현금을 마을 규모에 따라 적절히 지원했다. 그 다음해에 그 성과를 평가한 결과 16,000개의 마을은 100%의 성과를 달성했지만, 나머지 과반수가 넘는 18,000개의 마을은 제대로 하지 않았다. 당시 정부의 공개 및 비공개 암행 감사에 의하면 많은 마을들이 시멘트 포대를 야적해 놓고 비가 내려도 덮지 않은 채로 방기한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이 결과를 놓고 제2차년도 새마을운동사업 지원방식에 대해 논란이 많았지만 박 대통령은 공화당과 장관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당시 인기 없었던 장기독재정권의 명운을 걸면서 까지 과반수가 넘는 성과가 좋지 않은 18,000개의 마을에는 전혀 지원하지 않았고 과반수가 안 되는 성과가 좋았던 16,000개의 마을에만 시멘트의 양을 100-200포대 정도씩 늘림과 동시에 현금지원도 더 늘려 지원했다.                                 
     김정렴 당시 청와대비서실장이 전해주는 이러한 차별적 지원을 결정하는 과정의 비화가 대단히 흥미롭다. 최초 국무회의 결정은 제2차 년도에도 무차별 지원하는 것이었으나 대통령이 차별지원을 고집하여 공화당의 사무총장인 길전식 의원과 내무부장관이었던 김현옥 장관이 대통령설득에 나섰으나 실패하고, 그 후 소위 공화당의 실력자 5인방이 설득하였으나 박대통령은 정권을 내주는 한이 있어도 차별 지원을 하겠다고 해서 이러한 결정이 내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2차 년도를 시작하면서 정부에서는 앞으로 어떤 마을이든 자력으로 새마을운동에 참여해서 성과를 내지 않으면 지원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시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자 지원을 받지 못한 18,000개 마을 중에서 6,000개의 마을이 자력으로 참여해서 100% 이상의 성과를 내었다. 그 다음에는 6,000개의 마을에 대해서도 지원했다. 이렇게 해서 박대통령은 전국 마을을 참여도가 가장 낮은 기초마을, 이보다 좀 더 열심인 자조마을 그리고 가장 성과가 높은 자립마을로 구분하고 물자지원을 기초마을은 제외하고 자조마을과 자립마을에만 배분하게 하였다. 
     아마 오늘날의 한국 정치권의 상식으로는 새마을 운동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잘 못하는 기초마을을 우선 지원‧육성하는 것이 옳은 정책이라고 강변할 것이다. 물론 성공여부와는 관계없이 표를 위해서도 당연히 그렇게 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경제적 차별화 원리에 기초한 새마을 운동의 필요성에 대한 박정희 대통령의 육성지시 내용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작년에 전국 32,000여개 부락에 대하여 많은 금액은 아니었지만 농어민의 분발심(奮發心)을 일깨우기 위하여 지원을 해 본 결과 좋은 성과를 거둔 부락도 있었고 그렇지 못한 부락도 있었습니다. 이 경험을 살려 앞으로는 일률적인 지원 방식을 지양하고 우선 금년은 그 대상을 절반으로 줄여 16,000여 부락에 대하여서만 지원을 하기로 하였습니다. 금년에는 작년에 성적이 나쁜 부락은 전부 낙제, 유급을 시키고 성적이 좋은 부락만 올려 이번 2차년도에 계속 지원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금년 16,000여 부락 중에서 잘하는 부락을 다시 가을쯤에 심사해서 우수한 부락에 대해서는 내년에 3학년생으로 진급을 시켜야겠습니다. 

     그리고 낙제한 부락 중에서 작년에는 성적이 나빴지만 그 동안에 분발을 해서 단결이 잘 되고 한번 해보자는 의욕이 왕성한 부락은 다시 선정을 해서 내년에는 2학년생으로 진급을 시켜 금년에 지원한 정도로 지원해 준다. 거기서 또 설적이 나쁘면 낙제를 시키고 좋은 부락은 3학년생으로 진급을 시킨다, 작년에 진급한 3학년생을 다시 심사하여 4학년생으로 진급시켜 대폭적으로 지원을 한다하는 것이 새마을 운동에 대한 정부지원의 기본방침입니다.

      왜 그렇게 해야 되느냐? 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농어촌을 일률적으로 지원해 본 결과 기대한 만큼 성적을 거두지 못한 것이 사실입니다. 부지런하고 잘하는 부락은 우선적으로 도와주자, 이웃하여 있는 부락이라도 한 부락은 상당한 수준으로 소득이 증대되고 부락환경이 개선되어 살기 좋은 마을이 되는가 하면, 다른 부락은 아주 뒤떨어진 마을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일은 하지 않고 노름이나 하고 술이나 마시고 게으른 그러한 퇴폐적(頹廢的)인 농어촌을, 부지런히 일해서 잘 살아 보겠다고 발버둥치는 그런 농어촌과 꼭 같이 지원해 준다는 것은 오히려 공평한 처사라 할 수 없습니다. 계속 성장한 부락은 조금만 더 지원해 주면 그 다음에는 정부에서 손을 떼어도 될 것입니다. 물론 뒤떨어진 부락들은 불평을 할 것입니다. 잘한 부락 사람들의 소리는 들리지 않고 게을러서 뒤떨어진 부락의 불평소리는 크게 들릴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 불평에 귀를 기울일 필요는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1973년부터 새마을 운동의 일환으로 실시한 새마을공장육성사업을 추진함에 있어서도 성과 있는 공장 중심으로 지원을 하였다. 첫해 실적에 따라 성과 있는 30%만 지원하고 나머지 70%는 지원에서 배제하였다.
    (당시 상공부 새마을공장 지원과 과장(전 경총 부회장, 조남홍씨)의 증언에 의하면, 청와대에는 새마을비서관, 고건, 그리고 김종호, 이진설씨 등이 근무했으며, 청와대가 성과에 따른 차등지원정책을 주도하였음. 이에 대해 조남홍씨는 성과 나뿐 70%도 조금만 지원하면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항변하였으나 결국 조 과장은 다른 자리로 좌천되고 차등지원정책은 그대로 시행되었다 함.)
      
     우리는 여기서 이러한 “스스로 돕는 마을만 지원 한다”는 정부의 차별적 지원 정책이 새마을 운동을 열화와 같이 전국적으로 퍼뜨리고 농촌사회에도 소위 “하면 된다”는 발전의 정신을 일으키는데 기여했다고 본다. 만일 두 번째 해에도 평등하게 똑같이 나누어 분배하는 식으로 지원했다면 우리의 발전원리에 따르면 새마을 운동은 성공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새마을 운동의 성과는 새마을 운동 시작 후 5년만인 1974년도에 농촌과 도시의 가구당 소득 수준이 같아졌다는 사실로부터도 쉽게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5. 경제적 차별화원리의 실종과 농업구조정의 지연 

     박정희 대통령은 새마을운동의 시작서부터 새마을운동을 순수 주민자치에 기초한 “잘 살아보자”는 자발적 자조·자립운동이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이 운동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어떤 움직임도 철저히 차단하였다. 당시 야당이 이 운동을 정치운동이라 폄하하였으나 유신이후 선거를 위해 이용할 필요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혹은 다른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했다는 증거도 보이지 않는다. 이미 언급한 제2차년도 이후의 차별적 지원방식을 선택하는 과정이나 새마을공장에 대한 차별적 지원방식의 채택 등이 바로 박정희 대통령이 새마을 운동의 정치적 오염을 얼마나 경계하였었는지를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박정희 대통령사후 5공들어 새마을 운동은 본래의 순수 목적을 벗어나 점차 관변단체화, 정치화되기 시작하였다. 그 동안 대통령이 직접 관리해온 운동을 이제 소위 민간자율로 한다는 명분하에, 1980년 12월 1일에 새마을운동중앙본부라는 조직을 만들고 같은 달 13일에 새마을운동조직육성법을 만들어 전국조직화하고, 심지어 정치 권력자가 회장을 맡으면서 본래의 새마을 운동은 점점 정치적 영향을 받게 되어갔다.
    (초대 중앙회회장은 김신씨가 맡았고 1985년께는 4대회장에 당시 전두환대통령의 동생인
    전경환씨가 취임하였다. )
     
     그러나 여기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변화는 “좋은 성과를 지원 한다”는 차별적 지원전략은 사라지고 “성과에 관계없이 꼭 같이, 혹은 낮은 성과를 지원 한다”는 평등주의 지원정책이 일반화되게 된 점이다. 운동의 성격이 바뀐 이유도 있겠으나 관변 단체화된 이후 정부예산이나 성금으로 사업을 하면서부터 구성원들에게 동등하게 혜택이 가야한다는 소위 공정한 배분원리가 강조되었으리라 생각된다. 이제 5공 이후 농어촌지원에 있어 성과에 따른 차별적 지원이라는 관치차별화정책은 정부정책논의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그리고 새마을 운동의 성공원리인 경제적 차별화원리도 점차 역사 속에 잊혀 지게 되었음은 주지하는 바와 같다. 

     6공화국을 거치고 정치민주화는 급속히 진전되었다. 그리고 WTO가입 등 농업시장개방이 가시화되면서 농업구조조정문제가 국가적 과제가 되고 커다란 정치이슈가 되었다. 김영삼정부 이후 백 수십조 원의 농업구조조정자금이 구조조정성과여부에 관계없이 무차별적으로 배분, 지원되었다. 특히 김대중정부도 연이어 농어촌 부채를 탕감한다 하여 노력과 성과에 관계없이 획일적으로 부채에 대한 금리를 탕감하였다. 

     어쨌든 그동안 그리도 많은 자금을 투입해 왔는데도 농업구조조정은 왜 지연되고, 아직도 쌀 시장개방문제는 풀리지 않는 난제가 되고 있는가? 그동안 떠들어온 구조조정은 탁상공론에 그친 것이 아닌가. 성공한 박정희 대통령의 새마을 운동과 지난 20여 년 간 진행된 농업구조조정정책을 비교해 보라. 투입된 그 엄청난 자금의 차이를 상상해 보라. 그리고 이루어낸 성과의 차이를 한번 상상해 보라. 도대체 어디에 문제가 있는 것인가? 답은 간단해 보인다. 박대통령의 새마을 운동은 변화를 이끌어내는 차별화전략을 쓴 반면 그동안의 구조조정정책은 변화의 동기를 차단하는 반차별화, 평등주의 지원정책을 썼기 때문인 것이다. 성과를 무시하는 획일적, 무차별적 지원이나 금리탕감정책은 오히려 나뿐 성과를 내거나 빚이 많은 농민들을 더 우대하고, 좋은 성과를 내거나 빚이 없거나 적은 농민들을 역 차별하는 정책임을 명심해야한다. 지난 20여 년 간 농업구조조정정책은 구조조정에 적극적이고 변화를 만들어내는 농민을 우대하기보다 역으로 구조조정을 하지 않는 농민들을 더 우대함으로써, 농민들의 성장과 발전의 동기와 인센티브를 죽이는, 구조조정에 역행하는 방식으로 진행된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민주화이후 표를 의식한 정치권이 정치적 고려 때문에 경제정책을 정치적으로 오염시킨 데도 큰 원인이 있으나 결국 모든 것은 정치리더십의 책임이라 해야 할 것이다. 

    6. 새마을운동의 경제발전이론상의 함의: 시장과 정부의 경제발전기능

     새마을 운동의 성공경험은 경제발전의 이론과 정책 측면에서 몇 가지 대단히 중요한 함의를 주고 있다. 이절에서는 우선 이론적 측면의 의의를 설명하고 다음절에서 정책적 의의를 설명하고 자한다.  
     우리는 새마을 운동의 성공이 정부의 경제적 차별화원리의 실천, 즉 관치차별화에서 왔다고 주장하였다. 여기서는 이 해석이 어떻게 경제학의 본류나 혹은 지류 접근 방법들과 논리적으로 연관되는지 밝힘으로써 새마을 운동의 성공노하우와 이를 뒷받침하는 삼위일체 경제발전론의 이론적 타당성과 그 유용성을 점검해보고자 한다. 
    ① 절대적 합리성과 상대적 합리성
     주류 신고전파경제학(mainstream neoclassical economics)은 개별경제의 국적성(國籍性, idiosyncrasy)을 중시하지 않는 ‘제도가 없는 경제학  (institution-free economics)’이다. 그동안 주류 경제학은 완전 정보라는 가정 하에 인간을 사회와는 동떨어진 진공 속에 놓고 시공을 초월하여 적용되는, 인간의 경제적 행위의 절대적 합리성을 정의하려 노력했다. 경제학은 개인의 합리성을‘측정 가능한 목적함수 (measurable  objective)를 극대화하는 행위’로 규정한다. 제도적 맥락이 없이 인간 본연의 타고난 본성에 기초한 유전형(genotype) 인간의 경제적 행위의 합리성을 추적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얻어진 합리적 인간상에 기초한 경제학은 과학화에는 성공하였지만 점점 현실과 괴리되어 왔다.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정보인지능력의 한계로 인해 인간은 덜 합리적이라는 소위 ‘제한된 합리성 가설’이 나왔다. 그러나 이 또한 합리성을 여전히 절대적 개념으로 접근하고 있다.) 
     
      그러나 인간은 항상 사회적 동물이며 사회경제적 제도 속에서 생존을 극대화하기 위해 노력한다. 인간의 경제적 행동, 즉 인생성공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행동패턴은 인간의 진정한 본성인
    유전형(genotype)과 그 경제사회제도가 요구하는 인간형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나타나는 하나의 표현형(phenotype)이다. 표현형으로서의 인간의 합리성은 어떻게 정의하던 경제제도의 산물이며 외생변수가 아니라 하나의 내생변수이다. 인간의 합리성은 절대적인 외생적 조건이 아니라 제도와 환경에 따라 변하는 상대적 개념일 수밖에 없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인간 본성의 영향을 무시할 수 있다는 말은 아니다. 단지 그동안 주류 경제학은 그 본성적 합리성을 정의하는데 너무 치중하다보니 경제 제도적 맥락이 없는 인간과 현실성 없는 모형경제(model economy) 연구를 양산해 왔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경제학의 현실적 과제는 어떤 제도적 환경이 어떤 인간상, 어떤 경제적 행동패턴을 만들어 내는지를 규명하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문제를 하나 제기한다면,  1960년대까지의 한국 국민은 대단히 게을러서 희망이 없는 민족이라 묘사되어 왔다.
    이들의 경제행태가 그 이후 20여년 만에 전혀 다른 모습, 세계에서 가장 부지런하고 역동적인 국민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북한의 같은 민족은 지금 세계에서 가장 생산성이 낮은 국민으로 남아있다. 이러한 남한과 북한의 경제적 결과의 차이는 국민들이 자신들에게 주어진 사회경제적 제도적 환경에, 즉 주어진 인센티브 구조에 가장 “합리적”으로 적응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절대적인 의미에서 남한의 국민은 합리적이고 북한의 국민은 합리적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럼 여기서 사회경제적 맥락이 없는 절대적 합리성을 얘기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② 신제도경제학의 구조
     근래 사회경제적 맥락으로서의 현실 경제제도에서부터, 개별경제의 국적성, 그로인한 서로 다른 경제적 행동, 그리고 그로인한 서로 다른 경제적 성과의 원인을 찾는
    ‘신제도경제학 (new institutional economics)’이 등장하면서 경제사회의 문제를 보는 보다 높은 차원의 실사구시적 접근이 보편화되고 있다.  (
    신제도학파는 구제도학파와 구별되며 동시에 신고전파와도 구별된다. 구제도학파는 단지 제도의 역사적 변천이나 경제체제간의 제도적 특성, 차이 등 현상을 기술하는데 그침으로서 경제이론을 소홀히 취급했던 반면, 신제도학파는 신고전파적 분석체계를 이용해서 제도와 경제행태, 성과 간의 관계를 체계적으로 설명하고자 한다. 구제도학파는 제도적 현상을 기술하는데 그쳤던 반면 신제도학파는 제도를 통해 인간의 행위를 설명하는 이론 체계를 구축하고자 한다. 한편 신고전파는 제도가 없는 현실과 괴리된 진공속의 경제학인 셈인데 신제도학파는 여기에 제도라는 인간행위결정의 외생적 요인을 도입함으로써 경제학의 현실적 적합성을 크게 높였다고 할 수 있다. 신제도경제학은 코스, 노스, 알치안, 뎀셋츠, 윌리암슨 등이 이끌었다. 
         Ronald Coase Institute 는 신제도경제학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New Institutional Economics incorporates a theory of institutions - laws, rules, customs, and norms - into economics. It builds on, modifies, and extends neoclassical theory. It retains and builds on the fundamental assumption of scarcity and hence competition - the basis of the choice theoretic approach that underlies microeconomics. It has developed as a movement within the social sciences that unites theoretical and empirical research examining the role of institutions in furthering or preventing economic growth. It includes work in transaction costs, political economy, property rights, hierarchy and organization, and public choice. It involves work in political science, law, sociology, anthropology, and other social sciences.”)
     
     본고의 제2절에서 제시한 ‘삼위일체 경제발전론’은 바로 신 제도경제학적 관점을 수용하고 있다. 이하에서는 간략하게 신제도경제학의 구조를 설명하고자 한다. 
     경제의 성과는 시장의 경기규칙(rules of the game)인 경제제도 하에서 경제주체들이 자기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치열하게 벌이는 경기의 최종결과로 나타난다. 여기서 시장은 경제제도의 집합에 의해 정의되는데, 제도는 바로 그 사회의 인센티브 구조를 결정하게 된다. 어떤 경기규칙은 경기의 성과를 높일 수도 있지만, 다른 규칙은 오히려 경기력을 떨어뜨리고 경기의 성과를 악화시킬 수도 있다는 의미이다. 결국 경제제도란 각 사회가 부딪치는 마찰인 거래비용을 낮추어 보다 효율적인 경제를 구현하기 위해 도입된 ‘경기규칙’으로서 동시에 그 사회의 ‘인센티브 구조’로 작동하게 되는 셈이다. 그런데 경기규칙인 제도는 나라마다 다르다. 현실의 시장은 국적이 있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시장을 규정하는 제도는 그 사회가 선택하기 나름이기 때문인 것이다. 그래서 한국의 시장경제와 미국의 시장경제는 다른 것이다. 축구에는 두 가지가 있다. 발로 차는 사카 축구와 손으로 들고튀는 미식축구가 있다. 왜 서로 다른가? 경기 규칙이 다르기 때문이다. 

      현실의 시장경제는 우선 개인과 개인들의 집단이 구성하는 기업 등 사조직과 정당, 정부 등 공조직이 주요 경제주체이며, 이들은 주어진 시장의 경기규칙인 제도 하에서 개인의 성공, 기업의 성공, 조직의 성공을 위해 경기를 벌이는 것이다(<그림 3> 참조). 경기규칙을 어기면 퇴장당하기 때문에 이를 지키는 것이 중요한데 그렇기 때문에 제도에 의해 경기주체들의 행동이 달라지고 나아가 경기결과, 즉 경제성과도 달라지게 된다. 경제제도는 그래서 부처님이나 다름없다. 우리 모두는 부처님의 손바닥 위에서 사랑을 받으려 재롱 피우는 손오공과 다름 아닌 셈이다. 제도가 선택해 주지 않으면 성공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경제제도에는 무엇이 있고 어디서 오는가? 우선 경제제도에는 국회나 정부에서 만들어내는 헌법, 법령, 규칙 등 ‘공식적 법규’가 있고, 그 다음으로는 공식적 법규는 아니지만 우리가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기위해 공유하고 지켜야하는 문화, 관습, 가치관, 정서, 이념 등 ‘비공식적 규칙’이 있으며, 마지막으로 이들 규칙들은 엄격히 집행되고 혹은 서로의 감시 하에 엄격히 따르지 않으면 아무 의미도 없기 때문에 ‘제도의 집행정도’가 제도의 성패를 결정하는 제3의 제도가 된다. 많은 경우 비공식적 제도가 공식적 제도의 바탕이 된다. 

     이상이 일반적으로 신제도경제학이 보는 시장경제체제의 구조이다. 그러나 여기서 한 걸음 나아가 제도결정 주체를 명시적으로 도입하면 한층 더 외곽에 부처님에 못지않은 영향력을 가진 “정부, 정치, 정치리더십”이 외생적 제약환경으로서 자리 잡게 된다. 이들은 공식적 법제도의 도입, 변경을 통해 일국의 경제제도의 내용을 결정함으로써 궁극적으로 국민경제의 성과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공식적인 제도의 내용을 개혁하고 이를 엄격히 집행함으로써 경우에 따라서는 비공식적 제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때때로 훌륭한‘정치리더십’이 등장하여 경제제도를 바꿔 국가를 개조하여 경제발전을 일으키는 경우가 그러하다. 바로 이런 제도적 창치가 각 시장경제의 민얼굴인 셈이다.

     

③ 신제도경제학 응용: 국가개조·혁신, 바로 인센티브구조의 문제다.
 최근 한국은 국가 개조·혁신문제가 관심으로 부각되고 있는데 이 문제를 접근함에 있어 신제도경제학이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첫째로, 오늘날 한국사회가 안고 있는 많은 문제가 사람의 문제라기보다 제도의 문제이며, 도덕과 윤리의 문제를 넘어 왜곡된 인센티브구조의 문제임을 이해하지 못하면 국가개조는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같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주어진 제도적 환경, 즉 인센티브구조에 따라 자신에게 경제적 혹은 사회적으로 가장 유리한 방향으로 행동하게 된다는 신제도경제학의 도움 없이 국가개조·혁신문제의 본질을 이해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어느 경우에든 국가개조는 궁극적으로 제도의 개혁과 집행 문제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둘째로 주의할 것은 아무리 이상적인 제도를 도입해도 제대로 집행되지 않으면 규칙이 없는 것과 다르지 않고 소위 무법천지가 된다는 점이다. 오늘날 한국사회의 많은 경제사회문제들은 이런 종류의 문제들이다. 좋은 뜻으로 만든 제도이기 때문에 열심히 집행하지 않아도 국민들이 높은 도덕과 윤리, 정의감에서 잘 따르리라 믿는다면 십중팔구는 실패한다.
셋째로 비공식적 제도가 공식적 법제도의 문화적, 이념적 뿌리역할을 하지만 새로운 사회의 건설은 훌륭한 국가 리더십 하에 공식적 제도를 개혁하고 엄격히 집행하여 국민의 행동을 바꾸어내고 궁극적으로는 비공식적 제도인 문화와 이념, 전통까지 바꿀 수 있어야 가능해진다. 여기에 정치리더십의 중요성이 부각되는 까닭이 있는 것이다.
 넷째로, 공식적 제도의 개혁방향이 옳다하더라도 개혁이 그 사회의 비공식적 제도에 비추어 너무 이상적이어서 개혁대상 국민이나 기업들이 따라가기가 너무 어렵다면 이 또한 문제를 야기한다. 뇌물과 편법이 만연하여 사회 부조리의 온상을 만들어 내거나 해외탈출을 조장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오늘날 한국경제사회의 현실에 비취 음미해 볼일이다. 

  다섯째로, 경제발전과 관련해서는, 역사적 경험에 따르면 얼마나 부의 창출에 유리한 제도를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경제적으로 흥하는 사회가 되기도 하고 망하는 사회가 되기도 한다. 부자가 되려고 노력하는 개인과 성장하는 기업들에 불리한 규칙을 만들어 내는 사회는 가난한 사회가 되기 쉽고, 개인재산권 보호 장치나 개인과 기업의 경제적 자유 등 부(富)의 창출과 축적에 도움이 되는 제도를 선호하는 사회는 부국의 길로 갈 수 있다. 스스로 돕는 자를 우대하는 제도를 가진 사회는 자조하는 국민을, 가난한 자를 우대하는 제도를 가진 사회는 가난한 국민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작은 기업만을 우대하는 제도를 가진 사회는 중소기업천국을 만들어 낼 수 있지만, 성장하는 기업을 우대하는 제도를 가진 사회는 대기업을 만들어낼 수 있다. 

  마지막으로, 말도 많은 한국의 경제인들과 공무원, 정치인, 법조인, 언론인, 혹은 그 출신들의 행태도 모두 한국적 제도와 문화 속에서 형성된 것이다. 국회가 만들어낸 공식적 법제도나 우리 문화나 이념이 소위 각종의 “무슨 피아” 행태를 조장하게 되어 있거나 아니면 못하게 되어 있다하더라도 잘 집행을 안 하여 무법천지가 되었기 때문인 것이다. 소위 기득권을 만들어 내는 것도 바로 잘못된 제도 때문인 것이다. 모두 훌륭한 한국의 인재들인데도 우리의 독특한 제도적 환경이 그렇게 만들어내고 있음을 인정하지 않으면 해법을 찾기는 어렵다. 

④ 주류 신고전파 ‘경제학’과 현실의 ‘경제’는 다르다.
 그런데 주류 신고전파경제학은 현실시장의 제도도 없고 심지어 기업도 없는 진공 속의 개인만 있는 시장경제를 다루는 경제학이다. 심지어는 정부도 정치도 없는 세상을 다루는 셈이다(<그림 3>의 신고전파경제학 참조). 
  그러므로 왜 한국기업과 미국기업의 행태가 다른지 설명하기가 도통 어렵게 된다. 예컨대,
왜 미국기업들은 공을 들고 달리는데, 한국기업들은 어렵게 발로 차려하는지를 모르고 한국기업들을 비판하는 꼴이 벌어진다. 사회의 문화, 전통, 이념과 정부규제행태, 법령 등 한국기업의 시장규칙이 미국과 다름을 이해하고 그 원인을 고치려하기보다는 무조건 규제하면 된다는 규범경제학적 발상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경제인들은 같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주어진 제도, 즉 인센티브 구조에 따라 전혀 다른 행동을 하게 된다는 신제도경제학의 도움 없이 경제를 이해하기는 어렵다. 

  더구나 이념과 문화 등의 비공식적 제도가 사상되고 정치라는 제도결정의 주체에 대한 논의가 사상되면서 주류 경제학의 현실괴리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이념이나 문화, 이를 반영하는 정치가 모든 경제제도와 정책의 원천임에도 경제학은 이를 굳이 모른척하고 ‘진공 속의 경제’만을 분석하고 있는 것이다. 경제학은 좌파인가 우파인가? 주류 신고전파 모형들은 좌파의 주장을 정당화하는 데에도 쓰이고, 우파의 주장을 정당화하는 데에도 쓰인다. 20세기 초 사회주의 계산논쟁이 신고전파 완전경쟁모형을 기초로 하였고, 이 모형이 또한 그 후 사회주의 경제계획의 기초모형이 되었다는 사실, 나아가 최근에는 극단적인 좌파주장으로 세상을 달구고 있는 피케티(Piketty)마저도 신고전파 성장모형을 동원하고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 (최근 Thomas Piketty(Capital in the Twenty-First Century, The Belknap Press of Harvard University Press,2014)는 옳고 그름을 떠나, 솔로우의 성장모형을 이용하여 극단적인 재분배정책의 필요성과 유용성을 주장하고 있다.)

 주류 경제학은 경제학의 이념과 제도를 넘는 보편성을 자랑하리라. 그러나 이는 특정 이념 성향이 옳으냐 그르냐 하는 문제를 떠나 역설적으로 바로 경제학이 각자 원하는 대로 이념을 정당화할 수 있는 기술로 전락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것 자체가 경제학이 얼마나 현실과 괴리된 학문인가를 여실히 보여 주는 것이기도 하다. 같은 경제학을 공부하고 정책은 이념에 따라 극우에서 극좌까지 멋대로 해도 되는 경제학이 어떻게 실사구시적인 현실학문이라 할 것인가?
래서 경제학과 경제는 다르다는 자조가 나오기도 하는 것이다. 사실상 경제학은 이제 정치가 정하는 아젠다(agenda)에 기술적 자문이나 하는 정치철학의 하위학문으로 전락했다.
비유한다면 우리는 모두 각자의 세계관과 인생관에 따라 삶과 경제생활은 영위하면서도 어떤 세계관, 인생관이 각자의 경제적 번영에 도움이 되는지도 모르고 사는 형국인 것이다.

⑤  어떤 제도가 발전 친화적이냐?
 필자는 바로 여기에 신제도경제학의 중요한 기여가 있을 수 있다고 본다.  
 좁은 소견이지만 사회과학으로서의 경제학의 중요 책무 중의 하나는 다양한 이념적 주장과 그에 따른 정책들의 발전친화성여부를 규명함으로써 국민, 기업, 그리고 국민경제의 경제성공의 길을 찾는데 기여하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이념을 따를지는 각자의 취향에 따른 자유의지의 선택이지만 이념에 따른 행동이 현실의 세상이치와 충돌하면 실패를 자초할 수도 있으며, 심지어 전체 사회의 흥망을 가를 수도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

 바로 신제도경제학이 어떤 이념과 문화, 어떤 정치철학과 정치가 개인의 번영과 국민경제의 번영을 가져오는지 구명해 낸다면, 그 동안 기존경제학이 못 다한 역할을 해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신제도 경제학도 단지‘제도가 중요하다’는 그동안의 주장을 넘어 보다 구체적으로 ‘어떤 제도(이념과 문화, 정치체제)가 무엇을 위해(왜?) 중요한지’를 밝히는 일이 더 중요한 과제라 할 것이다.

⑥ 신상필벌의 차별화된 인센티브제도가 시장을 창출할 수 있다.
 (필자는 “어떤 제도가 왜 경제발전에 친화적이냐?”하는 문제의식 하에서 신제도경제학의 확장작업을 시도해 왔다. 관심 있는 독자들은 졸고 Jwa and Yoon(2004) 과 졸저들(2006; 2008; 2012)을 참조하시기 바란다. 이하의 논의는 바로 이들 연구의 결과이다.)

 시장은 제도의 집합이며 제도는 인센티브구조를 결정한다. 시장에서의 우리의 행동은 바로 제도에 의해 정의되는 인센티브구조에 다라 움직이게 된다. 사람들이 어떤 것에 가치를 두는지, 어떤 것을 두려워하는지를 알면 적절한 인센티브구조, 즉 제도를 고안해 냄으로써 사람들을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는 정책을 실행할 수 있다.
(“사람들이 가치를 두는 대상을 찾으면  그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고 변화를 유도하는 유용한 정책을 고안해 낼 수 있다.”(그니즈와 리스트 (2014), p.42)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시키려면 동기를 유발하는 요인을 알아야 한다. 사람들이 무엇에 가치를 두는지 깨달으면 인센티브를 사용하여 예측 가능한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고,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자신을 포함하여 사람들을 행동하게 만들 수 있다.”(그니즈와 리스트(2014), p.74)

 이것이 최근 행동경제학의 정책적 연구의 지향점이다. 없는 시장을 만들어내어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주장인 것이다. 시장은 신성한 하느님도 아니고, 우리가 만들어내는 제도에 불과하다. 그 제도는 우리의 정치적 이념이나 가치, 세계관에 따라 고안될 수 있으며 그에 따른 인센티브구조의 변화가 우리의 행동을 이끄는 것이다. 물론 이런 제도는 인간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이 현실적으로 실현가능한지에 대한 깊은 성찰위에 고안되어야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수 있다.    
 행동경제학은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사람이 말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세상을 살아가며 배우는 진리는, 잘하면 상을 받고 잘못하면 벌을 받는다는 것이다. 처벌과 벌금의 형식을 빌린 부정적 인센티브를 사용하면 바람직하지 않은 행동을 자제하도록 사람들을 유도 할 수 있다. 금전적 미끼의 탈을 쓰는 긍정적 인센티브를 사용하면 사람들을 부추겨 산을 움직이게도, 특정 행동을 그만 두게도, ‘옳은’ 일을 하게도 만들 수 있다.” (
그니즈와 리스트(2014), p.49.)

  이는 바로 동양의 잠언인 신상필벌(信賞必罰)의 원칙이 사람들의 행동을 유도하는데 얼마나 중요한지를 세삼 강조하고 있는 셈이다. “지난 40년 동안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만(Daniel Kahneman)과 아모스 트버스키(Amos Tversky)는 사람들이 매일 생활하며 내리는 결정을 둘러싼 인간간의 감정을 다루는 혁신적 이론을 수립해 왔다. 행동경제학의 두 대가는 사람들이 세계를 이해하는 것은 현상을 해석하는 (또는 구성하는) 방식과 관계가 있다고 주장했다. 사람들의 말은 무언가를 구성하는 방식에 따라 타인의 행동에 다양하게 영향을 미친다. 부모는 자녀에게 ‘그 콩을 안 먹으면 키 크고 튼튼하게 자랄 수 없단다.’라고 말할 수 있다. 행동주의 심리학자들은 이를 가리켜 ‘손실프레이밍(loss framing)’이라고 부르고 손실과 처벌을 언급한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같은 말이라도 좀 더 긍정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 ‘그 콩을 먹으면 키 크고 튼튼하게 자랄 수 있단다.’이는 ‘획득프레이밍(gain framing)’으로 이익이나 보상을 언급한다.” (그니즈와 리스트(2014), p.159)
 더 나아가 이들은 “인간의 공통적인 행위패턴은 획득과 관련된 선택은 종종 위험 회피적이고 손실과 관련된 선택은 종종 위험 선호적이라고 주장한다.” (“choices involving gains are often risk averse and choices involving losses are often risk taking.” See Tversky and Kahneman(1981). 
 결국 이들이 주장하는 바는 손실프레이밍이 획득 프레이밍 보다 더 강력한 인센티브가 될 수 있음을 의미하고 있다. (“The value function is normally concave for gains, commonly convex for losses, and is generally steeper for losses than for gains.” See Kahneman and Tversky(1979). 
 
  어쨌든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동양의 인센티브개념으로서의 신상필벌은 좋은 결과에 상을 내리고 나쁜 결과에 벌을 내린다는 의미로서 바로 행동경제학이 도달한 결론인 획득 프레이밍과 손실프레이밍의 개념을 합쳐놓은 개념이라는 점이다. 이미 동양에서는 삶의 일부가 된 문화를 이제 행동경제학이 재발견하고 있는 셈이다.
필자는 바로 이러한 신상필벌의 인센티브구조를 작동시키는 메커니즘이 바로 시장의 본질적인 기능이며, 이를 일컬어 시장의 차별화기능이라 주장해왔다. 

 요약컨대 동서양 공히 “좋은 성과에 보상하고 나쁜 성과에 벌하는 인센티브 구조가 바로 인간의 성장과 발전의 동기를 부여하는 원천임을 이미 알고 있으며, 필자는 바로 이 원리를 실행하는 것이 시장의 경제발전 역할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행동경제학은 그것이 정부일 수도 있고 어느 개인일 수도 있고 조직일 수도 있겠지만 누구든 신상필벌의 인센티브구조를 작동시킬 수 있다면 이는 바로 시장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며 나아가 실험대상의 성장과 발전을 유도할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면 경제발전에 있어 시장 대 정부(나 조직)의 기능이 무엇이어야 하느냐 하는 해묵은 논쟁에 대해서도 해답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답은 바로 누구든 경제발전을 유도하고자 한다면 경제발전에 도움이 되는 좋은 행위를 보상하고 해가되는 행위를 처벌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이다.
그래서 본고의 삼위일체 경제발전론이 주장하는 바와 같이 시장은 물론, 정부도 기업이라는 조직도 개인도 모두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모든 시장참여자들을 신상필벌의 원칙에 따라 성과에 따라 차별적으로 대접해야 한다는 대 명제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바로 정부나 기업에 의한 경제적 차별화가 시장의 기능을 강화하여 시장의 영역을 확대함으로써 경제번영을 이루는 길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⑦ 경제적 차별화원리의 제도화가 바로 경제발전의 전제조건
 그 동안 신제도 경제학은 경제적 자유와 사유재산권제도가 경제발전의 전제가 되는 제도적 환경이라 주장해 왔다. 그러나 이런 제도적 장치가 오늘날 지구상에 -정도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북한 등 몇 나라 빼고 구비되지 않은 나라가 얼마나 되는가?
그런데 지구상에 일인당 소득 만 불을 넘어 빈곤의 문제를 해결했다는 나라가 전체 200여개의 나라 중 1/4정도에 불과한 현실, 중국경제와 같이 이 두 가지 조건에서 가장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승승장구하는 현실, 20세기에 도약한 일본이나 한국 등이 그리 완벽하지도 않은 경제자유와 사적재산권 보호 환경 속에서 경제성공을 이뤘다는 사실 들도 여전히 더 설득력 있는 설명을 기다리고 있다. 이제 신제도경제학이 이 문제에 대한 답을 하기위해 서구경험을 넘어 좀 더 그 지평을 넓혀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어떤 제도, 즉 어떤 문화, 이념, 그리고 보다 구체적으로 어떤 정치이념, 혹은 좀 더 포괄적으로 어떤 인생관, 세계관이 발전 친화적이냐 하는 문제에 대한 답을 얻지 못한다면 신제도 경제학도 여전히 진공 속 경제학의 틀을 못 벋어나게 될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우선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고자 한다. 경제적 자유와 재산권은 왜 경제발전에 도움이 되는 것인가? 동기부여를 통해 “모두를 다 잘 살게 해주기” 때문인가? 아마도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이 이에 동의할 것이다.

그러나 필자의 눈에는 이 답은 50점짜리 답에 불과해 보인다. 이 답은 바로 완전경쟁모형과 마찬가지로 행복한 결과를 얘기하지만 과정을 생략한 답이기 때문이다. 필자가 생각하는 100점짜리 답은 경제적 자유와 사적재산권이라는 제도는 신상필벌의 원칙에 따라 “경제적 차이와 차등, 불평등을 초래하기 때문에” 동기부여장치로서 기능할 수 있고 나아가 (아마도 모두가 잘 살 수 있는?) 경제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경제적 이익을 추구할 수 있다는 자유와 그 결과를 향유할 수 있다는 권리가 주어지는 순간부터 바로 우리는 경제적 불평등의 압력 속으로 내몰리고 여기서부터 성장과 발전의 유인을 체화하게 되는 것이다. 평등한 사회, 혹은 평등하지 않다하더라도 이미 내가 잘 살 수 있다고 보장받은 사회는 결코 성장과 발전의 유인을 창출해 낼 수 없는 것이다.

 바로 여기서부터 “어떤 제도가 경제발전에 도움이 되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해답의 힌트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여기서 경제적 기회든 결과든 각자의 노력과 성과에 따라 차별적으로 배분하는 제도만이 발전을 이끌 수 있다는 명제에 이르게 된다. 성과에 따른 경제적 차별화와 이의 제도화가 바로 경제발전의 전제조건인 셈이다. 여기서 경제적 차별화란 바로 경제적 성과에 다른 보상의 차별화를 의미하며 결국 다른 것을 다르게 같은 것을 같게 취급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이러한 경제적 차별화는 바로 행동경제학의 획득과 손실 프레이밍을 결합한 인센티브구조를 내재화 하고 있는 셈이다.

 신상필벌의 원칙에 따른 경제적 차별화는 바로 보상의 차별화를 통한 경제적 불평등 압력을 무기로 잠자는 시장을 깨워내어 경쟁심을 살려내고 성장과 발전의 유인을 이끌어내는 경제발전의 필요조건인 것이다. 역으로 경제적 차별화에 역행하는 경제평등주의는 경제정체의 충분조건이다. (이 명제는 필자가 Jwa and Yoon(2004)에서 최초로 주장하였다.)
 
⑧ 손실프레이밍을 교묘히 내재화했던 새마을운동의 차별화전략
 개발연대의 많은 정부주도 정책들이 경제적 차별화원리를 따랐지만 특히 새마을운동은 획득프레이밍은 물론 교묘하게 손실프레이밍을 내재한 신상필벌의 차별화원리를 활용한 것으로 해석된다. 첫해에 골고루 공평하게 나눠준 시멘트는 당연히 다음번에도 무엇이 되었든 같은 식으로 지원할 것이라는 기대를 하게 만들었을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갑자기 정부가 성과가 부실하다고 더 이상 지원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은 사실상 이미 약속한 것이나 다름없는 선물을 빼앗아간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에 손실프레이밍으로 작용한 셈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성과부실한 마을에 대한 지원중단선언은 강력한 박탈감으로 작용하여 해당마을들을 분기탱천(憤氣撐天)하게 만듦으로써 강력한 동기부여기능을 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올림픽시상대에 올라간 금, 은, 동메달리스트 중에서, 동메달리스트가 은메달리스보다 더 행복감을 느낀다는 행동경제학의 발견이 참고가 될 것이다. 은메달리스트는 기대했던 금을 놓친 박탈감에 불행하고 동메달리스트는 크게 기대치 않던 상을 받게 되어 더 행복해진다는 이치이다. (그니즈와 리스트(2014), p.158-159 참조)

 새마을운동 당시 지원이 박탈된 과반수가 넘는 마을들의 경우는 바로 은메달리스트처럼 강력한 손실프레이밍 하에 동기부여가 됨으로써 자발적 참여가 급속도로 늘어났고, 동시에 성과를 내 더 지원을 받은 마을들의 경우는 획득프레이밍 하에 지속적으로 동기가 부여되었던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제 새마을 운동의 추진전략으로 채택했던 경제적 차별화원리가-의도했던 안했던-당시로서는 얼마나 선구적인 경제발전관이었는지 그리고 이 원리는 아직도 살아있는 경제학으로서 여전히 유용하다는 점을 확인 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더구나 이를 통해 경제발전의 일반이론으로서 삼위일체 차별화발전이론의 타당성은 물론 그 유용성도 쉽게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7. 새마을 운동의 경제발전정책상의 함의

 이론적 측면의 의의에 이어 이하에서는 정책적 의의를 설명하고자 한다.
① 지속가능한 정부 공공정책 원리
 오늘날 세계 많은 나라들은 정부의 대국민지원정책의 지속가능성 결여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복지정책이나 사회정책이 방만해져 정부의 재정에 심각한 압박이 되고 있어 이들 정책의 지속가능성이 위협받고 있다. 그런데 한국의 새마을 운동은 사회(개혁)정책으로 시작했으나 결과적으로 농촌의 발전을 유도하고 경제발전에 기여함으로써, 사회정책이 경제발전정책 기능까지 수행하여 의식개혁과 동시에 소득증대를 이뤄 궁극적으로 정부의 재정부담까지 완화시킴으로써 사회정책의 지속가능성을 높인 획기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새마을운동은 사회개혁과 경제발전이라는 일석이조의 결과를 달성한 것이다. 

 경제학은 경제정책과 사회정책을 서로 다른 각도에서 접근한다. 경제정책은 지원에 대한 성과를 중시해야하지만 사회정책은 성과보다 지원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소득을 보전한다는 목적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 이런 관점에서 접근하면 사실상 사회정책은 그 자체로서는 지속가능하기가 어렵게 된다. 사회정책 자체 만으로서는 필요 재원을 충당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사실상 이것이 오늘날 세계 거의 모든 나라들의 사회정책이 안고 있는 문제이다. 그러나 새마을운동은 의식개혁은 물론 소득증대를 통해 자립을 도모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사회정책적지원의 필요성을 반감시킨 것이다. 

 어떻게 이게 가능했을까? 답은 사회정책마저도 경제발전정책원리인 “좋은 성과는 지원하고 나쁜 성과는 지원하지 않는다”는, 다른 말로 “자조하는 마을은 지원하고 자조하지 않는 마을은 지원하지 않는다”는 차별화발전원리를 엄격히 실천함으로써 사회정책이 경제발전정책으로 전환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박정희 대통령이 마을들을 성과에  따라 1학년(기초마을), 2학년(자조마을), 3학년(자립마을)으로 나누고 1학년이 아니라 2-3학년만 지원하겠다는 선언과 실천이야 말로 바로 사회정책을 경제발전정책으로 바꾸고 나아가 다른 모든 경제정책마저도 발전 친화적으로 바꾼 힘이라 할 수 있다. 이 사례야 말로 사회정책에도 차별화발전원리와 전략을 적용한다면 경제발전정책으로 전환될 수 있다는 교훈의 결정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점은 향후 세계 많은 나라들의 실패하는 사회, 복지정책 개혁에 좋은 참고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사회정책이나 복지정책의 궁극적 목표가 그늘진 곳의 취약계층을 양지로 이끄는데 있음에 동의한다면 우리의 새마을운동의 차별화원리가 바로 최적의 사회발전정책원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자조하는 자가 더 대접 받는다”는 정책원리가 오늘날 실패하는 세계 복지정책을 구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더구나 오늘날 표퓰리즘 민주주의가 극성을 부리면서 한국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좋은 성과를 우대해야 할” 경제발전정책마저도 “성과를 무시하는” 평등주의 정책 혹은 사회정책으로 전락하고 있는데 이런 실패하는 경제정책을 살려내는 데도 새마을 운동의 성공원리인 차별화원리가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그 구체적 실천방식은 다음의 산업정책의 집행방식을 원용할 수 있을 것이다.

② 정부 산업정책의 성공원리
 경제발전을 위한 정부의 지원정책 중 소위 산업정책은 아직도 찬반이 대립되는 난제중의 난제이다. 산업정책과 관련된 논쟁의 핵심은 정부가 어떻게 미리 누가 성공할지알고 지원할 수 있느냐이다. 시장중심주의자들은 정부가 사전에 승자를 잘 알 수 없으니 정부가 특정 산업이나 기업을 지원하는 것이 공정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것이 자칫 정경유착, 부정부패, 지원받는 기업이나 산업의 지대추구행위 등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매사를 시장에 맡기고 정부는 개입을 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그래서 시장중심의 주류경제학은 산업정책과 같은 정부의 시장개입을 권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정부의 역할을 중시하는 학파는 그래도 정부가 여러 방법을 통해 잘 선택을 하면 된다는 반론을 펴지만 별로 성공은 못하고 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세계 모든 나라들이 예외 없이, 정책의 이름이나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여러 형태의 산업정책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며, 더 놀라운 것은 그런데도 그다지 성공하는 나라가 많지 않다는 점이다. 그리고 찬반 논쟁은 결론 없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지난 세기, 몇 안 되는 산업정책성공사례이다. 새마을 운동도 산업정책과 유사한 정부의 농촌육성정책인데 성공한 경우라 할 수 있다. 여기로부터 정부산업정책의 어떤 일반론적 성공요인을 추출할 수 있을까? 필자는 새마을 운동의 성공이 바로 이 어려운 논쟁에 정답을 제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새마을 운동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산업정책에 대한 성공의 교훈은 다음과 같다.  

 첫째, 우선 지원방식과 관련해서는, 성과에 따른 차등 지원방식, 즉 경제적 차별화원리를 매 시장기(市場期)마다 지속적 주기적으로 되풀이 적용하여야 한다. 한번 선택되었다고 계속 지원받아서는 안 된다. 항상 새롭게 적절한 기간(일 년이나 반년 등) 마다 성과를 재평가해서 지원대상을 새로 선정해야한다. 이렇게 해야 지대추구행위를 차단하고 모든 대상자들을 경쟁에 몰입시켜 성장의 동기와 유인을 이끌어 낼 수 있다. 바로 새마을 운동이나 공장육성정책이 지속적, 주기적으로 성과를 평가하여 지원대상자를 재선정함으로써 모든 마을들을 시장경쟁의 장에 이끌어내어 모두 자조경쟁에 나서게 할 수 있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박정희 대통령시절의 수출육성정책이나 중화학공업화 정책은 바로 이런 원리를 적용하여 성공한 사례이지만, 김대중정부시절 ‘한번 벤처가 영원한 벤처’가 되는 재평가 없는 벤처육성정책이 실패한 사례를 상기하면 이러한 재평가 선택과정의 중요성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선택을 위한 평가기준은 미래 성장가능성이라는 애매한 기준이아니라 항상 누구나 승복할 수 있도록 실제 달성한 성과이어야 한다. 미래 성장가능성은 중요하기는 하지만 아무도 확실히 알지 못한다. 사실 미래성장가능성마저도 현재 성과를 통해 예견할 수 있을 뿐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기업의 경우 실제 매출, 혹은 수익 등이 적절하다 할 수 있다. 이런 투명한 실적을 평가기준으로 삼아야 정치적 고려가 끼어들 가능성을 최소화할 수 있다. 그래서 논쟁의 핵심인 ‘미래승자선택’의 문제는 ‘현재 시장성과에 따른 승자선택’으로 전환됨으로써 더 이상 논쟁의 여지가 없게 된다.
셋째, 이런 정책의 절차와 내용을 투명한 제도로 법제화해서 예외 없이 엄정하게 집행해야한다. 넷째로, 지원정책을 운영함에 있어 성과평가를 공명정대하게 해야 한다는 원칙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것이 바로 모두를 선택된 결과에 승복시킬 수 있는 첩경이다.

③ 문화, 이념, 전통을 발전 친화적으로 바꾸는 원리 
 경제발전은 발전 친화적 이념인 “자조정신”에서 시작된다. 새마을 운동은 희망이 없다던 한국의 농촌을 십수년 만에 천지개벽하듯 자조정신으로 가득 찬 사회로 바꾸어 놓았다. 어떻게 이게 가능했는가? 바로 박정희 대통령이 선택한 “스스로 돕는 자조하는 마을과 공장만 지원한다”는 차별화전략이 이를 가능케 했던 것이다. 

 그럼 새마을 운동에서 배울 수 있는 일반적 교훈은 무엇인가? 우선 자조하는 사람을 우대하는 제도와 정책, 즉 경기규칙을 만들고 이를 엄정히 집행해야한다. 경기규칙은 그 사회의 인센티브구조로 작용한다. 따라서 자조하는 사람에게 유리한 인센티브정책을 엄정히 그리고 꾸준히 집행하여 사람들이 자조정신과 그에 따른 행동에 익숙해져야 자연스런 변화를 이룰 수 있게 된다. 캠페인이나 교육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강제로 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강제는 형식은 바꾸지만 내용을 바꾸는 데는 한계가 있다. 결론은 올바른 이념, 문화의 내용을 담은 법제도와 정책을 만들어내고 이를 상당한 기간 엄격히 지키게 하여 사람들이 이에 익숙해져 자연스럽게 따르게 되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사회를 자조하는 사회라 할 수 있는가? 필자는 이 사회가 또 다시 정부 탓, 사회 탓, 남 탓하는 반자조사회(反自助社會)로 변질되어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바로 이 사회의 법제도와 정책, 즉 경기규칙과 그에 따른 인센티브구조가 그 동안 반자조적인 사람과 행동을 용인, 우대하는 사회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정치민주화이후 새마을운동이나 농업지원정책이 차별화전략을 버리고 “나쁜 성과를 용인, 우대하는”전략을 선택했다는 사실을 상기한다면 변화의 원인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에게는 오늘날 우리사회가 “자조를 얘기하는 것이 조롱감이 되는 사회”가 아니라고 하기가 어렵다고 생각한다. 
 자조하는 사회를 원한다면 자조하는 사람을 우대하는 제도를 만들고 지속해서 집행해야만 성공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새마을 운동의 교훈이다.

④ 차별화 리더십의 중요성 
 “좋은 성과에 보상하고 나쁜 성과에 벌을 준다”는 경제적 차별화전략을 국가의 운영원리로 채택하느냐 마느냐는 궁극적으로 국가 리더십의 선택이다. 이를 적극 수용한 리더십은 성공했고 반대로 “나쁜 성과를 용인하고 우대하는” 리더십은 당장의 인기는 누리지만 국가를 정체로 이끌었다는 것이 역사의 경험이다.

 리더십과 관련하여 특히 박정희 대통령이 각료들과 공화당 실력자들의 평등분배 제안을 거부하고 2차년도 지원방식을 차별적 배분으로 결정한 사건은 아마 지구상 모든 정치 지도자들에게 교훈이 되어야 할 것이라 생각한다. 표퓰리즘적 지원을 거부하고 차별적 지원을 결정한, 다른 말로 “정치를 경제화”한 박정희 대통령이야 말로 차별화 리더십의 전형이라 할 것이다. 새마을운동이야 말로 그 전 과정이 바로 차별화리더십의 생생한 시현과정이었다 할 것이다.

8. 결어: 새마을 운동은 “시장화(市場化)운동”

 시장 중심적 경제학은 자본주의경제의 제도적 받침틀인 사유재산권제도의 정비와 경제적 자유의 신장을 경제발전을 위한 절체절명의 과제라 하고 있으나 오늘날 북한 빼고 이런 제도적 창치를 갖추지 않은 나라가 없지만, -물론 그 제도적 완벽성에서는 차이가 날 수 밖에 없겠지만-, 2차 대전 이후 성공적 산업화사례가 많지 않고, 체제전환국들 중에도 중국정도를 빼고는 역동적 발전사례는 많지 않다. 제도란 하나의 경기규칙으로서 인센티브장치에 해당된다. 개인의 사유재산권과 경제적 자유의 보장은 바로 열심히 노력하여 재물을 얻으면 자신이 소유하고 상속할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된다는 경기규칙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 제도가 들어와도 사람들이 왜 미친 듯이 하루아침에 돌변하여 개인의 이익확대를 위해 내 달리지 않는 것인가. 다시 말해 시장화에 필요한 제도, 즉 경기규칙이 들어와도 왜 열심히 움직여 부자경쟁에 나서지 않는 것인가?
답은 과거의 규칙에 안주해온 사람들은 경로의존성의 덫에 갇혀 새로운 규칙이 들어와도 별로 움직이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과거의 타성과 관성에 젖어 새로운 규칙에 따라 바뀌려하는 인센티브가 그리 크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의 농촌도 시장화에 필요한 모든 장치가 건국과 더불어 갖추어졌지만 20여년에 걸쳐 꼼짝도 하지 않고 하늘만 쳐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체제전환국 사람들도 자본주의에 편입 된지 20여년이 지나고 있으나 모두 아직도 사회주의 이념을 못 벗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미 지적한데로 역사적으로 보면 시장이 경제발전에 필수적 장치이기는 하지만 충분조건은 아니었다. 소위 장마당과 같은 교환시장이 발전한다고 해서 농경사회가 자생적으로 산업화를 가져왔다고 주장할 수 있는 사례는 흔치 않아 보인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잠자는 농경사회를 깨워 자본주의 시장으로 편입시키는, 소위 경쟁시장화의 길은 산업화를 지향하는 후진국들이나 사회주의 체제에서 자본주의 체제로 전환하고 있는 체제전환국이나 모두 거쳐야 할 필수과정이다. 그러나 주류 경제학은 아직도 시장화의 성공전략을 체계화해내지 못하고 있다. 

 그럼 과거로부터의 경로의존성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장에 적극참여하게 하는 길, 즉 시장화를 촉진하는 길은 무엇인가? 바로 새마을 운동의 성공원리에 답이 있다. 우선 시장은 무엇이라 했는가? 바로 경제적 차별화를 통해 불평등의 압력을 높임으로써 동기를 부여하여 너도 나도 경쟁적으로 성장의 길, 성공의 길로 나서게 만드는 유인기제(incentive mechanism)이라 했다. 시장의 본질은 바로 차별을 통한 동기부여와 이를 통한 성공경쟁의 촉진에 있는 것이다. 사유재산권이나 경제적 자유가 자본주의경제의 발전에 도움이 되는 이유가 바로 그 경제적 차등과 불평등을 만들어내는 인센티브차별화기능 때문인 것이다. 그러나 이 제도들이 수십 년이나 혹은 그 이상의 장기간 동안에 걸쳐서도 경제적 도약을 이끌어내는데 실패하는 까닭은 바로 이 제도들의 인센티브 차별화기능이 미약하기 때문인 것이다. 바로 여기에 정부가 인센티브의 차별화를 강화한 경쟁의 게임규칙을 작동시킨 것이 바로 새마을 운동인 것이다. 

 시장경쟁에 무관심하던 농촌을 시장의 차별화기능에 따라 새마을운동경기규칙을 만들고 집행함으로써,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너도 나도 시장경쟁에 나서도록 유도하여 전국을 성공을 향한 경쟁의 소용돌이 속에 몰입하도록 이끌어 낸 것이 바로 새마을 운동의 진면목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새마을운동으로 경쟁이 촉진되고 성과가 향상되고 시장의 차별화기능은 저절로 우리 모두의 의식 속에 각인되면서 경제의 시장화가 급속도로 진전되어 한국경제의 전대미문의 경제적 도약의 배경으로 작용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새마을운동은 주류 경제학적 사고로는 실사구시적(實事求是的) 답을 찾기 어려운 “시장화”라는 과제를 안고 있는 후진국들, 체제전환국들, 더 나아가 북한-물론 북한이 원한다면-의 시장화를 위해 꼭 필요한 “시장화운동”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더구나 오늘날 2차 세계대전이후 오랜 세월을‘나쁜 성과를 더 우대하는 경제평등주의정책체제’속에서 국민들의 일할 동기를 차단함으로써, ‘역시장화(逆市場化)’의 길을 걸어온 결과 장기성장정체와 양극화속에 빠진 선진국들의 재도약을 위해서도 경제적 차별화원리에 따른 새마을운동의 시장화운동이 필요하다 할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