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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3·26... 그저 죄송하고 부끄럽다!!!
국부(國父)의 탄신(誕辰), 그리고 천안함 폭침...
이 덕 기 / 자유기고가
필자는 서울 강북의 아파트에 산다.
좁은 베란다에서 마누라가 여러 가지 화초를 키우는 통에
국기(國旗)를 달려면 곡예(?)를 감수해야 한다. 화분을 깨지 않으려고...
그래서 나라의 기념일과 추념일 아침이면
“애국의 길은 아주 험난하다”고 농담 삼아 얘기하곤 한다.
지난해 ‘국군의 날’(10월 1일)에도 화초분을 조심조심 피해서 어렵사리 국기를 달았다.
그런데 오후에 마누라에게서 깨톡이 왔다.
아파트 위층에 사시는 아주머니가
“오늘 우리 손주들이 ‘아래층에 태극기를 달았는데, 왜 우리는 달지 않았냐?
오늘이 무슨 날이냐?’고 물었어요”라며 깨톡을 보냈다고 한다.
결국 손주들 성화에 못 이겨 국기를 달았다는 싫지 않은 원망(?)과 함께...
+ + +
지금으로부터 140년 전,
일본의 조선 침략이 시작된 운양호(雲揚號) 사건이 일어난 해인
1875년의 3월 26일 황해도 평산에서 한 아이가 태어난다.
그가 바로 훗날 이 민족의 선각자요,
일제에게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반백년 이상을 풍찬노숙(風餐露宿)했으며,
세계사의 흐름을 정확히 꿰뚫었던 국제정치학자이고,
우리 조국 대한민국의 건국 대통령이신 우남(雩南) 이승만(李承晩)이다.
비록 한반도의 절반이었지만, 동아시아의 구석 자리를
폐쇄적인 대륙문명권에서 벗어나 개방의 해양문명권에 편입시키는데
주도적 역할을 하여 오늘 대한민국 번영의 토대를 만들었다.
어느 사학자는 그분의 전 생애를 관통했던
➀독립협회를 통한 애국계몽운동,
➁미국 망명과 독립운동,
➂해방 후 건국 운동,
➃6·25남침전쟁을 맞아 한반도 적화를 막아낸 전쟁지도,
➄초대 대통령으로서의 통치행위는
각각 항목마다 한사람의 역사적 인물이 이룩한 업적으로 평가받기에 충분하다고 말하고 있다.
(이주영의 『이승만 평전』, 2014년)
그러나 대한민국 근현대사에서는 지워진(?) 위인(偉人)이다.
각급학교 도서관에 있는 그 흔한 ‘평전’·‘위인전’들에서 그의 이름은 거의 찾을 수가 없다.
기껏해야 “10여 년간 대통령을 하다가 저항에 부딪혀 물러난 늙은 독재자” 정도로 기억될 뿐이다. 있을 수 없는 일이 이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그 분의 탄신일(誕辰日)을 아는 이는 너무도 드물다.
물론 교과서에도 나와 있지 않고, 선생님들도 가르쳐 주지 않는다.
필자도 ‘건국 대통령의 탄신일’을 제대로 안 것은 불과 수 년 전이다.
그저 송구스러울 따름이다.
한반도에 만악(萬惡)의 씨를 뿌리고 싹을 틔워서 그 독과(毒果)를 맺게 했으며,
그 열매가 고스란히 3대에 이어진 북녘 독재자들의 ‘탯줄 자른 날’은,
목적이야 어찌됐던 간에 이 나라 언론에서, 학교에서, 심지어 군대에서까지
매년 기억·회자(膾炙)되고 있다. (물론 진심으로 경하[慶賀]하는 인생들도 상당수 있다)
‘백도혈통(百盜血統)의 시조(?)’인 천출맹장(賤出盲腸)은 ‘태양절’로,
그의 아들 ‘식견(食見)있는 지도자(脂盜者)’는 ‘광명성절’로 말이다.
참담할 뿐이다.
이 보다 더욱 한심스럽고 개탄스러운, 또한 희한한 일도 벌어진다.
대한민국의 역정이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한 역사”라고
단호히(?) 규정한 이를 주군(主君)으로 모셨던 ‘대권 재수생’이 있다.
그와 그 무리들이 평소에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건국 대통령의 묘역을,
그 무슨 정당의 대표들이 됐다고 지난 2월 참배했다.
그들은 건국 대통령을 ‘늙은 독재자’라고 늘 비난해 왔지만,
북녘의 세습독재에 대해서는 그 무슨 ‘내재적 접근’이라는 미명하에
“그럴 수밖에 없는 선택”이니 하며 아주 관대하게 정당시 해 오고 있다.
헌데 건국 대통령 묘역 참배가 대한민국 궁민(窮民)이면 그저 자연스러운 일일진대,
언론에서는 그게 무슨 커다란 뉴스거리라고 대서특필했다.
당사자는 ‘국민 통합’(?) 차원에서 참배를 했다며, 온갖 생색질과 함께
별별 사설(辭說)들을 내뱉었다.
원래 내키지 않는 발걸음에는 여러 가지 유난이 따르게 마련이다.
“국부(國父)에 대한 공경심(恭敬心)”이나 “대한민국의 역정에 대한 경건함”은
애시 당초 있을 수 없었고, 결국 여론조사의 인기도 제고 노림수와
궁극적으로 표(票) 계산속이었던 것이다.
국부(國父)를 부정하는 이런 ‘호로자식’도 대선(大選)에서
궁민(窮民)의 48%나 되는 선택을 받는 나라가 되어 버렸다.
건국 대통령의 사진을 똑바로 쳐다 볼 수가 없다.
건국 대통령 이승만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물러날 때를 놓친 것이 큰 죄(罪)”라고들 한다.
하지만, 그 죄마저도 “부정을 보고 일어서지 않는 백성은 죽은 것이다”, “국민이 원한다면 대통령직에서 하야하겠다”는 말과 행동으로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의 교훈이 된 점을 평가해야 하지 않을까?
1965년 7월 19일 90세의 나이로 망명지 하와이에서 쓸쓸히 최후를 맞았고,
북진통일(北進統一)을 외치며 그토록 반대했던 ‘정전협정’이 체결된 12년 후의 7월 27일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서울 현충원)에 영원히 노구(老軀)을 눕혔다.
당신이 직접 설계하고, 주춧돌을 놓고, 서까래를 얹은 나라를 저승에서 내려다보며,
아마도 이런 말씀을 하시지 않을까?
“나를 알아주려 하지 않아도, 나를 욕해도 좋다. 결코 섭섭하지 않다.
대한민국을 이만큼 키워온 궁민(窮民)들이 자랑스럽다”고...
그는 분명코 거인(巨人)이었다.
나라의 앞날을 짊어질 젊은이들에게 잘못 가르쳤던,
아니 아예 가르치려 하지 않았던 죄과(罪科)의 대가가
어떤 모습으로 언제 우리 앞에 닥칠지? 심히 두렵고 걱정이다.
그 어떤 신화보다, 어떤 대하소설보다 더 극적이고 치열했던
그 분의 생애와 대한민국의 탄생·성장 그리고 아픔의 과정을
단지 뒷방 노인네들의 추억담으로 전락시켜서는 안 된다.
지금부터라도 젊은이들에게 바르게 가르쳐야 한다.
3월 26일은 5년 전에도 있었다.
우리에게는 분노와 치욕과 슬픔의 날이다.
대한민국 해군의 초계함인 ‘천안함’이 폭침을 당했다.
적(敵) 잠수정의 기습으로... 46명의 젊은 군인들이 우리 곁을 떠났다.
북녘 세습독재정권의 정전협정을 무시한 무력도발이다.
그리고 우리 ‘궁민(窮民)의 군대’가 전투와 경계 작전에서 패배·실패한 것이다.
세습독재정권의 무력도발이 명백함에도,
아직 그 주체와 책임에 대한 본질을 흐리는 괴상한(?)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천안함 사건은 사고였다”며 적(敵)에게 면죄부를 주는가 하면,
“연합훈련 중인 미군 잠수함이 천안함을 뽀갰고, 남한 정부가 책임을 은폐 내지는
북한에 뒤집어 씌웠다”는 억지와 ‘음모론’을 5년이 지난 지금도 끊임없이 퍼뜨리고 있다.
북녘의 ‘최고 돈엄(豚嚴)’과 영혼의 끈을 맺고 한반도 적화(赤化)를 주창·협잡하는 꼭두각시들은 물론이고, 이 땅에서 배울 만큼 배우고 가질 만큼 가졌다는 ‘쓸모있는 얼간이’들 까지 가세한다.
이들이야 말로 건국 대통령을 ‘늙은 독재자’로 폄훼하고, 대한민국의 역정을 ‘기회주의의 점철(點綴)’로 단정하는, 그래서 대한민국은 탄생해서는 안 됐거나 곧 망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세력의 또 다른 얼굴이다.
- 이들과 같은 하늘 아래서 같은 땅을 딛고 살고 있다는 것이
무섭기도 하고, 한편으로 우습기도(?) 하다.
천안함 폭침일이 건국 대통령 탄신일과 같은 날이라는 것은 단순히 우연일까? 북녘 세습독재정권의 교묘한 기획이었다고 추리한다면, 그 집단을 너무 영리(?)하다고 평가하는 것이 될까?
천안함 폭침은 한반도가 전쟁 중임을 잊은 안이함과
적(敵)을 제대로 보지 못한 느슨함이 빚은 결과이기도 하다.
부끄럽게 받아들이고 깊이 반성해야 한다.
도발에는 응징이, 전투에서의 패배에는 다시는 전철(前轍)을 밟지 않겠다는
피맺힌 다짐과 실천이 꼭 필요하다. 와신상담(臥薪嘗膽)의 고사처럼. 그러나...
우리 ‘궁민(窮民)의 군대’는 과연 응징할 준비와 승리의 대책이 있는가?
언제부터인지 “적(敵)이 도발하면 그 원점과 지원세력, 그리고 지휘세력까지 타격 응징하겠다”고 호언장담(豪言壯談)해 왔다.
그런데 연일 방산(防産) 비리와 전·현직 고위 간부들의 연루 사실이 보도되고 있다.
거의 총체적이라 할 만하다. 최첨단 유도탄 고속함이 적(敵) 격파 사격 중 포탄 장전이 불발되고, 또 다른 함정에서는 함포 포탄 오작동 사고로 우리 수병(水兵)이 중상을 당하는 사건도 발생했었다.
부대 내 성폭행·추행과 집단 따돌림·가혹행위의 빈발,
심지어 동료를 향한 총기 난사 까지 결코 군으로서 있어서는 안 될 일이 벌어졌다.
더군다나 고위 지휘관이 대비태세 강화 기간 중 음주 추태를 벌인 경우도 있었다.
이 모두가 ‘이적(利敵)의 죄’에 해당한다.
‘값싸고 허접한 군대’가 되어가는 건 아닌가?
‘벼르고 벼르다가 당하고, 또 벼르기만 하는 겁쟁이 꼴’을 다시 보는 건 아닐까?
차마 뭐라 할 수 없이 부끄럽고 불안하기만 하다.
- 일사분란(一絲不亂)한 지휘체계도 좋고, 민주적인 병영도 바람직하다.
그러나 일부 일사문란(一事紊亂)해 진 기강부터 다잡아서
결기 있는 군인, 진정 싸울 수 있는 군대가 되도록 해야 한다.
북녘 세습독재의 군대는 ‘10월 전쟁’ 준비를 다그치면서,
수시로 선제타격(先制打擊)을 짖어대고 있지 않은가.
이런 저런 어두운 구석은 ‘궁민(窮民)의 군대’ 전체가 아니라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고 애써 자위해 본다.
또한 전장(戰場)에서의 승패는 흔히 있을 수 있는 일(兵家之常事)이라고도 했다.
언젠가 결정적일 때 진가를 발휘할 것이라고 믿고 싶다.
그리고 전투에 패한 군인이라 해서 그 희생을 결코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조국에 대한 헌신은 그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다.
전장에서 사투를 벌인 우리 젊은이들이 교통사고 사망자들 보다 헐값(?) 대우를 받는다면,
어찌 ‘궁민(窮民)의 군대’가 힘을 쓰겠는가?
다시는 승리를 기약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들 궁민(窮民) 각자도 각성해야 한다.
지금 우리 조국 대한민국은 내우외환(內憂外患)의 어려움이 계속되고 있다.
‘낀 나라’의 애환도 깊어 간다. 대한민국과 그 궁민(窮民)은 최소한
자유통일이 되는 그 날까지는 긴장해야 한다. 숙명(宿命)이다.
위기를 말하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위기 속에서도 기회는 있다.
기회를 잡기 위해서는 스스로 강해져야 한다. 자강(自强)은 무엇으로 시작되는가?
‘3월 26일’을 말하고 있는 지금,
70년 전(前) 남의 나라 힘으로 식민지에서 해방된 이 땅에 돌아와
동포들에게 외친 거인(巨人)의 일성(一聲)이 귓전을 때린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습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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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3월 26일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만난(萬難)’(?)을 무릅쓰고 태극기를 달아야겠다.
건국 대통령의 탄신을 기념하고 그 분을 추모하면서, 천안함 젊은 용사들의 넋도 위로하고자
한다.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는 다짐과 함께...
그런데 큰 고민이 생겼다. 국기를 어떻게 달아야 하나?
국가 기념일에 다는 국기냐, 조기(弔旗:한 폭 내려달기)냐? 숙고(熟考) 끝에
기념과 추모의 의미로 국기를 달되, 추도(追悼)의 검은 색 리본도 깃봉 밑에 함께 묶기로 했다.
이번에도 위층의 밉지 않은 장난꾸러기들이 할머니에게 물어볼까?
“아래층에 국기를 달았는데, 오늘이 무슨 날이야? 그리고 태극기를 왜 그렇게 달았데요?”
<더 끼>
# 후 기 :
➀ 북녘 정보를 다루는 국군OO사령부가 만든 달력에는 4월 15일과 2월 16일 날짜 밑에 각각‘김일성 생일[태양절]’과 ‘김정일 생일[광명성절]’이 표기 되어 있다.
➁ 죽은 것밖에는 잘한 일이 없는 북녘 세습독재자들이 살아생전에 했던 짓거리들을 보면, 태양절은 ‘재앙(災殃)절’이, 광명성절은 ‘광맹성(狂盲猩:미치고 눈먼 類人猿)절’이 제대로 된 명칭일 듯싶다.
➂‘호로자식’은 아비 없는 자식이란 뜻으로, 아버지가 없어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해 제멋대로 행동하는 이들을 일컫는데 쓰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