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병헌 "십년대계라도 만들자", 김영환 "전당대회는 부족장 선거"
  • 새정치민주연합 김성곤 전당대회준비위원장이 지난달 12일 열린 1차 전체회의에서 김영록 전대준비위원을 돌아보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새정치민주연합 김성곤 전당대회준비위원장이 지난달 12일 열린 1차 전체회의에서 김영록 전대준비위원을 돌아보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말많고 탈많던 새정치민주연합의 이른바 '전대 룰'이 19일 당무위원회에 상정됐다.

    지난달 12일 전당대회준비위원회를 구성해 첫 전체회의를 가진지 한 달여 만의 일이다.

    야구나 농구, 바둑이나 장기를 할 때 한 판을 시작할 때마다 규칙을 일일이 새로 정하고 시작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새정치연합 전당대회에서는 유독 그런 일이 반복되고 있다.

    이런 일에는 당사자들마저 넌더리가 났음을 공공연히 표현할 정도다.

    이른바 '빅3'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정세균 의원은 지난달 12일 "매번 전대할 때마다 룰을 바꾸면 어떻게 되겠느냐"며 "일관성이라는 것도 중요한데, 자꾸 룰을 바꾸면 국민적 신뢰를 얻기 어렵다"고 말했다.

    박지원 의원도 지난달 17일 "예측가능한 정치와 정당정치의 안정화를 위해서 지난 전당대회의 룰 그대로 하자"고 동조했다.

    하지만 이는 말뿐이다. 물밑에서는 다가올 2·8 전당대회에서 대의원·권리당원·일반당원·국민의 선거인단 반영 비율을 놓고 10%라도 자기 쪽으로 유리한 방향으로 끌어당기기 위해 사력을 다한 혈투가 벌어졌다.

    그 결과로 18일 등장한 것이 전대준비위의 '합의안'이다.

    '대의원+권리당원'과 '일반당원+국민'의 비율을 70대30으로 하자는 주장과 80대20으로 하자는 주장이 양보 없이 맞선 끝에, 5%라는 디테일한 단위의 조정까지 이뤄져 75대25로 절충 합의됐다.

    '5% 조정' 끝에 전대준비위에서는 볼썽사나운 표 대결 없이 합의가 이뤄졌을지 몰라도, 공당(公黨)의 전대 규칙으로서는 난삽해진 느낌을 지울 수 없게 됐다.

    왜 새정치연합 전당대회를 앞두고서는 유독 이렇게 규칙에 목숨을 건듯한 승부가 벌어지는 것일까.

    정치권 관계자는 "유력 당권 주자 사이에서 차별성이 없기 때문"이라고 그 원인을 짚었다.

  • 비대위원 시절의 이른바 '빅3'인 문재인·정세균·박지원 비상대책위원. 유력 당권주자인 '빅3'는 나란히 비대위에 나아갔다가 한날 한시에 사퇴했다.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 비대위원 시절의 이른바 '빅3'인 문재인·정세균·박지원 비상대책위원. 유력 당권주자인 '빅3'는 나란히 비대위에 나아갔다가 한날 한시에 사퇴했다.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다른 말로 '피아(彼我) 없는 승부', '초록이 동색'이라고도 표현된다. 유력 당권주자들이 저마다 "나야말로 당을 살릴 적임자"라며 "수권할 수 있는 야당을 만들겠다"고 외치지만 구체적인 방법론 없이 추상적인 구호만 난무한다.

    새정치연합 김영환 의원은 17일 한 매체에 기고한 글에서 이를 "무엇을 잘못했고 무엇 때문에 당이 이 지경이 됐는지 과거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없다"며 "(그러면서) 당권주자 빅3가 너도나도 중도를 내세운다"고 표현했다.

    '중도 표방'이 득표에 유리할 것 같으면 다함께 '중도'로 달려갈 정도로 유력 당권주자 간에 뚜렷한 차별지점이 없다. 경력도 천편일률적이며, 정책·공약·노선·비전에서도 구체적인 차이점을 느낄 수가 없다.

    그렇다보니 전당대회는 종국적으로는 세(勢) 대결 양상으로 흐를 수밖에 없다. '남보다 내가 낫다'라는 것을 어필할 수 있는 지점이 없다보니, '원래 내 편'인 '집토끼' 표가 최대한 몰려나와서 나를 찍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계파 머릿수 싸움이 되니 자연 전당대회 규칙이 중요해진다. 전당대회 규칙을 어떻게 정하느냐에 따라 이미 승패가 갈릴 지경이다.

    예를 들어 대의원 반영 비율이 30%에 그치고, 일반당원과 국민이 70%에 달했던 2012년 1·15 전당대회와 6·9 전당대회에서는 친노 세력이 연승 가도를 달렸다.

    그런데 지난해 거꾸로 대의원과 권리당원을 80%로 늘리고 일반당원과 국민을 20%로 줄였더니 이번에는 비노 세력인 김한길 전 대표가 승리했다.

    전대 규칙 싸움에서 승리한 자가 본선도 승리한 셈이다. 자연히 전대 규칙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다가올 2·8 전당대회 규칙을 논의한 전대준비위에서도 불과 한 달여 시간 동안 온갖 제안이 상정됐다가 사그러들기를 반복했다.

    △모바일 투표 재도입 △대표와 최고위원의 통합·분리 경선 문제 △선거인단 비율 조정 △시민 선거인단 반영 여부 △권역별 최고위원제 △컷오프 존폐 △영남 지역 당원 보정 등 자기 편에 조금이라도 유리할 법한 제안은 테이블 위에 다 쏟아져 논의 대상이 됐다.

    새누리당이 2005년 제정한 당내 경선 규칙인 '2·3·3·2 룰'(대의원 20%·당원 30%·국민 30%·여론조사 20%)을 10년 가까이 지켜오고 있는 것과는 너무나 대조적인 모습이다.

    전병헌 전 원내대표는 이와 관련 17일 한 라디오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우리 당도 백년대계는 아니더라도 십년대계 룰은 만들자"며 "전당대회할 때마다 룰 갖고 싸워서 시작도 하기 전에 국민들로부터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바보 같은 짓을 되풀이하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개탄했다.

    김영환 의원도 같은날 기자회견을 통해 "전당대회는 소위 계파수장을 위한 부족장 선거로 전락했다"고 잘라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