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 이정미 재판관, ‘중도’ 강일원 재판관 선택이 ‘변수’
  • 헌법재판소 대심판정.ⓒ 사진 연합뉴스
    ▲ 헌법재판소 대심판정.ⓒ 사진 연합뉴스

    통합진보당의 존폐를 가를 위헌정당해산심판이 초읽기에 들어가면서, 국가보안법 폐지에 관한 9명 헌법재판관들의 입장과 태도가 초미의 관심을 받고 있다.

    특히 이번 사건의 핵심이, 통진당 강령 및 구성원들의 활동을 통해 나타난 위헌성 여부에 맞춰져 있다는 사실에서, ‘국가보안법 폐지’ 논란과 관련돼 과거 헌법재판관들의 밝힌 입장과 태도는 이번 사건의 결과를 추론할 수 있는 바로미터가 될 수 있다.

    위헌정당해산심판은 세계에서도 그 사례가 흔치 않은 특별한 사건이라는 점에서 평의를 앞둔 9명 헌법재판관이 짊어져야 할 부담은 매우 크다.

    정당해산은 헌법재판관 7명 이상이 참여하는 최종 평의에서 6명 이상이 찬성하는 경우 결정된다. 찬성 의견이 5명 이하인 경우는 기각결정을 내린다.

    헌재 내부 사정에 밝은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미 상당수의 재판관들은 이번 사건에 대한 찬반 견해를 굳힌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다음 달 중순으로 예정된 결정에 앞서 열리는 재판관 평의가 생각보다 쉽게 마무리될 것이란 관측도 있다.

    이번 사건의 특성상, 9명 재판관의 정치적 기울기와 이념적 성향이 어떤 식으로든 결정에 영향을 미칠 것이란 견해가 지배적이다.

    지금까지 드러난 사정을 종합하면, 9명 재판관의 정치성향은 보수 6명, 중도 1명, 진보 2명으로 각각 분류된다.

    우선 박근혜 대통령이 지명한 박한철(헌재 소장), 서기석, 조용호 재판관과 새누리당이 추천한 안창호 재판관은 보수로 분류된다.

    양승태 대법원장이 지명한 이진성, 김창종 재판관에 대해서도 보수성향이란 의견이 상대적으로 많다.

    여야가 합의로 선출한 강일원 재판관은 중도로 분류되며, 이용훈 전 대법원장이 지명한 이정미 재판관(통진당 위헌정당해산심판 주심)과 옛 민주당이 추천한 김이수 재판관에 대해선 진보성향이란 평가가 일반적이다.

    그러나 재판관 개인의 정치적 이념적 성향이나 지명권자를 기준으로, 통진당 해산심판의 결과를 예측하는 것은 무리라는 지적이 많다.

    실제 구체적 사건에 따라 9명 재판관의 의견이 엇갈리는 경우가 많아, 섣부른 예측은 무리가 따를 수밖에 없다.

    법원 주변에서는, 보수로 분류된 재판관 가운데 1명 이상의 이탈표를 예상하는 의견도 고개를 들고 있다.

    때문에 이번 사건의 ‘주심’을 맡은 이정미 재판관과 ‘중도’로 분류되는 강일원 재판관의 심중이, 통진당 존폐를 결정짓는 핵심 변수가 될 것이란 추론이 나오고 있다.

    이 재판관이 진보성향으로 평가 받는 가장 큰 이유는, 지명권자가 이용훈 전 대법원장이기 때문이다. 이 전 대법원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고시 동기로, 진보성향으로 분류된다.

  • 이정미 헌법재판관.ⓒ 네이버 화면 캡처
    ▲ 이정미 헌법재판관.ⓒ 네이버 화면 캡처

    인사청문회 당시 보여준 태도나 통진당 해산심판 재판 과정에서 보여준 모습을 고려할 때, 이번 사건에 대한 이정미 재판관의 속내를 읽어내기란 쉽지 않다.

    다만 이정미 재판관이 법원 내에서도 진보적 성향이란 평가를 받아왔고,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이 낸 후보사후매수죄에 관한 위헌법률 헌법소원사건에서, 김이수 재판관과 함께 위헌취지의 소수의견을 밝힌 사실 등을 고려할 때, 이번 사건에서도 ‘반대’의견을 낼 것이란 관측이 적지 않다.

    이정미 재판관은 국가보안법 존폐 논란에 대해서도 다른 재판관들과 달리, ‘신중’한 입장을 취했다.

    그는 인사청문회 당시 국보법 폐지와 관련된 질의를 받고, “남북대치 상황에서 꼭 폐지돼야 하는지 신중해야 한다”고 답해 폐지에 반대한다는 뜻을 내비쳤다가, 다른 의원이 “폐지를 반대하는 것이냐”고 다시 묻자 “명확하지 않은 조항들은 분명히 해야 하고, 법 적용의 오남용을 막기 위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모호한 답변을 내놨다.

    참고로 인사청문회 질의응답 및 서면답변을 통해, [국가보안법 존치] 입장을 밝힌 재판관은 9명 가운데 모두 7명이다.

    이정미 재판관과 ‘중도’ 성향으로 분류되는 강일원 재판관은 다소 부정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옛 민주당 몫으로 추천된 김이수 재판관은 인사청문회에서 국보법 존치 입장을 밝혀 눈길을 끌었다.

  • 김이수 헌법재판관.ⓒ 네이버 화면 캡처
    ▲ 김이수 헌법재판관.ⓒ 네이버 화면 캡처

    김이수 재판관은 인사청문회 당시, “국가안전보장,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등 헌법을 수호하는데 필요한 내용은 존치할 필요가 있다”며 국보법 존치 입장을 나타냈다.

    이정미 재판관의 경우, 국보법 존폐와 관련돼 모호한 입장을 밝히면서 <참여연대>로부터 비판을 받기도 했다.

    2011년 3월 4일,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이정미 후보자가 헌법재판관으로서 다루게 될, 정치적 사회적 현안과 관련돼 검증 자체를 회피했다고 비판했다.

    <참여연대>는 “몇몇 의원들이 청문회에서 지적한 것처럼 이 후보자는 헌법과 관련된 연구논문과 학위, 저서나 하다못해 강연이나 언론기고 등도 전무하고, 헌재 연구관 경력도 없다”고 지적한 뒤, “후보자 스스로 주요 현안들에 대해 소신과 철학을 분명하게 밝히고, 당당히 검증을 받음으로써 자질 논란을 불식시켜야 했지만 그렇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법원 주변에서는 개별 사건마다 재판관들의 성향이 엇갈려, 이들의 정치적 색채를 단정적으로 나누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통진당 해산심판에 있어 재판관들의 과거 발언이나 태도만을 가지고 결과를 예측할 수 없다는 견해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다만, 재판과정에서 보여준 태도를 보면 재판관들이 대체로 무엇에 관심을 갖고 있는지는 엿볼 수 있다.

    이정미 재판관의 경우, 올해 2월 18일 열린 통진당 해산청구심판 2차 변론 당시, 정부측 참고인들에게 ‘구체적 실현 가능성이 없어도 목적에서 위헌성이 드러나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되는 것이냐’고 질의했다.

    이에 대해 김상겸 동국대 법대 교수는 “생존을 위협하는 적과 대치하는 상황에서 적의 주장과 유사한 입장을 취하고, 그것이 현실화 돼 혼란이 야기된다면 정당해산심판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면서, “정당해산 심판은 사전 예방을 목적으로 한다고 답변했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역시 독일의 예를 들면서, 목적이 실현 불가능해도 정당해산이 가능하다며 “정당의 목적이 위헌적이라면 정당을 해산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통진당 측 참고인으로 나선 정태호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유럽인권재판소의 판례를 근거로, ‘절박한 사회적 필요’, 즉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구체적으로 위험성을 띨 때에만 정당을 해산할 수 있다며 반대 입장을 밝혔다.

    같은 날, 강일원 재판관은 이정미 재판관과 상반된 질문을 던졌다.

  • 강일원 헌법재판관.ⓒ 네이버 화면 캡처
    ▲ 강일원 헌법재판관.ⓒ 네이버 화면 캡처

    당시 강일원 재판관은 정태호 교수에게 ‘북한식 사회주의를 표방하더라도 구체적 위험성이 없으면 정당해산 사유가 안 된다는 것이냐’고 물었다.

    이에 정 교수는, “북한식 사회주의를 추종하는 세력이 우리나라에서 권력을 잡거나 그럴 가능성은 전무하다”면서, “우리 안보시스템이 그렇게 취약하다고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헌재는 25일 18차 공개변론을 끝으로, 본격적인 최종 평의에 들어간다.

    다만 최종 평의는 일사천리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이미 재판관들이 20차례 이상 평의를 갖고 각자가 ‘해산’ 혹은 ‘기각’ 입장을 정한 상태여서, 최종 평의는 이를 확인하는 자리가 될 전망이다.

    최종 평의는 서열이 낮은 재판관부터 ‘해산’ 혹은 ‘기각’ 의견을 밝히고, 그 이유를 설명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해산심판 결정이 올해 안에 나올 경우, 매월 넷째 주 목요일 열리는 정기 선고일 전에 특별기일이 별도로 정해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