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 주민 "연로한 나이에 독한 페인트 작업하며 손녀 길러" 증언
  • 유민 외할머니가 사는 것으로 알려진 경기 안산시 단원구 고잔동의 모 연립주택. 날이 어두워져 이웃집은 불을 켰는데도 24일 늦은 시간까지 여전히 불이 꺼져 있고 인기척이 없었다. ⓒ정도원 기자
    ▲ 유민 외할머니가 사는 것으로 알려진 경기 안산시 단원구 고잔동의 모 연립주택. 날이 어두워져 이웃집은 불을 켰는데도 24일 늦은 시간까지 여전히 불이 꺼져 있고 인기척이 없었다. ⓒ정도원 기자


페인트칠 하며 외손녀 둘을 길렀어.
마주쳐도 먼저 인사를 해야 인사를 받지,
안 그러면 나도 눈 꾹 감고 지나가.
뭐라 위로할 말이 있어야지.
뭐라고 위로를 해 뭐라고.


고(故) 김유민 양의 외삼촌 윤모 씨의 글로 주말 인터넷 공간은 소란스러웠다.

일부 유가족의 입맛에 맞는 특별법을 제정해내라며 단식하고 있는 [유민 아빠] 김영오 씨가,
실은 이미 이혼했으며 유민 양 양육비도 거의 지급하지 않았다는 주장이었다.

이 주장은 김영오 씨 본인을 통해서도 대부분 사실로 확인됐다.
김 씨는 24일 오전 페이스북을 통해,
"양육비를 매달 꼬박꼬박 보내주지 못하고 몇 달에 한 번씩 보낼 때도 있었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김영오 씨를 둘러싼 논란 속에 정작 유민 양을 길러낸,
그리고 앞으로도 유민 양의 여동생 김유나 양을 길러야 할
[외할머니]
의 존재는 비껴나 있었다.

외삼촌의 증언보다도 어쩌면 유민-유나 양의 곁에서 뒷바라지를 하며,
실질적인 [가장] 역할을 해 온 외할머니의 생각이 더욱 중요하지 않을까?

문득 외할머니가 바라 본 [사위]의 진짜 모습이 궁금해졌다.

취재진은 유민이의 외할머니를 직접 만나보기 위해,
거주지로 알려진 안산 고잔동 일대를 찾아가 봤다.

24일 오후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고잔동 모 연립주택 인근 상가.

물병을 사기 위해 들린 슈퍼마켓 주인에게,
슬쩍 [유민 외할머니]에 대해 아는 지를 물었다.

인자한 표정의 슈퍼마켓 주인.

요즘 할머니들이 손주들을 키우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사고를 당한 손주들이 주변에 꽤 있다고 들었다.

그러나 [유민 외할머니]에 대해 구체적인 점은 모르는 듯 했다.

근처의 한 노인정.
어르신 세 분이 모여 고스톱을 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사고에 대해 묻자 분위기는 금세 침통해졌다.

한 어르신은 조심스레 헤아렸다.

(모 연립주택) 1차에서는 통장 댁 아들도 (세월호에) 탔다.
1차에 세 명, 2차에 두 명인가...

또 다른 어르신.

"늙은이들은 그저 안타깝기만 하다"며 눈물을 훔쳤다.
그러면서 덧붙였다.

"(유민 외할머니가 사는 것으로 알려진) 2차 ○동에도
(세월호 희생자가) 있다고는 들었는데,

우리는 잘 모른다."

구체적인 이야기가 들리지 않는 것은 이 지역의 전출입이 잦기 때문일까.
해답의 열쇠는 인근 연립주택 단지의 정자에서 들을 수 있었다.

정자에서 만난 어르신은 이렇게 말하며 안타까워했다.

"(유민이) 외할머니가 페인트칠을 하면서 손녀 둘을 길렀다.
둘째 딸은 아직 중학생일 것이다."


이 어르신은,
유민이 외할머니와는 [지나가다가 마주치면 눈인사 하는 정도의 사이].

요즘은 지나가다 마주쳐도
(유민 외할머니가) 먼저 인사를 하면 인사를 받지,
인사를 안 하면 나도 눈 꾹 감고 못 본 척하고 지나가요.

다른 어르신도 맞장구를 치며 이렇게 탄식했다.

여기는 한 동 건너 한 동(에 희생자가 있는 상황)이야...
(유가족과 마주쳐도) 뭐라고 위로할 말이 있어야지,
뭐라고 위로를 해, 뭐라고...

어르신들은 입을 모았다.

(유민이) 엄마 아빠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이혼했다는 이야기만 들은 정도다.

봉양을 받아야 할 연세에,
페인트 독에 노출되는 작업을 하며 외손녀 둘을 길러야 했던 유민이 외할머니.

정자에서 만난 어르신은,
"(유민이 외할머니는) 기술자야. 그러니까 나이는 상관 없지"라면서도
안쓰러움을 느끼는듯 표정이 어두워졌다.

한편 유민이 외할머니가 김유나 양과 함께 사는 것으로 알려진 모 연립주택은,
24일 늦은 시간까지 불이 꺼져 있고 인기척이 없었다.

인근 연립주택에 거주하는 한 어르신도 안타까워했다.

일하러 나갔나?
여기 동 사람(유가족)은 교회를 다니니 거기서라도 위로받지,
그 사람(유민 외할머니)은 어떨지 모르겠어.

연로한 나이에도 페인트칠을 하며 손녀 둘을 억척스럽게 길러내야 했기에,
노인정에서 한가로이 시간을 보낼 수도, 주말에 종교 활동을 할 수도 없었던 것은 아닐까.
주변 주민들로부터 구체적인 이야기를 듣기까지,
시간이 걸렸던 점이 어렴풋이 이해될 듯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