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충북 음성 꽃동네 '희망의 집' 찾은 프란치스코 교황사전에 준비한 '화려한 의자' 대신 '식당용' 낡은 의자 선호환호하는 신자들 향해 '더 크게'라는 의미로 팔 위로 흔들어수도회 대표가 무릎 꿇고 인사하자 한사코 만류..눈높이 인사
  •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 16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역사적인 시복 미사를 집전한 뒤 오후엔 충북 음성 꽃동네 희망의 집을 찾아 소외된 이웃을 어루만졌다. 교황은 이날 장애 아이들을 한명씩 안아주고 볼에 입을 맞추는 자애로운 모습을 보였다. 또한 수도자들에게는 '청빈한 삶'을 강권하는 메시지를 전해 주위를 숙연케 만들기도 했다. '낮은 곳으로 향하는' 교황의 분주했던 16일 오후 일정을 정리해봤다.



  • ■ 신자들 환호에.."더 크게" 팔 위로 흔들어


    교황은 오후 3시 30분경 헬리콥터를 타고 꽃동네 입구에 도착했다. 이후 오픈카로 갈아타고 희망의 집까지 카퍼레이드를 펼쳤다. 도중에 어린이들을 안아 입 맞추고, 장애 어린이를 축복하기도 했다. 신자들의 환호성을 지르는 바람에 어린이들이 놀라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교황이 '희망의 집'에 들어설 때 예수의 꽃동네 남녀 수도회 대표가 무릎을 꿇고 인사했으나, 교황은 한사코 그들을 일으키며 눈높이를 맞추고 인사했다.

    장애인들과의 만남에서 차 필립보 어린이와 양팔이 불편한 소녀가 교황에게 꽃다발을 건넸다. 교황은 사람들의 동의를 얻어 그 꽃을 성모 마리아에게 봉헌했다. 이어 장애 어린이들이 노래와 율동을 선보였다. 생활성가 작곡가 김태진 신부(수원교구 어농성당 주임)가 작곡한 '주님 달링 주님 허니'와 '축복합니다'란 노래였다.



  • 희망의 집은 장애인들의 거주공간인 관계로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하는데, 신발을 벗는 데 익숙하지 않음에도 교황은 기꺼이 신발을 벗고 들어가, 나올 때에는 의자에 앉아 신발을 갈아 신었다. 이어 교황은 오픈카를 타러 이동하면서 환호하는 신자들을 향해 '더 크게'라는 의미로 팔을 위로 흔들어 웃음을 자아냈다.

    희망의 집 2층 강당에는 장애아동 외 꽃동네 가족 158명이 함께 했다. 성모의 집 장애아동 40명, 희망의 집 장애어른 20명, 구원의 집 노인환자 8명, 천사의 집 입양을 기다리는 아기 8명, 교사와 의료인 등 68명, 호스피스 환자 4명, 도우미 등 10명 등이 함께 했다.

    꽃동네에서도 가장 어린 2개월 아기부터 희망의 집 어르신까지 모두 불편한 몸을 이끌고 한자리에 모였다. 특히 ‘예수의 꽃동네 수도자 찬미단’은 교황의 입장과 퇴장 때 ‘Vive Jesus’ (예수는 살아계시다)라는 성가를 힘차게 불렀다. ‘Vive Jesus’는 교황이 오래 전부터 가장 좋아하는 곡으로 밝혀온 스페인 성가다.



  • 꽃동네 수도자 찬미단은 교황 방한을 기념해 ‘복음의 기쁨’이라는 제목의 음반을 내고 이날 교황에게 선물하기도 했다. 이 음반은 찬미단이 4번째 발매한 음반으로 모두 스페인어로 노래해 담았으며, 그 중 2곡은 복음의 기쁨을 주제로 수도자들이 직접 작사․작곡한 곡이다. 또 마지막 곡은 꽃동네 노숙자 합창단과 함께 불러 담았다.

    희망의 집 가족들은 모두 귀한 손님을 맞이하는 기쁨으로 한복을 차려 입었다. 지체장애를 갖고 있는 김일환(레오비노, 55)씨는 “교황님께서 오신다는 말을 들은 순간부터 교황님의 건강을 위해 기도했다”며 교황을 만나는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그는 “늘 소외되고 낮은 곳에 있어야 하는 우리들을 찾아서 여기까지 와주셨다는 것이 너무나 기쁘다”며 “몸은 불편하지만 평화를 위한 기도만큼은 누구보다 깊은 마음으로 함께 하며, 교황님께서 평화를 위해 기도해주시길 청한다”고 밝혔다.



  • ■ 전신마비 신자가 4개월간 만든 '자수' 선물


    박종원(4), 최동연(10)군은 ‘파파 올라’라고 외치며 교황의 목에 꽃목걸이를 걸었다. 꽃동네 측에서는 교황의 흰 수단에 잘 어울리고, 목에 걸기 가벼운 것으로 보라색 양란을 선택해 꽃 목걸이를 만들었다고.

    또한 왼손을 약간 움직일 수 있는 것 말고는 손발이 마비된 오행욱(15)군이 지체장애를 가진 차해준(10)군의 휠체어를 밀어주며 교황에게 꽃다발을 전달하기 위해 나아가 감동을 전했다. 꽃다발은 차해준 군이 전달했다.

    교황은 이들로부터 꽃다발을 받자 감동어린 표정을 지으며, 오 군과 차 군에게 "이 꽃을 성모님께 봉헌해도 되겠느냐"고 직접 물어봤다.
     
    교황은 이 자리에 함께 한 모든 이들과 일일이 악수하고 안수했으며, 특히 어린이들의 머리와 볼에 입 맞추며 축복을 전했다. 입양을 기다리는 아기 중 한 명은 축복하는 교황의 손을 두 손으로 붙잡고 쪽쪽 빨아 주변에 웃음을 자아냈다.



  • 교황은 꽃동네 수도자들과도 개별적으로 인사하며 “내가 좋아하는 성가(Vive Jesus를 말함)를 들어볼 수 있느냐”며 환한 웃음을 보였다. 수도자들은 교황이 완전히 퇴장할 때까지 이 노래를 들려줬다.

    아울러 교황은 꽃동네 가족들에게 ‘예수의 탄생’을 형상화한 모자이크화를 선물했다. 또한 교황은 메달과 묵주를 직접 강복해 선물로 전했다.

    교황은 꽃동네 가족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눈 후에는 다 같이 성모송을 바치자고 권유, 스페인어로 성모송을 합송했다. 이어 교황은 “주님의 평화가 여기 계신 모든 분들과 함께 하길 빈다”며 교황 강복을 전했다.



  • 꽃동네 가족들은 베로니카씨(이름 밝히길 거부)가 불편한 손으로 자수를 놓아 그린 초상화를 교황에게 선물했다. 베로니카씨는 목뼈를 다쳐 전신이 마비된 상태에서 손을 약간 움직일 수 있는 상황으로, 4개월여에 걸쳐 교황 초상화 자수를 완성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가진 것이 없지만 사랑의 마음만큼은 누구보다 큰 꽃동네 가족들의 마음을 보여주는 선물도 있었다. 김인자(세실리아)씨는 종이학과 종이거북이를 한 마리씩 접어 교황에게 선물했는데, 김 씨는 뇌성마비로 전신을 움직일 수 없지만, 발가락으로 이 종이학과 종이거북이를 접었다.
     
    교황에게 환한 웃음을 안겨준 주인공은 단연 어린이들이었다. 이날 꽃동네 성모의 집 지체장애 어린이 11명은 ‘주님 달링 주님 허니’와 ‘축복합니다’라는 곡에 맞춰 신나는 율동을 선보이며 교황의 품에 안기기도 했다. 그 중 하체를 쓰지 못하지만 앉은 상태에서 환한 웃음으로 율동을 선보인 어린이는 보는 이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 ■ 몸 불편한 선교사 눈높이 맞춰 인사


    태아동산으로 이동한 교황은 태아들의 무덤을 상징하는 십자가들 앞에서 잠시 침묵기도한 뒤, 사지절단증으로 태어나 평생 은인들의 도움으로 살아와 지금은 선교사가 된 이구원 선교사를 만났다. 구원 선교사에 대한 설명을 듣고 눈을 맞추며 이야기했다.

    카퍼레이드를 마치고 하차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먼저 태아동산을 찾았다.

    태아동산은 낙태한 아기를 위해 마련된 공간. 청주교구는 2000년 전국가정대회 때 성가정상 앞에 매일 낙태되는 태아의 수에 맞춰 4,000여 개의 하얀 나무십자가를 세워 태아동산을 조성했다. 현재는 1,000여 개의 십자가가 서 있다. 교황은 태아동산 앞에 서서 두 손을 모은 채 고개를 숙이고 약 3분 간 침묵 속에 기도했다.



  • 이때 태아동산에서 교황을 맞고 함께 기도한 인물은 이구원(25·성황석두루카선교회) 선교사. 선천적으로 팔다리가 없는 장애인으로 태어난 이 선교사는 '청주 자모원'에서 성장하고 대전가톨릭대학교를 졸업한 뒤 2011년 선교회에 입회했다.

    교황은 이 선교사의 눈높이에 맞춰 허리를 숙이고 손을 내밀며 인사를 나눴다. 이날 이 선교사는 "생명운동과 선교에 동참하겠다"며 "특별히 생명수호, 세계 자살율 1위인 우리나라에 생명의 소중함과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사람이 되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 ■ "봉헌 생활은 교회와 세상을 위한 소중한 선물"


    사랑의 연수원으로 들어선 교황은 입구로 마중 나온 한국남자수도회사도생활단장상협의회 황석모 신부와, 한국천주교여자수도회장상연합회 회장 이광옥 수녀 등과 인사를 나누고, 복도부터 꽉 채운 4,300여 명의 수도자들의 환영을 받으며 들어섰다. 수도자들은 교황기를 흔들고 "보아라 우리의 대사제"를 부르며 환영했다. 특히 이날은 봉쇄 수녀원인 '예수 고난 관상 수녀회' 수녀 7명이 특별 허가를 받고 외출해 눈길을 모았다.

    가톨릭성가 304번 '보아라, 우리의 대사제'가 울려퍼지는 동안 교황 프란치스코가 꽃동네 태아동산에서 수도자들이 모인 사랑의 연수원으로 입장했다. "비바파파(Viva Papa, 교황 만세)"를 외치며 태극기와 교황청기를 흔들며 환영한 수도자들에게 교황은 웃으며 인사를 건냈다. 교황은 "내가 작은 문제가 하나 있다. 우리에게 기도는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것이지만, 오늘은 헬기 타는 시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저녁기도를 개인기도로 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 시간이 지체됐기 때문에 함께 예정돼있던 성무일도(聖務日禱 : 매일매일의 공적 기도)는 하지 못했지만, 다른 일정들은 계획대로 진행됐다.

    먼저 남자 수도자 대표로 한국남자수도회 사도생활단장상협의회 회장 황석모 신부(한국 천주교 순교복자 성직수도회)가 교황에게 환영 인사를 건냈다.

    황 신부는 먼저 “한국의 수도자들은 누구보다 더 이 시대의 희망이길 염원하지만 공동체보다 개인을 우선시하고 절제와 나눔의 모범이 아닌 소비주의에 동화되고 있다”고 고백했다. 이어 “교황님을 통해 놀라움과 희망이 얼마나 크게 하느님을 증언하는지를 깨닫게 됐다”며 “저희들도 삶으로 그 놀라움과 희망을 증언하고 교황님의 사도적 행보와 건강을 위하여 증언하는 삶으로 교황님과 함께 하겠다”고 말했다.

    한국여자수도회장상연합회 회장 이광옥 수녀(예수성심시녀회)는 환영사를 통해 “교황님이 아시아 지역 첫 방문지로 한국을 선택해 오신 것은 한국 교회의 ‘기쁨’인 동시에 ‘책임’”이라며 “교황님의 한국에서의 일정이 부디 한국이라는 지역 교회가 걷고 있는 구체적인 여정을 격려하는 시간이 되길 빈다”고 말했다. 아울러 “이번 한국 방문은 수도자들에게 ‘밖으로 나가’ 용기 있게 복음을 전하도록 하는 활력소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고 소견을 밝혔다.



  • 이에 프란치스코 교황은 “소비주의의 위험에 대해 고백하고 말씀해주신 장상연합회 회장님께 감사드린다”며 “봉헌 생활이 교회와 세상을 위한 소중한 선물임을 보여 주기 위하여 여러분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매우 겸손하게 하고 자신만을 위해 봉헌 생활을 간직하지 말고 사랑 받는 이 나라 곳곳에 그리스도를 모시고 가 봉헌 생활을 나눠달라”고 당부했다. 이어 교황의 강복이 이어졌다.

    수도자들은 교황의 방문 소식을 접한 이후 4월부터 7월까지 교황을 위해 바친 묵주기도 한국 370만 8,821단과 단식 11만 8,408회가 새겨진 전통부채와 함께 같은 기간 주 1회 단식을 통해 모은 이웃돕기 기금을 전달했다. 수도자 4,300여 명은 또 ‘아리랑’을 함께 불러 여독에 지친 교황에게 노래를 선물했다.

    교황이 떠난 이후 수도자들은 자리에 앉아 본래 예정돼있던 성무일도를 바쳤다. 청주교구 교황방문준비위원회 홍보부장 이현로 신부는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의미가 있다. 의미 있다 함은 장애우들을 너무나 사랑해주셨기 때문에 거기서 시간이 많이 걸렸다. 3만 1,000명의 한국어 기도와 교황님의 한국어 기도도 의미가 있었겠지만, 교황님은 무엇보다도 아파하는 이들과 충분한 시간과 정성을 들여 함께하는 것을 택하셨다고 생각한다”고 소감을 말했다.



  • ■ "한국교회는 늘 약동하고 꽃피는 교회였다"


    청주교구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을 위해 제작한 근사한 나무 의자를 제대 앞에 마련해뒀지만 교황 도착 15분 전 교황청 관계자들이 찾아와 의자를 평범한 것으로 바꿔달라고 요구했다. 나무 의자를 부랴부랴 치우고 사랑의 영성원 1층 식당에서 사용하는 '낡은 의자'를 대신 가지고 왔다. 식당 의자는 구입한 지 10여 년이 된 베트남 산 제품이다.

    교황은 영성원 입구에서 한국천주교평신도사도직협의회 권길중 회장과 인사했고, 영성원에서 일하는(피정집 관리 청소 식당 경비) 아저씨, 아주머니들과 악수로 인사를 나눴다. 평신도들은 4층 성당에서 기다렸다. 교황이 입장하자 평신도 대표들은 큰 소리로 "비바 파파"를 외치며 환영했다. 교황은 양손을 아래로 내리며 '그만하고 앉으라'고 표현했다.

    강희덕(가를로) 교수가 사전에 준비한 선물을 교황에게 직접 전달했다. 선물은 교황 23세,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프란치스코 교황이 함께 앉아 웃는 모습을 형상화한 작은 청동 작품이다.

    선물 증정에 이어 한국 평협 권길중(바오로) 회장이 이탈리아어로 환영사를 읽었다. 축사를 마친 후 권 회장은 교황과 포옹을 나눴고, 교황은 교황 묵주를 선물로 건넸다.

    교황은 답사 때 또 한 번 소박한 모습을 보였다. 앉아서 말할 수 있도록 의자 앞에 마이크를 설치했지만, 권 회장이 환영사를 했던 성당 입구 구석 자리로 와 서서 답사를 했다.

    교황은 "한국교회는 늘 약동하고 꽃피는 교회였다"며 "고통과 죽음으로 하느님을 증거한 순교자들의 값진 유산은 오늘날 여러분의 믿음과 사랑과 봉사를 통해 이어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변두리에 사는 이들에게 주님의 현존을 알리는 여러분께 감사드린다"며 "가난한 사람,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단지 도와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들의 ‘인간적 발전’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대표단의 기념촬영이 이어졌고, 이후 한 평신도 대표가 내민 '복음의 기쁨' 한국어판에 친필 사인을 했다. 영성원에서 나와 검은색 쏘울에 탑승한 교황을 신자들은 대중가요 '사랑해'를 부르면서 환송했다.



  • ■ 에필로그


    모든 행사를 마친 뒤 권길중 회장은 "교황님이 공항에 도착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멀리 출장 가셨던 아버님이 돌아오신 것처럼 반가웠다"며 "앞으로 교황님을 닮은 모습으로 살아가겠다"고 다짐했다.

    권 회장은 "화려한 의자를 준비했는데 '여러분이 앉고 있는 의자면 충분하다'는 뜻을 교황님 측에서 전해왔다"며 "어찌 보면 보잘 것 없는 의자를 선택하신 게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밝혔다.

    우리 사람 중에도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이 빛을 볼 수 있도록 우리가 찾아가라는 의미가 아닌지. 교황님 말씀을 듣고 가슴이 뛰었다. 교회가 생동감 있게 살아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평신도부터 바꿔나가겠다. 교황님이 주신 묵주로 가장 먼저 교황님을 위해 기도드리겠다. 교황님이 안아주실 때 아버지한테 안기는 기분이었다.


    선물 제작·증정한 강희덕 교수는 "'벗이 있어서 먼 곳에서 오니 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라고 작품 밑에 이탈리아어로 새겨놓았다"며 "선물을 직접 드려서 기쁜데 아무 말도 드리지 못해 아쉽다"고 밝혔다.

    강 교수는 "이 작품은 세 분 교황님의 웃는 모습을 통해 인생의 희로애락을 표현한 것"이라며 "만드는데 2달 걸렸다"고 말했다.

    [사진 및 자료 제공 = 교황방한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