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명예훼손’혐의 서울지국장은 명성황후 능 앞에 백배사죄 먼저 해야
  • [인보길의 역사 올레길] 산케이신문을 보며 ‘한성신보’를 생각한다

    “민비 죽여라” 칼 휘두른 日언론인, 이젠 대통령 음해!

    '대통령 명예훼손’혐의 서울지국장은 '명성황후 시해' 범인들의 후계인가?
  • 경복궁내 건천궁 옥호루. 을미사변때 일본이 살해한 민왕후 시신을 잠시 안치했던 곳. 1909년 일본은 건청궁을 철거해버렸다.
    ▲ 경복궁내 건천궁 옥호루. 을미사변때 일본이 살해한 민왕후 시신을 잠시 안치했던 곳. 1909년 일본은 건청궁을 철거해버렸다.
    추석이 닷새 지난 밝은 달밤, 일본 칼을 휘두르는 신문사 주필이 여인을 패대기친다.
    “왕비는 어디 있느냐? 말 안하면 죽이겠다” 머리채를 나꿔챈 남자는 젖가슴에 칼을 댄다.
이미 하얀 속옷에 피를 뒤집어 쓴 젊은 여인은 왕세자비(王世子妃), 뒷날 순종(純宗)의 왕비.
“아이고!” 공포에 질린 여인이 고꾸라져 기절했다. 남자는 다른 여인에게 돌진한다.

119년전 고요한 아침의 나라 음력 8월20일(10월8일) 경복궁의 새벽,
몇 백명의 일본군과 조선병이 에워싼 건청궁(乾淸宮) 안은 아수라장이다.
날뛰는 악마들의 고함소리, 칼날에 쓰러지는 여인들의 비명, 달빛에 흐르는 핏물...핏물.

“왕비를 찾아라. 일본제국의 적을 죽여라.” 신문사 사장도 칼을 빼들고 살인을 지휘한다.
암살단 1조 대장은 아다치(安達謙藏)사장, 2조 대장은 주필 쿠니토모(國友重章),
편집장 고바야카와(小早川秀雄), 몇 명의 특파원과 기자들도 방방을 뒤지며 뛰고 뛴다.
공사관 무관, 외교관, 일본 경찰 등등 40여명의 살인마들이 칼 솜씨를 뽐내는 듯.

신문사는 한성신보(漢城新報). 청일전쟁 중 서울에 설립한 이 신문사는 침략의 선전대.
겉으론 민간언론을 위장했지만 일본 외무성이 자금을 지원하는 정보센터, 공작기지였다.
신문사가 총동원된 집단 살인범들, 편집장은 뒷날 [민후암살기閔后暗殺記]까지 펴낸다.

  • 남산자락에 있던 일본 신문 '한성신보' 사옥앞에 선 사장, 주필, 편집장등 기자들. 이들이 왕후 민비 살해단  행동대 주역들이다.
    ▲ 남산자락에 있던 일본 신문 '한성신보' 사옥앞에 선 사장, 주필, 편집장등 기자들. 이들이 왕후 민비 살해단 행동대 주역들이다.
    ▶“마마에 손대지 마라” 뒤늦게 뛰어든 궁내부대신 이경직이 팔을 벌려 왕비 앞을 막아섰다.
    궁녀 옷을 입고 조마조마하던 민비의 정체가 드러난 순간, 이경직의 두 팔은 잘라져 나갔다.
    “세자...세자...” 아들을 부르며 뛰어 가던 왕비가 넘어진다. 악마가 덮쳤다.
    배를 두 발로 쾅쾅 밟고 뛰며 칼로 가슴을 몇 번이고 찍었다. 피가 콸콸 솟구쳤다.

    도대체 몇 명이나 죽였을까. 사진이 없는 민비의 얼굴 몽타쥐를 들고 뒤지면서
    악마들은 비슷한 여인들을 모조리 찔렀다. 비슷하지 않아도 죽이고 짓밟았다.
    옆방엔 기습 즉시 감금된 고종과 세자가 옷이 찢기고 칼자루에 맞아 넋을 잃은 채.

    사방에 죽어 넘어진 여인들을 옥호루(玉壺樓)에 모아 놓았다. 
    “찾았다, 찾았다, 찾았다.” 함성이 새벽 하늘을 갈랐다. 하얀 달이 창백하다.
    관자놀이에 마마 자욱이 남아있는 민비, 왕비를 확인하고 확인한 악마들은 만세를 불렀다.
    일부 학자들은 그들이 피에 젖은 왕비 시신에 ‘국부검사’라며 만행을 저질렀다고 말한다.
  • 조선 왕후 민비를 살해한 일본공사 미우라의 당시 얼굴.
    ▲ 조선 왕후 민비를 살해한 일본공사 미우라의 당시 얼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