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정부, 한국계 일본인에 국민영예상 수여

오소서, 미소라 히바리님!

이법철 스님 | 최종편집 2014.07.16 15:5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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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소라 히바리(美空ひばり)님, 韓國에 오소서 

이법철(大佛總, 상임지도법사)

미소라 히바리(일본어: 美空 ひばり みそら ひばり, 1937년 5월 29일 ~ 1989년 6월 24일)는 

일본의 쇼와 시대를 대표하는 가수이자 여배우이다.
그녀는 일본국 가나가와 현 요코하마 시 이소고 구에서 태어났다. 세이카 학원(精華学園) 고등부를 졸업했으며,
본명은 가토 가즈에(일본어: 加藤 和枝 かとう かずえ)다.
그녀는 사후에 일본 여성 최초로 국민영예상을 수상했다.

필자는 미소라 히바리님을 생전에 만나 불 인연은 없었지만,
그녀가 한국계 일본인이라는 전해오는 말을 전해듣고,
 한일양국(韓日兩國)의 친선을 돈독히 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 글을 감히 적어본다. 

1989년 초, 서울올림픽의 감격이 잦아들 무렵 일본에서는 한 시대를 마무리 짓는 한 사건이 발생한다. 1월 7일, ‘쇼와덴노(昭和天皇)’가 사망한 것이다. 쇼와천황(1901~1989)의 이름은 히로히토(裕仁)다. 일본국이 깊은 애도로 신불(神佛)에 기도하는 때, 6월 24일에는 문화적으로 쇼와 시대를 끝내는 것같은 일이 발생했다. 일본국 국민 가수이자 연기자인 미소라 히바리(美空ひばり)가 52세의 아직 젊은 나이에 사망한 것이다.

미소라 히바리(美空ひばり)는 패전의 공황에 일본국민이 빠져 울부짖고 있을 때,
1949년 데뷔하여 노래로써 일본국민들에게 위안과 기쁨을 주고, 슬픔을 나누며
일본국민들의 힘든 시절을 견디게 한 국민적인 연인이요, 딸이었다. 

일본국 패전의 조종(弔鐘)을 울리는 상징같은 미군의 B29 폭격기가 히로시마, 나가사키에
원자폭탄 두 발을 투하하고, 그 원폭으로 일본국은 유사이래 참혹한 지옥도(地獄圖)같은 고통속에 떼주검을 당해야 했다. 그 후 천황은 목이 메인 음색으로 항복선언을 하고, 그 음성이 전파(電波)를 타고 전국에 울려 퍼질 때, 부지기수(不知其數)의 일본인들은 울음을 터뜨렸다. 천황이 항복선언을 하는 것은 국민이 천황을 잘못 모신 것이라 자책하면서 수많은 일본인들은 황성(皇城)을 향해 울며 요배(遙拜)하고 할복(割腹)으로 사죄하며 죽어갔다. 전국 도처에서 일본인들은 천황에 대한 진사(眞謝) 정신으로 할복 등으로 자결했고, 패전의식으로 정신이 공황에 빠져 있을 때, 하늘에서 위로의 천사로 보내준 것같은 미소라 히바리(美空ひばり)였다. 

쇼와 천황의 죽음에 이어 미소라 히바리(美空ひばり) 사망소식에 일본 언론은 애도를 표하면서 ‘이제 쇼와(昭和) )시대가 끝났다’는 제목의 기사를 발표했다. 그 신문 보도를 본 국민들은 패전에서 천사같은 노래로 위로해준 국민들도 다시 육신으로 볼 수 없고, 육성의 노래를 들을 수 없는 미소라 히바리(美空ひばり)에 대해 통석해하며 왕생극락을 기원했다. 

대한민국 국민들, 즉 우리에게 미소라 히바리(美空ひばり)가 특별한 의미로 다가오고 기억해야 하는 것은 그녀의 아버지가 일본으로 건너 간 한국인이기 때문이다. . 

미소라 히바리(美空ひばり)는 아버지가 그리워하는 아버지의 고국인 한국과 고향에 대해서
 아버지의 손을 잡고 찾아 선조의 뿌리를 찾고자 하는 갸륵한 각오가 깊었다.
 가난하여 먹고 살기 위해서 일본국에 까지 와서 노동으로 생업을 삼은 아버지는 죽는 순간까지 고향을 그리워했다. 미소라 히바리(美空ひばり)는 아버지의 위패를 모시고, 대신 아버지가 그리워하는 한국을 찾아가는 것이 꿈이었고, 아버지가 금의환향(錦衣還鄕)하듯, 아버지의 나라에서 딸이 “돌아와요 부산항”을 열창하고 싶어 했다. 

그러나 미소라 히바리(美空ひばり)는 아버지의 나라를 찾는 꿈은 생전에 이루어 질 수가 없었다. 왜? 속좁은 일부 한국인들이 일제(日帝) 때, 한일합방(韓日合邦)에서 주는 고통의 과거사만을 생각하여 미소라 히바리(美空ひばり)까지 혐오(嫌惡)의 대상으로 간주, 한국 방문을 봉쇄한 것이다. 속좁은 수치스러운 일이다. 

일본국은 오래전부터 한국 남녀 가수들에게 문화교류의 대문을 활짝 열어주고 있다. 그 증거가 일본 열도에 한국의 노래인 “돌아와요, 부산항” 등이 유행하는 것이다. 일본국은 한국노래를 일본국에서 마음껏 부르도록 배려와 협조를 해주고 환호 하는 데, 한국은 달랐다. 끝내 히바리(美空ひばり)는 아버지의 나라에서 “돌아와요 부산항”의 노래를 부르지 못하는 것은 물론, 아버지의 고향과 선조의 산소를 찾지 못하고, 52세의 짧은 나이로 생을 마칠 수 밖에 없었다. 

미소라 히바리(美空ひばり)는 노래로써는 일본국 제일의 가수로 등극을 했지만, 개인적으로는 한(恨)과 슬픔과 고독 속에 산 가수라 할 수 있다. 

1949년 7월에 《갓파 부기우기(河童ブギウギ)》를 통해 가수로 데뷔하고, 1960년에 《애수 부두(哀愁波止場)》로 일본 레코드대상 가창상을 수상했다. 1962년에 당시 인기 영화 배우였던 고바야시 아키라와 결혼했지만, 2년 만인 1964년에 이혼하게 된다. 미소라 히바리(美空ひばり)는 자녀를 출산하지 못했다. 이혼 한 후 미소라 히바리(美空ひばり)는 속세의 남녀의 정을 잊고, 독신으로 오직 노래와 결혼해 보이는 인생을 살았다.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 친어머니였던 가토 기미에(加藤喜美枝)가 사망하고, 곧이어 친동생과
친우마저 차례로 사망하는 비운을 맞게 된다. 미소라 히바리(美空ひばり)는 혼자 술에 의존하는 정도가 높아졌고, 건강은 나빠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술에 취하면 이버지의 나라를 찾지 못한 것을 한탄했고, 자신을 못오게 막는 한국정부를 원망했다. 

미소라 히바리(美空ひばり)는 1987년 4월 22일에 후쿠오카 제생회 병원에 급하게 입원, “만성 간염 및 양측 대퇴골 골두 괴사”라는 진단이 내려졌다. “재기 불가능”이라는 평을 받았다. 

쇼와 천황이 죽으면서 연호가 헤이세이로 바뀐 1989년 1월 11일에는 그녀는 생애 최고의 인기곡 《가와노나가레노요니(川の流れのように, 흐르는 강물처럼)》을 발표했다. 그 곡은 일본국 NHK 방송국에서 조사한 “일본의 명곡”에서 1위로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1989년 6월 13일에 결국 미소라 히바리(美空ひばり)는 의식불명으로 인공호흡을 시작했고, 6월 24일에 간질성 폐렴으로 인한 호흡부전으로 인해 향년 52세로 사망했다. 1989년 7월 4일, 일본정부는 일본 여성 최초로 미소라 히바리(美空ひばり)에게 국민영예상을 수여하고, 그녀의 공적을 회고하고 기렸다. 

1989년 7월 22일에 거행된 장례식은 각 일본국 각 방송사에서 전국에 생중계를 했고, 팬들을 포함해서 4만 2천여명이 조문하고 애도의 분향과 꽃다발을 바쳤다. 미소라 히바리(美空ひばり)의 명곡 “흐르는 강물처럼”의 노래 합창속에 미소라 히바리(美空ひばり)는 요코하마 시 고난 구(港南区)에 안장되었다. 미소라 히바리(美空ひばり)는 너무 일찍 갔지만, 그녀의 기념관에는 그녀의 명곡 “흐르는 강물처럼”노래가 영원히 울려 퍼질 것 같다. 

그토록 한국을 찾고 싶었던 미소라 히바리(美空ひばり)님에게 한국의 비구승 나, 법철(法徹)은 영혼이라도 한국에 오시기를 간절히 바라는 초혼(招魂)의 글을 쓰고, 초혼의 기도를 드린다. 

韓-日 정치인들의 정치사상 때문에 한일 국민들은 서로를 혐오(嫌惡)하거나 불구대천(不俱戴天)의 원수처럼 지내서는 안된다. 광대무변한 우주에서 본다면 항하사(恒河沙) 모래알속의 하나인 지구촌(地球村)이요, 그 속에 생사하는 인간들이요, 선배, 후배 붕우(朋友)가 있을 뿐이다. 윤회열차(輪廻列車)같은 지구에 함께 살면서 붕우정신(朋友精神)으로 서로 사랑하고 화합하고 협력하며 살아가도 인생 백년을 살지 못하는 데, 편향된 정치인들의 정치사상으로 인해 韓-日 국민들이 상호 혐오(嫌惡)해서는 절대 안되는 것이다. 

특히 일본국인은 재일 한국인 교포들에 증오하는 마음으로 대하지 말고, 붕우정신을 갖고 자비와 사랑을 나누도록 권장하는 바이다. 


結 論 

한국의 탈렌트, 스포츠인 등은 물론 한국의 남녀 가수들은 일본국에 건너가 자유롭게 노래하여 환호와 갈채를 받아온 지가 반세기를 넘긴지 오래이다. 그런데 일부 한국인들은 아직도 일본 가수들이 한국에서 노래하면 안된다는 편협된 주장을 하는 것인가? 수치스러운 일이 아닌가? 

이제라도 한국은 미소라 히바리(美空ひばり)의 영혼방문을 의미하는 위패라도 한국에 다녀가게 할 수 있는 미덕을 보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녀의 후배가수인 “돌아와요 부산항”을 부른 島津亜矢, 森昌子 등 제위가 세종문회관 대강당에서 미소라 히바리(美空ひばり)의 노래 “흐르는 강물처럼”의 노래를 대신 불러, 미소라 히바리(美空ひばり)의 한국을 찾다 못찾고 죽은 여한을 풀어 주었으면 한다. 韓-日 국민들이여, 미소라 히바리(美空ひばり)의 영혼 방문이 냉각 된 한일관계가 더욱 붕우정신으로 서로 용서하고 화해의 손을 잡고 협력하는 상징이 되도록 하면 어떨까. ◇

이법철(大佛總, 상임지도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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