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치는 무엇인가. 무엇이길래 
    그 시스템 속에 사는 인간을 
    행복하게 만들지 않고 힘들게 하는가

     40대 내내 궁금했다. 아마도 지금은 인터넷 분야에 종사하고 있지만 대학과 대학원에서 정치학을 공부했었기 때문일 것이다. 공익보다 사익이 앞서고, 공존보다 지배가, 참여보다 소외가 우선하는 정치. 그런 정치의 모습이 오랜 인간의 역사에서 바뀌지 않고 있는 것이 안타까웠다.

    정치는 미래에도 변함없이 그런 모습일 것인가. 테크놀로지는 경제, 사회, 커뮤니케이션 등에서 많은 것들을 변화시키고 있다. 인터넷이 등장하더니 어느 순간 소셜과 모바일 세상이 열렸다. 빅데이터 분석이 가능해졌고, 최근에는 슈퍼컴퓨터에서 구동되는 유진이라는 프로그램이 13세 수준으로 생각하는 인공지능으로 인정받기도 했다.

    이렇듯 테크놀로지의 발달에 따라 크게 변화하고 있는 세상을 목격하며 정치의 미래에 대해 정리해보고 싶어졌다. 정치의 플랫폼이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매스 미디어와 인터넷 미디어를 모두 경험할 수 있었던 건 그 작업을 위해선 개인적인 행운이었다. SBS 기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조선일보에서 일했다. 인터넷 분야로 들어가 미국계 미디어를 경영하며 웹2.0 시대, 소셜과 모바일, 스마트 시대의 도래를 현장에서 목격했다. 40만 회원에게 매일 칼럼을 써 이메일로 보내주는 개인 미디어(‘예병일의 경제노트’)10년 넘게 운영하며 인터넷 세상에서 네티즌들과 커뮤니케이션했고, 페이스북과 트위터를 통해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며 정치의 미래에 대한 생각들을 메모하고 정리했다. 이 책 정치의 미래와 인터넷 소셜의지는 소셜시대가 개막된 이후 지난 6~7년 동안 고민했던 탐색의 결과물이다.

  • ▲ 저자 예병일(플루토미디어 대표,‘예병일의 경제노트’ 발행)
    ▲ 저자 예병일(플루토미디어 대표,‘예병일의 경제노트’ 발행)

    지난 10여 년, 우리의 생활모습에는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다. 인터넷, 모바일, 스마트폰을 뺀 일상을 이제 우리는 상상할 수 없다. 이런 테크놀로지의 발달은 정치도 크게 변화시키고 있다. 한마디로 개인정치의 중심으로 이끌고 있다. 개인은 소셜네트워크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고, 스마트 기기를 들고 다니며 언제 어디서나 인터넷에 접속해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에 익숙해졌다. 개인의 힘은 증강됐고, ‘참여에 익숙해진 그들은 자립해 정치 커뮤니케이션과 정치과정을 변화시키면서 공동체 정치를 바꿔가고 있다. 이제 개인은 더 이상 과거의 수동적이고 힘이 없는, 그래서 정치에 소외된 채 살아가는 무기력한 존재가 아니다.

    이런 변화를 바라보면서 정치의 미래는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했다. T.S. 엘리엇은 이 모든 탐색의 끝에서 우리는 우리가 시작한 곳에 있을 것이다. 그리고 처음으로 그곳을 알아볼 것이다라고 말했다. 정치의 미래도 그런 듯 보였다. 인간의 정치가 시작한 곳, 고대 아테네와 로마의 정치의 원형에서 정치의 미래 모습을 찾을 수 있었다. 정치는 그 시절, 극히 짧은 기간 동안 민주와 공화라는 자신의 원형을 보여주었다. 아테네의 민주정은 참여이고, 로마의 공화정은 공존 공익이다. 인류는 아테네와 로마에서 잠시 개인의 자립을 이루어냈고, 그걸 기반으로 자유롭고 평등한 개인들이 공동체의 일에 참여공익에 공헌하며 공존했던 정치의 원형을 경험했던 것이다.
    고대 아테네의 민주정에서는 약 9일마다 열린 민회에서 모든 시민들이 11표제로 중요한 문제들을 결정했다. 당일 추첨으로 뽑힌 시민 배심원들이 판결하는 재판을 통해 로비나 전관예우 없는 법 앞의 평등을 추구했다. 이런 참여가 구성원의 자존감을 높이고 공동체 통합을 가져왔다. 로마의 공화정에서는 개인과 집단들이 공익을 추구하며 공존했다. ‘견제와 균형이라는 제도적 장치가 정치를 협력과 공존으로 이끌었다. 당시 로마는 승자독식이 아닌 상생과 공존의 공동체였다. 그러니 구성원들은 공익을 위해 헌신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하지만 공동체의 규모가 커지고 사회경제적 구조가 바뀌면서 아테네와 로마의 개인은 자립 기반을 상실했다. 결국 참여와 공존이라는 정치의 원형은 사라졌고, 소외와 지배, 독점이 정치를 지배하게 됐다. 그리고 짧았던 두 시기는 역사에서 인간이 정치에 대해 갖고 있는 로망으로 남게 됐다.

    그런데 이제 인간은 테크놀로지의 발달이 가져다 준 변화 덕분에 다시 그 정치의 원형으로 돌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갖게 됐다. 인터넷이 인간의 공동체를 다시 아테네나 로마 공화정 당시처럼 작은 촌락으로 만들고 있는데다, 개인의 힘을 혁명적으로 증강시켜주고 있는, 그래서 개인이 스스로 설 수 있게, 자립할 수 있게 해주는 소셜인터넷과 스마트 기기, 유비쿼터스 컴퓨팅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지금의 스마트폰, 스마트패드와는 차원을 달리 할 새로운 스마트 기기의 미래와 빅 데이터, 인공지능 기술 등이 가져다줄 미래는 정치의 모습을 더 크게 바꿀 것이다.

    필자는 정치의 미래에 대한 인사이트를 얻기 위해 고대와 근대의 주요 정치철학자들의 저술들을 다시 읽고 정리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집단지성과 공존의 정치, 마키아벨리의 시민참여에 기반한 공화주의, 홉스의 '개인'의 발견, 로크의 신탁정치 이론, 루소의 일반의지와 참여민주주의에 대한 생각이 도움이 되었다.

    이런 역사와 철학적 개념들을 기반으로 필자는 테크놀로지가 바꾸고 있는 인간의 미래, 정치커뮤니케이션의 미래, 정치과정의 미래, 정당과 정치인의 미래를 정리했다. 유권자인 인간의 미래는 스마트기기와 소셜, 인공지능으로 무장하는 증강인류의 모습이다. 그들은 실시간에 익숙한 상시접속 인간이고, 참여하고 연대하는 민주주의적 인간이며, 인터넷상에서 자유를 체득하는 자유주의적 인간, 연결과 공유에서 행복을 느끼는 공화주의적 인간이다.

    정치커뮤니케이션의 미래는 관심이 권력인 어텐션 정치이고, 개인이 '트리비얼 매니'(하찮은 다수)에서 '바이탈 매니'(중요한 다수)로 바뀌는 롱테일 정치이며, 참여 공유 개방이 정치문법이 되는 웹2.0 정치이다. 검색의 정치, 소셜 정치, 올웨이즈온(always-on) 정치의 모습이기도 하다.

  • ▲ 저자 예병일(플루토미디어 대표,‘예병일의 경제노트’ 발행)

    정치과정의 미래는 소셜정치 플랫폼에서 작동할 것이다. 고대 아테네가 연설 기반’(speech-act-based) 민주정치였다면, 정치의 미래는 데이터 기반’(data-act-based) 민주정치가 될 것이다. 인터넷에 쌓이는 의견의 빅 데이터에 의한 '소셜 의지'(the social will)와 집단지성의 정치가 모습을 드러내고, ‘연결에 기반하는 축적 불가능하고 한시적 것이라는 특징을 갖는 새로운 권력 개념이 등장하며, 정당은 약화되어 정치인-시민 네트워크들 간의 느슨한 연합의 모습을 띨 것이다.

    정치인의 미래는 피곤해질 것이다. 검색의 정치, 소셜정치, 어텐션 정치는 그들이 기득권을 유지하기 어렵게 만들 것이고, 지워지지 않고 인터넷에 영원히 남는 개인의 과거는 그들을 힘들게 만들 것이다. 어쩌면 정치인은 궁극적으로 대리인으로, 나아가 모두가 '시민이면서 정치인'인 고대 아테네의 시민의 원형의 모습으로 바뀌어갈 지도 모른다.

    책에서 전망해 본 정치의 미래가 장밋빛인 것만은 아니었다. 공동체에 따라서는 소셜 참여가 분열의 증폭으로 이어질 수도 있고, 소셜 스마트 정치플랫폼의 데이타를 왜곡하려는 조작과 해킹 시도가 발생할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건 가능성이 열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소셜 인터넷, 유비쿼터스 컴퓨팅, 스마트 기기, 빅 데이터, 사물인터넷(IoT), 인공지능 등 인류의 커뮤니케이션 방식과 생활 모습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는 테크놀로지의 발달로 인해, ‘참여와 공존이라는 고대 아테네와 로마의 정치의 원형이 다시 실현될 수 있는 가능성, 인간이 공동체 운영에서 소외되지 않고 참여해 공헌하며 자긍심과 행복을 느끼고 살아갈 수 있는 그런 가능성이 열리고 있는 것이다.

    누가 이 같은 미래 정치의 이니셔티브를 잡을까. 우리나라의 정당 중 하나가, 또는 정치인 중 한 명이, 예를 들어 당내의 크고 작은 모든 회의를 인터넷을 통해 누구나 볼 수 있도록 생중계하는 결단을 내려보면 어떨까. 컴퓨터와 연결된 비디오 카메라만 있으면 된다. 그 동영상은 자동으로 인터넷 세상에 저장해 공개한다. 단순한 하나의 예에 불과하지만, 참여와 개방, 공익을 향한 혁신을 시도하고 지속할 수 있다면 그 정당이나 정치인은 정치의 미래를 향한 이니셔티브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 혁신이 소셜 세상으로 파고들어가고 그 세상에 녹아들어가는 길이기 때문이다. 물론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이 어떤 선택을 하든지와는 관계없이, 시대와 개인은 이미 정치의 미래로 가는 여정을 시작했다.

    이 참여와 공존이라는 정치의 미래 모습은 대한민국이 건강하게 발전하기 위해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공동체의 미래 모습이기도 하다. 마키아벨리의 생각처럼, 강한 공동체는 시민 전체의 참여에 기반하는 공화정이기 때문이다. 시민이 참여하는 공존의 공동체에서 구성원들은 행복해질 수 있고 공동체도 건강하게 발전해갈 수 있다.

    우리는 지금 많은 과제를 안고 있다. 계층간 갈등, 세대간 갈등, 지역간 갈등, 남북간 갈등, 주변 강대국들과의 갈등 속에서 고심하고 있는 한국. 우리가 선택해야하는 길은 바로 이 정치의 미래의 모습, 전체 시민이 참여하는 공존의 정치’, ‘민주에 기반하는 공화의 정치이다.

    미래에 새로운 소셜 스마트 정치 플랫폼 속에서 민주와 공화라는 정치의 원형을, 자유롭고 평등한 개인들이 공동체의 정치에 참여해 공익에 공헌하며 공존하는 모습을 볼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해본다. 

    예병일(플루토미디어 대표,‘예병일의 경제노트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