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성공단과 민주당,
    그리고 우리의 분노


    최 응 표 /뉴데일리 고문 /뉴욕에서


  • ▲ 최응표 뉴데일리 고문ⓒ
    ▲ 최응표 뉴데일리 고문ⓒ

    개성공단은 한마디로
    김정일과 김대중의 不倫(불륜)으로 태어난 私生兒(사생아)다.


    평화-화해-협력의 상징이 아니라,
    노무현 식 표현으로 태어나서는 안 될
    불화-갈등-불법-배신을 안고 태어난 불행의 상징이다.
    그래서 폐쇄하는 것이 정도(正道)다.

    모든 정치적-사회적-역사적 문제,
    특히 북한과 같은 비정상 집단과의 문제는 더더욱 단순논리로 풀어야 한다.
    인도주의-평화-화해, 협력 같은 인간적 정서와
    민족끼리-통일-자유 같은 정치적 계산을 한데 섞어버리면,
    문제는 더욱 실타래처럼 엉켜 해법을 찾기가 어려워진다.

    종북 패거리들이 어떤 말로 치장하며 실체를 감춘다 해도,
    개성공단의 實像(실상)은 김정일에게 朝貢(조공)바치기 위한 수단으로 만들어진,
    반국가적 거래수단일 뿐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북한은 저들의 정치적 군사적 이익에 따라,
    조폭근성 그대로 멋대로 칼자루를 휘둘러 왔고,
    불륜의 약점 때문에 우리는 항상 저들에게 끌려 다니는 수모를 당해 왔다.

    달라는 대로 퍼주고, 반국가적 수단까지 동원해 달러를 갖다 바치면서,
    왜 그런 수모와 곤욕을 당해야 하나.
    이제 그 치욕의 굴레를 벗어던져야 한다.
    비도덕적 사회에 人間愛(인간애)가 머무를 자리는 없다.

    개성공단은 발상부터가 순수성이 없었다.
    김정일은 김대중 후의 젖줄 만들기 전략에 바탕을 두었고,
    김대중은 은혜 갚기와 퇴임 후의 퍼주기 기구 만들기라는 사기성 策略(책략)에 바탕을 두었다.
    그런 불량품에 무슨 원칙과 순수성이 있겠는가.

    저들말대로,
    평화와 화해를 거쳐 통일로 가는 징검다리 역할이라는 숭고한 목적이 기본 정신이라면,
    개성공단은 보편적 기준마저 내팽개친 비정상집단의 앞마당이 아니라,
    국제질서 속에 성장한 대한민국 영토에,
    백보를 양보해서 그것이 불가능 했다면,
    적어도 남북 어느 쪽도 함부로 꼼수를 부릴 수 없는 안전지대에 조성했어야 했다.

    개성공단에 입주한지 1년 10개월 만인 2009년 6월에 철수한 <스키넷>의 김용구 사장은이렇게 말했다.

    “개성공단은 북한 뜻대로 움직이는 곳이다.
    사업이 아니라 정치하는 곳이다.
    (이번 개선공단 잔류인원 철수조치에 대해)
    잘했다.
    개성공단은 차라리 폐쇄하는 것이 낫다.”


    그렇다.
    개성공단은 민족논리와 경제논리가 아니라,
    북한의 이익과 순간적 감정에 따라 북한 식 정치논리와 억지가 지배하는 곳이다.

    그렇게 당하고도 저들의 속성을 모르겠거든, 공산당에 대한 이승만-박정희 정신을 다시 배우라.

    4월 29일자 <중앙일보>는 10년 전 평양에서 개성공단을 논의하는 간부회의에서 발언한,
    노동당 과장(북한에서는 각료도 노동당 과장 앞에서는 숨을 죽인다)의 말을 소개했다.

    “3년이면 기술 다 배워 우리가 공단을 접수할 수 있다.
    남조선은 투자한 것도 못 가져간다.”


    이것이 저들의 진짜 속셈이다.
    빼먹을 것 다 빼먹고 나중에는 속옷마저 벗겨서 내쫓는 게 마적단들의 속성 아닌가.
    이제 그 노동당 과장의 말이 현실화 되는 단계에 온 것이다.

    세상에 敵陣(적진)의 울타리 안에 공장을 지어놓고,
    자기 국민을 들여보내는 미치광이가 어디 있나.


    자본과 기술을 투자하는 쪽이 갑(甲)의 위치에서 사업을 이끌어가는 것이,
    자본주의 원칙이고 일반 상거래의 원칙이다.
    그런데 개성공단의 주도권은 처음부터 북한이 쥐고 마음대로 끌고 다녔다.
    돈은 돈대로 쏟아 붓고도 수시로 주먹질을 당하는 수모를 겪고 있는 형국이다.

    지난 29일, 이재정(노무현 때 통일부 장관)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 스스로 (개성공단 철수)결단을 내렸다는 것을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며 “개성공단에 있는 모든 근로자나 기업체는 다 북쪽 땅에 있고, 북쪽 법에 기반 한 것인데 우리가 마음대로 철수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평양 노동당 간부의 입에서나 나옴직한 정신 나간 헛소리를 했다.


    그런가 하면 정동영은 지난 27일 이런 글로 우리정부를 비판했다.

    “멀쩡하게 잘 돌아가던 개성공단을 이런 식으로 날려버리고 무슨 수로 경제를 살린단 말이냐.”


    이어 박지원도 “개성공단은 정부가 시한을 정해 강경하게 나간 결과”라며 모든 책임을 우리에게 돌렸다.


    이것이 민주당의 기본정신이고 실체다.
    북한의 버릇을 고약하게 만들고 한반도의 위기를 이처럼 고조시킨 책임은,
    기본적으로 김대중과 노무현, 그리고 그 정신을 이어받은 민주당에 있다.


    민주당 비대위원장 문희상은 29일 이렇게 말했다.

    “개성공단이 폐쇄되면 남북한 모두에게 돌이킬 수 없는 민족적 재앙이 될 것이다.
    6.15 정상회담의 옥동자, 남북화해 협력의 상징 개성공단을 살려 달라.”


    솔직히 말해서 개성공단이 6.15 정상회담의 [옥동자]란 종북적 인식에서,
    개성공단은 불륜으로 태어난 [사생아]라는 인식으로 바뀌지 않는 한,
    개성공단 해법은 어디서에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민주당은 개성공단 해법을 정부에 주문하기 전에 과거부터 반성해야 한다.
    다시 말해 민주당이 종북 프레임을 깨버리지 않는 한, 국정파트너의 자격이 없다는 말이다.


    이재정의 말대로 개성공단에 있는 모든 근로자나 기업체는 다 북쪽 땅에 있고,
    북쪽 법에 기반 한 것이어서 무엇 하나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없다면,
    그것이 어떻게 상생이 될 수 있고, 남북평화와 화해 협력의 상징이 될 수 있는가.


    개성공단이 북한 법에 따라 운영되는 곳이라면,
    노예공단이란 뜻이고 우리 근로자들은 노예란 말 아닌가.
    자기 국민을 적진에 몰아넣고 노예로 만드는 미친 정부, 미친 X들이 세상에 어디 있나.
    그래서 반성부터 하라는 것이다.


    <분노하라>의 저자 스데판 에셀은 인간의 핵심을 이루는 성품중 하나가 [분노]라며, “분노할 일에 분노하기를 결코 단념하지 않는 사람이라야 자신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고, 자신이 서있는 곳을 지킬 수 있으며, 자신의 행복을 지킬 수 있다.”고 했다.

    국민들이 분노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종북파들의 나라 허물기로부터 우리의 존엄성(국가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우리가 서있는 곳(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우리의 행복(사람답게 살 권리)을 지키기 위해 분노한다는 말이다.


    저들은 평화-화해-협력의 상징이라는 개성공단이 계획되고 운영되면서,
    엄청난 달러를 벌어 갈 때도 1-2-3차 핵실험과 미사일을 쏘아댔고,
    1-2
    차 연평해전,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금강산 관광객 박왕자 피살사건을 일으켰다.
    그래서 우리는 분노한다.


    평화-화- 협력의 상징에는 평화-화해는 물론 협력의 그림자도 없었다.
    저들의 눈에는 오직 달러만 보였을 뿐,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그것이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공산집단의 속성이다.


    이제 개성공단 조업 중단으로 인한 피해보상과 배상문제도 정식으로 거론해야 한다.
    겸해서 북한이 과거 식량차관에 대한 원리금 상환을 거부하고 있는
    신용불량행위도 문제 삼아야 한다.
    지난 연말 기준 연체금이 583만 달러, 도둑의 버릇을 고치는 지혜가 필요한 때다.


    우리의 善意(선의)가 폭력과 배신과 증오가 돼 돌아오는 것에 우리는 분노한다.
    선을 악으로 갚는 무뢰한들과의 신뢰구축은 차라리 악어의 눈물에 기대는 편이 낫다.
    그런 집단을 상대로 [신뢰프로세스]에 올인 하는 것은
    미래로 향하는 역사의 수례를 다시 과거로 되돌리는 역사 배신행위가 된다.


    지금은 굴욕의 역사, 잊고 싶은 역사, 부인하고 싶은 역사를
    미래의 긍정적이고 희망의 역사와 성공의 역사로 바꾸는 국민적 지혜가 절실하게 필요한 때다.


    창조가 곧 희망이며, 용기를 낳는 분노는 참여의 의지에서 나온다.
    건국주역들과 선배세대가 그랬던 것처럼, 창조하기 위해 참여하고 분노하라.
    상식의 질서를 위해 불의를 고발하라.
    인간사회의 기본 질서는 상식이기 때문이다.


    이제 박근혜 정부가 새 역사의 핸들을 잡고 꿈이 있는 창조의 세계로 나가도록,
    국민이 힘을 모을 때다.
    꿈이 있는 창조의 세계로 말이다.
    그럴 때, 스데판 센델의 말처럼,
    창조의 물결은 더 큰 정의, 더 큰 자유의 방향으로 흘러갈 것이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