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일보 5일자 오피니언면에 뮤지컬 '요덕스토리'를 총제작·연출했던 정성산씨가 쓴 시론 <'아리랑'과 노 대통령의 웃음>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10월3일, 노무현 대통령과 남북정상회담 참석자들이 평양에서 북한의 대집단체조 ‘아리랑’ 공연을 관람하고 있었다. 연신 웃음을 머금은 노 대통령의 모습을 보는 순간 가슴속에서는 뜨거운 그 무엇인가가 치솟아 올랐다.

    ‘저 공연이 올려지기까지 5만명이라는 북한의 젊은이가 바지에 대소변을 봐 가며 연습에 연습을 했다….’

    그 누가 상상할 수 있을 것인가. 단 한번의 1호행사(김정일 참석 공연)를 위해 짧게는 3개월에서, 길게는 6개월까지 한겨울 딱딱하게 얼어붙은 콘크리트 바닥에서 꽁꽁 언 도시락을 깨먹으며 인간이 아닌 기계처럼 살았을 저 북한 젊은이들을 나는 잘 안다.

    필자도 1984∼1985년 집단체조에 참가했던 선배로서, 노 대통령 앞에서 웃음짓는 그들의 아픔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한여름 땡볕은 그들에겐 살인도구이기에 충분했다. 김정일 장군님 앞에서의 단 한번 실수는 본인은 말할 것도 없고 담당 교사의 충성심과 바로 연결되어 출당, 제적, 나아가 반동으로 몰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햇볕이 살가죽을 태워도 그들은 죽지 않기 위해 연습에 연습을 더 했다.

    나같은 고등학생들은 그래도 나은 편이다. 어린이장에 나오는 이제 겨우 열 살, 열한 살된 인민학교(초등학교) 학생들에게 집단체조 연습은 지옥훈련이나 마찬가지다. 다리가 찢어지지 않는다고, 교사를 비롯한 서너 명의 남자 선생이 어린이의 정강이를 붙잡고 다리를 찢을 때 그 어린이의 눈에는 눈물이 아니라 핏물이 흐르는 듯했다. 허리가 등 뒤로 꺾이지 않는다고 지글지글 끓는 듯한 아스팔트 위에 서너 시간씩 허리꺾기 벌을 서던 어린 학생들.

    공연이 진행되는 3시간 동안 수천 명의 배경대(카드섹션) 학생들은 대소변을 그 자리에서 해결한다. 맹장염이나 복통이 발병하여 장이 곪아터지더라도 그 자리를 떠날 수가 없다. 그렇게 목숨을 담보로 올려지는 북한의 집단체조, 오로지 김일성 - 김정일 부자 우상화와 체제 선전만을 위해 존재하고 북한 주민들과 외국 언론들을 속이기 위해 만들어진 ‘아리랑’.

    그렇게 고생을 하면서도 한 가지 낙이 있다면 연습이 끝난 야밤에 차례지는 당의 선물― 몇 알의 사탕과 손바닥만한 빵 한 덩이다. 하루 세 끼 먹기도 힘든 북한 젊은이들에겐 그것이 더할 나위없는 고급 간식이건만 어린 그들은 선뜻 먹지를 않았다. 더위를 먹어서 먹을 수 없었거나, 그 사탕과 빵을 기다리고 있을 부모와 동생들이 떠올랐기 때문일 것이다.

    그 ‘아리랑’ 공연을 보면서 노 대통령은 밝은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그 웃음과 함께 국군포로와 납북 어부 송환 문제, 그리고 북한의 인권 문제는 거론될 여지가 없었다. 노 대통령이 평양에 도착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악수를 하던 10월2일, 어느 식당. 뒷 자리에서 수군거리는 젊은이들의 이야기가 귀에 들렸다.

    “대통령이 평양 왜 간 거야?”

    “임기 말이니까 관광간 거겠지.”

    “아줌마, 다른 방송 틀어주세요!”

    이미 떠나 있는 민심 앞에 쇼를 해서는 그들의 마음을 바꿀 수 없다. 김정일의 가장 ‘통 큰’ 거짓 쇼인 ‘아리랑’을 보며 만면에 환한 웃음을 짓던 노 대통령과 그 측근들을 보면서 뮤지컬 ‘요덕스토리’의 초창기를 떠올린 건 결코 우연일 수 없다.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를 소재로 한 뮤지컬이 무대에 오르지 못하도록 온갖 압박과 방해를 했던 현 정권이니까. 그들이 김정일의 쇼 ‘아리랑’을 보면서는 환하게 웃었다….

    정의와 진실을 외면하며 거짓 웃음을 연출한 그들에게 뮤지컬 ‘요덕스토리’ 연출자로서 이 말을 꼭 전하고 싶다.

    “당신들은 그들의 눈에 어린 피눈물을 보았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