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군사합의서 내용 해부③ 서해완충지역 북한의 서해경비계선 기준설정 의혹
  • ▲ 남북군사합의서에 따른 서해완충수역. NLL을 기준으로 하면 남쪽으로 더 내려와 있다. ⓒ연합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남북군사합의서에 따른 서해완충수역. NLL을 기준으로 하면 남쪽으로 더 내려와 있다. ⓒ연합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남북군사합의서에는 “쌍방은 2004년 6월 4일 제2차 남북 장성급 군사회담에서 서명한 ‘서해 해상에서의 우발적 충돌 방지’ 관련 합의를 재확인하고, 전면적으로 복원·이행해 나가기로 했다”는 대목이 있다. 남북이 19일 합의한 서해평화수역과 시범적 공동어로구역 설치의 전제다.

    이 서해평화수역과 시범적 공동어로구역은 남북이 합의한 ‘해상 적대행위 중단구역’을 바탕으로 만들어질 예정이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했다. 최종건 청와대 평화군비통제 비서관은 지난 19일 평양에서 기자들에게 “남북 간 군사적 충돌이 있었던 서해 지역을 포함해 서쪽과 동쪽 해역에서 남북 모두 40km 씩을 양보해 ‘서해완충수역’을 만들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언론들의 확인 결과 서해완충지역은 북한이 50km, 한국이 85km를 양보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한국과 국제사회가 인정하는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기준으로 했을 때의 거리다.

    언론 “한국이 더 많이 양보” 국방부 “면적만 따지지 말라”

    국방부는 20일 기자들에게 “당초 서해완충수역의 남북 길이가 135km인 것을 알고 있었고 청와대에도 그렇게 보고했다”면서 “남북이 각각 40km, 총 80km로 알려진 것은 오기(誤記)였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국방부 관계자는 이날 언론들에게 “서해 NLL 최남단 지역에서 덕적도를 잇는 직선 30km, NLL 최북단 초도를 잇는 직선이 약 50km여서 80km라고 설명한 것인데 해설 자료에는 중간에 끊어진 부분을 제외하고 서해 구간을 한 선으로 그은 뒤 80km라고 설명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조선일보’에 따르면, 국방부의 한 관계자는 브리핑을 하면서 “개인적 느낌이지만 내일 모레부터 시작되는 추석 연휴를 앞두고 NLL 포기로 연결돼 국민들이 우려하실 것 같아 그 설명 과정에서 나온 것 같다”는 말도 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기자들에게 “남북 양쪽의 거리보다 공간에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뉴스 1’에 따르면, 국방부는 지난 19일 출입기자들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내 “서해완충수역 설정은 해상뿐만 아니라 육상의 포병과 해안포까지 고려한 것으로 북측은 이 지역의 해안과 육지에 해안포와 다련장 포병을 배치했고, 우리 측은 백령도와 연평도 등 서해 5도에 해병대 포병과 서해상 해안포 등을 배치해 놓고 있다”며 “서해완충수역에서 제한되는 군사 활동에는 함포 사격과 함정기동훈련뿐만 아니라 도서와 육상의 해안 지역에서 실시하는 포병과 해안포 사격까지 포함되므로 단순히 해역의 크기만으로 비교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해명했다고 한다.

  • ▲ 2012년 10월 NLL 대화록 논란 당시 공개된 서해평화수역 개발계획. ⓒ뉴데일리 DB.
    ▲ 2012년 10월 NLL 대화록 논란 당시 공개된 서해평화수역 개발계획. ⓒ뉴데일리 DB.
    하지만 NLL을 기준으로 볼 때 서해완충수역의 형태가 너무 남쪽으로 치우쳐 있다는 지적은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특히 한국은 서울과 인천, 경기 남부 지역에 전체 인구의 30% 이상이 몰려 살고 있는데 서울과 인천, 김포를 잇는 선보다 훨씬 아래인 덕적도까지 해당 지역이 포함된다는 점은 문재인 정부의 안보관을 의심하는 사람들을 자극하고 있다.

    2012년 10월 ‘NLL 포기 논란’ 재연되나

    일각에서는 남북이 서해완충수역을 정할 때 북한이 북방한계선이라고 주장하는 ‘서해경비계선’을 기준으로 한 게 아니냐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북한은 1999년 9월 ‘조선 서해해상 군사분계선’을 선포했다. 북한은 당시 국제사회에서 인정하는 영해 기준(해안선 12해리, 약 22km)을 넘어선 NLL은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북한은 이후 2007년 11월 제2차 남북 국방장관 회담에서도, 2014년 10월 남북 군사회담에서도 ‘서해 경비계선’을 지키라고 요구하며 “이 선을 침범할 시 군사공격을 가할 것”이라고 협박했다. 특히 2007년 11월에는 NLL과 서해 경비계선 사이를 평화수역으로 지정하고 4개 공동어로구역을 설정하자고 제안한 바 있다.

    회담 당시에는 북한의 주장이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2012년 10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터져 나온 ‘NLL 대화록’과 관련 자료에서 서해 경비계선은 다시 주목받았다. 2007년 10월 남북정상회담 때 故노무현 前대통령이 김정일과 이야기했던 서해평화수역이 사실상 북한의 서해 경비계선을 기준으로 했다는 주장까지 나오면서 ‘NLL 포기 논란’은 대선이 끝난 뒤까지 한국 사회를 뒤흔들었다.

    남북군사합의서에 나온 서해완충수역의 위치가 ‘NLL 대화록’과 관련 자료에 나온 곳과 거의 비슷해 일각에서는 “문재인 정부가 노무현 정부 때처럼 NLL과 서북도서를 포기하려는 것”이라는 주장까지 내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