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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이덕일씨 “만군 복무 당시 근처에 독립군 없었다”
“당대성 무시하고 현관점 강요하면 누구도 살아남지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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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서(血書) 지원에 대해 이 소장은 “적극적 친일 행위라는 건 부인할 수 없다”고 말하고 “당시는 일본이 계속 승승장구 할 때이기 때문에 한 개인의 출세적 관점에서 바라보면 이해가 되는 축면도 있다”고 말했다. 이 소장은 “하지만 어떤 식으로 평가를 하든지 민족주의적 관점에서는 문제가 많은 행위가 분명하다”고 비판했다.
이 소장은 “1940년대쯤 되면 나라가 망한 지 30년이 넘었고 일본이 계속 언론 통제를 했기 때문에 극소소수의 사람들만이 임시정부라는 것이 있다는 알았다”며 “일본이 패망하리라는 생각은 거의 하지 않을 때인데 지금 관점에서 왜 누구는 독립운동 했는데 넌 안 했느냐 라고 평가하는 것은 가혹하다”고 말했다.
이 소장은 “역사를 평가할 때 당대성의 원칙을 무시하면 후대인의 횡포가 된다”며 “당시 상황 속에 들어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비판 받아야 된다고 이야기를 해야지 모든 상황을 다 배제한 채 지금의 관점에서만 한 인간을 평가하면 누구도 역사 속에서 살아남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이 소장은 “지금 우리 사회에 아직도 실제적인 친일 잔재들이 상당히 많이 남아있는데 이런 부분들을 해체하는 작업보다 과거에 연연하는 것은 소모적이라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