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9년 11월 3일 故 朴正熙 대통령 국장 영결식이 중앙청 앞 광장에서 열렸다. 崔圭夏 대통령권한대행이 建國훈장 대한민국장을 영전에 바쳤다. 이때 국립교향악단이 연주한 교향시가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하였다’였다. 독일의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작곡한 이 장엄한 곡은 낮은 음에서 시작하여 고음으로 치달은 뒤에 꼭지점에 도달했다가 갑자기 사라진다. 이 곡은 독일 철학자 니체가 쓴 같은 이름의 책 序文을 음악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이 곡을 선택한 것은 국립교향악단의 洪燕澤(홍연택) 상임지휘자였다. 그는 “朴 대통령과 超人의 이미지를 연결하고 말고 할 겨를이 없었다”면서 “분위기를 가라앉히기 위해서 내가 평소에 좋아하던 곡을 연주한 것이다”고 했다.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序文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인간이란 실로 더러운 강물일 뿐이다. 인간이 스스로를 더럽히지 않고 이 강물을 삼켜 버리려면 모름지기 바다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
     
     박정희는 疾風怒濤(질풍노도)의 시대를 헤쳐 가면서 영욕과 淸濁(청탁)을 같이 들이마셨던 사람이다. 더러운 강물 같은 한 시대를 삼켜서 바다와 같은 다른 시대를 빚어 낸 사람이다. 박정희가 그런 용광로의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권력을 잡고 나서도 스스로의 魂을 더럽히지 않고서 맑게 유지했기 때문일 것이다.
     
     1963년 최고회의의장 시절에 쓴 책 《국가와 혁명과 나》의 끝 장에서 박정희는 ‘서민 속에서 나고 자라고 일하고 그리하여 그 서민의 인정 속에서 生이 끝나기를 염원한다’고 했다. 그는 글라이스틴 駐韓미국대사가 평한 대로 ‘한시도 자신이 태어난 곳과 농민들을 잊어 본 적이 없었던’ 토종 한국인이었다. 그는 死後 지식인들로부터 뭇매를 맞았으나 서민들의 마음속에서는 항상 살아 있었다. 최근의 ‘박정희 인기’는 서민들의 認定을 지식인들이 뒤늦게 따르고 있다는 점에서만 새로울 뿐이다.
     
     영결식에서는 박정희의 육성연설 녹음을 두 편 골라서 틀었다. 지금 들으면 국민들에 대한 遺言처럼 느껴진다.
     
     1978년 한국정신문화연구원 개원식 치사. 여기서 박정희는 自主정신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自主정신이란 우리 스스로가 이 나라의 주인이며 역사창조의 주체라는 自覺”이라면서 “우리의 전통과 역사에 뿌리를 둔 주체적 민족사관을 정립하여 自主정신을 북돋움으로써 민족중흥의 활력을 제공하자”고 역설했다.
     
     박정희는 《국가와 혁명과 나》의 끝 장에서도 ‘소박하고 근면하고 정직하고 성실한 서민사회가 바탕이 된 자주독립된 한국의 창건, 그것이 본인의 소망의 전부이다. 동시에 이것은 본인의 생리인 것이다. 본인이 특권 계층, 파벌적 계보를 부정하고 군림사회를 증오하는 소이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고 했었다.
     
     박정희가 自助정신·自立경제·自主국방을 강조한 것은 이 3自를 갖추어야 진정한 自主독립국가 행세를 할 수 있다는 확신 때문이었다. 박정희의 이 확신은 국수주의나 폐쇄적 민족주의를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서민들에 대한 동정심과 서민들을 괴롭히는 힘센 자들에 대한 정의감의 확대판이었다. 그에게 있어서는 서민들을 괴롭히는 强者에 대한 반발심이나 우리나라를 누르려는 강대국에 대한 반발이나 같은 심정에서 출발한 다른 표현이었던 것이다. 그는 서민적 반골정신을 대통령이 된 뒤에는 민족의 자주정신으로 승화시켰던 사람이다.
     
     영결식 기도에서 천주교계를 대표한 金壽煥(김수환) 추기경은 이렇게 말했다.
     
     “인자하신 주여, 이제 이 분은 대통령으로서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엎드려 주님의 자비를 빌고 생명을 목말라 합니다. 이 분의 영혼을 받아주십시오. 죄와 죽음의 사슬을 끊고 생명과 광명의 나라로 인도하여 주십시오.”
     
     새문안교회 姜信明(강신명) 목사는 이렇게 말했다.
     
     “저 공중을 날으는 참새 한 마리도 당신의 허락이 없이는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하셨기에 우리는 지금 이 뜻하지 않은 일의 뜻을 알지 못 하여 안타까워하고 있습니다. 하기야 이 길은 인간이면 누구나 한번은 가야 할 피할 수 없는 일이기는 하지만 너무나 뜻밖에 비참하게 가셨기에…….”
     
     
     
     〈국민으로서는 열여덟 해나 받든 지도자요
     개인으로는 서른 해나 된 오랜 친구
     하느님! 하찮은 저의 축원이오나
     인류의 `贖罪羊(속죄양), 예수의 이름으로 비오니
     그의 영혼이 당신 안에 고이 쉬게 하소서. 이 세상에서 그가 지니고 떨쳤던
     그 장한 義氣(의기)와 行動力(행동력)과 質朴(질박)한 인간성과
     이 나라 이 겨레에 그가 남긴 바
     그 크고 많은 功德(공덕)의 자취를 헤아리시고
     하느님, 그지없이 자비로우신 하느님
     설령 그가 당신 뜻에 어긋난 잘못이 있었거나
     그 스스로가 깨닫지 못한 허물이 있었더라도
     그가 앞장서 애쓰며 흘린 땀과
     그가 마침내 무참히 흘린 피를 굽어보사
     그의 영혼이 당신 안에 길이 살게 하소서

     
     친구 박정희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써 내려간 具常(구상) 시인(작고)의 이 ‘鎭魂祝(진혼축)’은 대령에서 대통령 시절까지 인간 박정희와 交友하면서 남긴 일곱 편의 詩作 중 마지막 편이 됐다.
     
     具常이 친구의 죽음을 알게 된 것은 베네딕트 수도원에서 《나자렛 예수》를 쓰고 있을 때였다. 그는 그 자리에서 亡者가 되어 버린 친구를 위해 진혼축을 썼고 그 뒤 5년간 친구의 安息(안식)을 기원하는 미사를 올렸다.
     
     구상은 “그 친구는 의협심과 인정이 강하고 詩心이 있는 사람이었다”면서 “난세에 파격적인 인물들을 모아서 혁명을 일으킨 뒤에 정상적인 사람들로 주변을 교체해 가는 과정에서 갈등도 많았지만 정치적인 목적으로 사람을 죽인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평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