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률에 노숙인 대신 홈리스가 들어간다고요? 굳이 문법에도 맞지 않고 생소한 영어단어를 도입해 공식 법률용어로 써야 하는 이유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게도 적당한 우리말이 없었을까요?"

    보건복지가족부가 부랑인ㆍ노숙인 대신 `홈리스'(homeless)라는 영어 형용사를 법률용어로 도입키로 한데 대해 한글운동 단체들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보건복지가족부는 이런 내용이 포함된 사회복지사업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지난 21일 입법예고하면서 "부랑인ㆍ노숙인의 이미지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없애고 이들에 대한 서비스 제공을 전문화하기 위함"이라는 명분을 내걸었다.

    그러나 한글단체들은 홈리스가 부랑인ㆍ노숙인을 가리키는 영어 형용사에 불과해 복지서비스의 전문화는 핑계에 불과하다고 반박했다. 홈리스라는 영어 단어는 형용사인데 이를 부랑인ㆍ노숙인을 대체할 명사로 사용하겠다는 것은 영어 문법조차 모르는 `무식의 소치'라는 지적도 나왔다.

    한글문화연대 정인환 사무부장은 26일 "부랑인이나 노숙인도 한글로 순화할 필요가 있지만 이를 대체한다며 영어 단어를 새 법률용어로 도입하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라며 "영어를 한글보다 세련된 것으로 생각하는 공무원의 자세가 문제"라고 꼬집었다. 그는 "집을 뜻하는 `홈'(home)과 없음을 뜻하는 접미사 `리스'(less)를 결합한 홈리스가 무슨 뜻인지 모르는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라며 "한글사랑은 둘째치고 일단 의사소통에 무리가 없는 단어를 선택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한글단체들은 개정안이 통과되면 홈리스가 법률용어의 지위를 차지하게 된다는 점도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이 경우 모든 공식 문서와 교과서 등에서는 홈리스라는 단어를 사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 사무부장은 "영어단어를 법률용어로 채택하는 것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으며 이는 `우리의 말과 우리의 글을 사랑하고 갈고 닦아 나간다'라는 공무원윤리헌장실천강령에도 어긋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2006년부터 `알기쉬운 법령만들기' 사업을 펼치고 있는 법제처도 부랑인ㆍ노숙인 대신 홈리스를 사용하겠다는 보건복지가족부를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어려운 한자어나 일본식 표현, 복잡한 구문 등을 알기 쉬운 우리말로 고치는 작업을 벌여 올해 7월말 기준으로 339건의 법률을 개선했는데 또 생소한 영어단어를 법률용어로 새로 도입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법제처 관계자는 "사회복지사업법 개정안은 아직 법제처 심사를 받지 않은 것"이라고 밝힌 뒤 "법제처가 수년 동안 계속해 온 알기쉬운 법령만들기 사업의 취지에는 맞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보건복지가족부 관계자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한 부랑인ㆍ노숙인을 대체할 한글 단어를 찾지 못했으며 사회복지단체와 학계 의견을 수렴한 결과 홈리스가 가장 적당하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한글단체 관계자들은 "생소한 국적 불명의 용어를 쓰는 것보다는 일단 차라리 그냥 두는 것이 낫다"며 앞으로 강력한 반대운동을 펴기로 해 한글날이 다가올수록 논란이 커질 전망이다.(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