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이슈 선점 경쟁"규제 완화" vs "세액 지원"목마른 '보조금'은 안 보여美·日·中 파격 지원에 韓만 제자리 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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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을 앞두고 내놓은 정치권의 반도체 지원 공약을 들여다 보면 기존 정부 발표와 크게 다른 점을 찾기 어렵다. 파격적인 지원은 보이지 않고 선거 이후 공약을 이행할지도 예단하기 어려워 단순히 표심 팔이에 그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기자가 최근 만난 빈도체 업계 관계자의 푸념이다.제22대 국회의원 총선거가 한달도 채 남지 않은 가운데 정치원의 반도체 공약 경쟁도 뜨겁다. 여야 모두 반도체 산업 육성·지원 방안을 잇따라 발표하고 있는 것.그러나 업계 반응은 시큰둥하다. 정치권의 공약이 지난 1월 정부가 발표한 반도체 클러스터 지원책에서 크게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더욱이 규제 완화 및 세제 지원 등 행정적 지원에만 머물러 있고 뚜렷한 재정적 지원은 찾기 힘들다는게 문제다.실제로 지난 7일 더불어민주당이 발표한 '제22대 총선 반도체 공약' 자료를 보면 주요 정책으로 ▲경기 남·동부를 종합 반도체 메가씨티로 조성 ▲반도체 등 지속적인 투자 여건 조성 ▲RE100 클러스터 조성 ▲종합 반도체 생태계 강화 등을 선정했는데, 이는 정부 발표 내용과 크게 다르지않다.추진 과제로는 투자세액 공제 일몰기한 추가 연장 및 인프라 지원 등에 그치고 있다. 더욱이 민주당은 지난해 ‘K칩스법’ 추진 당시 반도체 산업 지원을 대기업 특혜, 부자감세라고 비판하며 발목을 잡은 사례도 있었던 만큼 진정성까지 의심된다. 이번 공약이 반도체 거점이 위치한 수도권 유권자들의 표를 얻기 위한 선거용으로 보여지는 이유다.국민의힘 공약도 크게 다르지 않다. 총선 최우선 정책 과제로 '반도체 규제 완화'를 꺼내들고 정부가 올해 1월 발표한 '경기 남부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 조성'을 당 차원에서 전폭 지원하는 것과 함께 반도체 개발 및 투자 인허가 절차를 간소화한다는 목표다.이는 경쟁국들 수준과 비교하면 초라한 수준이다. 미국, 일본, 중국 등은 과감한 지원금을 통해 반도체 육성 총력전에 나서고 있다. 이에 자국 기업들은 덩치를 빠르게 키우며 시장 선점을 위해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미국은 칩스법(반도체 지원법)을 마련하고 자국 기업에 우선 지원하고 있다. 칩스법을 통한 반도체 투자 규모는 527억 달러(약 70조원)에 달한다.반도체 공장 생산 보조금이 390억 달러(약 52조 원), 연구개발(R&D) 지원금이 132억 달러(약 18조 원)다. 생산 보조금 390억 달러 중 280억 달러는 첨단 생산시설에 지급된다. 미 행정부는 750억 달러의 대출 지원도 추진하고 있다.일본 정부는 2021년 반도체산업을 살리기 위해 2030년까지 반도체 관련 매출을 2021년의 세 배인 15조엔(약 133조원)으로 늘린다는 ‘반도체·디지털 산업전략’을 발표했다. 이를 통해 반도체 시장에서 잃어버린 30년을 되찾겠다는 각오다.중국은 미국의 견제에도 불구하고 반도체 굴기를 지속하고 있다. 중국은 반도체 산업 육성 펀드인 '국가직접회로산업투자펀드'(ICF)의 3차 펀드 조성을 추진하고 있다. 조성 규모는 최소 270억 달러(약 35조6400억 원)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펀드에는 민간 기업도 참여하는 만큼 반도체 패권 경쟁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평가다.반도체산업은 천문학적인 비용이 소요되는 자본집약적 산업이다. 기업들이 불황에도 적극적인 투자에 나서는 것도 이 때문이다. 미국의 반도체 기업인 인텔이 반도체 역사상 '부동의 1위'를 유지해왔으나, 불과 몇 년새 삼성전자와 TSMC에 밀려난 것도, 일본이 30년 전 반도체 시장에서 자취를 감춘 것이 이를 방증한다. 한 번의 투자 결정 실패가 시장 지배력이 흔들 수 있는 것이다.이에 한국 반도체에 드리운 위기감은 그 어느때보다 높다. 그러나 속도감 있게 추진돼야 할 정부 지원은 정치권의 생색내기에 속도전에서 점점 더 밀리는 모양새다. 반도체 세계 경쟁에서 한 번 밀리면 회복하기 어렵다는 산업계 주장을 다시 새겨봐야 하는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