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해전술 중공군 예봉 꺽고 대한민국 구할 시간 벌었다"장진호전투기념사업회, 인천 자유공원서 72주년 기념 모임 개최
  • ▲ 장진호전투와 흥남철수작전 기념식ⓒ장진호전투기념사업회
    ▲ 장진호전투와 흥남철수작전 기념식ⓒ장진호전투기념사업회
    12월 25일 크리스마스가 다가온다. 대다수 사람들은 크리스마스에 가족·연인·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갖는다. 교회·영화관·놀이공원·수족관·전시회 등 다양한 장소에서 소중한 추억을 쌓는다.

    오늘날 우리나라 국민들이 따뜻하고 훈훈한 성탄절 연휴를 갖게 될 수 있었던 것은 72년 전 매서운 추위 속 북한·중공군에 맞서 싸운 미군과 유엔군의 희생 덕분이다.

    1950년 11월 동부전선의 미 제1해병사단은 서부전선부대와 합류하기 위해 장진호 지역으로 진출했다. 

    그러나 중공군은 장진호 계곡에 포위망을 형성했다. 이로 인해 미 해병사단 약 1만명은 중공군 약 12만 명에게 포위되었다. 미 해병대는 중공군 포위망을 벗어나기 위해 11월 27일부터 12월 11일까지 철수작전을 펼쳤다.

    장진호 전투는 미군, 유엔군과 중공군 모두에게 잊을 수 없는 처절한 역사다. 영하 40도의 혹한 속 싸운 전투였기 때문이다. 

    미군의 항공 화력을 피하려고 눈 위에 엎드렸던 중공군 부대원 전체가 동사했다. 미군도 얼어 붙은 전투 식량을 취식해 심한 장염과 설사에 시달렸다. 또 맨손으로 장비를 만지면 손이 얼어서 뚝 떨어져 나갈 정도의 혹한이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미 제1해병사단장은 이 같은 최악의 상황 속에서도 한명의 전우도 남기지 않고 모두 함께 이동하자고 독려해, 강력한 전투력이 발휘됐다.

    미 해병사단은 하루 평균 1.5km씩 진군하며, 자신의 10배가 넘는 12만 명의 중공군 포위망을 뚫고 흥남에 도착할 수 있었다. 또 중공군의 남하를 지연시키며 '흥남철수' 작전을 성공적으로 펼칠 수 있었다.

    장진호 전투는 중공군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전투 결과를 보면 미 제1해병사단을 비롯한 유엔군은 1만7000여명의 사상자가, 중공군은 4만800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미군보다 10배가 넘은 중공군이 투입됐지만, 혹한과 치열하게 맞서 싸우는 미군 때문에, 중공군 피해가 더 커진 셈이다. 

    장진호 전투 결과로, 중공군 9병단은 흥남철수 작전이 완료될 때까지 제대로 된 전투 한번 수행하지 못했고, 1951년 3월이 되어서야 전투력을 재편성하여 전선에 복귀한 것으로 알려진다. 

    만약 중공군 9병단이 장진호 전투에서 승리했다면, 유엔군이 어디까지 후퇴했을지 예상할 수 없었을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 ▲ 장진호전투기념식ⓒ장진호전투기념사업회
    ▲ 장진호전투기념식ⓒ장진호전투기념사업회
    더욱이 '흥남철수작전'은 성공할 수 없었을 것이다. 중공군 추격 속 1950년 12월 12일, 한국군과 미군 10만5000명, 차량 1만7500대, 군수품 35만 톤을 193척의 선박에 적재한 뒤 거제도로 철수시키는 흥남철수 작전이 시작됐다.

    이때 최소 20만 명의 북한 주민들이 흥남 부두로 몰려왔다. 국군 김백일 장군은 "우리 국민들을 배에 태워주지 않으면 걸어서 38선을 통과하겠다"며 미군 지휘관들을 설득했다. 

    이에 미국 에드워드 알몬드 장군과 레너드 라루 선장은 설득당했고, 북한 주민들을 한 명이라도 더 살리기 위해 모든 군수물자를 버리고 북한 주민들을 승선시키라고 명령했다. 이로써 약 10만 명의 북한 주민들이 구조됐다.

    이후 12월 22일, 마지막 배인 7600톤급 화물선 상선 빅토리호가 1만 4천명을 탑승시키는 기적이 발생했다. 정원 60명인인 빅토리호가 한 겨울에 1만4000명의 피난민을 태우고 28시간 항해한 결과 12월 25일 거제도에 도착했다. 

    전 세계인들은 '흥남철수작전'을 '크리스마스의 기적'이라고 부르며 이보다 위대한 철수작전은 없다고 찬사를 보냈다. 항해 과정에서 마실 물과 식량이 전혀 없었음에도, 배에서 5명의 새생명이 태어나 더욱 감동을 준다.

    이 때문에 장진호전투기념사업회는 오늘날 대한민국을 있게 해준 '크리스마스 기적'인 장진호 전투와 흥남철수작전을 기리는 행사를 개최했다. 장진호전투기념사업회는 지난 10일 인천시 자유공원에서 '장진호전투 및 흥남철수작전 제 72주년 기념식'을 가졌다.

    이재춘 장진호전투기념사업회 회장은 "미군이 없었으면 대한민국 탄생은 없었다. 또 한미 안보체제가 없었으면 한국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었다. 대한민국이 존속하는 한 미국은 생명의 은인"이라며 장진호 전투에서 희생한 미군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그는 장진호 전투를 "잊혀진 전쟁이 아니라 잊혀진 승리"라며 "장진호 전투 기념식을 계기로 아직까지 한국사회에 남아있는 적(종북세력들)과 싸우는데 큰 힘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성상훈 장진호전투기념사업회 기획위원장은 '미국인들에게 보내는 감사의 편지'를 통해 "미군이 대한민국을 지켜 준 사실과 파괴되었던 한국을 복구하는데 670억 달러의 미국 세금을 사용하도록 허락해 주신 모든 미국인들에게 다시 한 번 감사한다"고 했다.

    성 기획위원장은 한국전쟁을 자유민주주의와 공산주의가 충돌한 전쟁이라고 규정하며 한국전쟁 초반 3개월은 북한군과 싸웠지만 나머지 34개월은 유엔군과 중공군이 싸운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자유진영인 대한민국을 침략한 중공군을 물리친 전투라며 대한민국 영토를 불법적으로 침략한 중국 공산당의 만행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 높였다.

    성 기획위원장은 흥남철수작전 관련, 미국들이 10만여명의 생명을 구했다며 이는 인류사에 다시 없을 '휴먼드라마'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대한민국을 위해 희생한 미군과 미국인들에게 다시 한번 고개 숙여 감사한다"며 "대한민국을 위해 병력을 보내주신 미국,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캐나다, 호주,뉴질랜드,필리핀, 튀르키예, 태국, 남아프리카공화국, 그리스, 벨기에, 콜롬비아 국민들에게 감사한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또 많은 의료물자와 구호품들을 보내주신 총 63개국에 다시 한번 감사한다"며 편지 낭독을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