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훈, 해수부 공무원 피살 다음날 안보실 1차장 등 관계자들과 비서관회의"남북관계에 악영향 미치는 사건… 보안 철저히 하고 사건 발표 신중하라" 지시김홍희 당시 해경청장은, 수사 발표 거절하는 간부에 "올해 승진해야지" 회유
  • ▲ 서훈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지난 2일 오전 서울중앙지법으로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정상윤 기자
    ▲ 서훈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지난 2일 오전 서울중앙지법으로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정상윤 기자
    서훈 전 국가안보실장이 '서해 공무원 피격'사건 다음날 국가안보실 비서관회의에서 '입단속'을 지시하자, 일부 비서관들이 "국민들이 알면 뒷감당을 어떻게 하려고 하느냐"며 반발한 것으로 전해졌다.

    14일 동아일보에 따르면, 서 전 실장은 해양수산부 공무원 이대준 씨가 피살된 다음날인 2020년 9월23일 오전 8시30분쯤 서주석 전 안보실 1차장 등 관계자들이 참석한 비서관회의를 주재했다.

    서 전 실장은 이 자리에서 "사건 발표는 신중히 검토하겠다"며 "남북관계에 매우 안 좋은 영향을 미치는 사건이 발생했다. 보안 유지를 철저히 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1부(부장검사 이희동)는 서 전 실장의 지시를 받은 일부 비서관이 회의 후 사무실로 돌아와 "이거 미친 것 아니냐. 이게 덮을 일이냐" "실장들이고 뭐고 다 미쳤어"라는 등 반발했다는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훈, 해경에는 "'자진월북'이라고 정리해서 다시 발표하라" 지시

    서 전 실장은 앞서 청와대에서 열린 1차 관계장관회의에서도 군 대비태세 점검 등 대응 방안을 논의하지 않고, 이씨 피살과 시신 소각 사실이 외부로 유출되지 않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검찰은 서 전 실장이 사건 초기 대통령에게 상황 보고를 하지 않고 은폐를 결정·실행한 것으로 보고 있다.

    서 전 실장은 이날 오전 10시 열린 2차 관계장관회의에서도 이씨 피살 및 시신 소각 사실을 제외하고, 이씨가 북한 해역에서 발견됐다는 내용만 공개하기로 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국방부가 유엔군사령부를 통해 보낼 대북 통지문에 이씨를 '실종자'로 표기한 뒤 북측의 반응을 살펴보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 전 실장은 같은 달 27일 김홍희 전 해양경찰청장에게도 "자진월북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해경 발표에 대해 선명하게 정리된 입장으로 브리핑하라"면서 "추석민심이 악화하는 부분 등을 대비해 언론 보도나 브리핑을 생각해보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해경은 당시 배에 남겨진 슬리퍼 등을 근거로 "이씨의 자진월북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취지의 1차 수사 결과를 발표한 상황이었다.

    김홍희 前청장, 수사 발표 거절하는 간부에게 "올해 승진해야지" 회유

    서 전 실장의 지시를 받은 김 전 청장은 당시 인천해경서장과 중부해경서장에게 "2차 수사 결과를 발표해 달라"고 요구했으나 이들은 "수사가 진행된 것이 없다"고 거절했다. 이에 김 전 청장은 계급정년을 앞두고 있던 윤성현 전 해경 수사정보국장에게 "올해 승진해야 하지 않느냐"며 브리핑을 하도록 회유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김 전 청장은 '자진월북' 근거를 찾기 위해 해경 정보과장을 국방부로 보내 통신첩보를 확인하도록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정보과장이 '이씨가 한자가 적힌 구명조끼를 입고 있었던 사실'과 '"왜 왔느냐"는 북한군 질문에 대답을 미룬 사실' 등 '자진월북'을 단정하기 어려운 근거가 포함된 메모를 보고하자 김 전 청장은 "안 본 것으로 하겠다"며 메모를 파쇄한 것으로 전해졌다.

    서 전 실장은 이후 해경 2차 수사 결과 발표에 '실종자가 연평도 주변 해역을 잘 알고 있었다' '인위적 노력 없이 실제 발견된 위치까지 표류하는 겻은 어렵다'는 취지의 내용을 포함하도록 지시했다고 한다.

    이러한 의혹과 관련해 서 전 실장 측은 "명확히 확인되지 않은 첩보가 유출돼 생길 혼란을 막기 위해 보안을 당부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며 "은폐를 위해 보안 유지를 지시한 적은 없다"고 반박했다.

    서 전 실장 측은 이어 "이씨가 월북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 역시 당시 파악할 수 있었던 정보를 토대로 정책판단을 한 결과"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