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등 北 수뇌부 제거 시도하면 자동 핵보복… 구소련 자동 핵보복 체계와 유사“임박했다고 판단되는 경우 핵공격”…오인·오판으로 인한 핵공격 가능성 매우 커
  • ▲ 북한이 지난 3월 신형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 '화성-17형'을 쏘았다고 주장했을 당시 공개한 사진. 한미 당국은 이날 발사한 것이 '화성-17형'이 아니라 '화성-15형'이라고 분석했다. ⓒ연합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북한이 지난 3월 신형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 '화성-17형'을 쏘았다고 주장했을 당시 공개한 사진. 한미 당국은 이날 발사한 것이 '화성-17형'이 아니라 '화성-15형'이라고 분석했다. ⓒ연합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북한이 지난 8일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7차 회의에서 ‘핵무력정책법’을 채택했다. 핵공격이 가능한 상황 5개를 상정하는 등 ‘선제 핵공격’을 합리화했다. 

    이 가운데는 우리 측의 ‘참수작전’이 진행될 조짐만 보여도 핵공격을 할 수 있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또한 상황마다 “공격이 임박했다고 판단되는 경우”라는 문구를 넣어 자의적 핵공격을 합리화했다.

    北이 규정한 핵공격 가능한 5가지 상황… “공격 징후만 있어도 핵공격”

    조선중앙통신 등 북한 관영 매체가 9일 전한 ‘핵무력정책법’을 보면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우선 핵공격의 모든 권한은 김정은만 갖도록 돼 있다(3조 1항과 2항).

    법은 또 선제 핵공격이 가능한 상황 5가지를 6조에 열거했다. 첫째는 핵무기를 비롯한 대량살상무기로 북한이 공격당했거나 공격이 임박했다고 판단되는 경우다. 둘째는 국가 지도부나 국가 핵무력 지휘기구를 대상으로 한 적대세력의 핵 또는 비핵공격이 감행됐거나 임박했다고 판단되는 경우다.

    셋째는 국가의 주요 전략적 대상이 치명적인 군사적 공격을 받았거나 공격이 임박했다고 판단되는 경우다. 넷째는 유사시 전쟁 확대 및 장기화를 막고 전쟁 주도권을 쥐기 위해 작전상 불가피하게 필요한 경우다. 다섯째는 기타 국가의 존립과 인민의 생명 안전에 파국적인 위기를 초래하는 사태가 생겨 핵무기로 대응할 수밖에 없는 불가피한 상황이 조성됐을 때다.

    김정은 유고 시 자동 핵보복 규정한 北의 핵무력 정책법

    이 가운데 둘째는 김정은을 비롯한 북한 수뇌부를 대상으로 한 공격에는 핵으로 대응하겠다는 뜻이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핵공격의 모든 권한이 김정은에게 있다면서 북한 수뇌부가 공격 받으면 핵공격을 한다는 것은 모순 아니냐”고 지적한다. 그러나 이 대목은 냉전 시절 미·소의 핵보복 원칙에 가깝다.

    ‘프레시안’은 이를 두고 옛소련이 만들었던 ‘죽은 자의 손’ 독트린으로 풀이했다. ‘죽은 자의 손’이란 1962년 쿠바 위기 당시 소련이 입안한 ‘페리미터’를 말한다.

    ‘페리미터’란 핵전쟁으로 소련 수뇌부가 모두 사망할 경우 자동으로 핵보복하는 체계다. 유사시 적의 공격으로 국가 수뇌부와 군부대 간 통신이 끊어지거나 핵무력 부대의 통신이 마비된 경우에도 발동한다. 

    이 ‘페리미터’는 소련이 무너진 뒤에도 계승돼 현재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사망할 경우 작동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즉, 김정은은 자신의 목숨을 노리면 핵보복할 것이라며 한미 연합의 참수작전 가능성을 최대한 억지해보려는 속셈을 법에 담은 것이다.

    자동 핵보복보다 위험할 수 있는 “임박했다고 판단되는 경우”의 핵공격

    김정은 유고(有故) 때 이뤄지는 자동 핵보복보다 더 위험할 수 있는 내용도 있다. 바로 ‘○○이 임박했다고 판단되는 경우’ 선제 핵공격을 할 수 있다는 대목이다. 한미 연합군이 선제공격하지 않았음에도 북한이 “그럴 것으로 보였다”며 핵공격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북한이 국군이나 일본 자위대 수준에 근접하는 조기경보체계를 갖고 있다면 실수나 오판으로 인한 우발적 핵공격 위험은 줄어들 수 있다. 하지만 공격 위주 전략을 계속 채택해온 북한군의 조기경보체계는 낙후해 있다.

    때문에 북한의 핵무력정책법은 냉전 시절 오판이나 오인으로 인한 핵공격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 만든 미국의 이중 암호 확인 체계나 소련의 ‘페리미터’ 같은 체계와 달리 오판이나 오인으로 인한 핵전쟁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지적이 많다. 특히 북한이 규정한 5가지의 핵공격 상황이 모두 포괄적이고 자의적 해석으로 핵공격이 가능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軍 “北이 핵 사용 기도하면 한미의 압도적 대응 직면”

    북한의 핵무력정책법은 이처럼 ‘내 멋대로 선제 핵공격’의 내용이다. 여기에 한국 독자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쉽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다.

    그럼에도 우리 군은 여전히 여유가 있어 보인다. 국방부는 13일 “북한이 핵 사용을 기도하면 한미의 압도적 대응에 직면할 것이고 북한정권은 자멸의 길로 들어서게 될 것임을 경고한다”는 견해를 내놨다.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문홍식 국방부 대변인직무대리는 북한의 핵무력정책법과 관련 “국방부는 미국 측과의 긴밀한 공조로 한미동맹의 확장억제 실행력을 더욱 강화하고 한국형 3축 체계의 획기적 확충과 전략사령부 창설 등 북핵 위협에 대한 억제력을 더욱 강화함으로써 북한이 핵을 사용할 수 없도록 할 것”이라며 이같이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