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7일 대학로 TOM 1관 개막…"연극은 동시대에 질문을 던지는 일"
  • ▲ ⓒ강민석 기자
    ▲ ⓒ강민석 기자
    "루이스처럼 저도 어머니의 기도로 커온 어린 양이에요. 그동안 제가 해왔던 캐릭터와 너무 달라서 즐거운 마음으로 임하고 있어요. 결혼식 때도 잘 입지 않는 슈트를 입고 공연하는 게 새롭고 재미있네요."

    배우 전박찬(40)은 2009년 연극 '매일 만나기에는 우리는 너무나 사랑했었다'로 데뷔한 이후 폭 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보여줬다. '에쿠우스'(2014)의 알런은 내면에 상처를 간직한 순수한 소년이었고, '맨 끝줄 소년'(2015·2017·2019)의 클라우디오는 글쓰기에 대한 욕망으로 위험했으며, 웨이브 오리지널 드라마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2021)의 위대남은 얄미운 야당 최고위원이었다.

    소년의 이미지를 갖고 있지만 단단한 눈빛과 진지하고 고민에 찬 말투로 조근조근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있자면 배우로서의 신념과 강단이 깊게 서려 있다. 무대 위에서 이 시대 우리가 해야 할 이야기를 위해 목청을 높이고 싶다는 전박찬. 그가 새로 선보일 '라스트 세션'의 루이스가 궁금해지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재공연이라 마음의 갈등이 컸어요. 이미 관객들은 2명(이석준·이상윤)의 멋진 루이스를 만났고, '내가 더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까' 고민이 됐어요. 그런데 신구·오영수 선생님이 하신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런 기회가 내게 또 올까 싶었죠. 극 중 대사처럼 꼭 만나고 싶었습니다."

    지난 2020년 국내 초연된 연극 '라스트 세션'은 미국의 극작가 마크 세인트 저메인이 하버드대 정신과교수였던 아맨드 M. 니콜라이의 저서 '루이스 vs. 프로이트(THE QUESTION OF GOD)'에서 영감을 얻어 쓴 2인극이다. 작가는 실제로 만난 적 없는 두 사람을 무대 위로 불러내 신과 종교에 대한 도발적인 토론을 야기한다.

    이번 재연에는 신구·오영수가 20세기 무신론의 시금석으로 불리는 '프로이트' 역을, 이상윤·전박찬이 '나니아 연대기'를 쓴 작가이자 영문학 교수 '루이스' 역을 맡는다. 전박찬은 "운명 같은 타이밍에 좋은 대본을 만났어요. 저만의 루이스를 보여드리기 위해 최선을 다할 생각이에요"라고 밝혔다.
  • ▲ 연극 '라스트 세션' 포스터.ⓒ파크컴퍼니
    ▲ 연극 '라스트 세션' 포스터.ⓒ파크컴퍼니
    영국이 독일과의 전면전을 선포하며 제2차 세계대전에 돌입한 1939년 9월 3일, 기독교 변증가 C.S. 루이스가 구강암 말기에 고통받는 저명한 정신분석 박사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집을 방문한다. 두 사람은 공습 사이렌이 울리는 긴박한 상황에서도 종교와 인간, 고통과 삶의 의미에 대해 치열한 논쟁을 이어나간다.

    전박찬은 "새로 합류하다 보니 오영수 선생님과 처음 대본리딩을 했는데, 초연에서 발견하지 못한 재미를 많이 찾았어요. 신구 선생님과 호흡을 맞출 때는 초연의 익숙함, 템포감이 느껴졌고요. 이상윤 배우가 186cm, 저는 168cm에요. 확연한 차이의 키만큼 서로 다른 매력의 루이스를 기대해주셔도 좋을 것 같아요"라며 웃었다.

    이어 "신구 선생님의 프로이트는 견고하고 날카로워요. 오영수 선생님은 평소 사뿐사뿐 걸으시는데 무대에서 만나면 파워풀하고 지적인 매력이 넘치세요. 루이스와의 공방전에서 보여주는 두 분만의 리액션도 즐거운 관람 포인트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C.S 루이스(1898~1963)는 부모의 사망을 계기로 완고한 무신론자였으나 '반지의 제왕'의 작가인 친구 톨킨의 영향으로 1929년 유신론으로 회심했다. 기독교 교리를 설명한 변증론적 글과 소설을 남겼으며, 대표적인 서적들로 '순전한 기독교', '고통의 문제' 등이 있다.

    몰입을 위해 루이스와 관련된 여러 서적을 읽고 대본의 여백을 탐색한 전박찬은 "변증법이란 정반합(正反合·어떠한 주장과 그에 반대되는 주장이 충돌하면서 종합적인 주장이 만들어지는 것)의 논리를 통해 더 나은 결과를 유추하는 방식이에요"라고 설명하며 "전문적이고 생소한 용어들이 많이 나오지만 첨예한 논쟁을 따라가다 보면 관객은 직관적으로 이해하고 해석할 수 있을 거예요"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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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극 '맨 끝줄 소년'의 클라우디오, '이방인'의 뫼르소, '대신목자'의 사육사 유재부터 첫 TV 드라마 도전작 '60일, 지정생존자' 속 김실장까지… 전작에서 전박찬이 연기한 역할은 좀처럼 얼굴에 감정을 보이지 않은 채 특유의 서늘한 매력을 장착하고 존재감을 드러냈다. 대부분 현실에서 찾아보기 힘든 강한 캐릭터들을 소화할 수 있었던 건 자신의 궤적을 흔들림 없이 지켜온 덕분이다. 

    2019년 남산예술센터 공연 '7번 국도', 2020년 미아리고개예술극장 공연 '우리는 농담이(아니)야', '오직 관객만을 위한 두산아트센터 온라인스트리밍 서비스공연'(2020), 국립극단 '로드킬 인 더 씨어터'(2021)에서는 자신을 시험대 위에 서슴없이 올려놓았다. 그는 노동자·장애인·성소수자 등 다양한 사회적 이슈를 자신만의 화법으로 녹여낸다.

    "연극은 동시대에 질문을 던지는 일인 것 같아요. 지금까지 동시대의 소수자와 약자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에 주로 출연했어요. '라스트 세션'에도 나치, 스페인 독감, 유대인 인종차별 등 당시의 여러 문제들이 담겨 있죠. 계속 되는 전쟁, 코로나19 등 현재와 맞닿아 있고, 제가 해오던 이야기의 연장선상에 있어요."

    마지막으로 전박찬은 "연극만 고집하지 않아요. 좋은 기회가 생기면 드라마, 영화를 하고 싶어요. 누군가가 매력적인 악역과 멜로드라마의 주인공 중 무슨 역할이 하고 싶냐고 묻길래 멜로라고 답했어요.(웃음) 연극은 분장과 의상만으로 소년이나 노인으로 변신할 수 있어요. 만약 '맨 끝줄 소년' 출연 제안이 들어온다면 다시 할 생각도 있거든요. 연기에 老(노)가 있을까요?"라고 전했다.

    연극 '라스트 세션'은 1월 7일부터 3월 6일까지 대학로 TOM(티오엠) 1관에서 공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