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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음] '충청대망론' 이완구 전 총리… 혈액암 투병 끝에 별세, 향년 71세

홍성군청 사무관에서 국무총리까지… '포스트 JP' 불리며 파란만장 정치인생

입력 2021-10-14 14:51 | 수정 2021-10-14 16:46

▲ 이완구 전 국무총리. ⓒ뉴데일리DB

박근혜정부에서 국무총리를 지낸 이완구 전 총리가 14일 71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이 전 총리는 2012년부터 혈액암의 일종인 다발성 골수종으로 최근까지 투병생활을 해왔다.

이완구, 충청도 대표 정치인

이 전 총리는 한때 '포스트 JP(김종필 전 국무총리)'로 불리며 '충청대망론'을 등에 업기도 했다. 충남 홍성 출신인 이 전 총리는 1974년 행정고시(15회)에 합격한 후 홍성군청 사무관으로 공직생활에 입문했다. 

이후 경찰로 옮겨 31세의 나이에 홍성경찰서장을 지냈으며, 최연소 경무관 승진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1995년 충남지방경찰청장으로 경찰생활을 마감했다.

본격적인 정계 입문은 1995년 민주자유당에 입당하면서 이뤄졌다. 이듬해 15대 총선에서 신한국당 후보로 충남 청양·홍성에 출마해 금배지를 달았다. 1997년 대선 과정에서 자민련으로 당직을 옮긴 이 전 총리는 2000년 재선에 성공하며 원내총무·사무총장 등 중책을 두루 역임했다.

2006년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소속으로 충남도지사에 당선됐으나 임기를 다 채우지 못했다. 이명박정부가 2009년 '세종시 수정안'을 추진하는 데 반발해 "충남도민의 소망을 지켜내지 못한 정치적 책임을 지겠다"며 지사직을 사퇴했기 때문이다. 

朴정부 국무총리로 임명… 부패와 전쟁 선포  

이 전 총리는 2012년 19대 총선을 통해 국회 입성을 노렸으나 그해 초 다발성 골수종 판정을 받았다. 이후 건강을 회복한 뒤, 박근혜정부 때인 2013년 4월 재·보궐선거를 통해 다시 국회의원이 됐다.   

2014년 5월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됐다. 2015년 1월에는 박근혜정부의 두 번째 국무총리에 오르며 정치인생의 정점을 찍었다. 당시 이 전 총리는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부정부패를 발본색원하겠다"며 부패와 전쟁을 선포했다.

그러나 2015년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자살로 불거진 이른바 '성완종 리스트' 사건에 연루됐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취임 63일 만에 물러나게 됐다. 

이후 이 전 총리는 2017년 12월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판결을 받았다. 2020년 21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며 사실상 정계를 은퇴했다.

빈소는 서울 강남성모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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