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에 손잡고 벽을 넘어서 우리 사는 세상 더욱 살기 좋도록’. 88서울올림픽을 경험한 세대는 가슴벅찬 그날의 감격을 기억한다. 대한민국이 세계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나아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기억하고 있다. ‘화합과 전진을 모토로, 사상 최대 규모로 진행된 서울올림픽은 우리 국민뿐만 아니라 전 세계인에게 강력한 메시지를 던졌다. 6.25 전쟁으로 폐허가 된 이 땅을 보고 복구하는데 최소한 100년은 걸릴 것이다.’라고 했던 맥아더 장군의 말을 비웃기라도 하듯.

    그 메시지는 특히 수많은 공산주의 국가에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이는 동구권 붕괴와 독일통일, 그리고 소련 해체로 이어졌다. 이들 국가가 미국의 앞잡이 나라로만 인식됐던 대한민국의 경제발전상을 보고 놀라, 변화를 열망하게 됐다. 그리고 그들은 경제발전만이 아니라 민주화에 대한 꿈을 품게 된 것이다. 대한민국은 올림픽을 앞둔 87, 당시 민정당 대표였던 노태우 전 대통령이 발표한 ‘6.29 선언으로 정치체제의 도약을 이루어냈다. 혼란의 정국 속에서 대통합과 진정한 민주주의 실천 시대로의 막을 연 것이다.

  • ▲ 88올림픽 개최식 현장사진.
    ▲ 88올림픽 개최식 현장사진.

    1981년 당시 정무장관이었던 노 전 대통령은 서울올림픽 유치를 총괄지휘했고, 유치에 성공한 뒤로는 조직위원장으로 일했다. 올림픽 때는 대통령으로서 개회를 선언, 대한민국의 발전상을 전 세계에 선포했다. 그는 북방정책으로 한국인의 활동공간을 두 배로 확장했다. 동구권, 소련, 중국과 수교를 맺으며 북한을 압박했고, 미국과의 동맹도 강화하며 한반도 문제의 주도권을 쥐었다. ‘한반도 비핵화선언남북한 기본합의서는 경제력과 군사력 우위를 기반으로 북한의 고삐를 쥔 대한민국 외교의 승리였다.

    그가 882월에 취임하여 93년에 퇴임하기까지, 국민소득은 2,700달러에서 7,000달러로 늘었다. 노동자 투쟁의 결과라고도 하지만, 전임 정부들처럼 기업인의 편에 서지 않고, 노사간에 자발적으로 해결하는 것을 원칙으로 했기 때문이다. 소득증가로 자신을 중산층으로 여기는 사람이 80%가 됐다. 이들은 주인의식을 가진 국민으로 성장하여 민주주의의 뼈대를 이루었다. 이후 15년간 정권 주도로 이루어진 광범위한 좌경화 속에서도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지켜나갈 수 있었던 것은, 노태우 정부가 만들어낸 두터운 중산층과 민간부문의 자율성 때문이었다.

    그의 재임기간에 전국을 반나절 생활권으로 만든 경부고속철도와 서해안 고속도로 건설 그리고 세계가 절찬하는 인천국제공항 건설이 확정됐다. 이들 교통인프라는 이후 국민생활 양식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또한 분당, 일산 등 수도권 5대 신도시를 개발, 당시 주택 수의 40%에 달하는 272만 호를 공급했다. 내집마련과 부동산가격 안정을 통해, 성장과 분배의 균형을 꾀한 것이다.

    특정 역사에 대한 평가가 다르듯 그에 대한 평가도 다양하다. 하지만 그의 시대에 이룩한 성과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대한민국의 역사가 됐다. 우리는 그 꽃을 보았고, 그 열매를 맛보고 있다. 6.25 당시 영국의 어느 신문기자가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기대하는 것은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이 피기를 기대하는 것과 같다.’고 했던 혹평은, 이제 쓰레기통에서도 찾을 수 없게 됐다.

  • ▲ 88올림픽 개최식 현장사진.

    강휘중

    정암리더십스쿨 회원

    리박스쿨 역사교실 강사

    자유수호포럼 청년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