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파문화집단 'TEAM 작당들'의 자유감성다큐멘터리탈북민 출신 시민사회운동가 이은택 씨 인생역정 그려
  • ▲ 다큐멘터리 '장마' 스틸 컷. ⓒ조광형 기자
    ▲ 다큐멘터리 '장마' 스틸 컷. ⓒ조광형 기자
    "무지개를 보고싶다면 비를 견뎌내야 한다."

    롱쇼트(long shot)로 잡은 자연 풍광 위로, 심금을 울리는 명언 한 마디가 데코레이션처럼 얹힌다. 한 폭의 그림 같은 제주의 자연이 스르륵 흘러가면, 어느 틈에 가벼운 점퍼 차림의 남성이 나타나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다.

    영화의 유일한 '출연자'이자 '화자'인 이 중년의 남성은 시민사회운동가 이은택 정의로운 사람들 대표다. 자막으로 질문이 올라오면 이 대표가 답변을 하고, 또 다른 장소로 이동해 인터뷰를 진행하는 식이다. 아스팔트 도로나 높은 빌딩도, 심지어 주위를 거니는 사람조차 없다. 그는 끝없이 펼쳐진 제주도의 자연을 천천히 거닐며 눈물 없이는 듣기 힘든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는다.

    "북한에 계신 형님이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북한인권운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모 국회의원이 탈북자들을 함부로 폄하하고, 북한을 추종하는 세력이 당을 만들고 사람들의 지지까지 받는 걸 보면서 시민사회운동으로 전환하게 됐습니다."

    다큐멘터리영화 '장마'는 이은택 대표에 의한, 이은택 대표를 위한 영화다. 시작부터 끝까지 이 대표의 파란만장한 인생역정이 펼쳐진다. 북송 재일교포의 아들로 태어난 그가 북한을 빠져나오게 된 과정부터 한국 사회에 정착하기까지. 그리고 북한인권운동가에서 시민사회운동가로 변신하기까지 그가 겪은 애환과 우여곡절이 관객들의 마음을 파고든다.

    놀라운 점은 이처럼 무겁고 우울한 얘기를 들으면서도 한없이 편안해지는 마음 상태다. 화보처럼 아름다운 제주도의 '절경'을 감상한 탓일까? 가슴 울컥한 이 대표의 사연을 듣고도 기분이 가라앉거나 침울해지지 않는다. 이 영화가 '자유감성다큐멘터리'라는 제작진의 설명이 실감났다. 자연 풍광을 통해 사람의 진심이 느껴진다고나 할까. 기존 다큐에서는 좀처럼 느낄 수 없는 감동이 밀려왔다.

    그러면서 그림 같은 풍경을 바라보며 비참하기 이를 데 없는 북한의 실상을 함께 듣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참으로 절묘하게 느껴졌다. 슬로우 다큐 '장마'를 공동 연출한 이용남 감독과 음정현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극한의 고통'과 '극치의 기쁨'이 공존하는 한반도의 현실을 보여주려는 듯 했다. 탈북자들이 북한으로 송환됐다는 뉴스를 보고 '안타깝다'고 탄식하면서도 '오늘은 뭐 먹을까' 맛집 검색을 하는 게 현실 아니던가?

    이용남 감독은 "이런 스타일의 다큐영화를 만들게 된 건 순전히 돈이 모자랐기 때문이었다"며 열악했던 제작 환경에 공(?)을 돌렸다. 제작비가 턱없이 부족하다보니, 궁여지책으로 출연자가 한 명뿐인 다큐를 만들게 됐다는 얘기다. 하지만 그는 단돈 300만원을 갖고, 2000억원이 넘게 들어간 '겨울왕국'보다 격한 감동을 주는 작품을 만들어냈다. 만약 그에게 2000억원을 제작비로 안겼다면 얼마나 대단한 작품이 나왔을까.
  • ▲ 지난 10일 오후 자유한국당 김진태 의원실 주관으로 국회의원회관 제1대강당에서 다큐멘터리 '장마' 시사회가 열렸다. 영화 관람 후 김진태 의원과 최공재 감독, 이용남 감독, 이은택 정의로운 사람들 대표, 음정현 감독 등이 'Cine Talk Show'를 진행하는 모습. ⓒ조광형 기자
    ▲ 지난 10일 오후 자유한국당 김진태 의원실 주관으로 국회의원회관 제1대강당에서 다큐멘터리 '장마' 시사회가 열렸다. 영화 관람 후 김진태 의원과 최공재 감독, 이용남 감독, 이은택 정의로운 사람들 대표, 음정현 감독 등이 'Cine Talk Show'를 진행하는 모습. ⓒ조광형 기자
    지난 10일 자유한국당 김진태 의원실 주관으로 국회의원회관 제1대강당에서 열린 시사회에 참석한 관객들은 이 대표의 이야기에 눈물을 훔치다가도 금세 '풋' 하고 웃음을 터뜨리는 모습을 보였다. 그 흔한 특수 효과도 없이 이 대표의 독백으로만 구성된 영화였지만 관객들은 전혀 지루하지 않다는 반응이었다.

    "말 한 마디로 웃겼다가 울렸다가…, 정말로 재주가 많은 감독"이라는 최공재 감독의 말은 결코 빈말이 아니었다.

    최 감독이 이끄는 'TEAM 작당들'과 함께 제주도 이곳저곳을 누빈 이용남 감독은 본인이 운전도 하고 직접 헌팅도 하면서 발품을 팔아 영화를 찍었다.

    매 신이 하나의 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미장센이 뛰어난 영화가 나올 수 있었던 건, 장소 헌팅부터 촬영·편집까지 감독을 비롯한 스태프들이 하나가 돼 움직였기 때문이다. 특히 항공 촬영 분야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드론 전문가'가 참여해 영상의 완성도를 높였다.

    "이 영화의 스타일은 수차례 시행착오를 거쳐 만들어졌습니다. 저희가 갖고 있는 제작 환경 속에서 '최선'의 것을 찾다보니 이런 형식을 갖추게 된 것이죠. 감사하게도 요즘은 좌파 영화계에서 저희의 장르를 흉내내기 시작했는데요. 아직까지는 저희들의 노하우를 못 따라오는 것 같습니다."

    이 감독은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못하다고 푸념을 하면서도 "시행착오 끝에 얻어진 노하우만큼은 섣불리 남이 따라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자부심을 드러냈다.

    이 영화가 이은택 대표의 인터뷰로만 채워진 까닭에 얼핏보면 이 대표에 대한 트리뷰트로 비쳐질 수도 있다. 이에 대해 이 감독은 "이 대표는 하나의 상징과도 같은 인물"이라며 "영화의 실질적 주인공은 아스팔트에서 묵묵히 헌신하는 우파 운동가들"이라고 추어올렸다.

    "아스팔트에서 '등불'이 되고, 하나의 '점'이 되고자 하시는 분들을 상징하는 의미로 이은택 대표님을 모셨습니다. 이 작품은 차갑고도 뜨거운 아스팔트에 계신 여러분, 뒤에서 목소리를 내고 계시는 모든 분들에게 바치는 영화입니다."

    제작진은 '장마'를 독립영화로 인정받기 위해 영화진흥위원회에 심의 신청을 한 상태다. 내년 1월 초 결과가 나오는데 예상대로 독립영화 인정을 받으면 '아트하우스 모모' 같은 예술영화 전용관에서 '장마'를 감상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