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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신대 윤평중 교수는 2019년 7월12일자 <조선일보> 오피니언 칼럼에 “<징비록>을 다시 읽으며”라는 제하의 글을 썼다. 윤 교수는 칼럼을 통해 작금의 문재인 정부의 한일관계를 ‘최악으로 규정’하면서 그 해법으로 서애(西厓) 유성룡 선생의 <징비록(懲毖錄)>을 등장시켜 글을 전개하였다. 글의 흐름은 그런대로 이해가 되었다.
하지만 윤교수는 글의 말미에서 역사적 사실과 다른 말로 왜곡하고 있다. 그는 “훌륭한 지도자는 국가를 과거사와 민족감정에 종속시키지 않는다”면서 “한일협정을 성사시킨 건 박정희였지만 한일관계를 극대화한 건 김대중(이하 DJ)이다. 1965년 야당의원 DJ는 박정희가 밀어붙인 한일회담을 공개지지해 ‘토착왜구’로 낙인찍힐 선택을 감내했다”고 표현했다.
윤 교수의 표현대로라면 마치 김대중이 토착왜구라는 욕을 먹으면서까지 한일회담을 공개지지해서 한일협정을 성사시킨 것처럼 평가하고 있다. 그야말로 언어도단(言語道斷)이 아닐 수 없다.
역사가 입증하듯 한일회담은 박정희 대통령이 국가발전의 먼 장래를 내다보고, 정치적 생명은 물론이고 자신의 운명까지 내걸고 성사시킨 구국(救國)의 결단이었다. 연일 계속되는 야당과 학생, 그리고 각종 단체들의 격렬한 반대 속에서 박 대통령은 계엄령을 선포하면서까지 한일회담을 성사시켰다. 박 대통령의 그런 ‘대의적(大義的) 용단(勇斷)’이 없었다면 오늘날 경제적 번영을 누리는 대한민국은 결코 존재하지 못했거나 국가발전의 시기가 지금보다 훨씬 늦어졌을 것이다.
1964년 이후 전개된 한일회담에 대한 야당의 반대투쟁은 극렬(極烈)했다. 그 과정에서 야당의 민정당 총재이자 굴욕외교반대투쟁위원장이던 윤보선 전 대통령은 한일회담에 대해 “국민의 신념과 국가적 이익에 위배되는 매국행위”로 규정했고, 여기에 다른 야당의원들처럼 민중당(民衆黨)의 김대중(DJ) 의원도 한일회담 및 한일협정에 반대의 목소리를 보탰다. 그런데 김대중이 한일회담 또는 한일협정을 ‘공개지지’해 한일협정을 성사시키고 이를 극대화시켰다는 뉘앙스를 풍기는 윤 교수의 글은 무엇을 뜻하는 것인가? 나아가 그 의도하는 바가 무엇인가? 이를 알고도 그렇게 했다면 역사왜곡이요, 모르고 했다면 그것은 양식(良識)있는 학자가 해서는 안 될 일이다. 글은 사실(fact)과 객관성이 담보되어야 한다. 그런데 윤 교수의 글에는 그런 면이 심히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당시 언론에 나타난 DJ... '정치적 혼란' 경고하며 24시간 단식투쟁
한일회담 및 한일협정을 놓고 당시 김대중 의원의 언론에 나타난 다음의 몇몇 발언들을 보면, 그것이 공개지지인지 반대인지를 금방 알 수 있다. “한일회담이 타결될 경우 정치적 혼란이 야기될 것”(동아일보,65.3.2), “한일협정 비준 전에 국회를 해산, 총선거를 다시 하여 평행선을 치닫고 있는 현 난국을 수습할 용의는 없는가?”(경향신문,65.6.16), “한일제협정안(韓日諸協定案)의 무효를 선언하면서 이에 항의하기 위해 본회의장에서 24시간 단식투쟁”(동아일보,65.6,23) 등.김대중 대통령도 2010년 자신의 회고록(<김대중 자서전1> p.172)에서 한일회담 및 한일협정과 관련하여 “나는 국회 한일조약특별위원회에 참여하고 있었다. 날마다 정부 측과는 논쟁을 벌였다. 기본조약, 청구권, 어업문제 등에 대한 부당성을 지적하고 굴욕적 자세를 비판하며 정부 측에 대안 마련을 촉구했다”고 술회했다. 김대중은 결코 한일회담이나 협정에 공개적으로 지지하지 않았음을 확연히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럼에도 윤 교수는 김대중이 한일회담을 공개지지했고, 이를 통해 한일관계를 극대화했다고 했다. 이는 ‘사실왜곡이요, 날조’에 해당한다. 학자나 교수는 ‘사회적 공기(公器)’인 언론에 자신의 생각을 글로 나타냄으로써 당대의 정치 및 사회적 문제를 해결해 주는 역할을 한다. 이른바 여론(與論)을 형성하고 주도한다. 그래서 흔히 그들을 ‘오피니언 리더’라고 한다. 그런데 그들의 힘은 글에서 비롯된다. 역량 있는 학자나 교수들의 글이 세인(世人)들로부터 강력한 지지를 받는 것은 역사적 사실에 바탕을 둔 사고의 객관성과 대안이 있는 통렬한 비판정신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윤 교수의 글은 사실과 심히 괴리(乖離)되었고, 또 객관성마저 결여된 ‘누구를 위한 글’이 되었다는 점에서 글의 균형감각을 잃었다고 할 수 있다. 차제(此際)에 이 글을 쓴 윤평중 교수와 이 글을 게재한 <조선일보>는 책임감을 느끼고 이를 시정할 것을 엄중히 촉구한다._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 연구위원, 문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