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지법 “위난 피하기 위한 음주운전은 무죄”… 법조계 “이례적이지만 타당”
  • ▲ 술을 마시고 5m 정도 운전한 40대 남성에게 무죄를 선고한 법원 판단이 최근 나왔다.ⓒ정상윤 기자
    ▲ 술을 마시고 5m 정도 운전한 40대 남성에게 무죄를 선고한 법원 판단이 최근 나왔다.ⓒ정상윤 기자
    “술을 마시고 5m 정도 운전한 남성의 행위는 무죄다.”

    창원지법 형사7단독 호성호 부장판사가 지난 11일 도로교통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40대 남성 김모 씨에게 내린 선고 내용이다. 김씨는 지난 1월10일 자정쯤 술을 마신 상태에서 창원시 의창구 용지호수 주변 도로에서 자신의 차량을 5m 정도 운전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당시 김씨의 혈중알코올농도는 면허정지(0.05~0.1% 미만) 수준인 0.072%였다.

    김씨는 사건 당일 자신이 부른 대리운전자와 말다툼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 인해 대리운전기사는 김씨의 차량을 도로에 세워두고 돌아갔다. 김씨는 이 차량을 인근 주차장으로 이동시켰다. 

    재판부가 김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이유는 무엇일까? 법원은 김씨의 행동이 자신이나 타인의 위난(危難.위급하고 곤란한 경우)을 피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가 인정한 긴급피난, 위법성 조각사유에 해당

    호 부장판사는 선고 당시 김씨의 행동이 ‘긴급피난’에 해당한다고 봤다. 호 부장판사는 “차량이 계속 도로에 세워져 있었다면 정상적 교통 흐름을 방해해 교통사고를 유발할 수 있었다”며 “당시 운전을 부탁할 지인이나 일행도 없었고, 대리운전기사를 다시 부르려면 오랜 시간 차가 도로변에 있어야 했다는 점 등을 고려했다”고 양형이유를 설명했다.

    형법 22조는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에 대한 현재 위난을 피하기 위한 행위는 상당한 이유가 있는 때 벌하지 않는다’고 규정했다.  

    우리나라 형법총론은 범죄 성립요건에 대해 △범죄행위의 구성요건에 해당하는지(구성요건 해당성) △행위자에게 책임능력이 있는지(책임능력) △행위 자체는 위법하지만 이를 불식시킬 만한 다른 조건이 있는지(위법성 조각사유) 등 세 가지를 필요로 한다. 김씨의 행위는 '위법성 조각사유' 중 하나인 긴급피난에 해당한다고 1심 재판부는 봤다.

    재판부가 무죄를 선고한 근본 원인이 “운전자와 대리기사 간의 말다툼에 있다”는 의견도 있다. 음주운전 사건 중 대리기사가 운전자와의 말다툼 뒤 차량을 일부러 이상한 곳에 세워두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것이다. 

    “대리기사와 말다툼 잦아서…”

    법무법인 ‘서울’ 서태석 변호사는 “운전자와 대리기사가 싸우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때 대리기사가 이상한 곳에 차를 세워놓고 가기도 한다”며 “그렇게 되면 추가 피해자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서 변호사는 “울산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있었는데 그 역시 무죄가 났다”며 “일반 국민 법감정으로 보면 말이 되느냐고 할 수 있지만, 더 큰 법익 침해가 발생할 우려가 있는 등 부득이한 경우 형법상 긴급피난으로 인정된다”고 설명했다.

    법조계는 이번 법원 판단을 과거 판결과 비교했을 때 이례적이라고 봤다. ‘처음 듣는 판결’이라는 말도 나온다.  

    법무법인 ‘민주’ 서정욱 변호사는 “처음 듣는 판결로 이례적이긴 하지만  아주 부당한 판결로는 보이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법리적으로 보면 정당방위는 개인적 법익에 대해서만, 긴급피난은 사회적·국가적 법익도 된다”며 “김씨가 멀리 집까지 차량을 옮긴 것도 아니고, 만취한 상황도 아닌 것으로 보여 타당한 판결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법률사무소 ‘이세’ 김기수 변호사 역시 긴급피난을 이유로 음주운전 행위를 무죄로 본 사례는 들어본 적 없다고 밝혔다. 김 변호사는 “그동안 위법성 조각사유에 해당하는 (긴급피난 등) 그런 식의 법리적 주장을 잘 안 했다”며 “그동안 정당방위 사례는 있었는데, 제3자 피해를 막기 위해 잠깐 차를 옮겨 긴급피난을 인정받은 이번 판례를 긍정적으로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