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스윙키즈' 위해 하루 6시간씩 춤 연습""도경수 보며 자극… 오정세와 함께 나머지 공부"
  • "'스윙키즈'가 탭댄스 영화라고 해서 급하게 몇 개 동작을 배워 오디션 때 선보였는데요. 이날 엄청 실수했을 거예요. 평소에도 항상 춤을 춘다고 뻔히 보이는 거짓말을 했었는데 다 들통나 버린 거죠."

    영화 '스윙키즈'에서 리듬이 폭발하는 고난도 스텝과 지팡이를 사용한 스윙 댄스를 선보인 '스윙키즈 댄스단'에 소문난 '몸치'가 두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스윙키즈 댄스단의 홍일점으로 '무허가 통역사' 역할까지 같이 한 배우 박혜수(24)는 평소 춤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온 덕분에 배우 오정세(41)와 함께 '나머지 공부'를 하기 일쑤였다고.
  • "정세 선배님은 약간 저의 라이벌이셨어요. 하위권끼리 엄청 치열한 경쟁이 있었거든요. 안무 수업이 다 끝나도 선배님과 저는 매번 연습실에 남아서 연습을 더하고 가곤 했어요. 그리고 연습실에 제가 한 시간 먼저 가면 선배님이 꼭 먼저 와 계셨어요. 제가 '언제 오셨어요?'라고 여쭤보면 '방금 왔어'라고 말씀하시는데 몸에는 땀이…. 호호."

    '스윙키즈'는 1951년 6.25전쟁 당시 종군 기자 베르너 비숍이 거제 포로수용소에서 복면을 쓴 채 춤을 추고 있는 포로들을 촬영한 사진 한 장에서 시작된 작품이다. 오직 춤에 대한 열정 하나로 손발을 맞춰가는 '포로수용소 댄스팀'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인 만큼 주연 배우들의 현란한 춤사위는 기본. 이를 위해 양판래 역을 맡은 박혜수를 포함, 5명의 '스윙키즈' 멤버들은 약 5개월 동안 하루 5~6시간씩 맹훈련을 거듭했다. 물론 예외는 있었다.
  • "거의 반칙이라고 생각해요. 경수 선배님은 촬영 전날 항상 스케줄이 있으셨어요. 그리고 스케줄 때문에 3~4일 가량 연습에 빠지신 적이 종종 있으셨거든요. 저는 그 기간 이를 악물고 하루 6시간씩 연습을 했는데, 막상 촬영에 들어가면 저보다 더 잘 추시니까. 제 스스로가 너무 싫고 미워지더라고요."

    박혜수는 "솔직히 경수 선배님은 워낙 오랫동안 춤을 추셨기 때문에 제가 따라갈 수 없는 존재라고 생각했다"며 춤 실력이 탁월한 도경수를 '길잡이' 삼아 더 열심히 연습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 연습이 4개월째 접어들자, 안되던 고난도 동작들이 하나둘 몸에 익기 시작했다. 그때부턴 정말 신이 나서 춤을 췄다는 그는 안무 선생님이 2시간만 연습하자고 하셔도 다들 '더 하자'고 졸라, 연습 시간이 무한정으로 늘어나는 일이 반복됐다고 웃음을 지어보였다.

    "촬영장에 가면 배우들이 웃으면서 탭댄스 연습을 하고 있고… 현장 자체가 너무 신나고 재미있었어요. 정세 선배님도 진짜 유쾌하시고, 경수 선배님도 은근 장난기 많으시고 웃음도 많으시더라고요. 민호씨는 '샤오팡' 분장만 해도 다들 웃음이 뻥 터졌어요. 심지어 외국 배우분인 자레드 그라임스씨는 에너지틱 그 자체였어요. 막 춤을 추시다가 그걸 넘기면, 정세 선배가 또 받아서 춤을 추시고…. 항상 그런 분위기였죠."
  • 5개월간 탭댄스를 배우며 틈틈이 캐릭터 연구에도 열을 올린 박혜수는 극 중 '양판래'와 실제 나이가 엇비슷한 외할머니를 찾아가 할머니의 어린 시절 '추억'을 공유하는 시간을 종종 가졌다. 그는 "그때는 말이지…."라고 할머니가 들려주는 생생한 경험담을 토대로 '양판래'란 여성의 전사(前事)를 차곡차곡 채워나갔다.

    "춤을 잘 추는 것만으로는 '양판래'라는 인물을 제대로 그릴 수 없겠더라고요. 제가 온전히 '양판래'가 되기 위해선 '전사'를 탄탄히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자료 조사도 많이 하고, 동시기 20대 여성의 성장기를 그린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라는 책도 읽으면서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특히 할머니로부터 구체적인 체험담을 들으니 그때 상황이 더 와닿더라고요."
  • 스윙키즈에서 백미로 꼽히는 로기수(도경수 분)와 양판래의 댄스 장면은 이렇게 탄생했다. 안무가 이란영은 국가·언어·이념을 뛰어넘어 자유를 열망하는 두 사람의 감정을 고스란히 안무로 표현하려 했다. 아무도 없는 빈 강당에서 탭슈즈를 신고 뛰쳐나와 포로수용소를 질주하는 로기수와 답답한 현실에 맞서 온 마을을 누비며 마음껏 춤을 추는 양판래의 모습은, '데이비드 보위'의 '모던 러브'의 심장 터질 듯한 사운드와 절묘하게 어우러지며 가슴 벅찬 감동을 선사한다.

    "연기를 떠나서 제일 울컥했던 순간은 '모던 러브'를 출 때였어요. 실제로 바람이 많이 부는 모래밭에서 춤을 추는데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치솟아 올랐어요. 눈물이 왈칵 쏟아지려는데 감독님이 제가 그 신에서 울어버리면 감정이 풀어져 버리고 만다고 하셔서 꾹꾹 참으면서 춤을 췄어요. 그 장면은 지금봐도 계속 울컥해요. 그때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 있거든요."
  • 박혜수는 2015년 오디션 프로그램 K팝스타 시즌 4에 출연하며 가수의 꿈을 키웠으나 아쉽게 TOP 10의 문턱에서 고배를 마신 뒤 연기자로 전향했다. 하지만 언젠간 다시 음악으로 자신을 표현하고 싶다며 '전향'이라는 단어대신 '겸업'이라는 단어를 쓰고 싶다는 욕심 많은 배우다.

    그는 자신의 첫 영화 주연작인 '스윙키즈'가 배우로서 터닝 포인트가 될 것 같다면서 "촬영을 모두 마친 뒤 제가 이 작품을 어떻게 시작했고 어떤 마음으로 임했는지를 되돌아보니, 비로소 이렇게 해도 되겠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그동안 자신감 부족으로 갈피를 못잡고 있었는데요. 이 작품을 통해 이렇게 하면 되겠다는 확신을 얻게 됐어요. 지금은 제가 배운 것을 토대로 경험치를 쌓아가는 과정을 밟고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다음 작품을 할 때엔 이번 경험이 엄청난 자양분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렇게 조금씩 한발한발 성장하는 배우가 되고 싶습니다."

    취재 = 조광형 기자
    사진 = 정상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