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오슝 시장 출마한 ‘한국유’…전두환 前대통령 닮은 외모에 카리스마로 인기
  • 오는 24일 대만 지방선거가 실시된다. 매 4년마다 실시되는 이 선거는 ‘九合一 선거’로 불린다. 대만 행정구역의 시·현장, 시·현의원, 기초단체장과 촌·이장 그리고 원주민 대표 등 총 1만1047명을 선출한다. 그 외에 원전 폐기, 2020년 도쿄올림픽 ‘대만’ 명의 출전, 동성혼 등에 관한 국민투표도 함께 실시한다.

    이번 선거는 대만 제2의 도시 가오슝(高雄) 시장에 출마한 야당 중국 국민당 한궈위(韓國瑜, 이하 ‘한국유’로 표기) 후보의 독무대가 되고 있다. 한국유 후보는 3선 입법위원(국회의원)을 지낸 후 타이페이 농산물 시장 사장을 거쳤다. 부친은 2차 대전 당시 국민당군으로써 인도에서 일본군과 전투를 한 적이 있는 국민당 가문이다.

    한국유 후보가 출마한 가오슝을 비롯한 대만 남부 지역은 집권 민주진보당(민진당)의 텃밭이다. 한 후보는 애당초 당선가능성이 희박한 소모성 후보였으나, 정치인의 상식을 깨는 화려한 제스처와 스킨십, 性的 농담도 마다하지 않는 거침없는 언변과 전두환 전 대통령과 흡사한 외모를 바탕으로 한 카리스마로 인기몰이에 성공, 10월 중순 여론조사에서 민진당 첸치마이(陳其邁) 후보를 추월하기 시작했다. 대만 신문들은 지난 8월부터 선거보도를 하며 ‘한국유’를 자주 언급했다. 필자도 처음에는 대만 선거에서 한국이 이슈가 됐다고 착각했을 정도다.

    이처럼 한류(韓流)로 불리는 한국유 돌풍이 대만 전역에 불면서, 국민당 후보들은 자기당 시장후보를 제쳐놓고 한국유 후보와의 인증 샷을 선거벽보로 내걸고, 차이잉웬(蔡英文)총통과 다른 선거구의 민진당 거물후보들은 한류를 막아 보려 가오슝의 민진당 지원 유세에 집중하는 등 이상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19일 열린 TV토론회는 ‘쌍웅대결 세기의 토론’이라 불리며 총통선거 토론회를 넘어서는 관심을 모았으며, 유튜브와 페이스북 생중계 시청회수만 34만 건을 기록했다.

    지방선거 선거운동이 한창인 11월 초 필자는 대만 지방선거의 여러 후보들을 찾아갔다.  타이페이의 숙소에서 TV를 켜니 온통 한국유 후보 소식뿐이었다. 당일 신문에는 한류 돌풍으로 인해 타이페이 시장 국민당 후보가 현직 시장인 무소속 커원제(柯文哲)후보를 위협하고 있다는 내용이 나왔다.


  • 필자는 사전에 페이스북으로 접촉한 후보 사무실이나 연설회에 참가하는 식으로 후보들을 찾아갔으며, 타이페이 도착 직후 한류 현상을 직접 확인하고 급히 가오슝 방문을 일정에 추가했다. 취재 첫날 찾아간 후보는 대만 카스테라 본고장으로 유명한 타이페이 교외 신베이(新北)시 탐수이(淡水)구에 출마한 민진당 정위언(鄭宇恩) 시의원 후보였다. 첫 취재여서 미국 유학경험이 있는 후보로 골랐다. 미국 LA의 USC 로스쿨을 졸업하고 뉴욕주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정위언 시의원 후보는 지난 2014년 지방선거 당시 28살 나이로 신베이 시의원 1등으로 당선됐다. 이번 선거는 재선에 도전하는 것이었다.

    필자가 후보 사무실에 찾아갔을 때 정 후보는 마침 전기스쿠터를 타고 차량유세를 나서려던 참이었다. 그는 “내가 전기스쿠터를 차량유세에 사용하는 첫 후보”라며 이를 통해 환경문제에 관심 갖는 후보임을 환기시키고, 스쿠터를 많이 이용하는 젊은 층에게 어필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그는 자신이 당선되면 젊은이들의 창업과 체육활동을 돕고 싶다고 말했다. ‘한류’ 돌풍에 관한 질문에는 “한류가 신베이까지 올 일은 없다”고 일축했다.

    젊지만 재선을 노리는 후보답게 그의 선거 사무실에는 가족들을 비롯해 많은 자원봉사자들이 돕고 있어 활력을 느낄 수 있었다. 정 후보의 스쿠터 유세에서는 틀에 얽매이지 않는, 대만 특유의 자유로운 선거 분위기가 풍겨 나왔다.

    필자는 이어 고속철을 타고 가오슝으로 향했다. 같은 날 저녁 現가오슝 시장 민진당 첸치마이 시장 후보의 유세가 있었는데, 민진당 관계자의 도움을 받아 유세장 내외부 상황을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이날 유세에는 민진당의 본거지라는 가오슝 답게 6만 명이 몰려들었다. 이 유세만 보면 한국유의 ‘한류’는 느낄 수 없었다. 군중들은 아무리 봐도 동원된 것으로 보이지 않았으며, 한국에서 80~90년대 초반에 보던 대규모 선거집회 이상의 파워를 느낄 수 있었다. 유세장 주변에는 급진 대만독립 성향의 군소정당 후보들이 나와 자신들을 홍보하고 있었다.

    필자는 유세장에서 선정적인 벽보로 화제를 몰고 있는 민진당 가오슝 시의원 저우링웬(周玲妏) 후보를 만났다. 저우 후보는 민주 운동가이자 민진당 정치인 아버지를 둔 2세 의원이며, 이번에 4선에 도전한다. 그는 인터뷰에서 “아버지의 유지를 계속해서 이어받고 싶다. 당선되면 젊은 층의 생업문제에 더욱 관심을 갖겠다”면서, 한류에 대해서는 “여기는 민진당의 본거지이다. 인터넷에서는 한류가 있을 수 있어도 실제 가오슝 바닥 민심은 다르다”고 주장했다.


  • 유세장에는 가오슝 지역의 모든 민진당 후보들과 민진당 소속인 현직 가오슝 시장이 나와 연설했다. 첸치마이 시장후보는 의사이자 3선 입법위원이며, 아버지도 입법위원을 역임한 정치가문 출신이다. 이지적이고 세련된 외모가 특징으로, "여기는 우리 본거지 가오슝이다. 내가 더 나은데 웬 한류냐”는 식의 차분하고 당당한 태도를 느낄 수 있었다. 연설에서는 "한국유 후보는 가오슝 인구를 재임기간 중 500만 명으로 늘리겠다고 한다(현재 인구 277만 명). 이런 비현실적인 소리가 어디 있나"고 성토했다.

    유세장에서 만난 민진당 입법위원 자오텐린(趙天麟)은 필자에게 “대만은 (중국과 달리) 인터넷 자유가 있다. 그런데 중국이 이를 악용해서 한국유 돌풍을 조장하고 있다. 오늘 유세장에서 청중들의 열의를 보라. 역대 선거에서 가오슝 시민들은 이성적인 선택을 해 왔다”며 승리를 자신했다. 실제 대만 차이잉웬(蔡英文) 총통은 이와 관련해 여러 번 중국에 대해 인터넷 여론조작을 비난한 바 있다.

    가오슝 시장은 1998년부터 민진당이 국민당에 시장 자리를 내준 적이 없다. 민진당의지지 기반인 가오슝, 타이난(台南)등이 있는 대만 남부는 2차 대전 전까지 중국 복건성에서 대만으로 이주한 중국 이민을 일컫는 본성인(本省人)이 다수 거주하며, 본성인 역시 민진당의 지지 기반이다. 이날 첸치마이 후보는 연설에서 시종일관 대만 공용어인 표준 중국어가 아닌 본성인의 언어인 대만어(복건어의 파생 언어)를 사용했다.

    필자는 다음날 일정을 한국유 후보를 비롯한 국민당 후보들을 찾아가 한류를 직접 확인하는 것으로 조정했다. (2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