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 뒤집 듯 번복되는 재판부 판결…"대법원에서는 무죄 기대" 주장
  • ▲ '<제국의위안부>소송 지원 모임'이 7일 오전 서울시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출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뉴시스
    ▲ '<제국의위안부>소송 지원 모임'이 7일 오전 서울시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출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뉴시스

     

    "저는 문화인류학을 공부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학생들에게 처음 강의할 때 꼭 이런 얘기로 시작합니다. '내가 세상을 어떤 식으로 보느냐에 따라 세상은 달리 보인다는 것을... 있어서 보고, 보기 때문에 생긴다. 객관과 주관이라는 게 나뉘어 있는 게 아니라,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려고 하는 게 인간의 조건'이라는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중략) 한 개인이 속한 집단이 판단의 기준을 제공하고, 집단이 보고싶은대로 보게끔 하는 것. 지금 세상에서 객관적인 기준이란 건 언제든 바뀔 수 있습니다. (중략) 한국의 맹목적인 민족주의·애국주의. 글로벌 시대에서 우리가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가. 세계의 사법부와 학자들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강신표 인제대 명예교수)

    위안부 할머니들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혐의로 2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박유하 세종대 교수의 소송을 지원하는 모임이 출범했다.

    <제국의 위안부> 소송 지원 모임은 7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출범 기자회견을 열고 "(1심 무죄판결을 뒤집은) 2심 재판부의 판결은 학계·문화계에 중대한 위기를 초래하는 것이며, 다른 의견을 말했다는 이유로 범죄자의 사슬에 묶이는 일이 발생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 롤러코스터 타는 재판부 판결, 논란의 <제국의 위안부>

    지난 2013년 7월 출간된 박유하 교수의 <제국의 위안부>는 '조선인 위안부 피해자였지만 식민지인으로서의 협력자이기도 했다', '강제연행이라는 국가 폭력이 조선 위안부에 행해진 적은 없다' 등의 표현으로 위안부 명예훼손·역사왜곡 등 논란에 휘말리며 수년간 법적 분쟁이 이어지고 있는 도서다.

    2014년 6월 위안부 할머니들은 박 교수와 저서에 대한 출판 금지 가처분·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고, 8개월 뒤 서울동부지법이 가처분신청을 일부 받아들이며 저서 34곳의 표현을 삭제하라고 판결했다.

    이후에도 해당 문제를 두고 수년간 줄소송이 이어졌지만 동부지법은 "저자에게 명예훼손의 의도가 없고 검찰이 명예훼손의 증거라고 적시한 문구는 증거로서 유효하지 않다"며 2017년 1월 박유하 교수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하지만 지난 10월 2심 재판부는 "저자가 허위사실을 적시했고 명예훼손에 고의가 있었다"고 판단, 박 교수에게 1,000만원의 벌금을 부과했다. 재판이 거듭될 때마다 재판부 판단이 달라지고 있는 셈이다.

    ◆ '여론재판의 전형'인가, '허위 사실 적시'인가 

    <제국의 위안부> 소송 지원 모임은 "아직도 학계에서 의견이 분분한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올바른 인식과 허위 인식이라는 것을 재판부가 규정하는 것은 특정한 의도를 지닌 학문이나 독서를 장려하는 것은 아닌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모임의 김향훈 변호사는 "대한민국 재판이 여론에 휩쓸리는 경우가 있는데, 국민들의 열망을 반영하기 위해 재판부가 어느 정도 담아주는 것이 꼭 나쁘다고는 할 수 없다"고 했다. 이어 "하지만 이번 판결은 극단적 민족주의와 광기어린 반일(反日), 거기에 휩쓸려 법리적 학문적 판단 없이 여론에 좌우된 여론재판의 전형이 아닌가 싶다"고 주장했다.

    쟁점은 2심 재판부가 위안부 강제 동원을 인정한 유엔보고서와 고노(河野) 담화를 "박 교수가 허위 사실을 적시했다"는 근거로 제시한 것이 과연 합리적인 법리 판단이냐는 것.

    김향훈 변호사는 "유엔보고서 내용과 다르다는 이유로 허위 적시·고의라면 앞으로 학문 저작을 할 때 모두가 유엔보고서를 뒤져봐야 할 것"이라며 "이런 식의 재판은 있을 수 없고 대법원에서는 무죄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고 했다.

    김학성 변호사도 "유엔보고서는 그 시점의 의견을 일부 반영해서 만들어진 것으로 그게 영원불변의 진실이란 보장은 없다"며 "학문의 자유가 인정되지 않으면 자기 검열이 대상화된 일종의 파쇼 국가 상태로 귀결되고 이런 위험을 감지했기에 박유하 교수의 논지와 관계 없이 이 자리에 선 것"이라고 말했다.

    ◆ 노암 촘스키·오에 겐자부로 등 해외 명사 동참, 모금 운동까지

    이 모임에는 국내외 각계 인사 98명이 이름을 올리고 있다.

    안병직 서울대 교수, 황영식 한국일보 주필, 조용래 국민일보 편집인을 비롯해 노벨문학상 수상자 오에 겐자부로, 노암 촘스키 MIT 교수 등 해외 유수의 명사들도 모임에 동참하고 있다.

    이들은 "박유하 교수가 처음 형사기소됐을 때, 학계를 비롯한 사회 각계의 많은 분들이 사태의 심각성을 이해하고 사법부의 현명한 판단을 촉구하는 탄원에 서명했으며, 1심 무죄 판결은 노력이 헛되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는 결과였다"라고 했다. 아울러 "하지만 2심의 시대착오적 유죄 판결은, 다른 의견을 용납하지 않는 사회 권력과 억압성을 명백히 보여주고 있다"고 주장했다. 

    모임은 "역사와 정치의 어떤 문제들에 대해서 다르게 생각할지라도 그 생각을 말할 권리는 보호돼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기본적인 생각이며, 박 교수를 돕기 위한 모금 활동도 병행할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