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정배가 '연대' 압박 핑계로 활용하면, '이당' 컷오프가 '저당' 깰 수도
  • ▲ 지난 4일 열린 국민의당 선거대책위원회의에서 안철수 대표가 따로 떨어져 있는 가운데, 김한길 상임선거대책위원장과 천정배 대표가 뭔가 대화를 나누며 입장하고 있다. ⓒ뉴데일리 정재훈 기자
    ▲ 지난 4일 열린 국민의당 선거대책위원회의에서 안철수 대표가 따로 떨어져 있는 가운데, 김한길 상임선거대책위원장과 천정배 대표가 뭔가 대화를 나누며 입장하고 있다. ⓒ뉴데일리 정재훈 기자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의원의 '컷오프'가 엉뚱하게도 국민의당을 쪼개놓을 수 있다는 관측이다. 이러한 관측이 현실화된다면 '당대포'를 자처했던 정청래 의원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제대로 된 포격을 상대에게 가하는 꼴이 되는데, '가시는 순간까지' 정치권에 분란을 일으키는 게 과연 '트러블메이커'답다는 말이 나온다.

    더민주 홍창선 공천관리위원장은 10일 오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 마포을을 전략공천 지역구로 지정한다고 밝혔다. 별도로 컷오프 명단을 따로 발표하지는 않았지만, 더민주 측에서 예고한대로 자연스럽게 정청래 의원의 컷오프 사실이 드러난 셈이다.

    정청래 의원은 지난해 2·8 전당대회에서 '당대포'가 되겠다며 최고위원으로 선출된 뒤, 당 내부를 향해서만 치열한 포격전을 전개해왔다. 특히 이른바 '5·8 참사'라 불리는, 지난해 5월 8일 주승용 수석최고위원을 향한 '공갈' 발언으로 당내 계파 갈등을 격화시켜 분당(分黨)으로 가는 단초를 제공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 때문에 국민의당 문병호 정치혁신특별위원회 수석부위원장이 지난 7일 발표한 '패권친노·무능86' 5적(五敵) 명단에도 이해찬·이목희·전해철·김경협 의원과 함께 '무능86'의 대명사로 당당히 선정됐다.

    정청래 의원이 컷오프된 것 자체는 사필귀정(事必歸正)이지만, 정작 희한한 후폭풍은 다른 곳에서 불어올 수 있다는 우려가 야권 일각에서 제기된다. 잘못 굴려진 볼링공이 옆 레인의 핀을 쓰러뜨리듯, 정청래 의원의 컷오프가 소속 정당도 아닌, 국민의당을 깨놓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것이다.

    더민주가 전날 발표한 단수공천 및 경선 지역 발표에 따르면, '비노 세작' 발언으로 물의를 빚은 김경협 의원이 컷오프되지 않고 경선 대상에 포함됐다. 이에 국민의당 김한길 상임선거대책위원장과 천정배 대표 등 이른바 '통합·연대파' 관계자들은 큰 실망감을 느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면서도 한 관계자는 일부 매체에 "내일(10일) 발표될 컷오프에 기대를 걸고 있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에게 5적에 포함됐던 정청래 의원의 컷오프는 '통합·연대' 논의의 불씨를 되살리는 핑계를 제공해주는 꼴이 될 수 있다.

    일단 국민의당은 공식적으로는 정청래 의원의 컷오프가 친노패권주의의 청산이 아니라며 선을 긋고 있다.

    국민의당은 더민주의 공천 발표 직후 김정현 대변인 명의의 논평을 내고 "더민주의 기득권 핵심을 이루는 친노·86 인사 중 성골들은 그대로 살아남고 일부 눈 밖에 난 인사들만 쳐낸 교묘한 짜깁기 명단"이라며 "친노패권주의 청산의 공천이라고 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며, 오히려 친노패권주의가 확대재생산된 공천"이라고 비판했다.

  • ▲ 지난 7일 열린 국민의당 선거대책위원회의에서 천정배 대표가 공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데일리 정재훈 기자
    ▲ 지난 7일 열린 국민의당 선거대책위원회의에서 천정배 대표가 공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데일리 정재훈 기자

    총선승리·정권교체를 위한 패권친노 청산을 일관되게 주장해온 문병호 의원도 성명을 내고 "공천에서 탈락한 현역 의원 면면을 보면, 국민의당 정치혁신특위가 발표한 친노패권 핵심인사는 한 명도 없다"며 "국민의 기대에 턱없이 못 미치는 내용이라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고 개탄했다.

    문병호 의원은 "정청래 의원은 낡은 운동권 진보일 뿐 친노 핵심은 아니다"라며, 함께 컷오프된 최규성·강동원·윤후덕 의원도 범친노로 분류되기는 하지만 친노 핵심은 아니라고 단언했다. 특히 부좌현 의원의 경우 "원래 (국민의당) 천정배 대표와 가까운 분"이라고 의혹을 제기했다.

    아울러 "낡은 운동권 진보로 규정했던 정청래 의원만 막말 파동 끝에 공천에서 배제됐다"며 "이해찬·이목희·김경협·전해철 의원은 여러 문제에도 불구하고 경선 대상이 되거나 거뜬히 살아남은 것으로 보인다"고 꼬집었다.

    따라서 "김종인 위원장의 국민의당에 대한 통합·연대 제안은 빈말이었음이 드러났다"며 "더민주가 친노패권세력·낡은 운동권 진보를 청산할 의지가 빈약한 것으로 드러난 만큼 우리가 가야 할 길은 분명하다"고 '통합·연대 논의'에 쐐기를 박았다.

    하지만 이로서 '통합·연대 논의'가 완전히 수그러들는지는 미지수라는 지적이다. 김한길 위원장과 천정배 대표의 내심은 이미 통합·연대 쪽에 기울어 있고, 친노패권 척결은 이를 목소리 높여 주장하기 위한 핑계 찾기에 불과하다는 설이 파다하기 때문이다. 이들에게는 정청래 의원이 컷오프됐다는 사실만이 중요할 뿐 진정한 패권 청산은 아무래도 상관 없을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천정배 대표는 전날 최고위원·선대위원 회의에서 "수도권 연대가 이뤄지지 않으면 중대결단을 하겠다"고 노골적으로 분당 가능성을 거론하며 겁박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 국민의당 관계자는 "천정배 대표가 옛날 통합신당·신민당·원외민주당을 배신하고 돌출 행동을 벌였던 전력이 다시 떠오른다"며 "천정배 대표가 하도 광주 현역을 물갈이해야 한다고 고집해서, 함께 탈당한 동지들 사이의 틈이 벌어지고 당의 전열이 흐트러지며 지지도가 추락한 것인데, 당을 전부 헤집어 망쳐놓고 이제 자기가 뛰어나가겠다고 하면 세작(細作)도 이런 세작이 또 있겠느냐"고 분개했다.

    정치권 관계자는 "정청래 의원이 컷오프된 것을 천정배 대표가 '야권 연대'를 관철하려는 압박의 명분으로 삼을 경우, 국민의당의 균열이 더욱 심화될 것 같다"며 "'정청래 컷오프'가 엉뚱하게 국민의당을 깨놓는 지렛대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