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정배, 국민의당~국민회의 통합 때 발표문까지 끌어내 견강부회
  • ▲ 9일 서울 마포 국민의당 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선대위원 회의에 참석한 박지원 의원이 농담으로 말문을 열자 참석자들이 모두 폭소하고 있다. ⓒ뉴시스 사진DB
    ▲ 9일 서울 마포 국민의당 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선대위원 회의에 참석한 박지원 의원이 농담으로 말문을 열자 참석자들이 모두 폭소하고 있다. ⓒ뉴시스 사진DB

    총선이 불과 35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부질없는 '야권연대' 논의의 불씨가 국민의당에서 꺼지질 않고 있다. '뱃사공'(지도부)들은 의견이 엇갈리고 '승객'(예비후보들)들은 흔들리고 있어, 배가 어디로 향할지 모르겠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는 9일 최고위원·선대위원 회의에서 19대 총선과 18대 대선의 패배를 불러왔던 '야권통합'을 '옛날식 정치'에 빗대 "옛날식 정치로는 미래로 가지 못한다"며 "국민의당의 존재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고 단언했다.

    하지만 안철수 대표와 함께 당의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천정배 대표는 지난 1월 25일 자신이 위원장을 맡고 있던 국민회의 창당준비위원회가 국민의당 창당준비위원회와 통합할 때의 '흘러간 옛 이야기'까지 새삼 끄집어내며, 또 연대 가능성을 열어놓는 주장을 펼쳤다.

    천정배 대표는 "국민의당 창준위와 내가 위원장이었던 국민회의 창준위가 통합을 선언할 당시, 양측의 최고책임자가 직접 작성한 발표문에도 '다가오는 총선에서 박근혜정부·새누리당 정권의 압승을 저지하기 위해 통합한다'고 명시돼 있다"고 말했다.

    이어 노골적으로 옆자리의 안철수 대표를 겨냥해 "모든 당원, 특히 지도부를 이 과제를 완수하는데 비상한 각오로 총력을 기울이고, 필요한 희생과 헌신을 마다하지 않아야 한다"며 "새누리당의 압승을 나몰라라 하거나 본의 아니게 어부지리를 초래한다면 역사에 크나큰 죄를 짓는 일이 될 것"이라고 강변했다.

    그러자 통합의 큰 물줄기 중 한 갈래를 이뤘으며 현재의 국민의당이 성립되게끔 한 '기둥' 중의 한 명인 박주선 최고위원이 즉각 반박에 나섰다. 박주선 최고위원은 더불어민주당 현역 국회의원으로서 탈당 1호이며(천정배 대표는 국회의원이 아닌 신분에서 탈당한 뒤, 비로소 국회의원에 당선됨), 통합신당의 창당을 추진하던 중 국민의당에 합류한 바 있다. 또, 박주선 최고위원이 국민의당에 합류할 때에도 비슷한 취지의 발표문이 작성됐었다.

    박주선 최고위원은 "김종인발(發) 정치적 지진에 피해를 가장 많이 받고 있는 것이 우리 국민의당"이라며 "내진 설계가 전혀 되지 않은 정당이 아닌가 의심받을 정도로 많이 흔들리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어 당의 핵심 지지 기반인 호남에서 엄청난 동요와 함께 "통합을 하려면 뭣 때문에 신당을 만들었느냐"는 중앙당·지도부를 향한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고 전했다.

    몇몇 당 동료들이 마치 친노 청산이 이뤄지면 통합이나 연대를 할 수 있는 것처럼 핑계거리를 만들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더민주는 구조적으로 친노 청산이 불가능하다"고 진단했다. 일부 국회의원을 컷오프하더라도, 지역위원장·자치단체장·지방의원 등의 자리 곳곳에 친노가 포진해 있어 친노를 청산할 수 없다는 것이다.

    박주선 최고위원은 "친노 청산 없이는 야권의 정치 발전이 있을 수 없다"며 "국민의당은 '독재 대 반독재' 시절의 발상과 전략인 '야권이 전부 뭉쳐서 여권과 대항해야 한다'는 논리보다도 한 단계 업그레이드돼야 한다"고 천정배 대표의 주장을 논파했다.

    이처럼 합류파들은 각자 제 목소리를 높이고, 천정배 대표는 과거 있었던 합의문 문안 중에 자신에게 유리한 대목만 끌어내 견강부회하는 등 '사공 없는 배'처럼 국민의당이 위태로운 상황이다. 이날 최고위원·선대위원 회의에 앞서 배석했던 박지원 의원의 농담이 마냥 농담으로 들리지만도 않는다는 말이 나온다.

    입당 이후 이날 당사를 처음 방문한 박지원 의원은 "오늘 처음 당사에 왔는데 의사봉이 있고 가운데에 앉으라고 해서 '이제부터 내가 당대표가 됐구나' 했는데 들어보니 인사말만 하라고 해서 대단히 섭섭하다"며 "기왕이면 이 자리를 날 줬으면 좋겠다"는 농담으로 좌중의 폭소와 박수를 이끌어냈다.

    그런데 이날 박지원 의원이 인사말을 하고 퇴장한 이후 국민의당 회의 석상에서 오고 간 공개적인 갑론을박을 듣노라면 국민의당에 대표가 존재하기는 하는지, 당론이 있기는 한 것인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가 없다. 이미 지난 4일 저녁 최고위원·국회의원 연석회의를 열고 통합·연대 문제는 말끔하게 정리를 한 것인데, 지겹도록 다람쥐 쳇바퀴 돌듯 논의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박지원 의원이 "이 자리(당대표)를 날 줬으면 좋겠다"고 한 말은 물론 농담이었겠지만, 일면 대표의 리더십이 완전히 상실돼 있는 국민의당의 상황을 꼬집은 것이라는 해석도 이러한 맥락에서 제기된다.

    한편 박지원 의원은 이날 인사말에서 "제1야당 대표의 진정성 없는, 느닷없는 통합 제의에 우리 당이 약간 흔들린 것은 유감"이라며 "친노패권주의의 청산은 미흡하고, 언제든지 그들은 나올 준비가 돼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동석해 있는 최고위원·선대위원들을 향해 "지도부가 약간 흔들리니까 일선에 있는 광주·전남의 예비후보들은 엄청나게 흔들렸다"며 "국민·당원·예비후보들이 흔들림없이 오직 앞으로 35일간 진군할 수 있도록 정확한 방향을 제시해달라"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