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쟁기념관은 시베리아 항일운동의 전설 김경천(金擎天) 독립운동가를 2016년 ‘1월의 호국인물’로 선정, 발표했다.

    1888년 태어난 김경천 선생의 본명은 김광서이다. 관비 유학생으로 일본 육군사관학교를 졸업, 기병 장교로 근무했다. 1919년 2·8독립선언이 일어 나자 수 년 동안 생각해오던 일본 군대 탈출을 감행했으며, 6월 초 광복 군 총 사령관 지청천과 함께 만주로 망명하여 대한독립청년단에 가입해 활동했다.

    이후 서간도의 신흥무관학교에서 교관으로 근무했고, 지청천, 신동천 등 3인과 함께 남만주 3천(三天)으로 불리며 만주지역 항일운동을 주도했다. 이후 무기구입을 위해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이동해 독립운동을 전개했지만 조선인에 대한 일본군의 감시가 심해져 활동이 어려워졌다.

    산림지대인 수청지역으로 이동했으나, 당시 그 지역도 일본의 조정을 받는 중국계 마적 때문에 한인동포들의 피해가 컸다. 수청지역의 창해청년단에서 총사령관으로 활동하면서 마적 소탕에 큰 기여를 했고, 이후에도 수청 고려의병대, 고려혁명군 등에서 활동하는 등 러시아지역 항일투쟁을 선도했다.

    특히 김경천 장군은 기병과 출신으로서 시베리아에서 투쟁할 때 백마를 타고 기병부대를 주로 지휘했기 때문에 ‘하얀 말을 타고 만주 시베리아를 누빈 항일영웅’으로서 전설적인 인물로 불리는 등 명성이 높았다. 1937년 스탈린정권의 강제 이주 정책에 반발했다가 간첩죄로 체포되었으며, 1941년 독소전쟁 발발 이후 시베리아로 이감되어 꼬미자치소비에트 공화국 아르항겔스코에주 금고지에서 1942년 심장질환으로 사망했다.

    정부는 고인의 전공을 기려 1998년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오는 7일 전쟁기념관 호국추모실에서는 유족 및 유관단체 주요 인사가 참석한 가운데 고인을 추모하는 현양행사가 거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