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탁한 정치인 중 대통령 2명 배출… 노무현으로부터는 'YS 시계' 농락당하기도
  • ▲ 김영삼 전 대통령과 이명박 전 대통령. ⓒ뉴시스 사진DB
    ▲ 김영삼 전 대통령과 이명박 전 대통령. ⓒ뉴시스 사진DB


    22일 새벽 영면에 든 故 김영삼 전 대통령(YS)은 생전에 인재를 기용하는 탁월한 능력을 가졌다는 평을 들었다.

    만 26세에 국회에 입성하고 '40대 기수론'을 내세워 젊은 시절부터 대권 주자에 도전할 만큼 일찍부터 오랫동안 정치를 해왔기에 수많은 사람들을 정계에 입문시켜왔고, 동시에 자신이 세운 사람들로부터 배신당하거나 무시당하는 일들도 많이 겪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 故 노무현 전 대통령, 이회창 총재 등이 그렇다.

    현대그룹 사장이던 이명박 전 대통령은 14대 총선이 치러진 1992년 3월, YS의 비례대표 발탁으로 국회의원 배지를 달았다. YS가 이명박 전 대통령을 영입한 이유는 같은 해 치러질 예정이던 대선에서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과의 경쟁을 염두한 것이었다.

    현대건설 소속 인재를 데려와 정주영 명예회장의 대선 출마를 만류하려는 계획이었다. 정주영 명예회장이 만든 통일국민당이 아닌 민자당으로 들어간 이명박 전 대통령은, 이 때문에 논란의 도마 위에 오르기도 했다.

    이후 YS는 자신을 도운 이명박 전 대통령이 대선에 출마할 당시 지지 발언을 하기도 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2007년 박근혜 대통령과 대선 후보 경선을 벌이던 상황에서 "대통령은 성인군자를 뽑는 게 아니라 일 잘하는 사람을 뽑는 것"이라며 이명박 전 대통령을 우회적으로 치켜세웠다.

    YS는 이명박 전 대통령 대선 캠프에 당시 친박계 인물이던 김덕룡 의원을 끌어들이기도 했다. 이외 민주계 인사들도 직접 설득해 이명박 전 대통령을 돕도록 했다. 그러나 이명박 전 대통령은 다음 총선에서 김덕룡 의원을 공천에서 떨어뜨렸다. 이에 YS는 "인간적으로 할 일이 아니다"라고 분개했다.

  • ▲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당시 조문하고 있는 김영삼 전 대통령. ⓒ뉴시스 사진DB
    ▲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당시 조문하고 있는 김영삼 전 대통령. ⓒ뉴시스 사진DB

    故 노무현 전 대통령도 YS를 배신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부산에서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던 도중 YS의 선택을 받아 정치권에 들어왔다. 한때는 YS의 후임이라고 불릴 정도로 촉망을 받던 때도 있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YS를 배신한 건 1990년이다. 1987년 대선에서 대권을 잡은 집권 민주정의당은 이듬해 치러진 13대 총선에서 과반 의석을 확보하는 데 실패했다. 이에 진행된 대책이 노태우 전 대통령의 민주정의당과 YS의 통일민주당, 김종필 전 국무총리(JP)의 신민주공화당을 합당해 민주자유당을 만든다는 '보수대연합'이었다. YS는 이에 합류해 민자당 창당의 주역이 됐지만, 3당 합당에 반대하던 노무현 전 대통령은 결국 YS를 배신하고 갈라서게 됐다.

    이후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2년 새천년민주당의 대선 후보로 선출되자, 부랴부랴 그 해 4월 30일 12년 만에 상도동 자택을 찾아 "내가 (김영삼 전 대통령을) 비난하고 다닐 때는 시계를 풀어서 장롱 안에 넣어두기도 했지만 (김영삼) 총재님 생각날때는 꼭 차고 다녔다"며 "이것이 총재님이 선물해주셨던 시계"라고 새삼 차고 온 'YS 시계'를 보여주면서 지지를 호소하는 등 목불인견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 ▲ 김영삼 전 대통령과 이회창 전 총재. ⓒ뉴시스 사진DB
    ▲ 김영삼 전 대통령과 이회창 전 총재. ⓒ뉴시스 사진DB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도 YS로부터 등을 돌린 인물 중 하나다.

    판사로 승승장구하던 이회창 총재를 기용한 이가 YS다. YS는 이 총재를 감사원장에 앉힌 후 1993년에는 국무총리까지 만들었다. 당시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으로 쌀 시장을 개방해야 했던 정부는 반발 여론을 우려하던 중, 국민들로부터 신망이 두텁던 이회창 총재를 총리로 앉힌 것이다.

    그러나 YS와 이회창 총재의 관계가 부드럽지만은 않았다. 이회창 총재는 자신의 주장이 강했던 만큼, YS의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부분들이 발생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에 YS는 이 총재를 총리 임명 4개월 만에 쫓아냈다.

    벌어졌던 둘의 관계는 이후 1996년에 다시 접붙는다. 정권 재창출을 준비하던 YS가 이회창 총재를 한나라당에 입당시킨 것이다. 하지만 이번엔 이회창 총재가 YS에게 반격을 시도했다. 1997년 대선 후보로 오른 이회창 총재는 공개적으로 YS의 탈당을 요구했다.

    이에 YS는 이회창 총재의 경쟁자였던 새누리당 이인제 최고위원(현재)을 지지하는 길로 들어섰다. 이러한 여권이 분열은 결국 대권이 최대 라이벌이던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넘어가는 결과를 낳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