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國定이냐 아니냐 이전에 콘텐츠가 문제
      
    검인정 국사교과서 제도를 옹호하는 쪽이 사용하는 또 하나의 도구는
  • “국정교과서는 나쁘다”
    고 하는 명분이다.
    이 명분에는 비단 [민족해방 민중민주주의] 집단 뿐 아니라, 비(非)좌파 리버럴 일부도 가세하고 있다.
 
[국가가 관장하는 단일 국사교과서]...라고 하면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필자도 원칙적으로는 마음에 찰 리가 없다.
필자는 학술-문화에 대한 국가통제를 결코 좋아하지 않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검인정 마당이 온통 [민족해방 민중민주주의] 역사운동가들에게 먹혀버리고 악용되고 있다면?
그리고 정부가 그 [악용된 검인정] 제도가 양산한 [왜곡된 역사교과서]를 대신해 균형 잡힌 새 국사교과서를 만들겠다고 한다면?
 
그럴 경우라면 필자는 불가불 정부의 국정화 계획을 차선책으로서 선호한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왜?
핵심적인 문제는 교과서의 콘텐츠이지 검인정이냐, 국정이냐가 아니라고 보기 때문이다.

제도 자체로서는 검인정이 국정보다 아무리 진일보 한 것이라 해도 그것이 만약 우리 현대사를 폄하하는 도구로 쓰일 뿐이라면 그 따위 검인정은 버려도 좋다.

반면에 제도 자체로서는 국정이 아무리 검인정보다 뒤쳐진 것이라 해도 그것이 만약 우리 현대사의 왜곡을 시정하고 공정하게 서술하는 도구로 쓰인다면, 그런 국정은 고육책으로서 취한대서 반드시 나쁘다 할 수만은 없다.
 
우리는 물론 자유와 자율의 마당을 아무리 열어도 전체주의와 전체주의 아류인 [민족해방 민중민주주의] 따위가 그 자유-자율의 마당을 점령해버릴 수 없을 만큼 충분히 성숙한 자유민주주의 선진국을 지향해 나아가고 있다.

그러나 검인정 제도 하에서 국사교과서의 집필, 출판 유통의 전 과정을 전체주의 아류인 [민족해방 민중민주주의] 집단이 온통 장식해버린 현실을 보면서 “아, 우리 형편으론 시장만으로는, 또는 자유방임주의로만은
자유민주주의를 지킬 수 없구나”
하는 것을 새삼 절감하게 된다. 
 
이 절감 때문에 정부는 국사교과서의 국정화를 선택한 것이고, 이 조치는 일종의 [시장의 실패에 대한 국가의 개입]이라는 차원에서 그 정당성의 근거를 부여받을 수 있다고 생각된다.
 
검인정 옹호론자들 중 좌파의 경우는 ”국가에 의한 통제, 국가가 시행하는 획일화에 반대한다“고 말할 자격이 없다.
그들이야말로 시장자율이 아닌, 국가개입과 국가통제 만능주의 그 자체인 까닭이다.
 
국정화 반대론자들 중 리버럴의 경우는 그러나, 그들의 반대의 논리와 [양심의 자유] 자체는 존중받을 수 있다.
그러나 국정화를 신인(信認)할 수는 없다 해도, 현안은 어디까지나 검인정 국사교과서들이 너무 엉터리이고 해악적이라는 콘텐츠의 문제임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국정이냐 아니냐 이전에, 지금의 고등학교 국사교과서들의 내용이 참이냐 거짓이냐가 정작 큰 문제다”라는 점에서 피차 의견의 일치를 볼 수 있기를 희망한다.
 
류근일 /뉴데일리 고문, 전 조선일보 주필
류근일의 탐미주의 클럽(cafe.daum.net/aestheticismclu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