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사교과서 논쟁에 대한 兩非論
      
    국사교과서의 국정화를 둘러싼 논쟁이 격화하면서 항간에는 어김없이 '성현(聖賢)' 같은 말씀들이 나돌기 시작했다.
    부처님 예수님 공자님 흉내 내는 말들이 그것이다.
  • 가로되 "내가 진실로 말하노니 너희는 서로 싸움박질, 전쟁 하지 말라" 어쩌고. 이건 지극히 당연한 금과옥조(金科玉條)같은 말이면서도 실은 썩 정확하지 못한 말이다.
    심지어는 위선적이기까지 하다.
    왜?
 
이 싸움은 [민족해방 민중민주주의] 사관(史觀)을 가진 사람들이 고등학교 국사교과서를 그들의 이념적 도식에 따라 “대한민국 67년은 [친일] [분단] [독재]의 역사였다”고 서술했기 때문에, 이에 대해 이의(異意)를 가진 사람들이 "그런 이념교과서 말고, 보다 사실-진실-공정에 입각한 교과서, 그래서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정당성을 긍정하는 교과서를 새로 만들자“고 해서 일어난 사태다.
한 쪽이 먼저 [변혁 이념]을 가지고 선공(先攻)하니까, 다른 한 쪽이 [변혁이념은 안 돼]라며 방어-반격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선공한 자들에게 “왜 이념싸움을 걸었느냐?”고 나무란다면 몰라도, 방어-반격하는 자들에게 “너희도 똑같다, 왜 반격하느냐?”며 양자를 동등하게 취급하는 건 정확하도, 공정하지도 않은 평(評)이다.
선공한 쪽의 한 짓은 [이념] 공세지만, 반격하는 쪽의 하는 짓은 [사실과 진실]의 수호인 것이다.

그런데 이걸 어떻게 똑같은 [이념장난]으로 보려 하는가?
반격하는 쪽의 입장을 [우편향]으로 규정하고서 “그러니까 양쪽이 똑같다”고 하는 모양인데, 아니,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새 교과서를 두고 무얼 근거로 그걸 [우편향]으로 설정하는가 말이다.
 
거듭 말하지만 좌편향 역사서에 대한 반대는 우편향 역사서가 아니라 투명한 [사실과 진실]의 드러냄이다.
[사실과 진실]만 있는 그대로 드러내면 "대한민국은 태어나선 안 될 나라“도 아니고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한 나라“도 아니고, ”대한민국은 태어나길 너무 잘한 나라"라는 결론이 될 것이다.

이게 검인정에 반대하면서 국정화라는 차선책 또는 고육책을 써서라도 고등학교 국사교과서를 새로 써야 한다는 쪽의 기본 입장일 터이고, 앞으로 작업도 그런 방향으로 진행될 것이라 믿는다.
 
이럼에도 국정화를 지지하는 쪽을 불문곡직 [우편향] 교과서를 만들려는 사람들인 양 몰아서 양쪽이 다 똑같은 이념편향이니까, 이념전쟁하지 말라는 식으로 나무라는 건 그래서 부정확하고 불공정한 판단이다.

그렇다면 왜 이런 부정확하고 불공정한 평(評)이 나오는 걸까? 
 
첫째는 사태의 전후사정과 자초지종, 그리고 인과관계를 자세히, 정확하게 따지거나 가리지 않는 채 “이놈들 왜 이리 시끄러우냐? 이놈도 틀렸고 저놈도 글렀다!”라며, 마치 고조할아버지가 고손자 놈들의 아옹다옹을 나무라듯 글을 쓰기 때문이다.
글 쓰는 사람들이 그런 식의 "에헴!!" 하는 고자세를 곧잘 취하곤 한다. 
 
둘째는 싸움에 끼어들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좌편향이 옳지 않다는 건 좀 느끼면서도 그걸 비판하다가 자칫 좌편향 쪽에 의해 타깃으로 찍히고 싶진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초현실적인 구름 위로 올라가거나 갓길로 빠져나가 양비론을 펴는 게 가장 [안전 빵]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고고한 척(? ) 보이면서 몸조심하겠다는 것이라고나 할까.
 
양비론의 내용은 두 가지다.
“좌편향 교과서는 좌편향이라 나쁘고, [앞으로 나올] 새 교과서는 [우편향+국정화]라서 나쁘다.”
[우편향] 운운이 [아직 채 태어나지도 않은] 애기 얼굴이 잘생겼느니 못생겼느니 하는 격의 코미디라는 건 이미 이야기 했다.
 
그렇다면 “국정화라서 나쁘다”는 건 어떻게 봐야 하나?
국정화는 물론 구시대의 방식이다.
민주화 시대로 갈수록 국정화에서 검인정으로 가는 게 정(正) 코스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만만찮은 문제가 발생하곤 한다.
바로, ”자유체제는 자유와 자율을 어디까지 포용할 수 있느냐?”라는 원론적인 물음이다.
 
“자유체제는 자유를 파괴하려는 입장도 포용해야 한다”는 극단적인 무정부주의적 자유방임주의도, 이론적으로는 있다.
그러나 오늘의 선진 민주국가들은 그런 입장에만은 자유체제의 멤버십을 주지 않는다.
이런 원칙에서 우리는 통진당을 해산했고, 이에 대해선 절대다수 국민이 그 헌법적 정당성을 인정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 시대는 국정교과서 대신 검인정 교과서 시대를 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그 자유와 자율의 공간이 대한민국을 폄하하는 역사관의 놀이터가 되고 말았다.
시장이 독점당하고 왜곡당하고 치우쳐지고... 바로, 시장의 실패인 셈이다.

자유시장이 실패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
자유주의 국가가 나서서 시정하고 치유하고 공정하게 만들어 줄 수밖에 없다.
이게 무정부주의적 자유방임주의에 대한 정도(正道)의 자유주의적 국가기능이다.
이래서 검인정 국사교과서의 폐해를 국가가 나서서 시정하기로 한 것은 정당화 될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제 총체적인 담론투쟁이 일어날 판이다.
[사실과 진실]에 기초해서 대한민국을 긍정하는 올바른 국사교과서를 청소년들에게 만들어 주자면, 그걸 추진하는 진영은 투철한 이론적-논리적 공격-방어-반격의 준비태세와 전투력을 갖춰야 할 것이다.
 
류근일 /뉴데일리 고문, 전 조선일보 주필
류근일의 탐미주의 클럽(cafe.daum.net/aestheticismclu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