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년 전 부담스러운 과거 들춰낸 이준익 감독.. 대체 왜?
  • 그리스에도 없던 비극이죠. 아들이 아버지를 죽인 이야기들은 있지만 아버지가 아들을 죽인 것은 세계적으로도 전무후무한 일입니다. 200년 전 영조와 사도의 이야기가 요즘 사회에서 벌어지는 세대간의 갈등에 대한 이해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영조 38년(1762년) 임오년 윤 5월 13일, 영조(英祖)는 자신의 아들인 이선(李愃·사도세자)을 뒤주에 가뒀다. 그 안에서 물 한모금 마시지 못한 이선은 8일 만에 목숨을 잃었다. 아직 이립(而立)도 하지 못한 27세. 꽃다운 나이에 뒤주 안에서 쓸쓸히 숨진 이선은 역사상 가장 비참하게 죽음을 맞이한 왕세자로 기억되고 있다.

    영화 '사도'는 250년 전, 뒤주에 갇힌 사도세자가 8일 만에 유명을 달리하기까지의 과정을 재현한 역사극이다.

    그동안 정조의 삶을 재조명한 드라마나 영화는 많이 나왔으나, 앞 세대인 영조와 사도세자의 일대기를 중점적으로 다룬 작품은 극히 드물었다. 안종화 감독이 연출한 '사도세자(1956)'가 동시기 이선을 다룬 대표적인 영화였고, 나머지 작품들은 대개 화려한 공적으로 치장된 영조나 정조(正祖)에 포커스를 맞추기 일쑤였다.

    그 어떤 역사적 사실보다도 극적인 요소가 다분한 사건이었지만, 유독 뒤주에서 숨진 사도세자의 이야기는 제작자들 사이에서도 기피 대상이 되곤 했다.

    친아버지가, 그것도 한 나라의 왕이 자신의 친아들을 신하들 앞에서 생매장했다는 사실은 상상만해도 몸서리가 처지는 일이 아닐 수 없다.

    화상 자국이 결코 없어지지 않는 내 몸의 일부라 하더라도 이를 들춰내거나 거론하는 자체를 부끄러워하는 심리처럼, 사도세자의 비극적인 죽음도 후손들에겐 기억조차 하기 싫은 또 하나의 흑역사(黑歷史)일 뿐이었다.

    그런데 이준익 감독은 이 '부담스러운 소재'를 과감히 전면에 내세웠다. 제목부터가 '사도(思悼)'다. '사도'는 이선 세자를 폐한 후 뒤주 속에 가두어 굶어 죽게 한 영조가 훗날 자신의 명령을 후회하며 왕자를 애도하는 뜻으로 내린 시호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아버지 영조의 '회한(悔恨)'을 담은 영화일까?

    이준익 감독은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를 통해 누군가의 상처와 고통이 누군가에겐 큰 복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얘기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이게 언제까지나 비극으로만 남아 있는 게 과연 올바른 것인가하는 의문이 들더라고요. 이 비극에 도달하는 것은 알 수 없는 아름다움이어야합니다. 아름다움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아들을 죽음으로 이끈 아버지의 마음, 심리 감정은 도대체 무엇인가? 이런 의문들이 영화를 끌고 가는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뒤주 대왕'의 비극을 단순히 재현하는데 그치지 않고, 끊임없는 '갈등의 정반합'을 시도한 부자지간의 이야기로 탈바꿈 시켰다는 게 이준익 감독의 설명이다.

    자신의 아들을 죽인 영조와, 아버지를 비참하게 읽은 정조가 아이러니하게도 '조선 최고의 통치자'로 추앙 받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 사도세자의 비극적인 죽음이 예사롭지 않은 것은 요즘도 그가 당쟁에 희생됐다는 주장과, 실제로 정신적인 질병이 심화돼 통제불능의 상태였다는 주장이 팽팽히 맞설 정도로 미스터리한 요소를 '한 가득' 안고 있기 때문이다.

    과연 그는 천성(天性)을 잃은 광인이었을까? 아니면 왕위 쟁탈전에 희생된 억울한 피해자였을까?

    이준익 감독은 명쾌한 설명 대신 "200년 전 영조와 사도의 이야기는 나와 동떨어진 이야기가 아니라 '나'라는 DNA와 맞닿아 있는 우리의 역사의 일부분"이라며 "이들의 갈등은 요즘 사회에서 벌어지는 세대간의 갈등에 대한 이해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밝혔다.

    이준익 감독은 죽음의 '배후'나 '원인'을 파헤치는 대신, 영조가 아들 이선을 얼마나 사랑했고, 아들은 그런 아버지를 얼마나 그리워했는지를 카메라에 담아냈다.

    '부자 관계'이면서 동시에 '왕과 세자'라는 특수 관계에 놓인 이들은 정쟁의 격랑(激浪)에 휘말리면서 점차 비극적인 운명으로 치닫게 된다.

    지난 11일 열린 '사도'의 제작보고회에서 사회를 맡은 박경림은 "영조는 사도가 왕이 돼 주길 바랐고, 사도는 영조가 자신의 아버지가 되어 주길 바랐던 것은 아닌가 싶다"는 날카로운 견해를 밝혔다.

    실제로 두 사람의 비극적인 운명은 '정쟁'을 떠나, 각자가 바라는 이상(理想)이 다른 것에서부터 시작됐는지도 모른다. 외적인 요소가 아닌, 내적인 요소 때문에 이들 부자가 '자멸의 길'로 들어섰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는 "이들의 갈등이 요즘 세대간의 갈등에 대한 이해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이준익 감독의 견해와도 맥을 같이 한다.

    어쩌면 이 감독은 역사 속에 파묻혔던 가장 극단적인 부자 관계를 꺼내, 천륜과 도덕이 붕괴되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실을 비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제목 : <사도>
    감독 : 이준익
    출연 : 송강호, 유아인, 문근영, 전혜진, 김해숙, 박원상
    제공/배급 : ㈜쇼박스
    제작 : ㈜타이거픽쳐스
    개봉 : 2015년 9월 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