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학규는 칩거, 김한길도 성완종 게이트 관련 소환 통보박지원 "위축돼서 할 말 못하면 김한길, 박지원 아니다"라지만…
  • ▲ 새정치민주연합의 일부 전직 당직자들이 9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탈당을 선언하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새정치민주연합의 일부 전직 당직자들이 9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탈당을 선언하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야권 재편의 역할을 맡을 신당 창당이 설(說)과 회동, 움직임만 무성할 뿐 좀처럼 현실화되지 못하고 있다.

    9일 새정치민주연합의 전 당직자 등 십수 명이 탈당 기자회견을 열었다. 스스로 100여 명을 칭했지만 확인된 것은 아니다. 또, 탈당 인사 중에 전현직 국회의원이 없어 '선도 탈당'이라고는 해도 신당 창당 움직임의 분수령이 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다.

    각종 회동, 라디오에 출연해서 던지는 몇 마디 말들, 정치권에 떠돌아다니는 소문 등 신당이 출현할 상황적 조건은 만들어졌는데, 결정적인 추동력이 발생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새정치연합 박지원 전 원내대표가 "신당 창당은 이미 변수가 아닌 상수(常數)"라고 할 정도로 신당 창당이 무르익었는데도, 마땅히 나타나야 할 움직임이 없다보니 전직 당직자 탈당에도 민감한 반응이 뒤따르고 있다.

    새정치연합 관계자도 "예전에 당직자했던 사람들 몇 명 모여서 탈당하는 게 뉴스 거리냐"며 "신당이 분명히 창당되기는 될 눈치인데, 이렇다할 큰 움직임이 없다보니 작은 움직임도 크게 조명되는 것 같다"고, 이같은 해석을 뒷받침했다.

    시계를 거꾸로 돌려 2007년으로 돌아가보면, 이계안 의원이 1월 23일 탈당을 선언하며 당시 집권여당이자 원내 제1당이던 열우당의 분당을 선도했다. 이후 최재천·천정배·염동연 의원이 추가 탈당하면서 '선도 탈당' 그룹이 됐고, 2월 6일에는 마침내 김한길 의원을 중심으로 이종걸·우윤근·전병헌·주승용 등 23명의 의원이 집단 탈당하면서 분당(分黨)은 현실화됐다.

    이후 선도 탈당 의원들과 후속 탈당 의원들은 같은 해 2월 12일 '중도개혁통합신당 추진모임'이라는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하고 최용규 원내대표, 이종걸 정책위의장, 전병헌 전략기획위원장 등으로 진용을 갖춘 바 있다.

    새정치연합 관계자는 "이 정도 (중도개혁통합신당) 움직임은 돼야 신당 창당이라고 할 수 있고, 이를 전제로 해야 선도 탈당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라며 "인물도, 세(勢)도 없이 어떻게 신당이 만들어지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말대로, 전직 당직자들 정도의 탈당으로는 신당 창당을 위한 선도 탈당이라 칭하기에는 미약하다는 지적이다. 결국 현역 의원 중에서 선도 탈당이 나오고, 이후 신당 창당의 중심이 될만한 인물이 그룹을 이끌고 뒤따라야 하는 그림이 나와야 한다는 결론이다.

    문제는 선도 탈당을 할만한 현역 의원은 몇몇 눈에 띄는데, 이후 원내교섭단체를 만들만한 그룹을 이끌고 뒤따를만한 중심 인물이 보이지 않는다는 게 고민이다.

    새정치연합 관계자는 "당의 대주주(大株主)라고 할만한 사람이거나, 아니면 후년 대선에 독자 후보로 출마할 수 있을 만한 사람이 움직여야 한다"는 것을 전제 조건으로 "그렇게 되면 세(勢)와 자금은 저절로 뒤따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당무를 농단하고 있는 문재인 대표를 정점으로 한 친노패권주의 세력에 맞서, 이러한 전제 조건을 만족시킬 수 있을 만한 인물로는 김한길 전 대표, 박지원 전 원내대표, 손학규 전 상임고문 등이 거론된다.

  • ▲ 새정치민주연합 김한길 전 대표는 야권발 정계개편과 신당창당을 능히 이끌 수 있을만한 큰 인물로 여겨졌으나, 최근 성완종 게이트에 휘말리면서 정치적 운신에 제약이 생겼다는 지적이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새정치민주연합 김한길 전 대표는 야권발 정계개편과 신당창당을 능히 이끌 수 있을만한 큰 인물로 여겨졌으나, 최근 성완종 게이트에 휘말리면서 정치적 운신에 제약이 생겼다는 지적이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김한길 전 대표는 지난해 6·4 지방선거와 7·30 재·보궐선거 과정에서 친노의 집요한 당권 흔들기에 큰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 이 때문에 친노 원훈(元勳)으로 분류되는 문희상 의원이 비상대책위원회를 이끌게 되자, 거듭된 요청에도 불구하고 비대위 입성을 사절했다는 지적이다. 당시 정세균·박지원 의원 등 당의 다른 대주주들은 모두 비대위에 들어갔다.

    4·29 재·보궐선거에서 참패하고서도 책임론과 거리를 둔 채 입을 씻고 있는 친노 문재인 대표를 바라보면서는 착잡한 심경이 더욱 깊어진 것으로 보인다. 선거일 이튿날인 30일, 자신이 7·30 재보선 참패의 책임을 지고 물러날 때의 대사인 "이길 수 있는 선거를 졌다"는 말을 그대로 문재인 대표에게 되돌려준 것은 그러한 심경이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이후 문재인 대표의 이른바 '당원께 드리는 글' 파동까지 겹치자, 새정치연합에 남아 있던 마음의 정(情)까지 모두 털어냈다는 지적이다. 김한길 전 대표는 이후 계속된 당의 내홍에 "지켜보고 있다"는 말로 일관하며 당무와 철저히 거리를 두고 있다.

    김한길 전 대표는 당내의 이른바 '김한길계'의 리더로, 곧잘 비노(非盧, 비노무현) 그룹의 중심으로까지 묘사될 정도로 자신만의 세(勢)를 갖추고 있다. 또, 예전에 비해 빛이 많이 바래긴 했지만 여전히 잠재적 대권 주자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안철수 전 대표와 행보를 함께 하고 있다는 강점도 있다.

    움직이기만 하면 야권에 대대적인 지각 변동을 가져올 수 있던 김한길 전 대표의 행로에 걸림돌이 생긴 것은 최근의 일이다. 이른바 '성완종 메모'를 남긴 성완종 전 의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기 전날 저녁 김한길 전 대표와 만난 것으로 드러난 것이다.

    김한길 전 대표는 평소 성완종 전 의원과 상당한 교분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고인이 목숨을 끊기 전날 저녁에 만나기까지 했으니, 참고인 신분으로라도 검찰 조사를 피할 수는 없게 됐다. 실제로 김한길 전 대표는 검찰로부터 소환 통보를 받았으나 응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성완종 리스트' 사건이 새정치연합의 주도 하에 특검으로 갈 가능성도 남아 있는 상황에서, 이 사건은 김한길 전 대표의 정치적 행보에 상당한 걸림돌으로 작용하게 됐다는 게 정치권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박지원 전 원내대표의 사정도 갑자기 녹록치 않아졌다.

    박지원 전 원내대표는 2·8 전당대회를 통해 비노(非盧)를 대표하는 인물로 부상했다. 대부분의 당원들이 친노 세력의 당권 전횡과 당무 농단에 분노를 느끼고 있는 상황에서 박지원 전 원내대표는 전국을 누비며 시원시원한 연설을 통해 당원들의 가려운 구석을 긁어줬다는 지적이다.

    당초 박지원 전 원내대표는 문재인 대표에 비해 압도적인 열세로 점쳐져, 지금은 지도부에 입성한 한 최고위원의 전망에 따르면 "스코어로 따지면 (문재인) 2대 (박지원) 1"이라고까지 예측될 정도였다. 하지만 당심(黨心)을 등에 업은 박지원 전 원내대표의 맹추격은 '당대표는 따놓은 당상'으로 여기던 문재인 대표를 위협할 지경이 됐다.

    결국 문재인 대표 측은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신기남 중앙당선거관리위원장·김성곤 전당대회준비위원장 등을 압박해 일반국민 여론조사 규정 해석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변경했다는 의혹을 받기에 이른다. 경기를 뛰던 도중 규칙이 바뀌는 황당한 사태에 박지원 전 원내대표는 큰 충격을 받았으나, 이를 받아들이고 경선을 끝까지 완주했고 최종 결과는 43대41의 박빙이었다.

    이 과정에서 박지원 전 원내대표는 친노패권주의 세력에 맞선 희생자이자 순교자의 이미지를 얻으면서 자연스레 반(反) 문재인 전선의 중심인물로 부상했다.

  • ▲ 새정치민주연합 박지원 전 원내대표가 10일 국회 기자회견장에서 항소심 판결의 문제점과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는 기자회견을 한 뒤 회견장을 나서고 있다. 박지원 전 원내대표는 친노에 분노한 호남 민심을 바탕으로 신당 창당이라는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인물로 꼽혔지만, 9일 항소심 재판에서 일부 유죄 판결을 받으면서 스탭이 엉켰다는 지적이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새정치민주연합 박지원 전 원내대표가 10일 국회 기자회견장에서 항소심 판결의 문제점과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는 기자회견을 한 뒤 회견장을 나서고 있다. 박지원 전 원내대표는 친노에 분노한 호남 민심을 바탕으로 신당 창당이라는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인물로 꼽혔지만, 9일 항소심 재판에서 일부 유죄 판결을 받으면서 스탭이 엉켰다는 지적이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이후로도 박지원 전 원내대표는 문재인 대표의 4·29 재보선 전패, 최재성 사무총장 임명 강행 등에 잇따라 문제를 제기하며 쓴소리를 이어갔다. 특히 4·29 재보선을 통해 "호남에서 친노는 백주대로를 돌아다닐 엄두도 못 낸다"고 할 정도로 친노패권주의에 분노한 호남 민심이 여지 없이 분출된 만큼, 수도권을 근거로 하는 김한길 전 대표보다 호남을 근거로 하는 박지원 전 원내대표가 오히려 신당 창당을 주도하기에 더 유리한 조건에 놓인 것이 아니냐는 분석도 나왔다.

    하지만 원심에서 무죄를 받았던 저축은행 관련 알선수재 혐의 재판이 9일 항소심에서 일부 유죄로 뒤집히면서 상황은 돌변했다.

    항소심 재판부의 징역 1년·집행유예 2년의 판결이 확정되면 박지원 전 원내대표는 의원직을 잃게 될 뿐더러 정치생명 자체가 경각에 놓이게 된다. 판결 직후 "항소심은 오심이며, 즉각 상고할 것"이라고 밝힌대로 대법원에서의 법리 공방에 '올인'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됐다.

    박지원 전 원내대표는 10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당의 통합과 단결, 정권교체를 위해 과거처럼 꿋꿋하게 정치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정치적 운신의 폭이 좁아지는 것 아니냐는 취재진의 질문에는 헛웃음을 지으며 "내가 그렇게 약하지 않다. 꿋꿋하게 더할 것"이라고 말했지만, 신당 창당과 같이 큰 그림을 그리기에는 적신호가 들어온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된다.

    이밖에 이른바 '손학규계'의 리더이며 잠재적인 대권 주자로도 꼽히는 손학규 전 상임고문은 7·30 경기 수원병 보궐선거에서 낙선한 이튿날 정계은퇴를 선언하고 전남 강진의 흙집에 칩거해 있다. 현 시점에서 신당 창당 등으로 현실 정치에 복귀하는 것은 무리라는 지적이다.

    박지원 전 원내대표와 손학규 전 고문 사이에서 '가교'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으로 점쳐지는 정치권 관계자는 "(지금 이 시점에 신당 창당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일축했다. 이 관계자는 "내년 총선 이후에는 어찌될지 모르지만, 지금 인위적인 정계 개편을 주도하고 휘말린다는 게 말이 되는 소리냐"고 되물었다.

    이외에도 김한길 전 대표, 박지원 전 원내대표와 두루 깊은 친분을 갖고 있으며, 최근 박지원 전 원내대표에 의해 사무총장으로 천거되기도 했던 것으로 알려진 비노(非盧)계 중진 의원은 친동생이 최근 비리 의혹에 연루돼 검찰에 소환되는 등 악재를 맞고 있다.

    문재인 대표 등 친노 지도부 측에서도 이 때를 틈타 비노 인사들을 회유하는 모양새다.

    친노 지도부는 김한길 전 대표가 검찰 소환에 불응하는 게 좋겠다고 조언한 데 이어, 9일 박지원 전 원내대표의 유죄 판결 직후에는 문재인 대표가 직접 전화를 걸어 "상당히 억지로 짜맞추기를 한 판결"이라며 "상고하면 당에서도 적극 지원하겠다"고 격려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박지원 전 원내대표는 10일 종합편성채널 채널A의 〈쾌도난마〉에 출연해 "(유죄 판결과 검찰 수사 때문에) 위축돼서 할 말을 못하면 김한길이 아니고 박지원이 아니다"라며 "잘못한 것은 잘못했다고 말을 해야지, 뭐가 무서워서 말을 못하겠느냐"고 반박했다.

    아울러 범친노(汎親盧)로 분류되는 강기정 정책위의장이 이날 평화방송 라디오에 출연해 '신당 협박은 내년 총선 공천권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발언한 데 대해서도 "그렇게 사람들을 매도해서 몰아붙이면 함께 (당을) 할 수 있겠느냐"며 "신당하는 사람들이 그러한 요구를 하는 것으로 보기 때문에 신당 창당 움직임이 자꾸 나오는 것"이라고 일침을 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