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 오남용에 따른 폐해 커… 제1야당도 용어 혼란의 피해자될 것
  • ▲ 새정치민주연합 이종걸 원내대표.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새정치민주연합 이종걸 원내대표.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공안 법무부장관이 공안 총리가 될 때부터 걱정했다. 야당 주변의 탄압 사례들이 대통령·총리와 무관하지 않다고 짐작한다. 이것이 단지 짐작이기를 바란다."

    새정치민주연합 이종걸 원내대표의 26일 친박게이트대책위원회·야당탄압저지대책위원회·법제사법위원회 연석회의 모두발언을 듣고 육법전서를 다시금 꺼내들었다. '공안(公安)을 해하는 죄' 항목을 찾아보기 위함이었다.

    형법 제5장은 '공안을 해하는 죄'를 규정한다. 하위 항목으로는 제114조 범죄단체조직죄부터 제118조 공무원자격사칭죄까지 공공(公共)의 안녕(安寧)을 위협할 수 있는 범죄들이 열거돼 있다.

    우리 사회를 지켜나가기 위해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한 내용들이 담겨 있다. 이 때문에 우리 형법을 기초한 입법자들은 사회적 법익(社會的 法益)을 보호하는 법조문의 첫머리에 '공안을 해하는 죄'를 배치했다. 이는 사법시험(30회)을 합격하고 사법연수원(20기)을 수료해 변호사 자격을 갖고 있는 이종걸 원내대표도 모르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공안 총리·공안 정국·공안 탄압·공안 통치 등 뜻모를 단어들을 양산하며, 공안이라는 단어에 부정적 의미를 덧씌우려 하고 있다. 같은 당의 진성준 의원도 이날 "황교안 총리가 내정되자마자 국민들이 제일 걱정한 것은 공안 통치가 본격화되는 게 아니냐는 것이었다"며 "그런 국민의 우려처럼 친박게이트 사건에 대한 수사를 흐지부지하더니 이제는 야당 국회의원을 표적 삼아 수사를 마무리하려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와 관련, 강규형 명지대 교수는 지난 15일 한국경제신문에 기고한 글에서 "인간의 생각과 행동은 용어에 의해 큰 영향을 받는다"며 "정치적 목적을 위해 일부러 (용어를) 오용되는 경우도 꽤 있다"고 진단했다.

    강규형 교수는 "가장 심각한 경우는 '진보~보수'라는 프레임"이라며 "좌파는 '진보'라는 용어가 진취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어 대중들에게 호감을 갖는 용어임을 간파하고 의도적으로 자신을 '진보세력'으로 지칭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불행히도 한국 좌파는 가장 퇴행적인 집단"이라며 "보편적 좌파의 아젠다인 국제주의와 개방성, 그리고 인권을 깡그리 무시하고, 민족지상주의라는 구식 이념에 빠져 북한 인권같은 의제는 격하게 거부한다"고 질타했다.

    나아가 논어(論語) 자로(子路)편 3장에서 공자(孔子)가, 정치를 한다면 반드시 이름부터 바로잡을 것(正名)이라고 다짐했던 점을 인용해 "바른 용어를 사용하지 않아 생기는 혼란은 심각한 사회분열의 원인이 된다"며 "자유경제원이 2013년부터 우리 사회 각 분야에서 잘못된 용어를 바로잡자는 '정명(正名) 운동'을 전개하는 것은 의미가 깊다"고 밝혔다.

    새정치연합이 공안(公安)이라는 용어에 부정적 의미를 덧씌워 의미를 변질시킴으로써 현 정부를 공격하는 도구로 사용한다면, 중장기적으로 이에 따라 초래되는 사회적인 혼란은 우리 모두에게 부메랑으로 돌아올 것이다.

  • ▲ 새정치민주연합 최민희 원내부대표.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새정치민주연합 최민희 원내부대표.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그 대표적인 사례가 민주화(民主化)의 의미 변질이다. 특정 세력이 '민주화'를 혼자 해낸 것처럼 독점적으로 오남용하면서 그 용어의 의미에 혼란이 오고 말았다. 그 결과 더없이 숭고한 의미를 가져야 할 '민주화'라는 용어가 이제는 비웃음과 조롱의 도구로 전락하는 지경에 이르렀는데, 이 과정에는 불행히도 제1야당이 의도치 않게 기여한 바가 적지 않다.

    이에 그치지 않고 지난 대선에서는 '경제민주화'라는 용어가 난무했다. 경제를 어떻게 민주화하겠다는 것인지 의미조차 불분명했지만, 모두의 동상이몽 끝에 '경제민주화'는 대선 과정에서의 구호로 정착됐다. 그 용어 혼란에 따른 사회적 댓가는 지금 전 국민이 나누어 부담하고 있다. 툭하면 "경제민주화에 역행하니, 아니니"하고 다투니, 강규형 교수의 말대로 용어 혼란이 사회적 분열의 원인이 된 대표적 사례다.

    이 마당에 새정치연합 최민희 의원은 한술 더 떠 검찰을 민주화하겠다고 나섰다.

    최민희 의원은 이날 같은 회의 석상에서 "민주정부 10년을 돌아볼 때 가장 아쉬운 것은 검찰민주화를 내세워야 할 때 검찰독립을 추구했던 것"이라며 "지금 국민적 과제는 검찰민주화"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경제민주화도 무슨 뜻인지 모를 용어였는데 검찰민주화는 또 무슨 뜻일까. 야밤에 술에 취해 지구대에서 행패를 부리는 주폭(酒暴)도 몇 년 뒤에는 잡혀가면서 "검찰민주화에 역행하는 짓을 당장 그만두라"고 호통칠까 두려워진다.

    최민희 의원이야 아무 것도 모르는 필부필녀(匹夫匹婦)이니 그렇다 치더라도, 원내 130석의 제1야당을 이끌어가는 원내사령탑이며 변호사인 이종걸 원내대표가 공안(公安) 용어의 의미를 흔드는 일에 가세하고 있는 것은 유감스럽다.

    한 번 왜곡되고 변질된 단어의 뜻을 바로잡는데에는 몇 배의 노력이 든다. 공안이라는 단어의 이미지가 땅에 떨어지고 나면, 우리 사회는 범죄단체가 창궐해도(형법 제114조), 소요가 일어나도(제115조), 공무원을 사칭하며 맘대로 직권을 행사하고 다녀도(제118조) 제대로 처벌하기 어려운 무기력한 사회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국민들은 공공의 안녕은 기대하기 어려운, 불안한 사회 환경 속에 내팽개쳐질 것이다.

    이날 아침, 새정치연합 신기남 의원은 최고위원~중진의원 연석회의에서 "국민들이 우리 당에 가장 바라는 것은 안정"이라며 "불안하다는 것이고, 안정된 믿음을 달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민들은 날마다 광화문 광장에서 소요가 일어나고, 상여와 곡소리를 앞세운 세력들이 떼법으로 판치는 세상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새정치연합이 그리도 강조하는 우리네 평범한 중산층과 서민은 다름아닌 안정을 원한다.

    그렇기에 수권 세력은 공공의 안녕을 지킬 능력을 보여줘야 진정한 수권 세력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새정치연합을 '수권 정당'으로 이끌어야 할 무거운 책무를 지고 있는 이종걸 원내대표가 공안이라는 용어를 앞장서서 오남용하는 일이 없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