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시험대로 떠오른 총리후보자 청문회, 당내 통합과 대권가도..둘다 잡을 순 없어
  • ▲ 8일 새정치민주연합 신임 당대표로 선출된 문재인 의원(오른쪽)과 퇴장하는 박지원 의원 ⓒ 뉴데일리 정상윤 사진기자
    ▲ 8일 새정치민주연합 신임 당대표로 선출된 문재인 의원(오른쪽)과 퇴장하는 박지원 의원 ⓒ 뉴데일리 정상윤 사진기자

    진통 끝에 새정치민주연합 당권을 거머쥔 문재인 대표가 취임부터 곤란한 딜레마에 빠졌다.

    '박근혜 대통령과 전면전'을 취임 일성으로 내뱉을 만큼 강경노선을 선언했지만, 눈앞에 닥친 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 청문회가 '야당 대표, 문재인의 시험대'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완구 후보자는 총리 지명 이후 부동산 매입과 교수 임용 과정 등에서 잇따라 제기된 각종 의혹에 이어 언론사에 외압을 넣었다는 녹취록까지 공개되면서 상당한 논란에 휩싸였다.

    그동안 무난한 청문회 통과를 예상했던 새정치민주연합도 지난 주말 이후에는 태도를 바꿔 '자진 사퇴'로 가닥을 잡은 상태다.

    이완구 총리 청문회 특위 야당 간사인 유성엽 의원은 "정치권력의 보도통제, 언론사에 대한 인사개입 등은 민주 국가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총리로서의 자질을 떠나 민주 시민으로서의 소양과 자질을 제대로 갖추고 있는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유 의원은 또 "현재까지 불거진 의혹들을 종합했을 때 총리로서의 자격이 없다"며 "물론 청문회에서 검증 문제도 있지만 스스로 거취를 결정하는 것이 국민에 대한 도리라고 생각한다"고 사퇴를 촉구했다.


    문제는 이 같은 상황에서 야당 지휘권을 잡은 문재인 대표가 '충청 출신' 이완구 후보자에게 칼을 뽑을지, 화해의 손을 내밀지 결정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여당인 새누리당이 더 이상의 대통령 지지율 추락은 당에게도 좋지 않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일단 청문회를 열자'는 입장을 끝까지 고수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이완구 총리 취임 여부는 문 대표에게로 공이 넘어갔다는 분석이 나온다.

    문재인 대표는 "그분이 총리로서 적격인지 의문을 제기할 정도"라면서도 "빠른 시일 내에 청문 위원들, 원내 대표부와 협의해서 어떤 입장을 가질 것인지 당론을 모아나가겠다"는 말로 분명한 입장 표명을 잠시 유보한 상태다.

  • ▲ 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 ⓒ 연합뉴스
    ▲ 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 ⓒ 연합뉴스


    하지만 문 대표는 이 후보자의 총리 지명 이후 터진 '호남총리' 발언으로 곤욕을 치른 뒤라 보폭이 그리 넓지 않다.

    호남에 지역구를 둔 야당 한 중진 의원은 "문 대표가 지난번 '호남 인사를 총리로 임명했어야 한다'는 발언 이후 충청권 표심 이탈을 내심 우려하고 있다"며 "대권을 가기 위해서는 충청을 잡아야 한다는 정치 기본 전략이 깨질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돌고 있다"고 전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개각은 이완구 후보자의 인준 이후 신임 총리의 제청을 받고 실시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도 문 대표의 이 같은 딜레마를 노린 전략으로 해석된다.

    총리 후보자에 대한 여론은 좋지 않지만, 이제 막 대권 가도를 시작한 문 대표가 충청 표심을 잃는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이완구 후보자의 낙마를 종용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인 셈이다.

    황태순 정치평론가는 "(지난 대선에서)박근혜 후보한테 충청도에서 져서 떨어졌다고 생각하는 게 문재인 대표다"라며 "문 대표에게는 충청도 표가 눈에 아련하지 않겠나. 고민이 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문재인의 첫 시험대'로 떠오른 이완구 후보자의 청문회를 '물에 물 탄 듯' 넘어가는 것도 쉽지 않다.

    문 대표 취임 첫날 현충원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 참배를 두고 벌어졌던 당내 반발 세력들을 잠재우고, 대권가도 추진력을 얻기 위해서라도 여권과의 각 세우기는 당장 필요한 과정이다.

    문 대표는 9일 오전 당대표 첫 일정으로 현충원을 방문해 김대중 전 대통령의 묘역을 참배한 뒤 이승만, 박정희 전 대통령도 찾았다.

    하지만 문 대표의 이승만-박정희 묘역 참배에는 문희상 전 비대위원장 등 일부 의원만 함께 했을 뿐, 나머지 최고위원들은 같이 하지 않았다.

    문 대표가 내세운 당내 계파간 통합을 위해서라도 '박근혜 정부'라는 공동의 적을 목표로 세우는 과제가 시급하다는 것을 보여준 장면이었다.

    당내 통합이라는 과제 외에도 이미 '호남 총리론'으로 입도마에 올랐던 문 대표다.

    만약 자진사퇴로 가닥을 잡은 야당의 입장을 끝까지 밀어붙이지 못하고 충청표를 의식한 '이완구 흠집 눈감아주기' 모양새를 보인다면, 자칫 야당의 텃밭인 호남표심 이탈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는 게 당내 분위기다.


    이에 따라 문 대표가 향후 이완구 청문회에서 보여줄 행보에 따라 향후 대권행보의 방향이 가려질 것으로 보인다.

    당내 통합을 이끌고 호남표를 더욱 굳건하게 하기 위해 이완구 낙마로 가닥을 잡을지, 충청을 잡아야 대선을 이긴다는 정치 교본에 따를지에 따라 문재인의 대권 전략을 엿볼 수 있다는 얘기다.

    충청권 지역구를 둔 새누리당 A 의원은 "문재인 대표는 지금 당내 갈등 봉합과 대여 공격이라는 두가지 과제 외에도 자신의 대권 플랜을 시작해야 하는 입장"이라며 "시급한 과제 앞에서도 대통령 꿈을 꾸는 문 대표가 '이완구 청문회'를 어떤 방식으로 돌파하는지를 살펴보면 향후 야당의 방향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