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 검사 “현존 선배 중 가장 존경 받는 분”, ‘최고의 수사 검사’ 호칭
  • ▲ 청와대 민정특보로 임명된 이명재 전 검찰총장.ⓒ 네이버 화면 캡처
    ▲ 청와대 민정특보로 임명된 이명재 전 검찰총장.ⓒ 네이버 화면 캡처


    “현존하는 검찰 선배 중 가장 존경받는 선배다. 피의자들이 이명재 검사에게 조사를 받고 싶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 수도권 지검 A 차장 검사


    2002년 김대중 정부 집권 말기, 검찰총수를 역임한 ‘최고의 수사 검사’가 13년이 흐른 뒤, 청와대 민정특보로 공직에 복귀했다.

    23일, 청와대 민정특보로 임명된 이명재(72) 전 검찰총장(법무법인 태평양 고문변호사)은 경북 영주 출신으로, 2002년 1월부터 그해 11월까지 31대 검찰총장을 지냈다.

    그는 2001년 5월 신승남 검찰총장 체제가 들어서자, 스스로 사표를 내고 서울고검장에서 물러났으나, 불과 8개월 뒤 검찰총수가 돼 친정으로 돌아갔다.

    당시 그의 검찰총장 임명은 여러모로 주목을 끌었다.

    여당은 물론 야당이 그의 검찰총수 임명을 반긴 것도 무척 이례적인 ‘사건’이었지만, 검찰 창설 이래, 변호사 출신이 검찰총장에 임명된 것도 이때가 처음이었다.

    그의 발탁을 환영한 것은 정치권뿐만이 아니었다. 검찰 조직 내부에서도 그의 총장 임명을 반겼다.

    정치권과 검찰조직이 한 목소리로 그의 복귀를 환영한 것은, 그가 인품과 실력 모든 면에서 그만큼 인정을 받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실제 김진태 검찰총장은 그를 가장 존경하는 선배로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 대검 중수부장의 이력이 보여주듯 그는 ‘특수통 검사’로 이름을 떨쳤다. 대검 중수3과장으로 있으면서 ‘이철희·장영자 어음 사기사건’, ‘명성그룹 사건’, ‘5공 비리 사건’ 등 굵직한 사건을 맡았다. 대검 중수부장 시절에는 ‘환란 사건’, ‘세풍 사건’ 등 정국을 뒤흔들만한 주요 사건을 수사했다.

    그에게는 ‘최고의 수사 검사’라는 별칭이 따라 다녔다. 그에게 이런 별칭을 붙여준 이가 바로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이다.

    검찰총장 임명 당시 그가 한 말도 어록으로 남아있다.

    “선비는 오얏나무 아래서 갓 끈을 매지 않고, 진정한 무사는 추운 겨울날 얼어 죽을지언정 곁불을 쬐지 않는다”


    그에게 동료 검사들은 “이명재가 수사를 하면 뒷말이 안 나온다”는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의 행적과 관련된 전설은 지금도 후배검사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수도권의 한 지검 차장 검사는 “현존하는 검찰 선배 가운데 가장 많은 존경을 받은 분”이라며, “당시 피의자들이 그분에게 수사를 받게 해 달라고 부탁했다는 말이 나올 정도”라고 전했다.

    그는 검찰총장 시절 김대중 대통령의 아들 홍업·홍걸씨를 구속했다. 외압이 없을 수 없었지만, 그는 내색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나중에 그는 사석에서 “(검찰총장) 취임 첫날부터 양복 안주머니에 늘 사표를 넣고 다녔다”고 털어놨다.

    정권의 외압에도 꿋꿋하게 버티던 그였지만, 그해 연말 서울중앙지검에서 벌어진 ‘피의자 구타 사망사건’의 책임을 지고 취임 9개월여만에 물러났다.

    그의 민정특보 임명에 대해 법조계에서는 “자중지란에 빠진 청와대 민정기능을 바로 잡는데 있어 그의 능력을 높이 산 것으로 보인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한편 이명재 전 총장은 청와대 인선 발표 후,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변호사직에서 사퇴했다.

    청와대 민정특보직은 ‘무보수명예직’으로, 이 전 총장의 고문변호사 겸직은 법적으로 문제될 것이 없다.

    그러나 청와대는 “이명재 전 총장이 불필요한 논란을 피하기 위해 스스로 고문변호사직을 사퇴하겠다는 의사를 밝혀왔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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