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흥남철수 당시 미군의 마지막 수송선 [메러디스 빅토리호]에서 태어난 이경필 거제 평화가축병원 원장과의 인터뷰가 지난 5일 경남 거제도 포로수용소 유적공원에서 진행됐다.
☞관련기사
(취재=뉴데일리 김정래 기자)
기적의 아이 ‘김치(Kimchi) 5’를 아시나요?
“6.25 한국동란과 1.4후퇴. 영하 30도를 오르내리는 동토(凍土)의 땅, ‘장진호전투’의 패전과 철수는 우리 자유민들에게는 크나큰 절망이었다.
실낱같은 희망으로 미군과 국군을 따라 흥남부두에 모인 북한 피난민들은 또 한 번 절망을 만난다.
남쪽을 향해 떠나는 미군 수송선들은, 후퇴하는 미군과 국군을 태우기에도 부족했으나, 김백일 육군 1군단장, 현봉학 통역관(재미 의학자), 알몬드 미군 10군단장, 포니 미국 대령, 피난선박을 운전한 라루 선장 등의 헌신과 노력으로, 불가능하게 여겨졌던 피난민 승선의 길이 열렸다.
그렇게 기적과 같은 탈출이 이뤄지면서, 10만 여명의 북한 동포가 자유대한으로 넘어올 수 있었다. 이것이 ‘흥남철수작전’이고, 인류사에 영원히 빛나는 ‘휴먼스토리’ 탄생의 시작이다”
- 거제 평화가축병원 이경필 원장
1950년 12월 25일 성탄절. 북한 흥남부두를 떠난 미군의 마지막 수송선 ‘메러디스 빅토리호’에서 한 명의 남자아이가 태어났다.세계 전쟁사에 길이 남을 흥남철수작전 과정에서, 그것도 미군과 국군, 북한에서 자유를 그리며 목숨을 걸고 탈출한 피난민들로 북적인 배 안에서 태어난 이 아이는, 출생 자체가 ‘기적’이었다.
‘메러디스 빅토리호’의 라루 선장은, 이 아이에게 ‘김치(Kimchi) 5’란 별명을 붙여줬다. 흥남부두를 떠난 미군 수송선에서 태어난 아이는 모두 합해 5명. 라루 선장은 이 아이들에게도 각각 ‘김치 1’부터 ‘김치 4’까지의 이름을 지어줬다.
‘김치(Kimchi) 5’, 누구보다 태어난 여정이 특별했던 이 아이는, 자신이 태어난 미군 수송선에 정박한 거제에서 자랐다.
본명은 이경필, 올해 65세, 거제 장승포 평화가축병원 원장.
크리스마스에 태어나 ‘크리스마스의 기적’이라는 애칭으로 평생 불려온 이 원장의 기억 속 흥남철수작전은, 그의 말대로 인류사에 길이 남을 한편의 빛나는 ‘휴먼스토리’로 남아 있다.그런 그가 최근 언론을 통해 자신의 꿈을 밝히기 시작했다.
잊혀지기엔 너무나 특별한 ‘흥남철수작전’, 이 장쾌한 휴먼드라마를 영원히 기억할 수 있는 ‘기념 공원 조성’이 그가 밝힌 꿈의 핵심이다.
자유의 좌표를 찾아서
흥남철수 작전이 벌어지기 전인 1950년 12월 어느 날, 이경필 원장의 할머니는 UN군과 국군이 중공군에 밀려 퇴각하자 아들과 만삭의 며느리에게 ‘자유의 땅으로 떠나라’고 말한다.
그리고 본인은 ‘고향과 집을 지키겠다’고 말했다. 이 말이 이 원장의 할머니와 부모가 나눈 생애 마지막 대화였다.
65년 전, 이 원장의 자유를 향한 항해는 여기서부터 시작했다.
이 원장은 태어나면서부터 참혹한 전쟁의 역사 한가운데 있었다. 그러나 이 원장은 스스로를 ‘행운아’라고 말한다. 어머니의 뱃속에 있었기 때문에 전쟁의 긴박함도, 추위도 몰랐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 원장은 “전쟁으로 인해, 스스로 평화와 은혜, 나눔이라는 소명을 갖게 된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이 원장의 아버지와 어머니도 생전, “우리가 이 평화의 땅에서 살게 된 것은 김백일 장군과 현봉학 교수 그리고 많은 미군들의 도움과 거제도 사람들의 따뜻한 정성이 있기에 가능했다”며, “제가 도움받은 은혜를 잊지 말고, 은혜를 갚을 줄 아는 사람이 되라고 항상 강조했다”고 소회했다.
흥남철수작전 당시, 이 원장의 부모님이 탄 피난선 ‘매러디스 빅토리호’의 수용인원은 최대 3,000명, 그러나 당시 이 배에 탄 인원은 무려 1만4,000명이 넘었다.
흥남철수작전이 전쟁사 최고의 휴먼스토리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10만명이 넘는 피난민의 탈출은, 미군과 국군의 목숨을 건 인류애가 빚어낸 ‘크리스마스의 기적’이었다.이 기적의 액소더스를 거쳐 거제 장승포에 이 원장의 가족은 평생을 거제도에서 살았다. 이원장의 부모는 사진관 등을 하며 3남 1녀를 훌륭히 키워냈다.
전쟁의 역경 속에서, 자유의 좌표를 찾아 몸부림쳐온 이 원장의 집안은 4대에 걸쳐 ‘평화와 자유’라는 인류애를 몸소 실천하고 있다.
1대 할머니는 자식과 며느리, 언제 태어날지 모르는 손자 이경필과 생이별을 하며 자시의 후손들을 자유의 땅으로 보냈다.
2대인 이 원장의 부모님은 ‘평화사진관’, ‘평화식당’을 운영하며 자식들에게 평화와 나눔, 은혜의 소중함을 교육했다. 3대인 이원장 자신도 ‘평화가축병원’을 운영하며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고 있다. 4대인 이원장의 장남은 공군사관학교를 나와 공군 중령(편대장)으로 대한민국의 자유를 지키고 있다.
광복 70주년 맞아, ‘기념공원’ 조성이 꿈
이경필 원장의 하루는 눈 코 뜰 사이 없이 바쁘게 돌아간다.
흥남철수작전을 기리기 위한 ‘기념공원 조성사업’ 추진 현황을 살피는 한편, 미국에서 ‘메러디스 빅토리호(중국에 고철로 팔린 뒤, 해체돼 없어짐)’와 같은 임무를 수행했던 ‘레인 빅토리호’ 인수를 위한 활동에 한창이다.여기에 본업인 가축병원 일도 봐야한다.
이 원장은 주 종목이 소와 돼지 등 대형동물인 탓에 병원 내 진료보다 외곽 지역으로 출장이 많다. 하루에도 20~30Km는 다반사로 왕진한다. 주변에서는 이 원장을 두고, ‘바보 수의사’라는 별명을 붙여줄 정도다.이 원장의 식을 줄 모르는 열정에 꿈만 같았던 ‘기념공원 조성사업’은 한발 두발 나아가고 있다.
이미 이 원장은 흥남철수작전 기념공원 조성을 위해, 거제시 장승포동 70번지에 면적 9,9000m²에 이르는 부지를 확보했다. 이곳에는 총사업비 280억원을 들여 흥남철수작전을 기념하는 상징조형물, 전망대 등을 세울 계획이다. ‘레인 빅토리호’ 인수가 성공적으로 이뤄진다면, 이 배도 이 곳에 자리를 잡을 예정이다.
이 원장의 목표는 기념공원을 통해, 피난민의 애환과 생활상을 조명하고, 전쟁과 평화, 자유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는 체험교육의 장을 마련하는 것이다.
“영화 ‘국제시장’ 관람객이 곧 1,000만명도 넘을 거라고 한다.
어려운 시절 모두가 하나 돼 가족을 지키자고 했던 아버지 세대에 대한 헌사를 이야기로 담고 있어서 기분이 참 좋은 영화였다.다만, 영화에서 흥남철수 작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우리 피난민을 실은 메러디스 빅토리호가 거제도 장승포가 아닌 부산으로 도착하는 것처럼 묘사돼 아쉽기는 했다.
흥남철수 작전을 제대로 보여줄 수 있는 장소가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 이경필 원장
아쉬운 것은 또 있다. 이 원장의 열정과 노력에도 기념공원 조성사업은 점차 추진력이 약해지고 있다.대표적인 사례가 김백일 장군의 친일 논란이다. 공원 조성을 반대하는 좌파단체들은 흥남철수 작전에서 공을 세운 김백일 장군이 친일 인사이기 때문에 ‘역사적 가치가 없다’고 폄훼한다. 이들은 한발 더 나아가 김백일 장군 동상 철거를 위한 집회와 소송을 벌이기도 했다.
이에 대해 지난 해 ‘흥남철수기념사업회’는 거제시장을 상대로, ‘김백일 장군 동상 철거 명령 및 철거집행 처분을 취소해 달라’는 소송을 냈고, 대법원 승소 확정판결을 받아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백일 장군 친일 논란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이로 인해 이 원장의 숙원인 기념공원 조성사업도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이 원장은 “김백일 장군에 대한 친일 논란은 대법원의 판결로 더 이상 논란의 여지가 있어서는 안 되는 사안”이라며, “10만 명에 이르는 피난민들에게 자유의 땅과 생명을 준 김백일 장군의 정신은 그 어떤 가치보다도 먼저 생각돼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피난민 구한 ‘포니 장군’ 후손, “한국은 제2의 고향”
이 원장은, 지난해 정전 60주년을 맞아 국방부 초청과 방송국 다큐멘터리 촬영으로 미국을 방문했다.
이때 이 원장은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방문해 한미동맹의 굳건함을 확인하는 한편, 한국전쟁이 무승부가 아닌 한국의 승리임을 확신했다고 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한국전쟁의 결과로 5,000만 명의 한국인들이 자유와 민주주의를 누릴 수 있게 됐고,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인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고 극찬하는데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 이경필 원장
이후 이 원장은 평화와 은혜, 나눔의 감사와 실천의 뜻으로 2개의 감사패를 준비했다.이 원장은, 이들 감사패를 ‘미국의 영웅(American Hero)’을 대표해 미국 재향군인회장에게 전달했고, 다른 하나는 흥남철수 작전 당시 자유를 찾아 메러디스 빅토리호에 올랐던 피난민을 구출한 故 에드워드 포니 준장(당시 대령)의 증손자 벤 포니에게 전달했다.
이 원장은 “감사패를 전달하는 자리에서, 포니 준장의 증손자인 벤 포니가 한국전쟁과 흥남철수 작전에 대해서 할아버지에게 들어 자세히 알고 있다”며, “한국을 사랑한다고 울먹이면서 한국을 제2의 조국으로 삼고 싶다. 한국의 대학으로 공부를 하러 가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고 전했다.
이 원장은 “젊은 청년 벤 포니를 보며 이제 우리도 도움을 주고 은혜를 베푼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갚아야할 때가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현재, 포니 준장의 증손자 벤 포니는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에 재학 중이다.
벤 포니는 올해 초 입학해 첫 학기를 마쳤으며, ‘한국전쟁기념재단 참전용사 후손 장학생’으로 선발돼 등록금과 생활비를 지원받았다.이 원장도 이 같은 사실을 알고 있었다,
벤 포니가 자신과 만난 이후, 스스로의 말대로 한국을 제2의 조국으로 삼고, 한국의 청소년들에게 안보의식을 일깨우고, 한국전쟁과 흥남철수작전에 대해 알리는 일을 하는 것에 자랑스러워했다.
‘김치(Kimchi) 5’ 이경필, ‘김치1~4’ 근황은?
이 원장은 흥남철수 작전의 마지막 피난선 ‘메러디스 빅토리호’에서, 피난민 10만명 중 마지막 신생아로 태어났다. 같은 날, ‘메러디스 빅토리호’에는 크리스마스가 생일인 ‘김치 형제’가 4명 더 있었다.
이 원장은 현재 ‘김치 1’ 이외에는 연락이 닿지 않는다고 했다. ‘김치 1’과는 지난해 만난 것이 마지막이라고 했다.
서울에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김치 1’은, 언론의 노출을 상당히 부담스러워 한다고 했다.
이 원장은 나머지 ‘김치 형제’ 들에 대해 “그저 들리는 소문으로 ‘외국에서 살고 있다’, ‘벌써 세상을 떠났다’고 듣는 정도이고,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