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응천은 왜? 靑 문건 유출 사건, 실체가 밝혀지지 않은 초라한 결말!
  • ▲ '정윤회 문건 파문' 이후 주요 언론들을 도배한 비선실세 의혹. ⓒYTN 방송화면
    ▲ '정윤회 문건 파문' 이후 주요 언론들을 도배한 비선실세 의혹. ⓒYTN 방송화면

    지난해 연말 정국을 뒤흔든, 이른바 청와대 문건 작성 및 유출 사건이 5일 예정된 중간수사결과 발표를 계기로 사실상 마무리될 전망이다.

    정국의 흐름을 바꿀만한 파괴력을 지닌 초대형 정치공작사건이다.
    그러나 국민들의 눈과 귀를 집중시킨 사안치고는 그 끝이 너무 초라하다.

    사건의 실체 규명을 위해 특별수사팀까지 구성한 검찰은 이 사건 배후로 지목된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에 대한 구속영장청구가 법원에 의해 기각되면서 체면을 구겼다.

    앞서 검찰은 청와대 문건 유출을 당사자로 지목된 서울경찰청 정보1분실 소속 두 명의 경찰관에 대해서도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이번 사건으로 구속기소된 사람은 청와대 문건작성을 주도하고, 문건의 내용을 세계일보에 흘린 당사자로 지목된 박관천 경정 한 명뿐이다.

    하지만 사건 연루자에 대한 신병처리만을 기준으로 결과를 평가해선 안 된다는 반론도 있다.

    자칫하면 초대형 게이트로 비화될 수 있었던 사건의 실체가, 청와대 비서관과 경찰 간부가 만들어낸 자작극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밝혀냈다는 점은 결코 가볍지 않다.

    사건 초기 모든 언론과 국민들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은 ‘십상시(十常侍·10명의 환관) 비밀회동’은 세계일보의 단독보도로 정국에 엄청난 충격파를 줬으나, 회동 사실 자체가 없었던 것으로 드러나 국민들을 당혹케 했다.

    ‘비선실세 개입설’ 비선그룹 간 권력암투설의 진앙이 됐던 ‘박지만 미행보고서’ 역시 사실무근으로 드러났다. 청와대 문건 유출의 경로를 확인한 것도 검찰 수사팀이 거둔 성과 중 하나다.


  • ▲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 ⓒKBS 방송화면
    ▲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 ⓒKBS 방송화면

    . 사건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제기된 의혹이 모두 풀린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전직 부장검사 출신의 조응천 전 비서관이 창작소설 수준의 허위 문건을 청와대 밖으로 빼돌린 이유가 제대로 규명되지 않았다.

    이재만 총무비서관과 조응천 전 비서관 사이의 갈등이 이번 사건의 계기가 됐다는 견해가 있으나 실체가 드러난 팩트는 아니다.

    조응천 전 비서관이 자신의 정치적 역량을 키우기 위해 박지만 EG 회장을 끌어들이고자, 사건을 기획했다는 관측도 있지만 이 역시 구체적인 정황은 드러나지 않았다.

    때문에 조응천 전 비서관이, 이런 무리수를 둔 이유를 둘러싼 의혹은 검찰의 수사결과 발표 이후에도 찜찜한 상태로 남을 수밖에 없다.

    비선실세가 국정에 개입했다는 의혹도 실체가 속 시원히 밝혀지지 않아, 검찰 수사의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청와대는 여론의 눈치를 살피기에 여념이 없다. 박근혜 대통령을 궁지로 몰아넣은 사건이 명명백백 밝혀지지 않았음에도 청와대 내부에선 검찰의 수사결과 발표를 주시하며 태풍이 조용히 지나가기만을 바라는 기류가 강하다.


    . ‘십상시는 없다’ 무위에 그친 정치공세


    사건 초기 비선그룹이 국정을 ‘농단(壟斷)’하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던 이른바 십상시 비밀회동은 수사결과 사실무근으로 확인됐다.

    검찰은 십상시 문건에 나오는 인물들의 휴대전화 통화기록 등을 분석해, 강남 중식당 비밀회동 자체가 없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검찰은 비밀회동의 좌장으로 언급된 정윤회씨와 청와대 문고리 3인방 사이에 통화 사실도 거의 없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십상시 모임을 포함한 이른바 ‘정윤회’ 문건을 보도한 세계일보 기자들에 대한 명예훼손 사건은, 검찰의 중간수사 발표 뒤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앞서 지난해 11월 28일, ‘십상시’로 언급된 청와대 비서관 8명은 세계일보 기자들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지난달 7일 문건에서 언급된 십상시 멤버를 검찰에 고발하고 수사를 의뢰해 진상규명을 촉구하겠다고 했다. ‘비선실세 국정농단 진상조사단’이라는 거창한 하부 조직도 꾸렸다. 지휘는 노무현 정권에서 법무비서관을 지낸 박범계 의원이 맡았다.

    박범계 의원은 당시 조응천 전 비서관 등의 주장을 인용하며 “관련자들이 직접 경험한 내용을 진술한 부분은 당사자의 직접 진술이므로 증거가치가 높다고 판단해 고발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검찰이 ‘십상시 비밀회동은 없다’고 결론을 내리면서 새정치민주연합의 이러한 행보는 일방적인 정치공세에 그치게 됐다.

  • ▲ 정윤회씨의 지시로 박지만 EG 회장의 미행이 이뤄졌다는 내용은 허구로 밝혀졌다. ⓒKBS 방송화면
    ▲ 정윤회씨의 지시로 박지만 EG 회장의 미행이 이뤄졌다는 내용은 허구로 밝혀졌다. ⓒKBS 방송화면

    . ‘박지만 미행’은 소설? 그렇다면...


    정윤회씨의 지시로 오토바이를 탄 정체불명의 남성이 박지만 회장을 미행했다는, ‘박지만 미행 보고서’는, 구속된 박관천이 만들어낸 ‘허구’로 결론이 났다.

    특히 이 사안은, 정윤회씨와 박지만 회장간 ‘권력암투설(權力暗鬪說)’의 근간이 됐다는 점에서, 실체에 대한 관심이 다른 어떤 것보다도 컸다.

    검찰은 미행보고서에 나오는 경기 남양주 소재 카페 대표에 대한 참고인 조사와, 관련자들의 통화기록 등을 분석해, 미행보고서의 내용 대부분을 박관천 경정이 허구로 만들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검찰이 ‘십상시 비밀회동’과 ‘박지만 미행보고서’가 허구라는 사실을 밝혀내면서, 관심은 사건 배후로 지목된 조응천 전 비서관의 범행동기에 모아지고 있다.

    조응천 전 비서관의 범행동기는 검찰 수사팀이 가장 공을 들인 부분이다.

    검찰은 조응천 전 비서관이 박관천 경정의 문건 작성 및 유출에 깊숙이 개입한 것으로 보고, 그 배경을 집중적으로 추궁했다.

    검찰은 조응천 전 비서관이 정윤회 문건과 미행보고서를 지난해 1월 박지만 회장에게 직접 전달한 이유에 대해서도 수사를 계속하고 있다.

    검찰 주변에서는 조 전 비서관과 청와대 ‘문고리 3인방’ 사이의 갈등이 이 사건이 시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 ‘문고리 3인방’, 특히 이재만 총무비서관과의 권력다툼이 범행의 직접적인 동기가 됐다는 분석이 그것이다.

    조 전 비서관이 정계진출을 위해 박지만 회장에게 줄을 대기 위해, 의도적으로 사건을 키웠다는 관측도 있다.

    그러나 조응천 전 비서관은 검찰이 자신에게 적용한 혐의를 철저하게 부인하고 있다. 구속된 박관천 경정도, 허위문건 작성 및 유출과 관련돼 말을 아끼고 있다.

    때문에 조 전 비서관의 범행동기는 기소 후에도 드러나지 않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 ‘십상시’ 논란 그후, 남은 과제는?


    ‘십상시 비밀회동’, ‘정윤회 문건’, ‘박지만 미행보고서’ 등이 모두 조응천 전 비서관과 박관천 경정의 자작극으로 결론이 나더라도, 범행동기가 밝혀지지 않는 한 의혹은 재판이 모두 끝날 때까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비선실세의 존재 여부와 이들의 국정 개입여부 등도 풀어야 할 숙제다.

    세계일보 기자들에 대한 명예훼손 고소사건 등 인화력 높은 불씨가 여전히 남아있어, 언제든 새로운 사실이 드러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검찰은 조응천 전 비서관에게 공무상비밀누설,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불구속 기소할 방침이다.

    검찰은 지난 3일 구속 기소된 박관천 경정에게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 공용서류은닉, 무고, 공무상비밀누설 등 4가지 혐의를 적용했다.

    박관천 경정이 작성한 문건을 언론사 등에 전달하는 등 문건 유출 혐의를 받고 있는 서울경찰청 정보1분실 소속 한모 경위도 불구속 기소될 예정이다.

    청와대는 책임론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건의 진원지가 청와대 내부 문건이라는 점, 올해 초 김기춘 대통령비서실장이 초동 진화의 기회를 내쳐버린 점, 비서진들 사이의 불통(不通) 문제가 고스란히 드러난 점 등을 두고 여론의 시선이 곱지 않다.  

    여야를 가릴 것 없다. 정치권에서는 이번 기회에 청와대가 인적쇄신을 단행해야 한다는 지적이 쇄도하는 상황이다.

    박근혜 정부 출범 3년차의 첫 단추를 꿰야 하는 시점이다. 검찰 수사로 드러나지 않은 의혹을 털어내기 위한 출구가 필요하다. 을미년(乙未年) 새해를 맞아 ‘경제-통일’이라는 대단원의 막을 올리기 위해 박근혜 대통령이 어떤 결심을 할지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