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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사람들에게 북한 주민들은 그저 아무나(anybodies)가 아닙니다. 대한민국 수백만 명의 이산가족에겐 아직 북쪽의 가족들이 남아 있습니다.
비록 그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을 수 없고 그 분단의 고통은 엄연한 현실이지만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겨우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그곳에 그들이 살고 있다는 걸 말입니다.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 보고서에 적힌 인권침해의 참상을 읽으면서 우리 가슴도 찢어지고 탈북자들의 증언을 들으면서 마치 우리가 그런 비극을 당한 것처럼 같이 울지 않을 수 없고, 슬픔을 나누게 됩니다.
먼 훗날 오늘 우리가 한 일을 돌아볼 때, 우리와 똑같이 인간다운 삶을 살 자격이 있는 북한 주민을 위해 ‘옳은 일을 했다’고 말할 수 있게 되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인권운동가가 한 말이 아니다. 대한민국 외교관, 오 준 駐유엔 대사가 북한인권 문제가 정식 안건으로 상정되던 22일(현지시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한 즉흥 연설이다. 이 연설을 듣던 유엔 안보리 이사국 대표들도 숙연해졌다.약 3분 분량인 오 준 駐유엔 대사의 즉흥 연설은 당초 써 갔던 연설문에는 없었다. 5분 길이의 연설문에는 한국 정부의 공식적인-딱딱한 표현이 위주인-입장만 들어 있었다. 주로 ‘북한 인권상황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는 것과 유엔 안보리가 북한인권문제를 안건으로 다뤄야 하는 당위성을 설파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오 준 駐유엔 대사에게 북한 주민들은 '남'이 아니었다. 그의 모친과 장인이 이북에서 월남한 실향민이자 이산가족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게다가 임기도 얼마 남지 않았다.
오 준 駐유엔 대사는 한국 정부의 공식입장을 모두 설명한 뒤 “이번 회의가 어쩌면 저에겐 마지막 임무일 것 같다”는 말로 솔직한 심정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2년 전 유엔 대사로 부임했을 때 북한 미사일과 핵 문제가 의제 중 하나였다“며 소회를 밝힌 오 준 駐유엔 대사는 북한인권문제가 유엔 안보리의 정식 안건에 된 것을 ‘환영’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마음이 무겁다’고 밝혔다.
수백만 이산가족들, 그들의 가족이 김씨 일가 때문에 ‘인간답게 살아갈 자유’가 없는 데 불과 수백 킬로미터 거리에서 이를 지켜봐야 하는 한국 국민의 보편적인 정서를 그대로 드러냈다.
3분이 채 안 되는 오 준 駐유엔대사의 짧은 연설은 안보리 이사국 대표들에게 ‘아픔’을 준 것처럼 보였다. 사만다 파워 駐유엔 미국 대사는 “유엔에서 들어본 연설 가운데 최고”라고 극찬했다.
오 준 駐유엔 대사의 즉흥 연설은 언론보도나 외교부의 공식적인 홍보가 아니라 젊은 세대들 사이에서 알음알음 퍼지며 화제가 되고 있다. 특히 SNS에서는 오 준 駐유엔 대사의 즉흥 연설이 게재된 유튜브의 URL이 급속히 퍼지고 있다.
현재 유튜브에는 오 준 駐유엔 대사의 연설에 한글 자막을 단 영상들이 10여 개 가량 게재돼 있다. 영상 대부분의 조회 수가 2만 내외에 달해, 그의 연설이 유엔 안보리 이사국은 물론 한국 젊은이들의 가슴까지 울렸음을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