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 문건 루머로 단정 후 수사 지시, 지난 1월부터 알고도 대응안해..靑 문제의식이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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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박근혜 대통령이 정윤회 파문에 대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뉴데일리DB
    ▲ 박근혜 대통령이 정윤회 파문에 대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뉴데일리DB

    정윤회 파문에 박근혜 대통령이 입을 열었다.
    오랫동안 떠돌기만 했던 루머에 박 대통령이 직접 언급한 것은 처음이다. 

    하지만 예상했던 대로, 내용은 아쉬웠다.

    박 대통령은 철저한 검찰 수사를 지시하면서도 보도된 소문을 '루머'로 단정했고, 보도된 문건의 진실을 규명하는 것보다 문건이 유출된 경위와 의도를 질책했다.

    박 대통령의 이 같은 발언은 결국 검찰 수사가 시작되기도 전에 루머의 당사자로 지목된 핵심 3인방(이재만 총무비서관, 정호성 제1부속비서관, 안봉근 제2부속비서관)을 감싸고 돌았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검찰 수사 앞서 대통령이 '루머'로 단정해

     

    다음은 박 대통령이 1일 청와대에서 주재한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정윤회 파문에 대해 언급한 발언이다.

    "청와대에는 국정과 관련된 여러 사항들뿐 아니라 시중에 떠도는 수많은 루머들과 각종 민원들이 많이 들어온다. 그러나 그것들이 다 현실에 맞는 것도 아니고 사실이 아닌 것도 많이 있다."

    "만약 그런 사항들을 기초적인 사실 확인조차 하지 않은 채 내부에서 그대로 외부로 유출시킨다면 나라가 큰 혼란에 빠지고 사회에 갈등이 일어나게 된다."

    박 대통령은 이 같은 말로 유출된 문건이 사실과 다른 '루머'라는 청와대 주장을 뒷받침했다.

    앞서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이 "찌라시 수준의 보고서"라고 해명한 내용과 같은 맥락의 발언인 셈이다.


    파문 진위보다 유출 과정만 질타

     

    박 대통령은 오히려 이런 찌라시 수준의 보고서를 유출된 경위에 대해 지적했다. 문건 유출에 어떤 의도가 있다는 의혹을 감추지 않았다.

    "이번에 문건을 외부에 유출하게 된 것도 어떤 의도인지 모르지만 결코 있을 수 없는 국기문란 행위이다. 이런 공직기강의 문란도 반드시 바로잡아야 할 적폐 중 하나다."

    "조금만 확인해 보면 금방 사실 여부를 알 수 있는 것을 관련자들에게 확인조차 하지 않은 채 비선이니 숨은 실세가 있는 것 같이 보도를 하면서 의혹이 있는 것 같이 몰아가고 있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생각한다."

     

    박 대통령은 '확인' 절차도 없이 보도한 언론사의 책임을 질책했다.
    박 대통령의 언론에 대한 호통은 계속 이어졌다.

     

    "이 문서 유출을 누가 어떤 의도로 해서 이렇게 나라를 혼란스럽게 하는지에 대해서도 조속히 밝혀야 한다."

    "검찰은 내용의 진위를 포함해서 이 모든 사안에 대해 한 점 의혹도 없이 철저하게 수사해서 명명백백하게 실체적 진실을 밝혀 주길 바란다."

    박 대통령은 '내용의 진위' 수사를 지시하면서도 "악의적인 중상이 있었다면 그 또한 상응하는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라고 거듭 경고했다.

    특히 "그동안 만만회를 비롯해서 '근거 없는' 얘기들이 많았는데 이번에야말로 반드시 진실을 밝혀내서 다시는 이런 말도 안 되는 얘기들이 국민들을 혼란스럽게 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했다.

    정윤회 씨와 박지만 EG회장을 둘러싼 만만회 이야기가 '근거 없는' 루머라고 단정지은 셈이다.

  • ▲ 파문의 주인공 정윤회 씨. ⓒTV조선 캡쳐
    ▲ 파문의 주인공 정윤회 씨. ⓒTV조선 캡쳐


     

    문제 의식 없는 靑, 아는 게 없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청와대에서 이 문제에 대해 상세히 알고 있는 사람은 몇사람 되지 않는다.

    지난 정부 핵심실세는 <뉴데일리>와의 통화에서 "어쩌면 대통령도 이 문제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할 수도 있다"고 했다.

    실제로 현 정부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VIP(박근혜 대통령) 측근 3인방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봐도 된다"며 "과거 이정현 수석정도면 모를까 지금은 김기춘 실장도 이들 3인방의 세세한 일정과 동태를 파악하지는 못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가 정윤회 파문에 대해 제대로된 대처를 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서 비롯된다.

    처음 정윤회 국정개입 보도가 시작된 28일 오전 민경욱 대변인과 기자들의 일문일답을 살펴보자.

    Q) 풍설을 모은 이른바 찌라시를 모았다는 것이, 보고서가 그렇다는 것인가?

    A) 그런 말씀이다.

    Q) 작성된 것은 사실인가?

    A) 사진이 나와있더군요.

    Q) 출처는 어딘가?

    A) 질문을 좀 다시 한번 해달라.

    Q) 지난번에 감찰은 없다고 발표했고, 이것은 감찰이 있는 것처럼 발표했는데 청와대에서 작성된 것인지? 감찰보고서인지?

    A) 유사한 내용을 담은 보고서, 문건을 바탕으로 보고를 받은 사실이 있다고 말씀드리겠다.

    Q) 행정관이 작성한 문서는 맞고, 그렇다는 건가? 그 내용이 찌라시 수준이다 그런 얘기인가?

    A) 그렇게 주장하는 거 아닌가? 보도 내용을 보면 그렇게 추정할 수 있을 것 같다.

    Q) 그걸 확인해주는 게 좋을 것 같다. 보도된 문서가 그 사람이 만든 게 맞는지, 그 내용이 찌라시 수준이라는 얘긴데 그 행정관이 작성한 것은 맞는지 확인해주면 좋겠고, 어디까지 보고가 됐나?

    A) 그 문건을 만든 사람은 지금 행정관이라고 표현하셨지만, 그 분으로 추정이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민 대변인은 보도된 보고서의 존재와 이 보고서가 김기춘 비서실장에게 보고된 것을 인정하면서도, 보고서를 누가 작성했는지 어떤 조사과정을 통해 만들어졌는지에 대해 제대로 답변하지 못했다.

    민 대변인의 이런 애매한 답변은 오히려 의혹을 증폭시켰다.

    야권이 "청와대에서 행정관이 작성한 보고서를 어떻게 '찌라시'로 볼 수 있느냐"며 해당 문건의 진위 여부 해명을 촉구하고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청와대의 언론대응과 정무적 판단이 아쉬웠던 대목이다.

    비박계 한 의원은 "누가 왜 그 보고서를 만들었는지를 제대로 밝히지 않는 바람에 이제는 그걸 밝힌다고 하더라도 아무도 믿지 않게 됐다"고 했다.

    이 의원은 "아닌 걸 아니라고 말하기보다 그냥 입을 닫아 버리는 청와대의 대응이 계속 문제가 되는데, 대통령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문제에 대해서는 말하기 꺼려할 뿐 아니라 잘 모르기도 한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 ▲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의 진퇴 문제까지 논의한 비선 실세가 있다는 28일자 세계일보 보도를 두고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사진은 지난 7월 10일 국회에 출석한 김기춘 비서실장.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의 진퇴 문제까지 논의한 비선 실세가 있다는 28일자 세계일보 보도를 두고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사진은 지난 7월 10일 국회에 출석한 김기춘 비서실장.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정윤회 루머, 과연 진실일까?

     

    청와대의 아쉬운 대응과 부족한 정무적 판단은 보도된 '루머'가 진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는 생각이 깔려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보도된 문건을 살펴보면 이재만, 안봉근, 정호성 등 박 대통령의 비서관 3인방을 비롯한 십상시(十常侍)가 정윤회 씨와 매달 2회씩 강남 모처에서 만나 청와대 인사에 대해 논의한다고 보고돼 있다.

    청와대에서 3인방과 함께 근무하는 직원들은 이런 행태는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라고 입을 모았다.

    한 행정관은 "정권 실세로 소문난 비서관과 보좌관 10명이 강남 유명 식당에 한달에 2번씩 만난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라고 했다.

    또다른 행정관은 "보고서에 나온 기본적인 내용이 비현실적인데다, 언급된 십상시로 지목된 명단도 마찬가지여서 신뢰가 가지 않는다"고 했다.

    비서관 3인방 중 한명인 정호성 청와대 제1부속실장도 중앙선데이와의 인터뷰에서 "(청와대에 들어온 후 정윤회씨를) 만난 적이 없기 때문에 문건은 기본 전제부터 틀렸다"고 말했다.


    루머 알고도 대처하지 않은 게 문제

     

    하지만 청와대는 이 같은 문제에 제대로 대처하지 않았다.

    청와대는 지난 1월 처음 보고서가 작성된 이후 루머에 대해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애초부터 거짓 소문이었기 때문에 대응하지 않았던 셈이다.

    진짜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악의적인 루머가 떠돌고 있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청와대가 제대로된 진상규명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태가 이처럼 커졌다는 지적이다.

    단순한 스캔들성 악성 루머가 아닌 '정윤회와 대통령 최측근이 자주 만난다', '정윤회가 김기춘 비서실장의 교체까지 거론한다', '정윤회를 만나기 위해서는 현금 7억원 가량이 필요하다고 한다'는 구체적인 소문에 대해서는 철저히 진상 파악을 해놨어야 한다는 얘기다.

    새누리당 친박계 한 중진의원은 "거짓 소문에 대해 '입만 다물고 있으면 된다'는 청와대의 문제 의식이 곧바로 부작용으로 이어진 셈"이라며 "정윤회에 대한 루머를 누가 어떤 의도로 퍼뜨리는지 파악해야 하는 곳이 민정수석실 아닌가"라고 꼬집었다.

    '만만회' 루머에 대해 직접적인 언급을 한 바 있는 박지원 새정치민주연합 비대위원도 이날 CBS라디오에 출연해 "해당 문건은 이미 세월호 침몰 사건 전인 지난 3월경에 유출됐던 것이고, 청와대는 이것을 해소하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했지만 세월호 사건이 터져 간과를 하고 있다가 이제 드디어 터져 나왔다는 얘기도 들린다"고 말했다.

     

  • ▲ 박근혜 대통령의 비서관 3인방의 실세론은 정권초기부터 끊임없이 제기된 의혹이지만, 청와대는 이에 대해 명확하게 해명한 적은 없다. 사진은 지난해 여름 경남 거제로 휴가를 떠난 박근혜 대통령. ⓒ뉴데일리 DB
    ▲ 박근혜 대통령의 비서관 3인방의 실세론은 정권초기부터 끊임없이 제기된 의혹이지만, 청와대는 이에 대해 명확하게 해명한 적은 없다. 사진은 지난해 여름 경남 거제로 휴가를 떠난 박근혜 대통령. ⓒ뉴데일리 DB


    검찰조사로 진실규명될까?
    朴대통령 이제는 3인방 내쳐야!

     

    이날 박 대통령이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정윤회 파문에 대해 밝힌 발언을 살펴보면 루머를 유포한 세력을 색출해 그 의도를 밝혀야 한다는 의지가 강하게 묻어 있다.

    하지만 정치권의 시각은 그리 긍정적이지 않다.

    박완주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변인은 "문제의 청와대 공식보고서를 어떻게, 누가, 왜 작성했는지 작성경위나 내용에 대해서는 아무런 조사나 설명 없이 그냥 찌라시 수준이라고 일축해버리면서 오로지 문건유출만을 문제 삼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라고 했다.

    문희상 비대위원장도 "새정치민주연합은 이미 비선실세국정농단 진상조사단을 구성했고, 빠른 시간 안에 비선실세 국정농단에 관한 상설특검 1호 또는 국정조사를 당장 단행할 것을 새누리당에게 강력하게 촉구한다"고 공세 수위를 높였다.

    야당에서 특검 얘기까지 나오자 여당 내부는 혼란스럽다.

    검찰에서 진위여부를 가려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과연 검찰이 청와대 깊숙한 내부 사정까지 정확히 수사할 수 있을까에는 여당 의원들 역시 물음표를 찍는다.

    익명을 요구한 여권 중진 의원은 "해당 비서관들이 직접 검찰에 출석해서 조사를 받는 것도 어려울 것이고, 조사를 받는다고 해도 의혹이 완전히 해결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이 문제가 특검까지 간다면 앞으로 국정운영에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핵심 실세로 지목된 비서관 3인방이 여전히 청와대 부속실 안팎에서 고위 공직을 유지하고 있는 것도 쉽지 않은 검찰 수사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서영교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변인은 <뉴데일리>와 통화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말하는 검찰 수사는 사실상 검찰이 사건 '정리'를 해달라는 말"이라며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청와대 실세들을 성역없이 수사하기 위해서는 지목된 비서관 3인방들도 청와대에서 나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